
happy RE-BIRTHDAY
soap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홍지수, 아니 구미호는 그것이 아주 옛날에 제가 써먹었던 쌍팔년도 작업 멘트였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대충 53년 전쯤에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매주 함께 본방사수했던 주말 드라마에서나 나왔을법한 대사가 참 고리타분하다. 왼쪽 팔에 걸어둔 새카만 헬멧의 버클을 풀어 옆구리에 끼고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 잘못 봤네요. 눈 마주치지 않으려 일부러 구십도 인사를 하고 서둘러 등을 돌렸다.
“나 사람 아닌데요.”
“……안녕히 가세요.”
나도 사람 아니거든? 그 말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아 춥다. 딴 생각을 하자 딴 생각. 내가 스쿠터 키를 어디에 넣어놨더라. 오른쪽 주머니였나 왼쪽 주머니였나. 안감 주머니였나? 키를 찾자. 빨리 벗어나자. 이곳을, 빨리,
“야 너 사람 아니지?”
저벅저벅 눈 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몸이 뒤로 훽 돌아갔다. 비실비실한 게 악력은 여전하네. 구미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업무 방해로 고소감인거 몰라요? 망자가 도망가게 두면 어떡합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잔뜩 경직된 얼굴 앞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제기랄. 맞네. 이렇게 지랄하는거 보니까 윤정한이네. 구미호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 사자님이 망자 놓친 게 제 잘못은 아니지 않나요?”
오늘.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한 해의 끝자락이던 12월 30일 오전 열 시경. 구미호라고 불리는 홍지수는 천 번째 윤정한을 마주했다. 구십구 번동안 살아있었으나, 백 번째에 죽어버린 윤정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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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는 눈에 푹푹 빠지는 구식 스쿠터를 타지도 못하고 질질 끌며 뒤에서 쫓아오는 윤정한의 한탄을 흘려들으면서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폭설주의보를 듣고도 스쿠터를 밖에 세워둔 것? 윤정한을 만나지 못하고 올해가 다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조급함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 그것도 아니면. 윤정한을 조금 더 열심히 찾아다니지 못한 것? 마지막 물음표는 아니다. 전국 팔도강산을 다 뒤졌다. 물론 북한은 능력 밖의 일이라 빼고. 그래도 산신령 할배 몰래 구미호 입사 동기한테 물어보긴 했다. 38선 너머 구역에 윤정한이라는 망자가 들어왔냐고. 윤정환은 열둘이나 있는데 윤정한은 없다고 했다. 정한이라는 이름이 흔한 편은 아니지. 홍지수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 윤정한 세 글자가 박힌 명찰을 마주한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추억 팔이는 뒤로 하고, 바다 건너까지 뒤졌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외국에서 죽은 건 아니잖아.
“내가 사자 노릇은 처음이라 잘 몰랐다고요. 다 뒤져가는 사람이 그렇게 빨리 도망칠 수 있는 겁니까 원래?”
여기 이 좁아터진 대한민국 땅에서 이렇게 나불거리고 있는 걸 보면.
홍지수는 질질 끌던 스쿠터를 멈춰세우고 뒤를 돌아 윤정한을 마주했다. 신입이라고 사자 복장을 다 차려입은 게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잘 어울려서 화가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저승사자 옷을? 홍지수 기억 속 윤정한은 그 어떤 유니폼도 똑바로 입은 적이 없었는데.
“사자님은 언제 죽었습니까?”
“그게 지금 사자 업무 방해해놓고 입 꾹 닫고 있다가 할 소립니까?”
“…제가 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럼 그쪽은 이번이 몇 번째 간입니까?”
“……뭐라고요?”
“우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
“그쪽이 내 간 먹으려고 했었나.”
왜 대답 안 해요? 윤정한은 입을 꾹 다물고 눈 쌓인 골목길을 빠져나와 제설작업이 끝난 도로에 스쿠터를 바로 세우는 홍지수를 다시 잡았다. 이쪽 구역 구미호들은 아직도 스쿠터 탑니까? 지난주에 본 구미호는 테슬라 타던데. 얼굴을 죄는 갓을 벗어던지듯 푸는 저승사자를 앞에 세워두고 구미호는 태연하게 새카만 헬멧을 집어쓰며 말했다.
“다 뒤져가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빠른 거냐고 물었죠?”
