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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다이아몬드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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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다이아몬드

 

yh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nokk

 

 

 

1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인간사의 모든 투쟁은 그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1775년 4월 미국 보스턴의 서쪽 교외 렉싱턴과 콩코드 부근에서 일어난 영국군과의 무력충돌로 시작된 미국 독립전쟁의 역사를 줄줄 읊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윤정한은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KIS 4번 채널에서 월요일 아침마다 하던 시사 프로가 없어지고 역사 프로가 신설된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볼만한 방송이었는데. 중얼거리며 세수를 마친 윤정한이 컵에 우유를 따랐다. 투명한 시리얼컵 안에 오트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맛대가리 없는 오트밀을 으적으적 씹으면 띠리리릭, 테이블 위에 놓인 알람시계가 진동한다. 알람시계가 진동하면 출근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반도 안 먹은 오트밀을 싱크대에 던져 넣었다. 검은색 면바지에 하얀 맨투맨을 입은 윤정한은 거실 불을 끄고 현관문을 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2

 

걔의 전 애인은 가이드랬다.

 

애인, 아니지. 정확히는 죽은,을 붙여야 한다. 죽은 전 애인.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 3-1구역 로비에 앉아 딸기 바나나 스무디를 쭉쭉 빨며 윤정한은 생각한다. 가이드를 사랑한 일반인. 배정된 센티넬과 눈이 맞은 가이드. 폭주 중 함께 죽어버린 센티넬과 가이드. 가이드의 사망 일 년 후 센티넬로 판명난 일반인. 솔직히 좀… 웃긴데. 대충 듣다 보면 KIS 7번 채널에서 하는 아침일일드라마 ‘사랑이 왜 이래’의 줄거리 같았다. 가이드를 재벌 남자로 바꾸고, 센티넬을 정략결혼 상대인 재벌 여자로 바꾸기만 하면 다를 게 없었다. 하여튼 웃겼다. 첫사랑이니 애인이니, 사랑의 도피니 바람이니 하는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꼴이.

 

 

“형 출근 안 해?”

 

 

부승관은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어, 형 연차 쓰려고. 빨대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바닥난 딸바스무디를 빨아먹는 윤정한을 바라보던 부승관이 맞은편 의자를 빼 앉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소 월급 빼먹겠다는 사람이 갑자기 웬 있지도 않은 연차 타령. 더위 먹었어?

 

 

“차라리 더위라도 먹은 거였으면 좋겠다.”

“뭐야. 뭔 일 있어?”

“응.”

“위에서 형 나가래? 3년 동안 맞는 센티넬도 없이 월급 빼먹는 꼴 드디어 못 봐주겠대?”

“너 지금까지 나 보면서 그런 생각했니?”

“부럽다 정도로 정정할게.”

“어이없다, 승관아. 나 센티넬 배정됐는데.”

“엥.”

 

“어?”

 

 

형 센티넬 배정됐어? 뭐야? 언제? 들고 있던 테이크아웃 컵을 테이블에 쾅 내려놓은 탓에 흰색 테이블이 지진이  나듯 흔들렸다. 부승관은 가끔 제 힘을 모르고 날뛰다가 벽 하나쯤은 가볍게 부숴 먹는 초짜 센티넬처럼 굴었다. 배정됐는데 어떻게 그걸 나한테 말을 안 해줘?

 

 

“머리 울린다 승관아.”

“언제 배정됐는데.”

“어젯밤에.”

“아하.”

 

 

그래서 누군데? 테이크아웃 컵 뚜껑을 따 얼음을 아그작 씹은 5년차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 소속 가이드 -파장이 불안정해 가이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 사실상 연구원에 가까웠다- 부승관이 물었다. 부승관은 센티넬과 1:1로 붙는 대신 새로 가이드로 판명된 신입들을 교육하는 역할을 했다. 센티넬과 붙는 가이드들은 종종 싸가지가 없어서 월급 날로 먹는다며 뒤에서 욕을 하곤 했으나 넓은 아량을 가진 부승관은 그냥 그 말을 싸그리 무시를 깠다.

 

 

“홍지수라고 알아?”

“홍지수?”

“왜 그 있잖아. 애인이 센티넬이랑 눈 맞았는데 죽었다던.”

 

 

아! 리액션이 부산스러운 승관이 박수를 짝 쳤다. 불쌍하네. 한참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승관이 입을 열었다.

 

 

“누가, 내가?”

“아니, 홍지수라는 그 센티넬이.”

 

“입사 이후로 가이드 일은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이랑 매칭된 거잖아.”

 

 

운이 안 좋네, 그 사람도. 안 그래 형? 동그랗게 생긴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윤정한은 어젯밤 삼 년만의 매칭 성공 이후 제 핸드폰으로 날아 들어왔던 수많은 문자들을 생각했다. 정한아 어떡하니. 정한아 하필. 삼 년만에 걸린 센티넬이…. 멀쩡한 센티넬도 많은데 하필 불량품이랑. 고생해라. 어떡해 정한아 등등의 문자들. 윤정한과 홍지수 둘 중 굳이 골라 홍지수를 불쌍해하는 것은 센터 안에 윤정한과 부승관 둘밖에 없을 것이다. 어째 나 멕이는 것 같다. 출근이나 해 승관아. 센터 내에서 부승관은 매니저님이나 연구원님 등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나 윤정한은 꾸준히 부승관을 부승관이라고 불렀다. 딸바스무디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윤정한이 몸을 일으켰다. 형 출근하게? 

