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gebluht


너는 나의 뮤즈

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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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누구나 인생을 좀 살아가다 보면 뭐 저런 또라이가 다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간이 꼭 하나씩은 있다. 여기서 이 인간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냥 말 그대로 또라이거나, 다른 하나는 그 인간이 예술가거나.

 

   그럼 여기서 문제.

   윤정한은 어느 쪽일까?

 

 

 

   “둘 다 아냐?”

 

   홍지수의 질문에 김민규는 너무 근본을 대답했다. 역시 그렇지? 그렇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둘은 나란히 쪼그려 앉아 철사나 꼬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누군가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꽤나 웃겼을 것이다. 넓은 등짝 두 개가 구겨져서는, 그것도 나란히. 약 한 달 뒤에 열릴 홍지수의 전시회에 친한 동생 민규가 작업을 도와주러 왔다.

 

   “왜. 정한이 형이 또 무슨 짓 했어?”

 

 

   “응? 그건 아니구.”

 

   큼지막한 손으로 얇은 철사를 능숙하게도 감던 지수는 민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형태를 잡아가는 것에만 집중하며 대답했다. 그냥, 정한이는 예술해서 또라이인지, 또라이라서 예술하는 건지 궁금했어. 그러니까 그걸 왜 이 상황에서 궁금해 하는 거냐고요. 민규는 다시 물었지만 지수는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텅텅 빈 넓은 전시장을 꽉꽉 채우려면 한참은 멀었기 때문이었다.

 

   “내일 그림 가져와서 벽에다 걸면 좀 나아 보일 거야.”

 

 

   “형 그럼 여기선 계속 철사 만지고 화실에선 붓 만졌던 거야? 근성 대박이다…”

 

 

   “너도 내년에 졸작하면 그렇게 될 걸.”

 

 

   “나 졸업하려면 한참인데. 집엔 안 들어가?”

 

 

   “응. 또라이 있어서."

 

   윤정한? 정한이 형이 왜 형 집에 있어? 또라이라고 말 했는데 잘 알아듣네 우리 민규. 형이 또라이냐고 물었잖아… 그치. 실속 없고 알맹이 없는 정말 아무 말이 민규와 지수 사이를 오간다. 원래 작업하면서 말 하면 멀티플레이가 안 돼서 당연한 거지만, 보는 사람은 도무지 대화의 동향을 살피기가 어려울법 했다. 그래서 그 정한이 형은 왜 형 집에 있는데?

 

   “걔가 내 바로 앞 전시인데, 자기 화실 이번에 순영이 빌려줬다고 작업할 곳 없대서 우리 집에서 하고 있어.”

 

 

   “뭐야,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자긴데 왜 남한테 화실이나 빌려주고 앉았담, 그 형은?”

 

 

   “그게 말이야, 정한이 말로는 자기가 뒷번호 뽑을 수 있을 줄 알았대.”

 

   또 운 믿고 깝쳤다가 이런 불상사가 벌어진 거지. 민규는 안 봐도 뻔한 상황이 그려졌다. 샛노랗게 탈색한 백금발 머리를 어정쩡하기 길러놔서 자르지도 않고 꽁지머리로 질끈 묶고 다니는, 자신의 두 학번 선배인 윤정한이 뺀질뺀질한 얼굴로 두 손 모아 간곡히 부탁하는 한 살 어린 후배 순영에게 작업실 열쇠를 넘겨주는 장면이. 그리고 며칠 뒤 전시회 순서 뽑기에서 그 뛰어난 운으로 1번을 뽑아버린 윤정한의 번지르르한 얼굴이 점점 죽어가는 장면이. 급하게 홍지수에게 순서좀 바꿔 달라고 갔다가 2번을 뽑은 홍지수를 보고 거기서 거기라 바꾸지도 못하고 애꿎은 제비뽑기 종이만 구겨버리는 장면이 말이다.

 

   이번에 열리는 전시회, 개화(開花)를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는 시작까지 겨우 일주일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형, 정한이 형이 또라이라느니 나쁜 놈이라느니 나한테 욕이란 욕은 다 했으면서 집까지 빌려줄 정도면 둘이 잘 만나고 있는 거 아냐?”

 

 

   “민규야.”

 

   이때까지 민규가 어떤 말을 해도 온순하게 철사나 만지작거리던 지수가 손을 멈추고 민규를 바라봤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지자 민규도 지수를 쳐다봤다. 왜, 왜요. 난 지수 형이 저렇게 차분하게 날 부르면 무섭단 말이야. 민규가 괜히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난 빌려줬다고 한 적 없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

 

   “걔가 멋대로 쳐들어온 거지.”

 

   …와. 또라이답다. 김민규가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그게 뻥진 얼굴로 다 드러났지만. 그 표정을 본 지수는 온화한 표정에서 점점 눈이 둥글게 휘어지더니 큭큭 웃으면서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민규야 그쯤하고 나 줘. 뭘 만드는 건지 도통 모르겠던 철사덩어리 두 개를 뭉치니 제법 형태가 드러났다. 아직까지 틀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모양새가 나자 민규가 괜히 지수보다 더 들뜬다. 형, 이번에 전시회 진짜 잘 될 것 같은데. 에이, 너무 띄워주지 마. 진짜야!

 

   “그럼 이번에 잘되면 형 프랑스 가는 거지?”

 

 

   “잘 되면이지.”

 

 

   “잘 될 거야. 형 저번에 그린 그림 엄청 비싸게 팔렸잖아.”

 

   그거 우리 엄마인데. 지수는 민규의 말에 무어라 대답을 하려다 그냥 말았다. 세상에 자기 자식 작품을 1억이나 주고 사는 엄마가 어딨어.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미국에서 갑자기 한국으로 넘어와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이 잘 사는 집이라는 건 당연히 눈치채겠지만. 화실도 있고 작업 공간 충분한 집도 있다는 건 보통 부자가 아니라는 것도 눈치채겠지만. 민규는 예외의 사람(눈치가 없다기보단 느린 편이라고 지수는 말한다.)이니 지수는 굳이 자신의 재력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1억은 미국으로 그림을 보내면서 같이 보냈다는 것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래봤자 이 돈이 다 홍지수의 용돈이다.

 

   근데 뭐, 사실은 이것 뿐만은 아니었고, 실제로도 홍지수는 그림을 잘 파는 작가이긴 했다. 1억은 무슨, 이번에 화실을 싹 리모델링할 수 있었던 것도 미술관에서 3억 즘에 사간 덕분이었고, 그 전에 집을 살 수 있었던 건 엄마가 주신 용돈 절반과 어느 강남의 사모님이 홍지수의 그림을 7억이나 부르는 바람에 홍지수의 기본 작품 단위는 백은 무슨 시작부터 억 단위를 찍고 미국 국적으로 한국미술협회에 작가 이름 Joshua로 등록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도 한국미술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선정해 차례대로 전시를 열고, 그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에게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는 지원을 해주려는 의미 있는 뜻이 담긴 전시회였다. 그래서 민규가 벌써부터 홍지수가 프랑스에 갈 것처럼 말하는 이유였고. 물론 홍지수는 자신 없진 않았다.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허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걱정은 있었다. 그게 하필 윤정한이라, 그게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새하얀 한지를 구기면서 홍지수는 윤정한을 곱씹었다. 며칠 전에 집에서 쉬면서 영화나 보고 있는데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오더니 양손에는 캔버스하며 이젤하며 화구들을 양쪽 옆구리에 끼고 양손에 한가득 든 꼬락서니를 하고선 여기서 작업을 좀 해도 되냐고 물었던 그 윤정한을. 정한아, 순서가 바뀐 것 같지 않니. 응? 아, 다녀왔습니다의 키스? 쫓겨날래? 미안, 나 좀 도와주라 지수야.

 

   그리고 정한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은 지수는 큰 손을 들어 정한의 등짝을 신나게 때렸다. 내가! 생각좀! 하고! 일을! 벌이랬지! 음절마다 끊어지는 목소리와 울려 퍼지는 짝 소리에 정한은 잘 지르지도 못하는 비명을 질러대며 지수야, 살려줘, 나 죽어, 같은 소리를 연발했다.

 

   “당장 가서 못 빌려주겠다고 해.”

 

 

   “안 돼, 이미 순영이 작업 들어갔어.”

 

 

   “걘 다섯 번째잖아. 몇 달은 남았어.”

 

 

   “줬다가 뺏는 게 어딨어어어. 절대 말 못하지.”

 

 

   “우리 집에서 작업 하겠다는 말은 잘만 나오고?”

 

 

   “……”

 

   지수는 눈을 반쯤 뜨고 정한을 노골적으로 째려봤고, 정한은 그런 지수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나 전시회 펑크내면 이거인 거 알잖아 지수야아아아... 정한이 제 목을 손으로 긋는 시늉을 하며 지수에게 매달렸다. 지수가 작게 한숨을 쉬곤 정한을 때리던 손을 멈췄다.

 

   “차라리 내 화실에서 해. 넓어서 두 명 쓰는데 문제없어.”

 

   

   “그게... 나 작업할 때 누가 있으면 작업 못해서...”

 

   그렇게 말하면서 정한이 제 엉덩이를 쭈욱 빼서 지수에게서 멀어졌다. 방금 자기가 한 발언이 매를 더 버는 소리였다는 걸 스스로 알긴 하나보다. 지수는 말 대신 정한이 가져온 화구들을 쳐다봤다. 진짜 급하게 오긴 왔나보네, 도구가 아주 그냥 제각각이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져온 건가. 저건 내가 쫓아내어도 기어코 다시 기어들어 올 놈이었다. 사실 이미 홍지수의 집은 윤정한의 작업실이 될 운명이었다. 하… 대신 쓸데없이 내 물건 건드리지 말고, 특히 내 팬티. 지수야 날 뭘로 보고. 또라이로 본다, 이 자식아.