플라스틱 헬멧 너머의 정한이 흐릿해졌다.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죽음을 마주하면 그제야 살고 싶어지거든요. 사람은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동물이니까.”
우리 다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쪽 구역 책임은 알아서 지세요.
구미호는 익숙하게 낡은 스쿠터의 시동을 걸고 속도를 높였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가만히 서 있는 저승사자가 멀어져 갔다. 죽음을 눈앞에 마주한 구미호는 이제야 가장 솔직해진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윤정한을 만나길 바라며 살아왔지만 망자 윤정한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승사자가 된 윤정한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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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그래 대충 백 년 하고도 훨씬 전이겠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사람 간을 집어먹어야 사람이 되는 구미호 같은 건 싫었는데 제가 그 구미호였다. 그래서 홍지수는 쿨하게 사람 되기를 포기했다. 사람의 간 같은 건 맛이 없었다. 사람 음식으로 따지자면 가지랑 비슷했다. 비리고 물컹거리는 걸 백 개나 먹을 순 없었다. 그리고 굳이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구미호들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이나 사람같이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신은 될 수도 없고, 될 생각도 없고. (홍지수는 신을 꿈꿀 정도로 권력욕이 있는 구미호는 아니었다) 사람 돼서 뭐 하냐. 사람 되면 언젠간 죽는데. 구미호 동기들 전부 사람 홀려다가 간 빼먹을 때 홍지수는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사람 같은 너 행세하면서 (구미호한테 홀려서 간 내주기 직전의) 진짜 사람들 좀 도와주고 그랬다. 물론 몰래. 산신령 할배도 아마 알고 있었을거다. 그냥 눈감아 준 거겠지. 그러다 어떤 남자 하나를 만났다. 분명 사람 홀리는 구미호는 전데 제가 사람한테 홀렸다. 그래. 맥락상 그게 윤정한이다. 처음 윤정한을 봤을 때 걔는 열일곱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머리가 존나 긴. 그런 남자 고딩을 처음 봐서 그게 조금 신기했을 뿐이라고 변명해본다. 왜냐면 걔는 교복도 엉터리로 입었거든. 조끼도 없고 넥타이도 없고 그냥 와이셔츠 하나 입고 뛰는데 긴 머리가 막 날렸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거야.. 를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을 때 윤정한의 프라이탁에서 명찰이 하나 툭 떨어졌다. 머리 긴 열일곱 살 남고딩이 프라이탁 메고 다니다가 구미호 앞에 명찰 떨어트리는 거. 홍지수는 그게 운명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당연히 가서 명찰을 주웠다. 거기에 적혀있던 이름 석 자. 윤정한. 한자로 적혀있었어도 구미호는 읽을 줄 알았겠지만, 한글로 된 그 세 글자가 왜 그렇게 사람을 홀렸는지. 백 년 하고도 십 년이 더 지났어도 그날을 기억하니까.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헛소리를 해대며 주운 명찰을 돌려줬다. 명찰을 받아든 윤정한은 빙긋 웃으며 커피를 사 준다고 했던 것 같다. 그거 말고도 뭐라고 더 했던 것 같은데. 대충 작업 멘트 같은 거. 불행히도 그 부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천 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무튼 윤정한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까지 윤정한과 함께 있었다. 중간에 윤정한이 제대해서부터는 같이 살았다. 홍지수 특기는 사람인 듯 사람 아닌 사람 같은 구미호 행세였기에 고등학생 행세도 대학생 행세도 쉬웠다.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구라 쳐서 군대 문제도 해결했다. 구미호에게 병역의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니 반은 사실이다. 부모 및 친인척 전무. 학비는 교회 장학 재단에서 지급. 주민등록증은 요괴 선배가 뚝딱 만들어줬다. 윤정한 옆에서 그런 것쯤은 하나도 문제가 안 됐다. 문제는. 진짜 문제는 말이지.
“어어이 구미호. 왜 이렇게 늦게 옵니까? 고물 스쿠터 좀 바꿔요.”
“…….”
“내가 언제 죽었는지 알려주면 우리가 언제 봤는지 알려주나?”
“…….”
“나 죽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던데. 올해 초? 저승 가던 길에 길거리 캐스팅 당했다고….”
“…….”
“잘생겨서 저승사자로 캐스팅 당했다고 저승에 소문이 파다해 아주.”
진짜 문제는. 윤정한은 사람이고 홍지수는 구미호라는 것.