 

해야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승관이 백수 생활을 강제로 청산하게 된 윤정한에게 애도의 눈빛을 보냈다. 형 고생해! 퇴근하고 전화하면 안 받을게! 

 

 

 

 

 

윤정한.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 소속 3년차 가이드. 서울권 모 대학 체육교육과 졸업을 반 년 앞두고 있던 시점, 몸에 이상을 느끼고 동네 병원에 방문. 그 이후 이유 모를 고열과 두통으로 대학병원 입원. 가이드 발현 판정 이후 학교를 자퇴. 파장이 맞는 센티넬이 없어 3년간 타의로 백수 생활 중. 

 

 

센티넬과 가이드. 이름이 주는 뉘앙스처럼 끈적하고 절절한 관계를 상상했다면 유감이다. 15년 전 발생했던 모 센티넬의 자폭 테러 이후 국가에서는 국립센티넬관리소를 설치하고,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고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센티넬뿐만 아니라 가이드까지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된 이유는 테러의 배경에 있다. 부산 바다에서 일어난 해상 전투에서 의료병으로 자원하였던 센티넬의 가이드가 폭사로 사망하자, 센터로 이송된 그의 시체를 본 센티넬이 감정 제어 불가능 상태에 빠져 폭주했고 결국 광화문광장에서 자폭하여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센티넬을 생포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스무 명의 국가 인력이 사망하였고, 서른 명의 일반인이 부상을 입었다. 국립센티넬관리소 산하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에서는 자폭 이후 조각난 시체들을 모아 센티넬과 가이드의 뇌를 해부, 분석하였고 결국 그들의 감정 감화 단계가 다른 각인된 센티넬-가이드의 관계보다 깊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발견해냈다. 그 이후 센티넬과 가이드 간의 관계는 자율에 맡겨졌던 이전과 달리 연구소의 통제 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새로 생겨난 규율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센티넬은 담당 가이드와 각인해서는 안 된다. 둘째. 가이딩 시 일정 이상의 신체 접촉은 금지한다. 셋째. 센티넬과 가이드의 과도한 감정 공유를 금지한다.

 

각인은 불가능해졌고 포옹 이상의 신체 접촉이 금지되었다. 파장이 불안정한 센티넬들은 담당 가이드의 가이딩에 만족하지 못했고 종종 작은 규모의 폭주를 일으켰다. 가이드 여럿이 다쳤고 여럿이 퇴사했다. 가이드의 수가 눈에 띄게 부족해지자 한 명의 가이드가 세 명의 센티넬을 담당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소에서는 A1이라는 약물을 개발했다. 일정 이상의 가이딩으로도 안정되지 않는 파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A1은 고통을 동반하였으나 확실한 성능을 보장했다. 언젠가부터 가이드들은 센티넬이 약간의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낼 기미만 보여도 A1을 주사하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센티넬인자를 보유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가이드인자를 보유한 인간이 가이드로 분류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었다. 능력이 개화했든 개화하지 않았든 센티넬은 센티넬일 뿐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광화문광장 자폭 테러 이후 센티넬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 부처 장관들도 그들을 센티넬로 취급할 뿐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센티넬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센티넬은 자유를 원할 권리가 없는 것인가. 센티넬 자폭 테러 사건 이후 국가는 보안 목적으로 국가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 채널을 KIS로 통합시켰다. <우리의 친구, 우리의 영웅 센티넬> KIS 1번부터 9번까지의 채널에서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저 문구가 흘러나왔다. 친구나 영웅. 솔직히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센티넬은 무기 같은 거다. 언제든 쓰고 개조하고 방치하고 버리고 다시 집어들어 쓸 수 있는 것. 센티넬과 인간. 윤정한은 종종 그 차이를 생각했다. 물론 좆같은 궤변이라고 생각하면서였다.

 

 

 

“선생님 저 출근이요.”

 

 

 

출근 카드를 찍는 소리가 이미 고요한 연구실 안에 울려 퍼졌음에도 윤정한은 굳이 인사를 했다. 허리를 숙인 채 그래프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았다.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 박정철 연구원. 하얀 가운에 쓰여 있는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정한이 왜 이리로 출근했어. 어제 배정받았잖아. 이제 여기로 안 와도 되는데. 의자를 빙글 돌려 윤정한을 마주본 박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어딘지 안 알려주셨잖아요.”

“어디를?”

“센티넬 숙소요.”

“아 너 이번이 처음인가?”

 

 

네에. 신삥 윤정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삼 년 전 입사할 때 뱉었던 말을 그대로 뱉는 윤정한을 보던 박 선생님이 하하, 웃었다. 기다려 봐. 네가 걔 가이드잖아. 뒤통수에 말 많이 달고 다니는.

 

 

“8-3구역.”

“8층? 높은 데 사네요. 센티넬들은 높은 데 살아야 좋은가?”

“그 층 걔 혼자 써.”

 

 

독방도 아니고 독층이야. 컴퓨터를 두드리던 박정철이 테이블에 가득 놓인 스타벅스 자허블을 빨대로 휘휘 젓더니 말했다. 좋겠네, 윤정한이. 8층 햇빛 잘 들거든. 근무 환경으로는 최고야. 하루 종일 랩에 처박혀 이름 모를 실험을 하는 박 선생님의 머리는 반쯤 벗겨져 있어서, 윤정한은 언제나 자허블이 아니라 검은콩두유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언제나 뱉던 실없는 농담 대신 윤정한은 다른 걸 물었다.