 

   그리고 진짜 홍지수가 집으로 귀가하면 윤정한은 하던 작업을 멈췄다. 홍지수는 처음에는 윤정한이 자기한테 그림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은 게 얼마나 했냐고 물으면 오히려 직접 보여줬다. 진짜 사람 있으면 작업 못 한다는 게 이런걸 말하는 건가. 그래서 홍지수는 자기 집인데 며칠 째 들어가지도 못하고 전시장을 나오면 화실로 가서 잠을 자고, 그림을 그리고, 정한이 잘 때나 밖에 나가 있을 때나 씻고, 옷을 챙겨서 나오고 그런 고생을 사서 해야 했다.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걔도 슬슬 디스플레이 해야 할 텐데, 통 마주치지를 못하네.

 

   홍지수는 설치 미술을 제작하면서 전시장 어디에 어떻게 설치할 지를 봐야했기 때문에 한참을 일찍 와서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정한이 디스플레이를 시작하면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지기가 힘들어져서, 전시회와 전시회 사이에 주는 시간은 고작 3일 밖에 되지 않아 이렇게 분주하게 준비해야 했다. 솔직히 이거, 젊은 작가 지원은 무슨 전시장 비는 시간 때우려고 젊고 만만한 작가들 불러다가 작품 만들어서 전시 하라고 시키고 있는 거 아니야? 밤 12시까지 쪼그려 앉아서 손이 다 까질 정도로 종이나 자르고 붙이고 있으면 이런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민규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수 옆에 힘들다면서 벌러덩 바닥에 누웠다.

 

   “형. 형은 정한이 형이랑 어떻게 만났어?”

 

 

   “응?”

 

 

   “같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야,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야. 뭐 번호라도 따고 그랬나?”

 

   사교 모임에도 정한이 형이나 지수 형은 통 나오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두 사람 사이에 아는 사람도 나 하나 아닌가? 그 말에 홍지수가 생각에 잠긴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냐고? 생각해보면 그때도, 윤정한은 또라이였지. 곧이어 홍지수가 피식 웃는다. 민규야, 힘들지. 어, 존나 힘들어. 이거 구기고 있어 봐, 내가 풀 만들 테니까. 홍지수가 저가 구기고 있던 한지를 김민규에게 넘긴다.

 

 

 

   -

 

 

 

   윤정한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 홍지수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렸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말인 즉슨, 죽어라 작품을 깎고 죽어라 본인이 깎이는 마의 시기라는 뜻이었다. 정한은 벌써 작품만 세 번째 갈아엎고 있던 때였고, 그걸 아주 안타깝고 가엾게 여긴 민규는 종일 윤정한 옆에 붙어 다니면서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고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솔직히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고 한다. 성수대학교 근처에는 작은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젊은 남자 작가 하나가 이번에 개인전을 연다고, 그거라도 한 번 보고 오라는 민규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생 입장료 천원, 성인 이천원, 정한이 회색 앞치마 앞주머니에서 지폐를 몇 장 꺼냈다. 며칠 전에 작업하던걸 그대로 엎어먹고는 그 복장 그대로 편의점에서 담배를 하나 사고 남은 잔돈이었다.

 

   조슈아? 정한은 입구 팸플릿에 적혀있는 Joshua 라는 글자를 읽었다. 외국 작가가 왜 이런 존만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거지. 별로 안 유명한 작가거나, 미술은 그냥 취미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한 윤정한은 걸려있는 그림을 전부 다 돌아서 보기도 전에 깨달았다. 아, 이게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윤정한은 그저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감탄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씨발, 이게 대체...”

 

   윤정한은 겨우 입으로 내뱉은 말도 제대로 다 하지 못한 채로 허, 하고 웃기만 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어떻게 이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어쩌다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어떻게 이런 발상을, 이런 표현을, 이런 감각을, 이런… 차마 머릿속으로도 정리가 안 되는 문장이 정한의 머릿속에서, 아니, 마음속에서 엉키기만 한다.

 

   두 눈에 들어오는 작품 한 점은 그야말로 세계 그 자체였다. 세계를 창(窓)에 담아 한 눈에 보는 것 같은 느낌. 윤정한이 쥐고 있던 팸플릿을 다시 찬찬히 읽어 내렸다. ‘눈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상단에 가장 큰 폰트로 적힌 문구는 윤정한의 눈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다시 찬찬히 그림을 보면, 어렴풋이 보이던 것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감각적인 색채 사용, 색채의 심리 특성을 이 작가는 완벽하게 꿰고 있구나. 그야말로 정말 감각이 없는 이상은 이렇게 그림을 보여줄 수 없었다. 단지 네 가지의 색상과 도형만으로 사계절을 나타낸다. 윤정한의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팸플릿이 구겨지고 만다.

 

 

   정한이 지수가 이끈 세계로 들어간다. 창틀을 넘고 그대로 빠져든다. 한 걸음씩 발을 앞으로 옮길 때마다 무언가가, 그것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사물인지 신인지조차 모르는 그런 무언가가 정한보다 한 걸음 더, 혹은 한걸음 덜, 혹은 바로 옆에서, 낯선 현실 세계에서 온 손님인 정한을 안내한다. 정한이 구겨진 초대장을 도무지 놓질 못하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 그림 앞에 정한이 걸음을 멈췄다. 정한도 살짝 올려다봐야 볼 수 있는 그림.

 

 

   “미쳤구나…?”

 

 

   정한은 한참 동안 그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창문 하나 없는 이 전시장에 바람이 분다. 구겨진 팸플릿을 들고 서 있는 윤정한은 홀로 그 세계에 들어와 나가는 것도 잊고 그렇게 한참 동안, 정말 한참 동안 마치 홍지수의 세계 속에 원래 있었던 피사체인 것처럼 서 있었다.

 

   그렇게 정한은 곧장 졸업 작품을 만드는 데에 돌입했다. 전에는 허구한 날 아끼는 후배들 골라서 밥 먹자고 불러내서 귀찮게 했던 윤정한이 오히려 밥도 안 먹고 종일 붓질만 하고 있었으니. 그 소식을 들은 민규는 경악했다. 그 형 한 번 꽂히면 끝장 보는 스타일이잖아. 자기 졸작 보기도 전에 꼴까닥 죽는 거 아냐? 결국 이런 거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김민규가 동기 이석민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먹을 걸 바리바리 싸 들고 과실에 갔다가 되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어지러워 죽는 줄 알았다고.

 

   “이... 이게 다 뭐야?”

 

 

   “뭐가.”

 

   윤정한은 눈길 한 번 안 주고 엎드려서 그림이나 그리고 있었다.

 

   “왜 멀쩡한 이젤 두고 바닥에서 그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다 뭐야?”

 

   그러니까 김민규와 이석민이 본 과실의 풍경은, 쨍한 색깔의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둔 캔버스들이 바닥이며 벽이며 굴러다니는 아주 그냥 난장판이 따로 없는 눈 아픈 풍경이었다. 미술과도 아닌 이석민은 진짜 말 그대로 어지러워 죽으려 했다.

 

   “민규야, 저거 보면 뭐가 떠올라?”

 

   윤정한은 김민규의 원성을 듣긴 한 건지 대뜸 손가락으로 오른쪽 벽에 세워둔 캔버스를 가리켰다. 뭐가 떠오르냐니... 색깔 두 개로 뭘 떠올리라고... 김민규가 두꺼운 눈썹을 한껏 찡그렸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석민이 한마디 던졌다.

 

   “박하사탕?”

 

 

   “이석민 얜 왜 이러는...”

 

   그러나 김민규의 반응과는 정반대로 윤정한은 오, 하면서 감탄했다. 성민이랬나? 너 감각이 좀 있다. 미술 안 할래? 네? 저는 음대생인데요… 그리고 전 성민이가 아니라 석민이에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김민규가 다시 한번 시선을 이석민으로부터 윤정한이 가리킨 캔버스로 옮겼다. 그러니까 저 연한 녹연두색이랑, 탁한 초록색이… 엥? 그럴 듯한데?

    

   “형, 뭘 하고 있는 거야?”

 

   분명 아까와 질문은 비슷했지만, 담겨있는 뜻은 확연히 달랐다. 과실에 들어오자마자 한 질문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냐는 뉘앙스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윤정한의 작품에 대해서 궁금해서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걸 아는 정한이 보기 좋게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민규와 석민을 쳐다봤다.

 

   “얘들아, 후각이라는 게 인간의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게 사람이 후각에 대한 기억을 색으로 연상시킬 수가 있대.”

 

 

   “와... 형은 진짜,”

 

   둘은 말 그대로 더 이상 정한에게 어떠한 말도 얹을 수가 없었다. 미완성인 줄 알았던 그림들을 깨닫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정말 윤정한의 말이 맞았다. 어떤 그림에서는 커피 향이 보였고, 어떤 그림에서는 장미 향이 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맡거나 느낀 게 아니라 ‘보였다’는 것이었다. 남들 다 진작에 완성하고 디스플레이까지 끝내 텅 빈 과실을 정한은 자신의 그림 만으로 민규와 석민을 어지럽게 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여러 개의 후각의 색채는 어지러운 게 당연하다. 그렇게 결국 민규는 주러 갔던 음식 그대로 들고 석민과 함께 과실에서 뻥진 채로 나왔고, 석민은 정한이 진짜 대단하다며 지금 싸인 받아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옆에서 호들갑이었다. 그래... 나도 싸인 받고 싶긴 한데 석민아. 이거 어떡하냐? 민규가 그대로 들고나온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정한이 아슬아슬하게 디스플레이까지 끝내고, 이윽고 졸업 작품 전시가 시작됐다. 성수대학교는 미술과가 알아주는 대학이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했다. 퀄리티로만 보자면 윤정한의 작품은 거의 볼품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캔버스에 색만, 그것도 많아봐야 겨우 네 가지에서 여섯 가지 정도인 그림은 솔직히 이걸 용케 졸작이라고 올렸냐는 소리가 나올 법 했다. 실제로 암암리에 그런 비아냥거림이 돌기도 했고.