윤정한의 삶은 유한하고, 홍지수의 삶은 무한하다는 것. 윤정한은 언젠가 죽는데, 홍지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빨리 왔고, 그래서 홍지수는 윤정한의 죽음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는 것. 윤정한의 스쿠터는 날아가 도로에 처박혀 개박살이 났는데, 홍지수는 구십구 년동안 윤정한의 스쿠터를 고치고 고쳐서 타고 다닌다는 것.
아. 여기서 사람 간 먹어 사람 되는 구미호도 있지만, 사람 살려서 사람 되는 구미호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홍지수는 고작 스물일곱밖에 안 된 이팔청춘 윤정한이 메단 심장박동기가 삐 소리를 내자 그 길로 산신령을 만나러 갔다.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산신령 할배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사람 살리는 구미호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염치도 잃고 자존심도 잃은 홍지수 aka 광야의 가엾은 구미호는 산신령의 넓은 아량 덕분에 백 명의 사람을 살리는 구미호가 됐다. 그리고 모든 거래가 그렇듯 여기에도 조건이 붙는다.
조건 1) 일 년에 단 한 명의 사람만 살릴 수 있다.
조건 2) 백 년 동안 백 명의 사람을 살리면 홍지수는 사람이 되어 유한한 삶을 살게 된다.
조건 3) 일 년에 단 한 명의 사람도 살리지 못하거나, 백 년 동안 백 명의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홍지수는 저승도 이승도 가지 못하고 소멸한다.
사람 살리는 구미호인 홍지수는 헬멧을 벗고 제 집 앞 돌담에 기대어 있는 저승사자(가 된) 윤정한을 바라본다. 홍지수는 윤정한의 첫 번째 죽음 이후 구십구 년동안 환생한 사람 윤정한을 쫓아다녔다. 불알친구도 해보고, 연인도, 선생님과 제자도, 섹파도 해보고, 지나가던 행인1로도, 배우와 스태프로도, 사기꾼으로도… 아무튼 그만큼 윤정한을 많이 마주했다는 뜻이다. 윤정한은 잘난 외모 덕분인지 매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꽤나 시끄러운 삶을 살았고, 그렇게 홍지수는 구십구 년동안 윤정한 옆에서 윤정한을 지켜보며 윤정한이 죽을 때마다 그의 영혼이 저승의 강을 건너기 전에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 저승사자 새끼는 빙글빙글 웃으며 자아도취 멘트를 날려댄다. 백 년 동안 홍지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쥐뿔만큼도 모르는 새끼. 그래도 가엾은 구미호 홍지수는 내가 널 어떻게 살렸는데! 하는 서러운 멘트 따위는 날리지 않는다. 왜냐면. 이제 다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널 못 찾았구나.”
백 년을 채우지 못한 구미호가 중얼거린다.
내가 올해 너를 찾아내기 전에 네가 죽어버렸구나. 내가 너를 환생시키기 전에 네가 저승으로 가버렸구나. 그래서 12월 30일이 될 때까지 이승에서 너를 찾을 수 없었구나. 구십구 년동안 너를 살려왔는데. 딱 백 년째 되는 날에 실패했구나. 홍지수는 이제 무얼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사람 간 먹는 구미호 아닙니다.”
“그럼 사람 살리는 구미호? 그렇게 안 생겼는데.”
“…그랬는데 이젠 실패했죠. 근데 은근히 반말까지 마실래요?”
홍지수는 스쿠터의 시동을 끄고 헬멧을 손잡이에 걸었다. 대문을 열고 열쇠를 코트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열쇠 꾸러미가 윤정한의 발 앞에 뚝 떨어졌다. 나 보라고 일부러 떨어 트린 거냐는 눈길이 여전하다. 윤정한이 천천히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정확히는 키링을.
“……설마 나랑 구미호님인가?”
반말까지 말라니까 호칭에 이상한 님 자를 붙인다. 그건 30년 전쯤에 찍은 사진이었다. 윤정한이 알바하는 카페의 단골손님으로 갈 때. 그 때의 윤정한은 참 아기자기한 걸 좋아해서 포토 키링 같은 걸 만들어 선물하고 그랬다. 한가한 평일 오전 카페에서 홍지수는 비즈 팔찌를 만들고, 윤정한은 키링을 만들고 그랬더랬다. 홍지수는 다 기억하는데. 윤정한은 이상한 표정으로 키링을 들여다보고만 있다.