 

 

“걔는 왜 혼자 쓰는데요?”

“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박 선생이 말을 잇는다.

 

 

“걔 아직 능력 개화 안 됐거든.”

 

 

전 애인이 정부에서 내린 센티넬-가이드법 개무시하고 각인하고 감화하다 능력 폭주로 뒈졌는데 걜 그냥 냅둬? 무슨 능력인지도 모르는 애를. 검사해 봤는데 낌새도 없어. 사람 많은 데 갖다 집어넣어 뒀다가 혹시라도 트라우마 도져서 능력이 쾅, 터지면 어떡하나. 상부에서 걱정이 많으셔. 뭐 그렇다고 네 앞에서는 터져도 된다는 뜻으로 널 가이드로 배정했다는 얘긴 아니고…. 그냥 네 파장이 걔하고 딱 맞아서, 어쩔 수 없이.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요, 선생님.”

“그치?”

“지금까지 첫 능력 개화할 때 센터 날려먹거나 사람 죽을 정도로 위험했던 센티넬이 어디 있다고.”

“…….”

“전 그런 걱정 안 해요.”

 

 

3년 일하면서 본 적도 없네. 암튼 선생님, 저 갈게요. 허구한 날 돈 써 가면서 자몽만 드시지 말고 검은콩 두유 사다드린 거 좀 드세요. 윤정한이 방긋 웃으며 랩실 문을 열었다.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다. 귀를 후비적 판 정한이 문을 발로 밀어 닫았다. 8-3. 8-3. 홍지수야. 높은 데도 산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면 1층에 가 있는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올라왔다.

 

 

 

 

-

 

 

 

 

Palms rise to the universe

As we moonshine and molly

Feel the warmth, we'll never die

We're like diamonds in the sky

You're a shooting star I see

A vision of ecstasy

When you hold me, I'm alive

We're like diamonds in the sky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는다. 8층으로 가기 전 윤정한은 제 방을 정리했다. 센티넬과 매칭된 가이드는 일정 시간 이상 센티넬의 방에 머물러야 했다. 각인이며 감정의 공유 같은 옛 관습들을 없앤다는 센터의 대대적 방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규칙이었다. 센티넬과 관련된 것들은 대체로 그랬다. 올바른 것 하나 없이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MP3 플레이어를 꾹 눌러 음악을 끈 윤정한이 싱크대에 던져 둔 오트밀 그릇을 바라보았다. 장 보는 게 귀찮아서 나가질 않았더니 오곡코코볼이 바닥나 맛대가리 없는 오트밀만 씹은 게 꼬박 일주일이었다. 8층에는 코코볼 있으려나. 아님 오레오 오즈도 괜찮은데. 시리얼 종류를 하나하나 따져 생각하던 윤정한이 캐리어에 티셔츠 몇 개를 던져 넣었다. 윤정한은 연구소에서 제공한 풀옵션 집에 몸만 들여놓은 케이스였으므로 이 집에 윤정한의 물건이라고는 옷가지 몇 개와 며칠 전 마트에서 사 온 컵 몇 개가 다였다. 이 연구소에 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캐리어의 문짝을 닫은 윤정한이 소파에 널브러졌다. 오케이구글 티비 틀어줘. 중얼거리면 AI 기기가 번쩍이더니 KIS 4번 채널이 켜졌다.

 

 

우리의 친구

우리의 영웅 센티넬

 

 

자폭 테러 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센티넬을 불신한다. 괴물 새끼들이 우리를 지켜줘 봤자 얼마나 지키겠느냐는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중론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대한민국에서 무려 십오 년 전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그랬다. 그들에게 한 시간에 한 번씩 방송하는 진정성 없는 문구는 드라마 시청에 방해되는 소음공해일 뿐이다. 새까만 화면에서 누군가 외우듯 방송되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정한이 머리를 헤집었다. 까만 화면이 사라지면 매일같이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토론 방송이 송출되었다. 외교부와 국방부에서 사람 한 명씩을 내보내 진행하는 토론의 탈을 쓴 안보 방송이었다. KIS 안보 방송에서는 종종 센티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진 센티넬이 그때 그 사건처럼 폭주한다면…….

 

이러니 센티넬에 대한 인식 재고 프로젝트가 내놓는 족족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폭 테러 사건의 전후사정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 센티넬이 연구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고, 가이드와 어떤 감정을 교감하였으며, 센티넬이 폭주할 때 연구소에서는 어떤 대응을 하고 있었는가 따위의 이야기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솔직히, 이해했다. 얽히고설킨 정치 이야기보단 눈앞에 다가온 살인이 더 생경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국방부장관의 입을 바라보던 윤정한이 리모컨을 눌러 티비를 껐다. 

 

든 것이 없어 가벼운 캐리어를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나마 있던 짐 몇 개도 다 빠진 집이 이상하리만치 황량했다. 어차피 저녁에 다시 돌아올 텐데. 굳이 열쇠로 문을 잠갔다. 엘리베이터 상승 버튼을 눌렀다. 3층. 8층. 안내음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울려퍼졌다. 높은 데도 산다.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는 8층짜리 건물이었다. 펜트하우스 사는 센티넬은 처음인데. 매칭된 센티넬이 있어본 적도 없는 주제에 괜히 중얼거린다. 8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

 

 

 

 

솔직히 말하면, 검사받을 생각은 없었다고 홍지수는 말했다.