 

   그러나 우리는 클로드 모네를 기억하고 있지 않던가.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에서 시작된 인상주의. 처음부터 모네의 그림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가. 지금의 윤정한을 보면 딱 모네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사실주의 작품들 사이에서 홀로 눈에 띈 인상주의 작품, 화려하고 장대한 외관으로 시선을 압도하는 작품들 사이에 오직 색채의 활용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꽤나 닮지 않았는지.

 

   아쉽게도 정한의 작품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작품을 구경하는 대중들은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걸 좋아하고, 웅장하고 있어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정한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윤정한의 작품성을 높게 산 두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훗날 윤정한이 협회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계기가 돼준 협회에서 나온 직원이었고, 두 번째는 윤정한의 온 몸에 전율이 돋게 만든, 윤정한의 작품의 영감이 된, 윤정한을 초대한 세계의 주인, 조슈아, 홍지수였다.

 

   그 날 홍지수는 마지막 전시 일정을 끝으로 그림을 회수하기 위해 그 곳에 방문했었다. 그때가 마침 정한은 졸업 작품 전시회 시작 날이었고, 지수는 작품 회수하기 전에 그걸 보러 갔고. 지수와 인연이 있던 민규가 그렇게 칭찬을 해대며 얘기하던 정한의 작품은, 멀리서만 봐도 아, 이거구나, 라고 할 만큼 눈에 잘 띄었다. 내 전시회, 왔구나? 지수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말렸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을 한 점씩 떼어내고 마지막 작품을 남겨뒀을 때, 윤정한이 허겁지겁 달려와 홍지수의 앞에 섰다. 홍지수는 눈치껏 이 사람이 윤정한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

 

   “전시회 끝났는데.”

 

 

   “알아요. 그래서 온 거니까.”

 

   홍지수의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 그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온줄 알았는데, 아니면 나를 보러 온 건가. 홍지수는 학교를 나오기 전 김민규에게 작품 회수하러 가본다는 말을 남기고 나왔으니 김민규가 전해준 건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그럼 왜요?”

 

 

   “저 그림, 나한테 파세요.”

 

 

   “네?”

 

   정한은 정확히 지수가 한 손으로 받치고 있는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눈빛은 꽤나 당당한 게 지수는 그 광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얼마에?”

 

 

   “얼마든지.”

 

   홍지수가 웃었다. 딱 초승달만큼만 남기고 눈을 접어 웃는다.

 

   “나랑 사귈래요? 그럼 이 그림 줄게.”

 

 

 

   -

 

 

 

   아니,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민규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구겨지고 있는 게 손에 들린 한지인지 자신의 표정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민규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뿌연 흰색의 풀을 휘적휘적 저으면서 민규 옆에 다시 주저앉은 지수가 민규의 미간 사이를 쿡 눌렀다.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이거든. 그럼 김민규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려는 순간 홍지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누구야? 누구겠니.

 

   “여보세요? 응, 정한아.”

 

   저 형은 양반 못 되겠다, 생긴 건 진짜 양반같이 생겼는데. 김민규는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마저 한지를 구겼다. 사실 민규는 정한이 진짜 그 전시회를 보러 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그냥 기분 전환좀 할 겸 어디 나가서 바람이나 좀 쐬고 리마인드나 하라는 의미였는데 그걸 진짜 보러 갔다 왔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정한의 졸업 작품(김민규는 아직도 그 때 느꼈던 소름을 잊을 수가 없다고 가끔 말한다.)이 지수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된 것임도 모를 수 밖에 없었다. 민규는 지수가 학교 앞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만 알고 실제로 보러 가진 않았으니까. 응, 응. 지수가 연신 전화기 너머에 대답을 하더니 정한이 여기 온대. 하고 말한다.

 

   “정한이 형이 여기 왜 와?”

 

 

   “작품 다 완성됐다고 디스플레이 하러 온다는데.”

 

 

   “집에서 다 했다고?”

 

 

   “응, 설치 미술 없나 봐. 전부 캔버스래.”

 

   민규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되겠다. 그러면서 홍지수가 김민규에게 봉투를 내민다.

 

   “아, 형!”

 

 

   “내가 너 어시 부탁한다고 했잖아. 당연히 줘야지.”

 

 

   “이런 거 안 줘도 된다니까, 진짜?”

 

 

   “받아줘, 작가가 무보수로 일하고 그러면 나중에 큰일나.”

 

 

   “...에휴, 알았어요. 그럼 잘 받을게요.”

 

   받아 든 봉투가 꽤나 두둑했다. 아무래도 살집 다 까지고 종일 서 있거나 앉아있어서 힘든 건 맞긴 한데, 솔직히 나도 배우는 것도 많고, 이런걸 옆에서 배울 기회도 많이 없고, 이렇게까지 받아도 되나. 민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이 돈으로 다음에 형이 부를 때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해야겠다, 그러면서 봉투를 집어 넣었다. 정한이 형은 언제 온대? 거의 다 왔다는데. 그래?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 형. 웅, 잘가 민규~ 배웅해주려는 지수를 사양하고 민규가 홀로 미술관을 나갔다. 그 인영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한 인영이 다시금 지수의 눈에 들어왔다.

 

   “지수야, 잘 돼가?”

 

 

   “빠듯하긴 한데, 시간 안에 맞출 수는 있을 것 같애. 너는?”

 

   지수의 물음에 정한이 한 번 웃고는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늘 자신 있지. 그러는 정한에 지수가 보기 좋게 따라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재수 없어 윤정한.

 

   “디스플레이 할 거지? 도와줄까?”

 

 

   “아니, 너 보러 온 건데.”

 

 

   “뭐야, 아까 전화로는 디스플레이 한다면서.”

 

 

   “그거야, 솔직하게 우리 지수 보러 간다고 하면 너가 질색하면서 전화 끊을 거 아니까 그런 거지~”

 

   그러니까 핑계였다 이거지? 홍지수가 하, 하면서 입꼬리 한쪽을 끌어당겨 웃자 윤정한이 그 표정이 좋다는 듯 깔깔거리며 홍지수를 바라봤다. 짐 내일까지 다 뺄게, 진짜 고마워 지수야. 정한의 입술이 지수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드디어 집이 제 기능을 하겠구나. 그럼 우리 저녁 먹고 들어갈래? 어차피 너 우리 집 갈 거잖아. 지수의 말에 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그림자 두 개가 나란히 붙는다. 정한과 지수가 손을 잡는다.

 

 

   “지수야.”

 

 

   “응?”

 

 

   “내 전시회 보러 올 거야?”

 

 

   얜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꼭 그런 표정으로 지수가 옆을 돌아보면 그때의 정한의 얼굴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수가 정한에게 그림을 준 지 얼마 안 된, 교제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 시기의 얼굴, 그리고 작품을 완성했을 때 정한의 얼굴.

 

 

   해가 이미 다 지고 어둠이 스멀스멀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유독 정한의 얼굴이 더욱 여려 보였다.

 

   

   “당연히 보러 가지.”

 

 

   그리고 지수는 정한을 잘 알았다. 저런 얼굴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그래서 동시에 걱숨이 정한을 떠올렸다. 정한이 늘 극찬 받아온 정한의 작품과는 별개로 걱정과 한숨만 한가득이라 동기들이 붙여준 별명을 달고 살던 그 정한을. 졸업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소극적이던 그 정한을 말이다.

 

 

   잘 하는데, 잘 했는데, 정한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주변에서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수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잘 알았다. 그림은 늘 최선을 다해도 아쉬웠고, 전력을 쏟아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덕지덕지 심장에 찢어진 종잇조각처럼 들러붙는다. 정한은 늘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면 해방감은 커녕 걱정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있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겠지.

 

 

   그런 어린 정한이 작품 공개까지 일주일을 남겨두고 이렇게 또 튀어나온다. 속마음이 여린 정한을 지수는 안아주지도, 다그치지도 않는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연인으로서의 사랑과 작가로서의 존중만이 남는다.

 

 

   “매일 보러 갈게.”

 

 

   지수가 여린 정한을 보고 웃는다. 그럼 정한은 따라 웃는다. 얼굴이 아직 어른스러워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웃는다. 말 한마디에 당장 괜찮아지는 문제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그걸 알았으니 정한도 지수도 그냥 웃고 넘겨버린다. 언젠가는 넘길 수 있겠지, 마음의 문제를.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후회나 분함 또는 그런 것들을 영감으로 삼고 붓을 쥔다. 정한의 원동력을 지수는 존중한다. 다만 걱정이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간 정한이 먼저 지칠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엔 지수가 물었다.

 

 

   “아직 내 그림 가지고 있어?”

 

 

   지수도 정한과 같은 표정을 짓기 위해, 굳이 질문을 한다. 정한이 지수를 가만히 쳐다본다. 푸석한 그림자 사이에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거린다.