“그거 안 내놓을 거면 집에 들어오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홍지수는 윤정한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윤정한과 함께 살던 작은 단독주택. 구미호한테 돈 같은 건 도깨비 찾아가서 방망이 몇 번 휘둘러 달라고 하면 펑펑 쏟아지는 거라, 돌아가신 부모님 유산이라고 뻥을 쳤었다. 지수야 내가 너 평생 먹여살리지는 못해도 밥은 평생 해줄게. 윤정한이 그랬는데. 그랬는데 미친놈아.
그딴 과거 따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친놈은 키링을 보고 충격받았는지 조용히 들어와 문을 닫았다.
“뭐 마실래요?”
“……무슨 구미호가 스쿠터 끌고 다니고, 열쇠 주렁주렁 달고 다녀요? 산신령이 차 한 대 안 뽑아줍니까?”
“커피는 디카페인도 있고.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무슨 구미호가 디카페인도 먹고…… 민트초코?”
홍지수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냉동실에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묘하게 변하는 얼굴빛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구미호님 좋은 사람이네. 민초단인가 봐? 윤정한은 헛소리를 칭찬처럼 들리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찬장에서 컵을 꺼내는 지수의 등 뒤로 정한이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까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 부스럭.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웅얼거리며 쓰레기통을 찾아다니는 말소리. 거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무겁지 않은 발소리. 오랜만에 집을 채우는 저 아닌 타인의 소리.
아주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집은 그대로, 홍지수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잠시 살다 가던 윤정한.
“나 생각보다 낯 많이 가리는 사람인데. 우리 정말 알던 사이 맞나 봐요?”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사람 아니잖아요.”
“……아. 내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요. 죄송.”
죄송할 건 없고. 지수가 커피 두 잔을 내왔다. 원목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열쇠 꾸러미와 키링. 빨간 머리였던 윤정한과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인 홍지수가 어깨동무를 한 채 웃고 있다. 구미호님, 내가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정한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되게 바쁜 사람인데 왜 여기 이렇게 앉아있냐면요.
“구미호님이 제 첫 업무인 망자 수거를 망쳤으니 저승에 잠시 같이 가주셔야겠어요. 지금쯤 아마 망자가 길을 잃어 난리가 났을 겁니다.”
“……”
“아, 걱정은 말고.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 줄……”
“못 돌아와도 상관은 없습니다.”
“……”
“제가 백 년 동안 이승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오늘 실패했거든요.”
저승사자는 말이 없다. 구미호는 저승사자 앞에 놓인 커피가 단번에 식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저승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럼 저녁에 다시 방문할 테니 준비하고 있어요. 식어버린 커피를 남긴 채 저승사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구미호는 또 혼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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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그래 윤정한. 윤정한은 홍지수의 집을 나오자마자 주저앉을 뻔한 제 다리를 원망하며 애꿎은 아스팔트에 발을 쾅쾅 굴렀다. 구십구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홍지수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했는데 지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마주하고부터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됐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수를 껴안고 울 뻔했다. 변한 것이 없다. 익숙한 집은 거기 그대로. 홍지수도 거기 그대로. 왜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어. 염라가 원망스러웠다. 정한은 난생처음 입어보는 치렁치렁한 검은 천을 걷어올리다 그냥 털썩 돌담에 기대앉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학주한테 뒷통수 빡세게 맞아도 교복 한 번 제대로 입고 다닌 적이 없는데 이런 못생긴 유니폼을 입으라고 주다니. 그래도 이 정도 비주얼이니 망정이지, 홍지수 앞에서 체면 다 구겼다. 그래. 염라한테 속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홍지수가 회상했던 것처럼 윤정한도 아주 오래전으로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제였더라. 제가 처음 죽던 날. 사실 정한은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뒤로 구십구 번을 더 죽었으니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건 합법이지만, 그날은 굉장히 특별했다. 지수 생일이었거든. 찬 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할 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 날 지수가 가죽 라이더를 입고 학교에 갔거든. 계절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기로 했었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거였으니까. 우린 늘 특별한 각자의 약속이 없으면 늘 함께 밥을 먹었고, 한 침대에서 잠을 잤고,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붙어 다녔으니까. 