 

센티넬 발현의 고유 증상이라는 고열과 두통도 없었고, 가족 중에 센티넬이나 가이드로 발현한 사람도 없었다. 센티넬 인자는 99%의 확률로 유전이다. 홍지수가 아는 한 제 가족 중에는 센티넬이 없었고, 미등록센티넬도 없었다. 그럼에도 홍지수가 연구소에 제 발로 찾아들어가 검사를 받았던 것은,

 

반쯤은 로맨틱하고 반쯤은 호러틱한 이유에서였다. 가이드고 센티넬이고 어쨌든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 시체가 있으면 그거라도 보고 싶었고, 정말 시체가 남아 있다면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 것인지 홍지수 본인도 명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일단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얼어 죽었다고 했다. 배정된 방 안에서 센티넬과 손을 꼭 붙잡고 얼어붙었다고 했다. 홍지수가 기억하기론, 그는 추위를 많이 탔다. 사랑하는 사람이 네 심장을 얼려 죽일 때, 기분이 어땠을까. 발끝부터 꽁꽁 얼어가고 있을 때 조금은 후회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긴 했지만 슬프진 않았다. 따져 보자면 그렇게까지 절절한 사랑은 아니었으니 다 허상일 뿐이다.

 

 

센티넬입니다. 증상이 없는데 잘 찾아오셨네요. 능력 개화할 때 꽤 아프거든요. 혼자 견디는 것보단 가이드가 옆에 붙어 있는 게 고통 감소 차원에서나 안전 차원에서나 어느 면에서든 좋죠. 파장 검사해야 하는데 옷 이걸로 갈아입으시고…….

 

 

그래서 센티넬 발현이라는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었을 때 홍지수가 한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도 얼어 죽으려나.

 

 

 

 

 

홍지수는 8층에 짐을 풀고 제 집이라도 되는 것마냥 소파에 드러누운 윤정한에게 물었다.

 

 

 

“나도 얼어 죽어?”

“무슨 소리야?”

“걘 센티넬 손 붙잡고 얼어 죽었는데.”

 

 

나도 그러려나 궁금해서. 소파에 누워 가끔 소리가 지직거리는 고물 MP3나 고치고 있을 생각이었던 윤정한이 고개를 들었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뱉을 말이라기엔 상당히 맥락 없는 말이었으나 홍지수의 얼굴은 퍽 진지해 보였다. 윤정한은 잠시 생각했다. 걔. 걔라는 건 전 애인을 말하는 것이겠고. 그 가이드가 얼어 죽었던가? 

 

 

“네 능력을 봐야지.”

“…….”

“걘 매칭된 센티넬 계열이 그랬으니까 얼어죽었던 거고.”

 

 

너는, 모르지 아직. 엠피쓰리의 액정 부분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대답했다. 사람 많은 데 갖다 넣었다가 혹시라도 자폭하면 어떡하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걱정을 받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순진해 보였다. 유리 테이블 위에 MP3를 올려 둔 정한이 대답했다. 능력이 개화하면 얼어죽을 수 있어. 근데….

 

 

“난 안 죽어.”

“왜?”

“그냥 그런 게 있어.”

“……”

“더 궁금한 거 있어?”

“네 이름.”

 

“너는 내 이름 아는데 나는 모르잖아.”

 

 

윤정한. 멀쩡하게 고친 엠피쓰리 이어폰을 귀에 꽂은 정한이 몸을 일으켰다.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에서 규정한 센티넬과 가이드 간의 최소한의 접촉 시간은 세 시간이었다. 정한이 들고 온 캐리어를 가지런히 소파 옆에 뉘였다. 내일 봐. 열 시에 올게.

 

 

 

 

 

 

3

 

너는 어떻게 그러고 살아?

 

누군가 물으면 윤정한은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왜 그렇게 사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라도 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사는 거냐고 물으면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선택하는 것마다 순탄하게 잘 풀려? 윤정한에겐 언제나 질문이 하나 따라다녔다.

 

원래는 육상을 했었다. 초등학교 체력장에서 50M 단거리 신기록을 찍고 담임의 추천으로 육상부에 들어갔다. 육상부가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고, 육상으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단거리 유망주, 미래의 국가대표 따위의 타이틀을 달고 지역 신문에도 수십 번 났다. 소년체전에 나갈 때마다 꽤 괜찮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었다. 육상 유망주 윤정한이 체교과에 진학한 것은 발목을 다쳐서였다. 육상에 정이 떨어질 무렵, 훈련 도중 오른쪽 발목이 돌아갔다. 수술하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수 있으나 다시 육상 유망주가 되기는 불가능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서 그 김에 육상을 그만뒀다. 그만둔 김에 체교과를 준비했다. 준비한 것도 없던 주제에 덥석 붙었다. 실습을 나갈 무렵 가르치는 것과는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쯤 머리에서 열이 절절 끓었다. 가이드 발현이었다.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사짜 직업을 꺾고 최고연봉 직업 중 하나로 꼽혔다. 국가 통계에 따르면 갓 들어온 연구원은 월 1800을 받았고, 가이드는 월 1000을 받았다. 광화문 센티넬 자폭 사건이 일어난 이후 연구원과 가이드의 연봉이 대폭 올랐다고 했다. 계약서에 싸인하는 윤정한을 보며 담당자는 정한 씨는 운이 참 좋네요, 했다. 국가에서 내려주는 지원금이 500% 증가한 연도에 입사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너는 어떻게 그러고 사냐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지만 왜 그러고 사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다. 운이 좋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마포대교 위에서 일어났던 7중 추돌 사고에서도 다치지 않았고, 싹 다 상향지원한 수시 6개에 최초합으로 붙었다. 윤정한의 삶은 흘러가는 대로 살면 그게 정답이었다.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윤정한은 그냥 그렇게 살았다. 왜 그러고 살아? 이유 따위는 없다. 그게 대답이었다.