 

 

   내 그림 가지고 있어? 그 말에 정한이 뭐? 라고 되물었던 때가 있었다. 그 그림은 일종의 정한과 지수의 계약이었다. 그래, 사랑으로 엮인 계약. 나랑 사귀면 이 그림 줄게. 그럼 헤어진다면 그 그림은 다시 지수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지수는 꼭 그렇게 정한의 온도를 확인했다. 솔직하게 아직도 나 사랑해? 라는 말을 못해서. 그리고 그 그림을 받아든 정한은 지수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정한의 세계 그 자체인 그림을 정한이 그깟 사랑에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지수는 제가 그린 세계를 정한에게 줘버렸다. 설령 정한이 지수와의 사랑이 끝났더라도 헤어지지 못하고 질질끌며 식은 사랑의 형태를 띄고 있을 것임이 너무나도 선명하니까. 지수는 정한만큼이나 외로워하는 사람인걸 어떡하나. 언젠가 정한이 떠나면 지수는 한국을 뜨고 싶을 만큼 괴로울 게 뻔한걸.

 

   

   이번에는 정한이 지수의 눈을 맞춘다. 하나는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이, 하나는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이. 두사람 다 건조한데 축축한 얼굴을 하고선 서로를 의지한다.

 

   

   “여전히 좋아해.”

 

 

   “그림을?”

 

 

   “응.”

 

 

   그리고 너도. 정한의 입술이 지수의 부드러운 뺨에 닿는다. 지수의 입술은 정한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는다. 우리 지수, 외로웠구나? 먼저 키스도 할 줄 알고. 정한아 이게 키스야? 지금부터 할 건 키스야. 두사람이 무작정 걷던 길을 멈추고 입을 맞춘다. 서로의 손이 상대의 양 뺨에, 목덜미에 살포시 닿는다. 눈을 감고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그렇게 한참을 그 길에 서서.

 

 

 

 

   -

 

 

 

   

   내일이면 전시회가 시작된다. 그동안 정한은 지수의 집에서 완전히 짐을 다 뺐고, 지수는 전시관에서 작업하던 작품들을 전부 갤러리로 옮긴 지 좀 됐다. 이것저것 옮길게 좀 많았는데, 민규가 도와줬어. 지수의 무릎에 누워있던 뾰로통한 표정의 정한에게 지수가 말했다. 짐을 다 뺐다는거지 윤정한이 집에 갔단 소리는 아니다.

 

 

   “왜 못생긴 표정이야 정한아.”

 

 

   “민규랑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냐?”

 

   

   “참나. 어시로 쓰고 있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민규 친구도 도와주러 왔어.”

 

 

   “참나. 나도 못생긴 표정 안 지었거든? 난 못생길 수가 없거든?”

 

 

   뭐야 이 유치한 초딩은. 너 초딩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어? 니가 맨날 초딩초딩 그러잖아 이 초딩아. 소파에 하나는 앉아서, 하나는 누워서 아주 그냥 유치하게 싸우고(사실 싸우는 것도 아니긴 하다.) 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지수가 정한에게 물었다.

 

 

   “괜찮아?”

 

 

   “뭐가?”

 

 

   “내일 전시회.”

 

 

   “…”

 

 

   정한이 부쩍 말이 없어진다. 그러자 지수가 정한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넘겼다. 탈색한 머리가 뚝뚝 끊기고 엉망이다. 그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고 있자니 지수는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그때, 기억나? 같은 말로 시작하는 기억을 말이다.

 

 

   “갑자기 그때 생각난다. 우리 사귄 지 반년도 안 됐던 땐가, 그때 너랑 나랑 딱 한 번 헤어질 뻔했던 때.”

 

 

   “…아,”

 

 

   “기억나나 보네.”

 

 

   다물려있던 정한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을 때, 지수는 성공했다는 듯 기억 속으로 더욱 비집고 들어갔다. 정한이 내일 전시회에 대한 제 작품에 걱정을 더 하지 말라는 듯이 생각의 틈을 막아버리고 두사람이 공유한 추억을 흘려 보내준다.

 

 

 

 

   -

 

 

 

 

   정한이 만난 지 한 달도 채 다 되기 전에 작품을 만든다고 좁은 갤러리에 몇 주 동안 꽁 박혀 있으면서 연락도 씹은 탓에 이게 말로만 듣던 잠수이별이라는 것인가 지수가 의심했던 순간에도, 불현듯 갑자기 전화 연결이 안되더니 본가에 다녀왔다고 미국에서 찍은 셀카들을 2주나 사람을 말라비틀어지게 한 뒤에 보여주던 순간에도 둘은 이렇게나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뒤지게 많이 싸우긴 해도 뒤질 만큼 싸우진 않았단 소리다.

 

 

   근데 딱 한 번, 뒤질 만큼 싸워서 헤어질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정한이 쏘아 올리고, 지수가 터트렸다. 목이 터져라 한 놈은 화를 냈고, 한 놈은 해명하던 그 순간. 그때 정한은 지수에게 해선, 아니, 어쩌면 미술가에게 해선 안될 소리를 했던 걸지도 모른다.

 

 

   “지수야, 너는 미술 취미로 해?”

 

   

   그리고 바로 쿠션이 날아와서 정한의 얼굴을 그대로 가격했다. 잘 빚어진 하얀 얼굴에 퍽 소리가 나고 쿠션이 구겨진 채로 툭 바닥에 뒹굴었다. 던지고 발로 차고 하여튼 저런 것에는 영 소질이 안 보이던 지수가 얼마나 집중했으면(빡돌았으면) 그 멀리 있던 쿠션을 집어서 그대로 가격했는지 감히 상상이 가는 장면이었다.

 

 

   “정한아 너 미쳤니?”

 

 

   “지수야 잠깐만,”

 

 

   “또라이야? 어?”

 

 

   지수가 급하게 던질 쿠션을 더 찾았고 정한은 저지하느라 난리가 났다. 내가 기어이 한국에서 살인을 하게 만드는구나 네가. 잠시만 지수야! 좀 들어봐! 뭘 들어? 네 유언을?

 

 

   그러니까 정한의 말은 뭐였냐면, 정말 순수하게 그림은 취미로 그리는 건지 물었던 것이었다. 취미 정도의 허접한 실력이라고 돌려 말하는 게 아니라, 별로 절박하지 않아 보여서 물은게 아니라.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정한은 지수의 그림은 모두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정한이 지수의 그림을 봤을 때, 정한은 그때 느꼈던 감정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지 않는 한, 아니 어쩌면 죽었다 깨어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했다. 아니 확실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저릿저릿해 손끝까지 떨리게 만들었던 그 그림은 더이상 단순히 평면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으니. 그런 그림이 고작 작은 미술관에 걸렸는지, 대체 왜 그곳을 골랐는지, 그래서 정한은 아닐걸 알지만 그 의중을 알고 싶어 물었던 것이었다.

 

 

   정한이 다급하게 일어나 침실로 도망갔고, 뒤따라 쫓아간 지수의 눈앞에서 방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혔다. 문 하나를 두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대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지수가 손잡이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고, 정한은 문 뒤에서 안 보이겠지만 발을 동동 굴리며 지수를 진정 시키는 데에 진땀을 뺐다.

 

   

   “지수야! 내 말 좀 들어봐!”

 

 

   “어. 말해.”

 

 

   어째 냉랭한 목소리에 정한이 크게 숨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헤어지기엔 아직 정한은 지수의 그림을 사랑하기에.

 

 

   “너라면 더 큰 곳에서도 그림 걸 수 있잖아. 근데 왜 그런 조그만 곳이랑 계약 했는지 궁금해서 그랬어! 진짜!”

 

 

   “뭔소리야 그게?!”

 

 

   “알잖아! 내가 네 그림 좋아하는 거!”

 

 

   정한의 소리침과 동시에 지수가 문고리를 덜컥거리던 것을 멈췄다. 그대로 뚝, 지수는 정한에게 더 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정한이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얼굴이 무척이나 빨개졌을게 분명하니까, 분명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정한이 비웃을게 뻔하니까.

 

 

   반면 정한은 뚝 멈춘 소리에 도무지 방문 너머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지수의 심장 소리가 갑자기 빠르게 쿵쿵 뛰는 것도, 지수의 단정한 고동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도, 귀 끝이 아름다운 노을의 색과 비슷하게 물든 것도 정한은 모르고 있었다.

 

 

   알잖아, 내가 네 그림 좋아하는 거.

 

 

   그 말이 얼마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말인지, 정한이 너는 모를 거야. 지수는 그런 생각으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소리가 두 번 울리도록.

 

 

   정한이 한참을 방 안에서 쩔쩔매다 지수의 노크 소리에 조심히 걸어 잠근 문을 열어주었다. 지수는 온화한 표정으로 정한에게 물었다. 정한아, 내 그림 좋아해? 어? 다, 당연하지. 얼마만큼? …얼만큼이라니?

 

 

   대뜸 화내다 말고 물어오는 지수의 눈빛이 또렷하고 선명했다. 장난기 하나 없이 묻는 표정에 정한은 덩달아 직면한 이 물음에 답을 내놓아야 할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얼만큼이라는 양을 무턱대고 설명하기엔 정한은 이 세계는 빗댈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세계는 너무 작아서 내 좋아한단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작고 작은 창문에 불과하구나, 라는 것도.

 

 

   정한은 그래서 비유한다, 네 그림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널 좋아하는 내 마음이 지금 이렇다고.

 

 

   “너는 내 세계야, 지수야.”

 

 

   네 그림은 세계 그 자체를 표현했고, 그 세계는 오직 네 그림으로만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된 세계이고, 그 세계는 곧 너이고, 그럼 너는 곧 내 세계니까.