밤 조명이 예뻐서 저녁을 먹고 한강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스쿠터를 가지고 나가지 않았겠지.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는 건, 그날도 이렇게 별거 아닌 생각들을 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코너만 돌면 학교 정문이었고 정문 바로 앞이 인문대였는데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핸들을 세게 꺾는 순간 별거 아닌 생각들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을 비집고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수야, 나 오늘 죽나봐. 사지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머리가 트럭 보닛을 박고 그대로 도로에 처박혔다. 스쿠터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학교 앞에서 쏟아져 나오던 학생들이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렀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흐려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학생들 사이에서 홍지수를 찾으려 했지만. 지수야 우리가 본 드라마는 다 구라였네. 드라마에서 교통사고 나면 저 멀리서 막 뛰어오던데…… 사랑하는 사람이…. 점멸하는 시야에서 홍지수는 보이지도 않고, 윤정한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윤정한 살려주세요. 시키는 거 다 할게요. 저승으로 보내지 마세요. 쟤 아직 스물일곱밖에 안 먹었어요. 우리 십 년밖에 못 봤어요. 아직. 아직 제대로 해준 게 없어요. 신령님. 아직 제가, 윤정한한테 제가요,
홍지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꿈같은데. 몸이 가볍고. 붕 떠 있는 것 같고. 아, 실제로 붕 떠 있네. 이상한 전선을 몸에 잔뜩 꽂은 윤정한이 응급 베드에 시체처럼 누워있고, 그 옆에 멍하니 서 있는 홍지수… 옆에 서 있는 이상한 형체가 하나.
넌 참 운이 좋구나. 서라운드 음향같은 목소리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응급실에 울려퍼졌다.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건가. 정한은 공중에 떠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저같이 형체가 오퍼시티 오십 퍼센트 정도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구미호가 사람 하나 살리려고 거래를 했네. 목소리가 말했다. 넌 구미호 덕분에 환생할거야. 매번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구미호가 왜 사람 간을 먹어 사람이 되려는지 알아? 완전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다. 그럼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게 뭔 줄 아니? 유한한 삶을 사는거다.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것. 그럼 왜 유한한 삶을 원하는 걸까? 불멸의 삶이라는거, 좋은 거 아닌가. 답은 구미호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데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 죽고 싶으니까.
아직 제가 윤정한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어요.
정한은 그때 제가 사랑한 홍지수가 구미호였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가엾은 구미호가 저를 살리려 산신령과 거래를 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일단 윤정한의 첫 번째 생은 여기서 끝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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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을 떠도는 구미호가 저승의 질서를 망쳐놓고 있다고 했다. 범인은 홍지수, 타깃은 윤정한. 망자 명부에 이름이 올랐다 지워진 윤정한을 두고 염라는 골치가 아팠다. 저승사자가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이전에 죽는다. 그것이 몇 억년 전 이승과 저승에서 각각 타협한 세상의 법도였다. 윤정한은 저승사자가 될 운명이었다. 이승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사는 백세 인생이 유행인 덕분에 저승으로 넘어오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 웬 구미호 하나 때문에 한정된 저승사자 인원까지 구멍이 났으니 염라는 자다가도 편두통 때문에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윤정한을 불러다가 약속을 하나 했다.
홍지수가 너를 발견하기 전에 저승으로 무사히 오면, 홍지수의 기억을 모두 지워주겠다.
너를 잊고, 본래의 아무것도 아닌 구미호로 돌아갈 수 있게끔. 사람 간 빼먹는 구미호도 아니고 사람 살려야 하는 구미호도 아닌. 그냥 본래 홍지수로. 윤정한을 알기 전의 홍지수로.
신이 사람에게 내린 축복 중 하나가 망각이라 했던가. 자신의 전생을 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가엾은 윤정한은 그 약속을 받아들이고 구십구 번째 도전만에 홍지수가 윤정한을 발견하기 전에 죽기 미션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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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은 저승으로 향하며 염라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씩씩거렸다. 저승사자 일을 하며 영원히 지수를 마주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도 윤정한을 찾아다니는 홍지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다 잊게 해준다며. 잊고 편하게 살게 해준다며. 홍지수의 삶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한은 염라의 사무실 문을 열어제끼면 소리친다. 이런 식으로 약속 어기면, 내가 저승에서 가만히 사자 역할이나 할 것 같아요? 염라는 정한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다.
구미호 기억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겠니? 불멸의 존재인데.