 

 

 

 

 

 

 

 

“난 언제쯤 능력이 개화할까?”

“그게 왜 궁금해?”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난 계속 아무것도 안 하니까.”

 

 

 

소파에 등을 기댔던 윤정한이 고개를 들었다. 8층 로비를 꽉 채우고 있는 100인치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 [북한산 화재, 현재 확인된 사망자는 12명으로…….]

 

날아다닌다든가, 혹은 물을 끌어온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상처를 낫게 한다든가. 어쨌든 쓸 만한 능력이 있는 센티넬들은 싹 다 북한산으로 끌려갔다. 아비규환인 현장이 카메라맨의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매칭된 센티넬이 없어 연구소 랩실에 처박혀 티비만 보던 윤정한에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사고가 나고, 센티넬들은 헬기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투입된다. KIS 뉴스국에서 파견된 카메라맨들은 센티넬들의 얼굴을 확대하고, 능력이 뿜어져 나오는 손끝을 확대하고, 앵커는 영웅이라 칭송하고….

 

 

“저런 게 부러워?”

 

 

텔레비전 소리를 쭉 키운 윤정한이 물었다. 홍지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로 뉴스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부럽지. 대강 대답한 지수가 고개를 돌렸다. 잘 빠진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 한참을 깜빡이지 않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너는 그 정도면 눈 안 깜빡이는 게 능력인 거 아니니. 농담을 던졌다. 재난으로 엉망이 된 현장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었다. 

 

 

“부러워하지 마 저런 거.”

 

 

한참을 손만 꼼지락대던 정한이 오랜 정적을 뚫고 입을 열었다. 좋아 보이니. 나는 아니야. 미간을 찌푸린 정한이 말을 이었다. 저러다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어. 사람 구하다가 죽은 센티넬. 신문 한쪽에 문장 하나 뜨고 끝이야. 무기 취급 받다가 사라져. 아무것도 없이.

 

인형하고 다를 게 무언가. KIS 방송국들은 자극적인 연출을 좇았다. 흘러나오는 피와, 반쯤 타들어간 사람을 안고 나오는 센티넬과, 무너져 가는 표정들과 악을 쓰는 사람들을 찍었다. 재앙과 고통과 절망을 방송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 한가운데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너는 얼어 죽을 거라며. 뭐라 입술을 달싹이는 홍지수를 무시하고선 정한이 대답했다. 사람들 구하고 싶어? 물으면 홍지수는 입을 꾹 닫곤 했다. 죽고 싶다는 주제에 정의로운 눈이었다. 왜 그런 눈을 해. 발현되면 죽을 거라며. 그냥 그래버릴 거라며.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연구소로부터 8층에 반쯤 감금된 홍지수는 얼어 죽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건 아닌데, 그래도 걔가 얼어 죽었으니까. 나도 얼어 죽고 싶어. 그런 계열로 개화했으면 좋겠어. 

 

로맨틱하고 절절한 사랑 얘기. 윤정한에겐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를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였다. 걔가 얼어 죽었으니까 나도 얼어 죽고 싶어. 사랑이 죽음보다 위에 있을 수 있는 건가. 다른 누군가와 감화를 시도하고 성공하고 함께 죽음을 선택한 가이드를 사랑할 수 있는 건가. 홍지수는 그렇게까지 사랑했던 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제 3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충분히 책에서 서술하는 사랑의 정의와 꽤 많은 부분 맞닿아 있었다. 윤정한은 경험해본 적도 그러니 이해할 수도 없는 먼 우주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언어를 뱉는 지수의 얼굴이 지나치게 무고하고 지나치게 절절해 보여서 윤정한은 언제나 입을 닫았다. 리모컨을 집어 든 홍지수가 볼륨을 키웠다. <속보> [북한산 화재 관련 실종자 23명으로 늘어….] 

 

 

 

 

 

-

 

 

 

 

 

 

“윤정한이 오랜만이네.”

“그런가요?”

“8층이 잘 맞나 봐.”

 

 

 

프린트한 그래프들을 죽죽 화이트보드에 이어 붙인 박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되게 오랜만인 것 같은데. 의자를 끌어다 앉은 정한이 대답했다. 컴퓨터 앞에서 눈이 시뻘개진 승관이 뒤를 돌았다. 오랜만인 것 같은 게 아니라 형 진짜 오랜만인 거야. 모니터 안에서 윤정한은 알지도 못하는 수치들이 초 단위로 바뀌고 있었다.

 

 

“이건 뭐야?”

“이거?”

“지금 모니터 안에서 돌아가는 거.”

 

 

나 박 선생님한테 잡혀서 랩실 뺑이 칠 때는 못 봤던 건데. 근데 승관아 너는 왜 하라는 교육은 안 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니? 책상 위로 허리를 숙인 정한이 마우스를 잡고 몇 번 딸깍거렸다. CODE CK#34…. 뭔데 이거? 