 

 

   그래서 지수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헤어지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던 과거가 아닌 자신이 정한에게 세계가 되어줬기 때문에. 그리고 정한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세계의 정의와 지수의 결핍을 알았기 때문에. 저가 지수를 세계로 삼음으로써 채워줘야 할게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하나는 작품에 대한 무관심을 두려워하고 하나는 작품에 대한 불만족을 두려워한다. 하나는 관심을 받기 위해 붓을 들고 하나는 더 높은 만족감을 위해 붓을 든다. 사랑을 하기 위해. 그것이 작품이든, 사람이든, 자신이든.

 

 

   사태가 잠깐 진정되자 홍지수는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렇다고 윤정한에게 사과하긴 죽도록 싫은지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입술만 오물거렸다. 그리고 지수가 문 앞에 서서 그러고 있는 덕분에 정한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정한 역시 본인이 말을 잘못 했다는 건 알아서 비켜달라는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지수야, 들어올래?”

 

 

   ...뭐? 한쪽 눈썹이 꿈틀하면 할수록 정한의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웃음소리는 더 잦아진다. 아하하, 지수야 서 있으면 다리 아프잖아. 여기 마침 침대도 있네~... 아니면 같이 소파에 앉아 있을까? 내가 무릎베개 해줄게. 어때? 눈앞에 보이는 빡친 애인(사실 빡치진 않았다. 후폭풍이 온거지.) 달래느라 고운 목소리로 아주 그냥 정성이었다.

 

 

   “…침대.”

 

 

   “어어, 침대에 눕겠다고?”

 

 

   들어와, 들어와, 이불 펴 줄게. 여기 누워. 침대 위를 팡팡 두드리며 지수를 불러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주는 것에 성공한 정한은 나가보려고 슬금슬금 움직이다 지수에게 바로 붙잡혔다.

 

 

   “어디가?”

 

 

   “어? 어어, 나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옆에 누워.”

 

 

   “…응?”

 

 

   “여기.”

 

 

   그러면서 제 옆에 빈 공간의 침대 위를 정한이 그랬던 것처럼 팡팡 친다. 지수야 지금…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같이 눕자고. 아~♡ 지수 쪽을 슬쩍 살펴보니 지수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진듯한 모습에 정한이 헤벌쭉 웃으며 지수의 옆에 냉큼 누워 지수를 껴안았다. 왜이래애. 하면서도 싫다고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하다.

 

   

   “지수야 우리 화해 한 거야?”

 

 

   “뭘 당연한 걸 물어?”

 

 

   “그래?”

 

 

   실실 웃으며 옆자리를 차지한 정한이 껴안고 있던 손으로 지수의 목덜미를 살살 주무르더니 작게 속삭이며 키득거린다. 근데, 침대에서 화해하는 건 이런 게 아닌데. 윤정한 하지 마. 웅♡ 하지 말라니까 야! 정한의 손이 그대로 지수의 품 안으로 쏙 들들어가 준다 아주 그냥 주머니에 손 찔찔러넣는 줄알겠네.

 

 

 

 

   -

 

 

 

 

   지수가 꺼낸 실없이 행복한 추억에 정한이 피식 웃는다. 지수도 그런 정한을 보며 따라 웃었다. 그리고 지수가 천천히 정한의 뺨을 어루만진다. 부드럽게, 상냥하게, 그러면서 얘기한다.

 

 

   “나도 그때 그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힘들었어.

 

 

   아무래도 그게 작은 캔버스는 아니잖아? 그래서 몇 달은 계속 그것만 붙잡고 그렸었는데 아무리 그려도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는 거야. 물감을 찍고 바르는데 딱 그 정도. 이 정도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정말 미술을 하는 사람은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 큰 캔버스를 채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소모되는 감정이 큰 거야.”

 

 

   지수는 처음에는 얕은 숨과 섞어 내뱉었다가 점점 주절주절 말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알잖아, 나는 내 그림을 계속 사랑받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인 거. 시간이 지난 그림은 자연스레 새로 나온 그림들에 비해 밀려날 수 있는 건데 그걸 나는 제일 싫어하잖아. 아직도 내 그림 좋아해? 그러면서."

 

 

   “…그렇지.”

 

 

   “근데 그 그림은 너무 부끄러운 거야. 아무도 이런 그림은 기억해줄 사람이 없겠다 싶을 만큼. 한국에서 작가 활동을 하기 위해선 전시회를 하나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 그림은 오랫동안 사랑 받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도무지 큰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용기가 안 났어. 그래서 고른 곳이 정한이 네가 졸업한 대학교 앞에 있던 그 작은 미술관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것 같아.”

 

 

   지수가 정한을 내려다본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지수를 올려다보고 있던 정한과 눈이 마주쳤다.

 

 

   “네가 그 그림을 네 세계로 삼아줬잖아.”

 

 

   “…지수야.”

 

 

   정한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그림이 어떻게 창피한 그림이니. 나는 그 그림을 내 영감 삼아 살고 있는데. 그러나 이런 말을 하기엔 정한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후회로 꽉꽉 머릿속을 채워 누군가가 제 그림을 극찬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무언가 답답하고 콱 막히고 나는 이 정도가 아니라 더 보여줄 수 있었는데, 하는 갑갑함. 정한은 그런 갑갑함을 원동력 삼은 덕에 계속 다음 그림을 그려갈 수 있었다.

 

 

   “내 말은 그러니까,”

 

 

   “괜찮아.”

 

 

   지수야, 괜찮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정한이 팔을 들어 지수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누군가는 우울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면, 후회나 불만족을 원동력으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너도 불만족하는 그림을 나는 사랑하니, 내가 불만족하는 그림도 스쳐 지나갔던 그 사람들은 사랑해주었구나. 그럼 이건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영원히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겠구나.

 

 

   우리는 계속 흰 바다를 파랗게 채워나가야 하고, 잔디에 꽃을 그려야 하고, 사막의 밤에 별을 박아야 하고, 메마른 이별에 안녕을 보내야 한다. 싫어도 내일은 오고, 전시회는 시작을 알릴 것이고, 많은 관객들은 정한의 그림을 보러 올 것이다.

 

 

   정한이 지수를 확 잡아당겼다. 훅 떨어지는 지수의 고개가 정한의 코 앞에 멈춘다. 이번엔 만족해, 지수야. 어쩌면 다시는 이런 감정을 못 느낄 만큼.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거리를 지수가 좁혀 정한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갖다 댄다. 네가 만족했다면 더 없이 완벽한 전시회일 거야.

 

 

   새까만 밤이 찾아오고 해가 뜨면 개화전이 시작된다.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창밖으로 지수와 정한의 그림자를 만든다. 뉘엿뉘엿 지고 있는 하늘의 풍경이 꼭 그림 같았다.

 

 

 

 

   -

 

 

 

 

   개화전, 그 시작은 환호나 함성이 아닌 비명으로 시작됐다. 전시회가 오픈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모두 팸플릿을 하나씩 쥐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씩 발걸음을 옮기자 얼마 안 가서 한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꺄아악!”

 

 

   무슨 일이야? 그 인파 속에 들어있던 지수가 소리 나는 쪽으로 사람들과 함께 다급하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보이는 모습은 여성의 새하얀 구두가 새빨간 물감으로 아주 엉망이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여기에 물감을 뿌려둔 거야!”

 

 

   전시장 입구에 빨간색 페인트 물감이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못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신발이 빨간색으로 젖었겠지. 분명 윤정한의 짓임을 홍지수는 알았다. 저 멀리 보이는 정한이 웃고 있는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이 작가 또라인가 봐. 왜, 나는 신선하고 좋은데? 네가 신발이 젖었어봐, 그런 소리 나오는지. 제각각의 시선으로 정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걸 노렸구나, 윤정한? 홍지수의 입가에 보기 좋은 미소가 걸렸고, 웅성거리는 인파 사이를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물론 페인트는 사뿐히 즈려밟고선. 지수의 빨간 발자국이 전시회 바닥에 지수가 밟는 대로 찍힌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벙어리라도 된 듯 말을 잃어버린 채로 눈동자만 움직이다가 이윽고 하나둘씩 자신의 발자국을 바닥에 남기기 시작했다.

 

 

   정한의 전시회는 저가 무엇을 노리고 이 전시를 준비했는지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 첫 번째는 미술사를 조금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을 인상주의. 정한의 대학교 졸업 작품에서는 정한이 마치 인상주의 작가인 클로드 모네 같았다면, 이번에는 말 그대로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애초에 이 전시회가 무엇을 목적으로 열렸는지를 상기시켰다.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에게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전시회의 기획 의도에 완전히 들어맞는 전시회였다. 윤정한 대단한데? 지수는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를 자신의 전시회 관객으로 완벽하게 겨냥했다. 전시회를 그냥 눈으로 즐기러 온 사람들과 전시회를 기획한 협회 사람들 양쪽 모두를 말이다.