홍지수를 저승으로 데려올 겁니다. 데려와서 함께 있을 겁니다.
안 된다면?
허락받으러 온 거 아닙니다. 보고하러 온 거지.
염라가 웃으며 정한을 부른다. 정한아, 이승의 요괴가 저승의 강을 그렇게 쉽게 건널 수 있는 줄 아니. 요괴는 저승의 강을 건너는 순간 소멸될 거다. 정한의 눈에 핏대가 섰다.
그럼 제가 구천을 떠돌지언정 다시는 저승으로 돌아오지 않겠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둘 다 소멸시켜버릴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니.
염라는 알지 못했다. 홍지수 없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정한이 영원한 소멸을 원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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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승으로.
정한은 지수의 집 근처 베이커리에 들렀다. 당근 케이크를 살까, 치즈 케이크를 살까, 십 분 정도 고민하다 당근을 안고 있는 토끼 모양의 초콜릿이 귀여워 당근 케이크로 골랐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점원의 말에 정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큰 초 열 개를 달라고 했다. 우리가 백 년 동안 만났지만, 어쩌면 이게 정말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윤정한은 집 앞에서 쭈그려 앉아 케이크에 초 열 개를 꽂고 성냥에 불을 붙였다. 촛불이 붙었고, 익숙한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비밀번호는 아직도 내 생일일까. 케이크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관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며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안녕, 구미호님.”
“…….”
“축하가 늦었죠. 생일 축하해.”
“…….”
“대충 백 번째 생일이라고 치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일렁이는 촛불 너머에 사랑하는 얼굴이 있다. 정한은 케이크를 받친 케잌 상자를 지수 쪽으로 기울였다. 뭐해? 안 불고?
“지수야. 너는 늘 날 보면 그런 얼굴이더라. 난 보고 싶었다고 말해줄 줄 알았는데.”
“……혹시 우리가 타임워프를 했나.”
“…….”
“내가 지금 나를 기억하는 윤정한을 보고 있는 건가.”
일단 들어와. 정한은 지수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지수야, 촛불부터 끌까? 식탁에 가 앉는 홍지수는 답이 없다. 정한은 할 수 없이 거실에 서서 스스로 초를 불었다. 홍지수 생일 축하해. 대충 백 살이라고 치자.
“정한아 너는 그걸 네가 불어서 끄면 어떡하니. 내 생일인데.”
“그럼 너는 여기서 불이라도 났으면 좋겠니.”
“…….”
“초는 다시 켜면 되는 거고.”
식탁에 앉은 정한이 뻔뻔스럽게 초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우리 지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고요한 집 안을 정한이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채웠다. 지수가 초를 불어 껐다. 컴컴한 집안에 초 끄트머리에서 나오는 흰 연기만이 매캐한 냄새를 냈다.
“저승에 다녀오더니 기억 리부팅이라도 된 거야?”
“염라랑 약속을 했는데, 염라가 약속을 안 지키더라고. 그래서 망각 놀이 그만하기로 했어.”
“…약속?”
“윤정한은 저승사자가 될 운명이었는데, 홍지수는 자꾸 윤정한을 살리고, 저승에서는 그런 구미호 하나쯤 소멸시키는 건 문제 없고. 그래서 윤정한은 홍지수 몰래 저승으로 가기로 했다. 그럼 염라가 홍지수의 기억을 모두 지워 평범한 구미호로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백 년 동안의 일.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봐야지.”
“…….”
“널 혼자 소멸시킨다는데 어떻게 내가 예 그럼 그러세요, 하니.”
“그럼 넌?”
“…….”
“내 기억이 모두 지워져서. 내가 평범한 구미호가 된다고 하면. 넌?”
넌. 다 기억하는 거니? 지수가 물었다. 정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이 사람에게 내린 축복 중 하나가 망각이라는데. 난 저승사자가 될 운명이라, 축복 받은 사람이 못 된 거지.”
“…….”
“그런 것쯤은 괜찮아. 네가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면. 혼자 남겨지는 것쯤은…….”
“…….”
“너도 그랬던 거잖아.”
지수야, 너도 그랬잖아. 내가 널 잊은 채로 몇 번이고 환생해도, 나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의 과거 따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았던 거잖아.