 

A2. A1 디벨롭 버전인데, 어디를 건드린 건지는 정확하게 설명 못 하겠다. 지금 주변 상황 안 좋잖니. 박 선생님이 눈이 시뻘개진 승관 대신 대답했다. 상부에서 엄청 공들이고 있는 거야. 당장 언제 전쟁 터질지도 모르는데 연구원이 놀고만 있으면 쓰나.

 

아하. 성의 없이 대답한 정한이 목을 덮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탈탈 털었다. A1 디벨롭 버전…. 그치. 끝을 흐려 대화에 끼어든 승관이 화이트보드에 붙은 그래프 종이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형은 그 센티넬이랑 어떤데?

 

 

“홍지수랑?”

“이름 부르면서 지내? 의외네.”

 

 

왜 의왼데. 정한이 머리를 탈탈 털었다. 왜긴 왜야. 형 원래 남한테 정 잘 안 주잖아.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 승관을 빤히 바라보다 괜히 바짓단을 정리했다. 윤정한이 쟤 남한테 정 잘 안 주지. 나랑도 아직 안 친하잖니, 그래서. 책상에서 펜을 돌리던 박정철이 말을 받아 이어 붙였다. 그래서 걘 어때. 폭주할 기미 같은 건 안 보이고?

 

 

“선생님. 그거 물어보려고 부르셨어요?”

“그럼 내가 이제 내 소속도 아닌 가이드를 뭐 하러 부르겠니.”

“그 모니터에 센티넬들 현재 파장 상태랑 감정 상태 다 뜨잖아요.”

“그래. 근데….”

 

“걘 다르잖아.”

 

 

다른 센티넬들이랑.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들어오는 센티넬은 처음이라 상부에서도 예의주시하라고 공문 내려왔고, 안 내려와도 그런 센티넬들 주시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고. 바닥을 바라보던 정한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박 선생이 말했다. 연구소에서 지내는 거 자체가 트라우마 구덩이에서 지내는 거랑 마찬가진데, 능력이 갑자기 개화하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 네가 걔 옆에 없는 사이에 개화해서 폭주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 있냐고. 전쟁통에 개화하기라도 해 봐. 골치 아프지.

 

 

“그래서.””뭐 없어?“

“없어요, 아무것도.”

“정말?”

“개화는 무슨, 8층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걔는 그냥 얼어 죽고 싶대요. 그 말은 목구멍 뒤로 삼켰다. 박 선생에게 곧이곧대로 일러바쳐봤자 어디 문제라도 있는 게 아니냐며 전선들을 덕지덕지 달아 연구소 베드에 눕힐 게 뻔했다. 윤정한은 센티넬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을 경멸했다. 결국 센티넬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유전 인자를 공유하는 것이 가이드였다. 드물게 뉴스에 뜨는 센티넬 혐오 범죄를 볼 때마다 윤정한은 눈을 감았다.

 

 

혐오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생각하다 보면 아침에 먹은 오트밀이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윤정한은 종종 인간 실존에 대한 이유를 생각했고 그 생각의 끝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무성의한 대답에 박 선생은 의자를 돌려 다시 모니터에 코를 박았다. 벽에 붙은 서브모니터들에서 수많은 센티넬들의 파장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길쭉하기도, 어느 순간에는 짧게 그려지기도. 또 어느 순간에는 미친 듯이 진동하다 다시 멈춰버리기도……. 윤정한은 가끔 모니터를 다 부숴 버리는 상상을 한다.

 

 

문득 8층에 멈춰 있을 홍지수를 생각했다. 나가고 싶지 않아? 언젠가 물었을 때, 홍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가둬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능력 개화 안 된 센티넬은 여기서 나밖에 없다는데. 무감한 얼굴로 대답하기만 했다. 대답을 들을 때마다 답답했다. 왜?

 

홍지수는 말을 할 때마다 길게 늘어진 눈꼬리가 접힌다. 도톰하게 있는 애굣살이 눈 모양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신기했다. 고급스럽게 생긴 얼굴로 홍지수는 소멸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개화하면. 능력이 생기면. 꼭 얼음이었으면 좋겠어. 걔는 웃었지만 여전히 얼어 죽고 싶어 했다. 능력이 개화하면 죽고 싶어. 그래서 궁금했다. 왜 나가고 싶지 않은지. 왜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지. 왜 너는 그러지 않는지. 그러니까,

 

뭐가 쟤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왜 정의로운 눈을 하고 죽음을 떠올리는지. 어떤 사랑을 하면 그렇게 절절해지는지. 삶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무감함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너한테 삶은 뭔지. 그러니까 걔는. 그 센티넬은. 홍지수는.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손에 쥐었다.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손을 발견한 승관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형 요새 아래층으로 많이 안 내려와 봤지. 2층에 새로 카페 하나 생겼는데 갈래? 박 선생이 모니터에 고정시킨 눈을 움직일 생각도 없이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

 

 

 

“형은 제발 표정 관리 좀 해.”

“사회성 없어서 그래.”

“그럼 기르려고 노력이라도 좀 하든가.”

“8층에 갖다처박아둔 게 누군데?”

 

 

형 진짜 개어이없는 거 알지. 2층 난간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인 승관이 한탄하듯 내뱉었다. 한 달 넘게 금연하고 있었는데 형이랑 말만 하면 금연은 글러먹었다는 걸 항상 느껴, 내가. 

 

 

“네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 거지.”

“뭐래. 형은 담배 끊을 생각 없어?”

 

 

없어. 난 폐암으로 죽을 거야. 정한이 대답했다. 아이고. 피는 꼴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고.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장난을 치는 윤정한을 바라보던 부승관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표정 관리 좀 잘 해.”