 

 

   그러나 단지 거기서 끝내버리면 재미가 없지. 정한의 팸플릿에는 하나의 짧지만 긴 역사를 이곳에 담았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지수는 1관을 다 돌고 2관을 들어서서야 정한이 제집으로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급하게 챙겨서 나온 탓에 도구가 제각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한은 아주 정확하게 필요한 도구들을 전부 꼼꼼하게 챙겨왔던 것이다. 그야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2관의 그림들은 비슷하면서 다른 그림들이 각 벽에 걸려있었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그림들이 1관에 걸려 있었다면, 2관은 후기인상주의를 아주 완벽하게 구현해낸 모습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후기인상주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의 기법으로 시작해서 왼쪽 벽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고흐의 영향을 받은 표현주의 그림이 오른쪽 벽 끝에 걸려 있었다. 모퉁이를 돌면 폴 고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또 걸려있다. 그 벽을 눈으로 타고 오른쪽으로 넘어가면 그 끝은 야수주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 있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면 폴 세잔을 연상시킬 수 있는 그림이, 쭉 타고 흘러가면 그것은 입체주의 그림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즉, 빈센트 반 고흐는 표현주의에, 폴 고갱은 야수주의에, 폴 세잔은 입체주의에 각각 영향을 준 작가인데, 그걸 정한은 세 벽에 각각 일렬로 그림들을 걸면서 하나의 역사 흐름을 전부 표현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지수가 2관을 다 돌아보고 3관에 들어서자, 정한이 3관 앞에 있었다. 모습을 보인 지수에 정한이 눈짓으로 반갑다는 인사를 잠깐 하고는 3관에 모여 있는 관객들의 이목을 모았다. 왜냐하면 3관은 텅 빈 상태였기 때문에. 물론 정말 텅 비어있진 않았다. 정한의 뒤로 페인트통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윽고 정한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전시회는 재밌으셨는지요.”

 

 

   그건 모르겠고 일단 그렇게 묻는 윤정한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잘생긴 얼굴을 잘 쓰고 있다는 건 알겠다 싶었던 홍지수가 주변을 슬쩍 살펴보자 대부분이 긍정적인 표정으로 정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분이 작가입니다. 이 시대의 역사를 여러분이 직접 새겨보세요.”

 

 

   그러나 물감은 준비되어 있지만 그걸 칠할 도구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은 전부 어쩔줄몰라 주변 눈치만 보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던 정한이 갑자기 팔을 걷은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보다 더 놀랄 일은 그대로 뒤에 있는 페인트통에 푹 팔을 담갔단 것이겠지.

   그리고 그대로 정한이 벽에 손바닥을 콱 찍어버린다. 선명하게 남은 정한의 노란 손바닥이 새하얀 벽에 꼭 사인처럼 남았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리며 보기 좋게 웃어 보였다. 그 뒤엔 너도나도 웃으며 하나둘씩 페인트통에 손바닥부터 신고 있던 신발, 가지고 있던 립스틱, 하물며 나눠준 팸플릿까지 다양하게 쥐고 사람들은 흰 벽을 자신이 원하던 색으로 찍고, 칠하고, 채우고, 쏟으면서 각자가 남기고 싶은 것들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구석에 기대어서 보고 있던 정한의 표정도 꽤 볼만했고. 지수가 정한의 옆에 슬쩍 붙었다.

 

 

   “너는 안 해?”

 

   

   “난 됐어.”

   

 

   그러면서 지수가 정한의 손을 슬쩍 잡았다. 빼지 않고 오히려 더 꽉 잡아 오는걸 보아하니 어지간히 지금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어?”

 

   

   “그냥, 장난을 좀 쳐봤지.”

 

 

   “그럼 정한이는 엄청난 장난꾸러기인 거네.”

 

 

   그러면서 지수가 정한의 코 끝을 살짝 눌렀다 뗐다. 너무 대단해, 정한아. 그 말에 정한은 감사 인사 대신 사람들 몰래 지수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숨길 이유도 없는데 사람들을 등진 구석에서 몰래 손 잡고 몰래 입을 맞추니 꼭 비밀연애 하는 것 같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정한과 지수가 관객들을 놔두고 전시회를 빠져나왔다. 보기 좋게 잡은 손을 흔들거리는 지수가 기분을 좋은지 후훙, 하고 웃는 모습에 정한은 뭐가 그렇게 좋길래 그렇게 웃는지 싶었지만 막상 지수에게 물어보기에는 자신도 한창 헤벌레 웃고 있는 상태였다.

 

   

   “윤정한.”

 

 

   “응?”

 

 

   지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정한을 불렀다.

 

 

   “너 파리 가고 싶어?”

 

 

   아, 그렇구나.

   우리 둘 중 하나가 파리에 가게 되면, 한 사람은 한국에 남아있을 테니까. 떨어지게 되겠구나. 우린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준비 한 거구나.

 

 

   “지수야.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무조건 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게 아니라, 정한이 넌 파리 가고 싶어?”

 

 

   “나는…”

 

 

   나는, 나는 지수야. 나는… 정한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지수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러나 어떻게 말해야 올바르게 말하는 걸까. 그리고 이내 정한은 입을 열었다.

 

 

   “나는… 가고 싶어.”

   나는 파리 가고 싶어 지수야. 그렇게 말하는 정한을 한참 바라보던 지수가 살포시 웃었다.

 

   

   “그래? 알겠어.”

 

 

   지수는 그 뒤에도 여전히 평소 같았다. 전시회가 끝나는 일주일까지도. 그 일주일 동안 지수는 매일매일 전시회에 출입 도장을 찍었고, 정한은 시작과 끝만 비추고 그 사이 공백은 내내 밀린 잠을 채워서 자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용케 윤정한이 작업 끝나자마자 드러눕지 않고 지수를 데리러 갔다면서 민규는 정한이 작품을 철거한 뒤에 도착한 지수의 작품 설치를 도와주었다.

 

 

   “민규야. 정한이가 파리에 가고 싶대.”

 

 

   “당연한 거 아냐? 그거 누가 안 가고 싶겠어. 공짜로 보내준다는데.”

   

 

   “정한이가 파리에 가면 나는 혼자 한국에 남는 거잖아.”

 

 

   “헉.”

 

 

   민규가 입을 틀어막았다. 넌 그것도 몰랐니 민규야. 아, 솔직히 난 아직도 형이 정한이 형이랑 사귀는 게 안 믿겨. 그 말을 들으면서 지수가 갤러리에서 트럭을 타고 무사히 전시장까지 넘어온 작품들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고, 그 옆에서 민규는 함께 망치질을 하다가 형, 하고 지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정한이 형이 한국에 남았으면 좋겠어?”

 

   

   “음…”

 

 

   이왕이면 보내주고 싶지. 걔 파리 유학 보내준다는 말 들었을 때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눈이 아주 그냥 반짝반짝거렸어. 여행 가면 설레어서 나오는 표정 뭔지 알지? 그런 것처럼. 지수가 중얼거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민규가 말을 붙였다.

 

 

   “근데 형도 가고 싶잖아. 파리.”

 

 

   “…그렇지.”

 

 

   “그럼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다면 누가 가야 한다고 생각해?”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가야 하는 거라면. 민규에게서 답지 않게 어려운 물음이 터져 나와 지수가 하던 것을 멈추고 민규를 돌아봤다. 누가 가야 하냐고? 그러자 이상하게 지수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 한 문장에 마음은 이미 방향을 잡은 듯했다.

 

 

   “정한이가 가야지.”

 

 

   “왜?”

 

 

   “음… 그런 게 있어.”

 

 

   지수는 민규에게는 그렇게 얼버무렸지만 웃고 있는 모습은 무언가 확실한 근거를 둔 사람처럼 보였다. 밀려난 게 아닌 물러난 것 같은 모습. 민규는 지수에게 더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몰라, 형이 알아서 잘하겠지. 민규의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3일 중 첫날은 정한의 작품 철거와 전시장 청소, 이튿날은 지수의 설치 미술 디스플레이, 사흗날은 캔버스 벽에 고정시키기에 꼬박 힘을 다 썼다. 중간에 민규가 가면 지수는 남아서 꽉꽉 시간을 채워가며 전시관을 꾸몄고,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윤정한 전시회에 도장 찍고 작품 완성하느라 근 일주일간 통 잠을 잘 수가 있었어야지. 사람이 잠을 너무 못 자면 죽는다더니, 그 말이 맞나봐.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지수는 겨우 휴대폰을 꺼내 단축키 1번을 꾸욱 눌렀다. 정하나… 어디야…? 나 데리러 와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뛰쳐나온 정한도 몰골이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첫날에 작품을 다 회수해간다는 게 어지간히 쉬운 일이 아니라서. 초췌한 얼굴로 정한이 지수를 수거해간다. 지수야 업혀봐, 너 지금 상태로 못 걸을게 분명하다. 흐느적거리는 지수의 양팔을 겨우 끼고 정한이 지수를 업었다. 지수야 차 가져왔어? …아니. 하… 택시 타자.

 

 

   정한이 지수를 업고 지수의 아파트까지 들어가는 모습은 아마 단지 주민들이 다 봤을 테고, 분명 우스워 보였을 테다. 정한도 체력이 많은 남자가 아니라, 건장한 성인 남성 하나를 업고 걷는다는 건 다리가 후들거릴 수 밖에 없었다. 겨우 문 따고(정중하게 비밀번호 눌렀다.) 지수를 침대에 내동댕이(살포시 눕혔다. 무슨 욕을 들을줄 알고.)치고 정한이 헉헉거리며 진땀을 흘렸다. 홍지수 이거 요새 운동한다더니 근육이 붙어서 더 무거워졌어, 이 씨.

 

 

   “나도 그냥 여기서 잘까…”

 

 

   도저히 집까지 못 걸어간다 이거. 집을 포기하던가 내일 홍지수 전시회를 포기하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겠는데. 물론 정한은 지수의 전시회를 포기할 바에는 집을 포기하는 게 백번 나았다. 그리고 홍지수랑 같이 자는 게 훨씬 정한에겐 남는 장사이기도 했고. 넓은 침대에 정한이 지수 옆에 누웠다. 자다가 지수의 전화를 받고 깨서 부랴부랴 거기까지 택시 타고 달려온 탓에 정한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까무룩 같이 잠드는 것도 시간문제였는데 어느새 눈떠보니 아침이었고 지수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지수야… 전시회 보러 안 가?”