그렇지만 네가 그렇듯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해. 구십구 번 동안 널 기억하지 못하는 척 한 거지. 내가 어떻게 널 잊니. 케이크 너머의 윤정한이 빙글 웃었다. 지수는 가만히 정한을 바라봤다. 입을 다물고 입꼬리만 쓱 끌어올려 웃는 모습이 처음 정한을 만났을 때와 같다. 백 년을 건넜는데 우린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내가 어떻게 널 잊니. 윤정한이 홍지수를, 홍지수가 윤정한을,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잊니.
“백 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이해하려 하지 말자. 우린 서로를 지키려고 했던 거야. 어차피 난 소멸될 거야. 나는 산신령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너는…….”
“나도야.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염라가 날 소멸시키겠지.”
“…….”
“그동안 우리 오랜 시간 돌고 돌았으니까. 손잡고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정한이 찬장에서 포크를 두 개 꺼내 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먹은 게 홍지수 생일 축하 케이크라서 다행이고. 나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하는데, 부검하면 케이크만 나오겠네.”
“……사랑해 정한아.”
“넌 무슨 그런 말을 소멸되기 직전에 케이크 먹다가 하니.”
“구미호가 이런 말 하는 거 좀 웃긴 것 같긴 해.”
“지수야 사랑해. 이건 저승사자가 하는 고백.”
마주 보고 앉은 저승사자와 구미호 뒤로 지는 해가 주홍빛 노을을 내뿜었다. 지수는 정한의 머리칼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정한아, 너 사라지나 봐. 정한이 또 빙글 웃었다. 지수야, 너도 사라지나 봐. 지수는 포크를 쥔 손이 투명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정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 첫 번째로 죽을 때도 이랬는데. 이걸 또 겪네.
“지수야.”
“응. 정한아.”
“우리가 혹시 또 만나게 되면 어쩌지.”
“사람으로 만나길 빌어야지.”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그리고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지.”
정한아. 내가 왜 사람이 되고 싶은 줄 알아? 너와 함께 늙어가고 싶어서. 사람의 탈을 쓴 구미호가 아니라, 진짜 사람인 홍지수로 네 옆에 있고 싶어서. 네가 마지막 환생을 하고, 내가 백 번 너를 살려서 사람이 되면, 우리가 함께 늙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우리 다음엔 사람으로 만나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한다고 맘껏 말하면서 살자.”
백 년 동안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곳을 떠돌던 저승사자와 구미호는 나란히 소멸했다. 그들의 자리에 노을 빛에 반사된 작은 먼지만이 부옇게 떠다녔다. 그들이 나란히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 생에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
“윤정한! 오 분 안에 통과 안 하면 지각이야!”
“알아. 아는데. 야 좆됐다, 나 명찰이 없어.”
대체 어디 갔냐. 분명히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정한은 교문 앞에 서서 저 멀리 뛰어간 민석에게 소리를 쳤다. 야! 먼저 가! 나 명찰이 없어!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모르겠고. 정한은 뒤돌아 온 길을 되짚어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복장 불량이면 일주일 내내 대강당 청소다. 무조건 찾아야 했다. 지각보다 중요한 명찰 찾기. 정한은 앞으로 뛰기 시작하는 학생들을 제치고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
“이거 찾아?”
그리고 개처럼 땅바닥에 얼굴을 거의 처박듯 하고 걸어 다니는 제 앞에 불쑥 내밀어진 파란색 명찰. 와. 윤정한. 내 거다.
“감사합니다. 이거 제 거 맞……”
“…….”
“어?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아차차. 뱉고 나서 정한은 방금 제 멘트가 쌍팔년도 작업 멘트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진심인걸.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마주한 사람은 정한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굉장히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통 그런 식으로 사람 꼬시나봐?”
“……에?”
얼빠진 소리를 낸 정한이 입을 틀어막았다. 와. 쌍팔년도 작업 멘트도 모자라서 방금 진짜 얼간이 같았다.
“암튼 고맙습니다. 제가 사람을 착각했나 봐요. 근데 지금 제가 학교에 좀 늦어서요. 그쪽도 지각인 것 같은데…….”
“오늘 전학 왔거든.”
“아……. 몇 학년?”
“열여덟 살인데, 미국에서 와서 1학년.”
남자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로로 길게 접히는 눈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윤정한? 난 홍지수.”
우리가 혹시 또 만나게 되면 어쩌지.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반가워.”

백 년을 돌고 돌아도 윤홍안에서 행복합시다..
주최진 분들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