 

“박 선생님이 늙었어도 눈치는 귀신이잖아. 형도 거기서 일 오래 했으면서 왜 그래?”

“으응.”

“형이 그런 종류의 사람 극혐하는 건 아는데.”

 

 

형이 그렇게 분위기 망쳐놓고 가면 괜히 나한테 눈치 준다니까. 형처럼 개욜로로 사는 사람이 직장인의 마음을 알아? 귀찮아 죽겠어. 승관이 진심으로 부탁한다는 눈을 했다. 안 그래도 요새 그 인간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일을 하는 것 같다가도 자꾸 딴 길로 새고, 신약… 개발하다가도 자꾸 이상한 그래프나 보고 있고. 승관이 투덜거렸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정한이 못 이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홍지수, 그분이랑은 어떤데?”

“아까 들었잖아. 별 거 없다고.”

“내가 지금 그런 거 물어봐? 말하는 거 들어 보면 정 꽤나 붙인 것 같은데, 관계가 어떤지 묻는 거지.”

 

 

관계. 관계? 담배를 지져 끄고 새 담배에 불을 붙이던 윤정한이 잠시 생각했다. 관계. 그딴 게 있나. 센티넬과 가이드는 일정 이상의 접촉과 감정 공유가 금지되어 있을뿐더러 홍지수는 능력 개화도 되지 않은 초짜 센티넬이다. 8층은 넓었으나 홍지수는 거의 거실과 부엌만을 오갔다. 자연스레 할 수 있는 대화의 방향은 과거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발현되기 전에는 무얼 하고 지냈는지, 직업은 뭐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홍지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취준생이랬다. 대학교는 미국에서 나왔는데, 경제학 전공이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10년 정도 미국에서 살았다고도 했다. LA에서 두 살 때부터 열여섯 살까지 살았어. 원래 거기서 쭉 살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셔서 한국으로 돌아왔어. 홍지수는 항상 무거운 말을 무겁지 않은 표정으로 했다. 걔는 그런 표정이 더 절망스러워 보인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하겠네, 물으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티비에서 하는 정치 시사 프로그램이나 획일된 예능 프로그램을 꾸역꾸역 보다 지칠 무렵이면 홍지수는 가끔 산타모니카 해변의 이야기를 했다. 산타모니카 해변. 다운타운에서 720번, 20번, 4번 버스를 이용하면 갈 수 있다고 네이버사전에 적혀 있었다. 산타모니카 해변에 가면, 일몰이 잘 보이는 씨푸드집이 있어. 거기 가면 새우 볶음밥을 시켜 먹었어. 분명히 눈으로만 보면 빨간색이 아무것도 없는데 입에 넣으면 괜히 매운 그런 거 있지. 그 볶음밥이 딱 그랬거든.

 

그리고 있잖아. 부두에서 좀 걸어가면 유원지가 있어. 거기서 맨날 달렸어. 달리면 엄청 기분이 좋거든. 그 얘기를 할 때마다 홍지수는 웃었다. 눈이 둥글게 접히고, 애굣살이 따라 올라갔다. 행복했어? 물으면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제 지문으로는 열리지 않는 8층 엘리베이터 문 안에서 웃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이러지도 않았을 텐데. 지금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근데 웃었다. 지금은 행복하니? 차마 그걸 물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윤정한은 가끔 심장이 아렸다. 

 

 

 

 

 

“웃었으면 좋겠어.”

“…….”

“관계는 잘 모르겠고.”

 

 

웃을 때 눈이 예쁘거든. 너는 본 적 없겠지만.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벽에 지지고선 손을 탁탁 털었다. 벽에 새까맣게 담배 자국이 남았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부승관이 보였다. 뭐. 왜 그러는데. 너 지금 표정 개못생겼어. 옷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신경 쓰던 정한이 입을 열었다.

 

 

“신기해서.”

“뭐가 신기하세요, 부승관 연구원님.”

“웃었으면 좋겠다면서.”

 

“형 지금 표정이 어떤지 알아?”

 

 

지수 씨가 불쌍해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야. 유리문을 밀어 열며 승관이 말했다. 정한이 손을 탁탁 털었다. 

 

 

맞지, 불쌍하지. 불쌍해서 뭐라도 죽여주고 싶지. 윤정한은 생각한다. 정한의 오랜 꿈은 퇴사였다. 연구소를 개박살내고, 박정철 방에 붙어 있는 그래프들을 다 찢어발길 것이다. 문득 생각한다. 연구소를 개박살내고 퇴사하는 날이 온다면 걔를 데리고 도망갈 거다.

 

 

 

 

 

4

 

삐이이, 사이렌이 울리고 윤정한은 눈을 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지수가 비상벨 음량을 죽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홍지수는 8층 소파에서 잤고 윤정한은 그 옆 간이침대에서 잤다. 윤정한은 새벽마다 가이딩 목적이라며 소파 위로 기어올라갔다. 능력이 개화하지 않은 센티넬에게 하는 가이딩은 금지되어 있었고 또 동시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8층에는 CCTV가 없었다. 정한아 미쳤니, 따위의 말로 응수하던 지수도 굳이 밀어내진 않았다. 손 잡고 자면 개화가 더 빨리 되지 않을까? 안으면 파장이 좀 더 안정되지 않을까? 이유들을 굳이 갖다 붙이며 몸을 붙여오면 홍지수는 가만히 웃었다. 

 

 

있잖아.

응.