 

 

   정한이 소곤소곤 지수를 살짝 깨우며 물었지만 지수는 베개에 말이 묻혀 웅얼거리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안 가… 밖에 못 들었는데, 이게 핵심이겠지. 나라도 혼자 가서 보고 와야겠다 싶었던 정한은 혼자 지수의 집에서 씻고, 옷 갈아입고, 야무지게 냉장고 열어서 아침도 주워 먹고 나왔다. 전시회 앞이 보이기 시작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형! 하고 부르는 소리가 익숙해 정한이 뒤돌아보니 민규와 아는 얼굴 하나, 모르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오, 지수 전시회 보러 왔네?”

 

 

   “지수형 도와줬으니까 전시회도 한 번 봐야지 싶어서 왔지.”

 

   

   “내 전시회는 안 오고 섭섭한데.”

 

 

   “뭔소리야? 형 전시회 갔는데? 형이야말로 중간엔 한 번도 안 왔다며? 지수형이 그러던데.”

 

 

   “그런 것도 지수가 말해줘?”

 

 

   “지수형이 형 얘기 진짜 많이 하거든? 전에도 형 파리 가고 싶다 했다고…”

 

 

   아차, 민규가 말을 하다 필요 없는 말을 했다 싶은지 말을 멈춘다. 정한은 그냥 그러냐? 하면서 한 번 씨익 웃어주고는 대화 주제를 넘겨버렸다.

 

 

   “옆에는 친구들?”

 

 

   “아, 얘는 전에 봤던 석민이. 오랜만이지?”

 

 

   “어 성민이~ 오랜만이네~”

 

 

   “안녕하세요 형!”

 

 

   민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정한에게 석민을 소개해줬다. 성민이가 아니라 석민이요 형. 그리고 이쪽은 친구는 아니고 후배인데, 승관이. 지수형 그림 진짜 좋아한다고 해서 데리고 왔지.

 

 

   “오~ 지수 그림 알아?”

 

 

   “네! 조슈아 작가님이 한국 미술 협회에 이름 등록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전시회 하는 줄은 몰랐거든요! 저 진짜 팬인데!”

 

 

   승관은 들어가기도 전부터 들떠서 재잘재잘 얘기하는데 지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정한이 몰랐던 지수까지. 정한은 지수에 대해선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조슈아를 본 적은 지금도 정한의 방에 고이 모셔져 있는 그 그림이 전부였으니까. 괜히 정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수, 그러니까 팸플릿에 적혀 있는 이름 조슈아의 작품 설명은 이러했다. 낙원(樂園)과 나락(那落), 그리고 낙화(落花). 정한은 조슈아, 라는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을 몇 번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입장이 시작되고, 1관으로 들어가면 중앙에는 커다란 보라색 장미 모양의 오브젝트가 꽃 안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설치미술이 이목을 끈다. 아, 중심이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구나. 정한과 민규, 석민, 승관은 각각 다른 템포로 천천히 작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한의 휴대폰 케이스에 보라색 장미가 그려져 있는걸 유심히 보던 지수를 정한은 떠올렸다. 천장에는 등나무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하늘하늘한 게 예뻤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었다. 큰 장미 오브젝트 주변에는 라일락과 라벤더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든 걸 철사로 감고, 모양을 잡고, 한지를 구기고, 바르고, 색을 입혀 실제처럼 만들기까지 얼마나 디테일하게 살폈을까. 등나무꽃의 꽃잎이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낙화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살아있을 때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경. 정한이 그 모습을 가만히 감탄하고 있는데 승관이 정한의 옆에 섰다.

 

 

   “형, 라일랑 꽃말이 첫사랑이래요.”

 

 

   “보라색 장미는 불완전한 사랑인데.”

 

 

   정한이 대답하자 승관은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첫사랑이 불완전한 건가?”

 

 

   “그럴 수도 있지.”

 

 

   승관은 역시 작가님의 생각은 어렵다며 이미 시선을 돌렸지만 정한은 어쩐지 타는 느낌이었다. 지수의 첫사랑이 자신이 아니어도, 자신이어도 지금의 사랑에 지수가 불완전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정한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임이 분명하다고. 벽에 붙어 있는 제비꽃이 달린 보라색 프레임의 거울들에는 모두 정한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지수에게 보라인가보다. 정한은 한참을 자신의 상을 비추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 무언가가 또 비치는 것처럼. 수 많은 관객들을 뚫고 자신의 상에서 자신 그 이상의 무언가를 꼭 깨달으려는 것처럼.

 

 

   “파리…”

 

 

   “네?”

 

 

   옆에 있던 승관이 되묻자 정한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지수는 이 전시회를 준비했을 순간부터 불안해하고 있었던 걸까. 승관은 묘하게 깊게 잠겨있는 정한의 눈치를 살폈고, 이내 퍼특 정신을 차린 정한이 승관에게 웃어 보이며 2관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어느새 민규는 석민과 정한은 승관과 짝을 지어 전시회를 둘러보는 꼴이 되었다.

 

 

   2관으로 이동하자 저만치 멀리서 열심히 무언가 설명하는 민규와 그 옆에서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석민이 보였다. 2관은 앞서 본 1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관이 낙화를 표현한 하나의 현실 세계를 표현한 것이었다면, 2관은 들어올 때부터 온통 붉은색이 눈앞을 아른거리게 했다. 바닥에 가득 피어있는 피안화는 꼭 여기가 나락임을 알려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벽 중앙에 크게 걸린 그림은, 남자가 거꾸로 떨어지고 있는 그림이었다. 꼭 타로의 매달린 남자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그 옆에는 검은 고양이 그림이 한 점, 까마귀 그림이 한 점, 붉은 거미 그림이 한 점 걸려있다. 승관이 정한의 옆에 서서 여기는 좀 오싹하네요… 하고 작게 소곤거렸다. 왼쪽 벽에는 빨간 장미 한송이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주변으로 가시덩굴이 벽에 달라붙어 있었다. 반면, 3관은 또 다시 새로운 감상을 느끼게 해 주었다. 새하얀 벽에 새하얀 꽃이 가득하다. 그러나 바닥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것들은 알록달록한 산호초였다.

 

 

   낙원이 하늘이 아니라, 바다구나. 천국이 아니라 심해를 낙원으로 본 거구나. 정한은 천장에 매달려있는 에델바이스, 백합, 목련, 은방울꽃, 그리고 이름 모를 하얀 꽃이 몇 종류 더 달린 걸 봤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천사 석고상이 매달려 있었다. 정확하게는 천장을 바닥으로 생각하고 서 있는 것이었고, 바닥은 바다로 파란색으로 칠한 바닥에 산호초와 진주알이 도르륵 굴러다닌 거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양한 자신을 쌓으면 우린 나락으로, 낙원으로 향한다. 조슈아의 생과 사에 관객들이 완전하게 녹아든다. 넷은 한참을 낙원 속에서 자신들의 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전시회를 다 본 네명은 야무지게 사진까지 찍었다. 승관이 한 장 남기자는 말에 넷은 옹기종기 붙어서 1관에서 봤던 그 보라색 장미 앞에서 한 컷 찍었다. 타이밍 좋게 전시회를 나오자마자 정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지수의 전화였다. 어, 어, 지금 갈게. 짧은 전화가 끊기고 정한이 미안하단 표정으로 셋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밥은 같이 못 먹겠다. 지수가 부르네.”

 

 

   “조슈아 작가요?! 대박! 연락도 하세요?”

 

 

   “승관아, 저 형 조슈아형이랑 사겨.”

 

 

   “네?!”

 

 

   승관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정한을 선망하다 옆에서 민규가 한마디 거들어주니 눈이 왕만 하게 커져선 깜짝 놀란다. 와… 저 몰랐어요. 그럼 작업하는 것도 다 보시겠네요? 승관의 순덕 모드에 정한은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지 어? 어어, 뭐 그렇지. 하고 얼버무려버렸다. 사실 본 적 없거든.

 

 

   “아무튼 나 먼저 가볼게. 다음에 시간 되면 그땐 지수랑 다섯이서 밥 한번 먹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형!”

 

 

   승관이 부쩍 큰 목소리로 정한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쟤 진짜 지수 짱팬이구나. 아이돌 같다 홍지수.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웃긴지 정한이 실실 웃으며 먼저 자리를 빠져나와 택시를 잡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으로 지수가 쪼르륵 달려왔다. 일어난지 얼마 안 됐는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정한에게 안겨서 목덜미에 고개를 부빗거리는게 귀여워서 정한이 한 번 피식하고 웃었다.

 

 

   “전시회 다녀왔어?”

 

 

   “응. 완전 죽이던데.”

 

 

   “2관?”

 

 

   “아, 그것도 죽이긴 한데, 다른 것도 그만큼 좋았어.”

 

 

   말 가지고 장난칠 정신머리는 있는지 지수가 꺄르륵 웃는다. 근데, 아직 나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불완전한 첫사랑. 그런걸 묻기에는 아직 지수가 준비가 안된 것 같아 말을 삼키고 지수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밥은 먹었어? 아니, 방금 일어났어. 그래 보여, 뭐 먹을래? …정한아 네가 하는 건 아니지? 시킬 거야, 걱정 마.

 

 

   첫날은 그렇게 밥 먹고 낮잠좀 자다가 일어나서 영화 한 편 보고 지수가 정한을 집에 보냈고, 일주일이 지날 동안 정한은 두 번 정도 더 지수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한 번은 혼자서, 다른 한 번은 친구랑. 지수는 한 번도 제 전시회를 보러 가지 않았다. 대신, 조명이 다 꺼지고 철거할 때가 되어서야 민규가 도착하기 전에 잠깐 혼자서 본 게 전부였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민규, 그리고 민규를 따라온 정한은 혼자 불 꺼진 전시장에 자신이 만든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지수의 뒷모습을 몰래 바라봤다. 지수는 무슨 기분일까, 지금.

 

   

   “지수형!”

 

 

   한참 지수를 바라보던 민규가 먼저 인기척을 냈고, 뒤돌아본 지수는 표정이 잠깐 없다가 이내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정한이도 왔네?”

 

 

   “응. 너 감시하려고.”

 

 

   “땡땡이 칠까 봐?”

 

 

   “아니, 민규랑 내 험담 할까 봐.”

 

 

   뭐래. 지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쾌활하게 웃었다. 셋이 분주히 지수가 만든 세계를 점점 붕괴시키기 시작했다. 정한과 민규는 은근 아쉽다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수는 되려 후련하다는 듯이 신나게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한참을 작업에 열중하다가 정한이 지수에게 말을 걸었다.

 

 

   “지수야, 넌 첫사랑이 누구였어?”

 

 

   “갑자기?”

 

 

   정한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지수는 정한을 쳐다보지 않고 철사나 빙빙 돌리면서 목소리로만 대답했다.

 

 

   “응. 미국에서 해봤을 것 같아서.”

 

 

   “아니. 한국 사람인데.”

 

 

   너. 지수가 정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 정한은 그게 기쁘면서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럼 불완전한 첫사랑이 나인 거잖아. 내 어떤 점이 지수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을까. 물어보기엔 구차했고 스스로 묻기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한아. 꽃말 때문에 그래?”

 

 

   “ …응.”

 

 

   “풉.”

 

 

   지수가 소리 내서 웃었다. 보라색 장미 그것 때문에 그러는구나, 너. 그러더니 옆에 있던 민규에게 지수가 묻는다.

 

 

   “민규야, 보라색 장미 꽃말이 뭔지 알아?”

 

 

   “어… 영원한 사랑 아닌가?”

 

 

   “맞아.”

 

 

   그러더니 지수가 정한을 바라보며 들었지?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뭐야, 그럼 승관이가 잘못 알려준 거야?

 

 

   “근데 불완전한 사랑도 맞아.”

 

 

   뜻이 두 개거든. 지수가 정한의 생각을 읽은 듯이 덧붙였다. 정한의 얼굴에서 걱정이 또 읽혔다. 정말… 저 걱숨이 어떡할 거야. 지수가 못 말린다는 듯이, 그렇지만 사랑스럽다는 듯이 정한을 바라봤다.

 

 

   “정한아. 완전한 사랑은 없어. 정한이 네가 후회로 붓을 잡듯이, 나 역시 사랑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널 찾는 거야. 완전했으면 진작 너한테 그림 돌려받았을걸.”

 

 

   그러니까 내 말은, 불완전해야 영원할 수 있단 뜻이야. 민규의 질린 눈빛 옆에 다정하게 웃는 지수가 정한에게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지수야, 너나 내가 파리에 가게 된다면 그건 어떡해? 그 물음은 차마 하지 못한 정한이 지수에게 상냥한 웃음을 보여준다.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상대를 위한 웃음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물음만큼은 영영 하지 못한 상태로 몇 달이 흘렀고, 개화전은 마지막 열 번째 작가의 전시를 끝으로 완전히 성공 속에 끝을 맺었다. 마찬가지 정한이 협회 직원으로부터 쇼킹할 소식을 들은 것도 그맘때 즘이었다.

 

 

   “파리요?!”

 

   

   문자를 받고 헐레벌떡 협회로 달려온 정한은 벅찬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협회 직원은 축하한다며 결정하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렸다고 넉살 좋게 웃으면서 정한을 축하해줬다. 정한이 기쁜 건 맞았지만 저가 어떻게 뽑혔는지 알고 싶어 직원에게 살짝 물었더니 직원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정한 작가님 전시회는 인상주의의 한 역사와 이어진 역사의 흐름, 그리고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미술로 좋은 시너지를 뽑아냈다고 다들 극찬을 했어요. 그중에서도 후기인상주의의 세 작가로부터 이어진 기법까지 표현한 건 정말 소름 돋을 정도로 천재적인 발상이었다고도 하셨고요.

 

 

   또 쟁쟁한 후보가 조슈아 작가님이었는데, 이제껏 캔버스와 종이에 그리던 그림과는 다르게 설치 미술과 오브제 사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간 미술로 각각 세계를 만들고 그걸 하나의 큰 세계로 합쳤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 부분에서 많은 점수를 얻었어요. 전시회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관객들 덕분에 인지도도 대폭 상승했고요.”

 

 

   직원은 입에서 쉴 새 없이 칭찬과 칭찬을 늘여놓으며 정한과 지수를 열심히 극찬했다. 열중하느라 땀까지 흘리면서 와다다 쏟아내는 말들은 정한을 쑥스럽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들 쉽게 한 사람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조슈아 작가님께서 자긴 안 줘도 된다고 양보하시는 덕분에 겨우 결정됐지 뭐예요!”

 

 

   “잠깐, 뭐라고요?”

 

 

   지수가 파리를 포기했다고? 솔직히 정한은 그 뒤는 더 이상 직원이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나 때문에 자기가 포기한 거야? 정신이 멍한 게 꼭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걷고 있는데 걷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얼빠진 채로 무작정 걸었더니 어느새 집 현관이었다. 그런데 자기 집이 아니라 지수의 집 현관인.

 

 

   정한이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자 마치 자기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곧이어 문이 열렸다.

 

 

   “홍지수, 너 뭐야.”

 

 

   “들어와서 얘기해.”

 

 

   “너 나 때문에 파리 포기한 거야?”

 

 

   “들어와서 얘기하자니까.”

 

 

   정한은 삐딱하게 서서 도무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지수가 한숨을 내뱉더니 잠깐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겉옷을 입고 나왔다. 나랑 어디좀 가자, 정한아.

 

 

   지수는 말 없이 앞장서서 걸었고, 정한 역시 말 없이 지수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만 들려오는 게 꼭 그때 같았다. 그때 뉘엿뉘엿 해가 지던 시간에 나란히 걸었던 그때. 정한과 지수가 손을 맞잡고 걸으면서 정한이 자기 전시회 보러 올 거냐고 물었던 그때. 지수가 아직 자기 그림 가지고 있냐고 물었던 그때. 그러다 지수의 발걸음이 멈춘다. 정한이 따라 멈추자 이미 전시회를 끝내고 문을 닫은 전시장이 저 멀리에 보였다. 이번에 열렸던 그 전시회가 아니라, 정한이 졸업한 대학교 맞은편에 있던 그 작은 전시회. 세계를 창(窓)에 담았던 그때 그 전시장이었다.

 

 

   “여기는 왜 온 건데.”

 

   "정한아. 전에 네가 나보고 미술 취미로 하냐 그랬잖아."

 

   "야, 그건…"

 

   "근데 너한테는 진심이라."

 

   그래서 양보한 거야. 포기한 게 아니라 양보. 정한이 말도 다 못한 채로 얼굴이 빨개졌다. 쟤는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한 홍지수의 손에는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파리행 비행기 티켓이 들려있다.

 

 

   “너…”

 

 

   “나 돈 많은 거 알지.”

 

 

   너랑 나랑 둘 중에 하나만 갈 수 있다면, 가야 하는 건 너였으니까. 지수가 내뱉는 문장의 길이를 따라 겨울의 입김이 건조한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분명 전시회를 준비할 즈음엔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겨울에 정한과 지수가 와 있다.

 

 

   “미친놈…”

 

 

   “고마워.”

 

 

   “홍지수 또라이.”

 

 

   “응, 나도 사랑해.”

 

 

 

   

   -

 

 

 

 

   원래 누구나 인생을 좀 살아가다 보면 뭐 저런 또라이가 다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간이 꼭 하나씩은 있다. 여기서 이 인간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그냥 말 그대로 또라이거나, 다른 하나는 그 인간이 예술가거나.

 

   그럼 여기서 문제.

   홍지수는 어느 쪽일까?

 

 

   “둘 다 아냐?”

 

 

   지수형 정한이형 따라 파리 갔잖아. 민규는 졸업작품을 만들면서 심심하다고 옆에 석민을 불러다 놓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고 있었다. 민규야, 문자 왔다. 정한이형인데? 석민의 말에 민규가 깜짝 놀라서는 들고 있던 붓을 내려다 놓고 석민의 옆 구석에 충전해둔 휴대폰을 들었다. 헐! 민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우왁, 깜짝이야. 뭔데?

 

   

   “정한이형 한국 들어온대!”

 

 

    졸업 작품 전시회 보러 온다고 지수형이랑 같이 온다는데? 민규가 막 설렌다는 표정을 지으며 석민에게 휴대폰을 보여줬다. 거기는 정한이 지수와 함께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밍구야~ 지수랑 졸작 전시회 보러 갈게 시간 비워놔~’ 라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두사람 진짜 잘 만났지?”

 

 

   민규와 석민이 저 멀리 있는 정한과 지수를 떠올리곤 빵 터져서 웃는다. 그치, 두 사람 잘 만났지.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뮤즈이고 엘리제니까.

 

 

 

 

   그리고 정한과 지수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민규와 석민에게 청첩장을 나눠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