웃어 봐.

 

 

왜? 지수가 물으면 정한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지수의 입꼬리에 가져다댔다. 쭈욱, 손가락에 힘을 주고 밀어올리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간지러워. 입꼬리가 올라가면 동시에 눈이 둥글게 접힌다. 윤정한은 그 눈꼬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홍지수는 윤정한 앞에서 자주 웃어 줬다.

 

그냥 이렇게 누워서 너랑 있고 싶어. 윤정한은 종종 그렇게 말했고 홍지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윤정한은 홍지수의 손을 잡았다. 또 언젠가는 감기에 걸린 홍지수의 이마를 만지고 입술을 갖다 댔다. 뜨거운 이마를 만지면서 속상해했다. 다정하게 굴었다. 또 가끔은 걔를 안았고 웃어 보라고 말했고 가슴을 만졌고 가끔은…. 

 

 

눈동자는 절절했던 주제에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너 나 좋아해? 물으면 아니라고 말했다. 이거 가이딩이지 정한아.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동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누굴 동정하고 누가 누굴 연민하나. 불쌍해서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뭐라도 죽여 주고 싶었다. 윤정한은 콘돔을 묶어 버리면서 가이딩을 했다. 과도한 신체 접촉 금지 명령도 감정 공유 금지 명령도 다 싸그리 어긴 야매 가이딩이었다. 소파에 누워 길게 뻗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려도 이게 파장 안정에 도움이 되긴 하는 건지, 개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윤정한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런 주제에 윤정한은 굳이 가이딩이라고 덧붙였다. 홍지수는 누구도 속지 않을 거짓말에 굳이 속아 줬다. 문득 눈을 깜빡인다. 사이렌 소리가 터질 듯이 울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너 깨기 전에 끄려고 했는데. 언제 씻었는지 말끔한 낯을 한 지수가 말랑하게 웃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응. 산책 좀 하려고.”

“산책?”

“어제 인터폰이 와서 받았는데, 이제 연구소 내부는 돌아다녀도 된대.”

 

 

 

지금? 눈을 비비며 정한이 물었다. 뉴스에 맨날 나오잖아. 센티넬이 부족한가 봐. 얼른 능력이 개화했으면 좋겠는 거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수가 대답했다. 새로운 걸 보면 능력 개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래. 홍지수가 눈을 접어 웃는다. 8층 밖은 처음이라 오래오래 돌아다녀 보려고. 아주 오랫동안.

 

 

 

 

 

8-3구역 밖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박정철의 연구실에 갔을 때 들었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뉴스를 틀면 하루가 멀다 하고 폭격 사건이 보도되었다. 저번 주에는 부산이었고 이번 주에는 인천이었다. 국가에서 센티넬을 보내 불규칙적으로 실시하는 보안 목적의 주둔이 끝난 곳에서만 테러가 일어났다. 폭탄을 실은 비행기가 항구 근처에 떨어졌다. 바닷속에서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근방 30KM 이내의 땅에 진도 4.5의 지진이 일었다. 인천국제여객터미널이 반쯤 박살났고 영도 크루즈터미널이 폐쇄되었다. 민간인 열한 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연구소 안에 삑삑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센티넬들은 출동을 했다. 연구소 내에서 사이렌 소리는 사망 선고와 같은 맥락으로 취급되었다.

 

 

 

 

 

폭탄은 터지고 사람은 죽는다. 상하이와 도쿄에 거점을 둔 반정부단체 NSK는 일주일에 한 군데씩 폭탄을 터트렸다. 국가는 중국과 일본에 협력 요청을 보냈으나 NSK가 소수의 인원으로 쪼개져 움직이는 탓에 거점을 찾기 곤란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반정부단체 NSK의 요구는 명확하다. ‘썩은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간 크게 청와대를 해킹해 서버에 대문짝만하게 박아 둔 문장은 채 하루도 안 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허황되어 보였던 문장은 폭탄이 터지고부터 현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센티넬의 전투수행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주장하기도 했다. 국방에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 센티넬을 처분하라. 세상을 무너뜨리겠다며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NSK였으나 사람들의 혐오는 센티넬에게로 향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센티넬로 처음 발현되고 나면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에서 꼬박 삼 일을 들여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있다. 윤정한도 매칭된 센티넬이 없어 반백수 상태로 털레털레 연구소 지리를 익히던 입사 첫 해 무렵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사방이 새하얀 방 안에서 선글라스에 양복을 입은 남자는 연설하고 있었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위험에 빠진 국민을 돕고, 나라를 더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겁니다. 단지 특별한 유전자를 타고났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십오 년 전의 광화문 자폭 테러 사건을 잊지 못했다. 모든 게 아이러니였다. 센티넬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만, 사람이었던 자들은 센티넬이 되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센티넬에게서 가족을 잃은 자들은 센티넬을 처분하기 위해 폭탄을 터트리지만, 누군가의 가족은 그 폭탄에 휘말려 죽었을 것이다. 센티넬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인간이라 불러 주지 않는다. 센티넬을 외면한 인간을 센티넬이 구하는, 괴상하고 기묘하게 얽히고설킨 철학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따져보자면 아득했다.

 

 

 

 

-

 

 

 

 

-형. 

“왜. 바쁜데.”

-있잖아.

“왜 전화했는데?”

 

 

8층 난간에 기대 서 줄담배를 피면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연구실 유선 번호였다. 홍지수가 8층 밖으로 나간 지 꼬박 사흘이 되던 날이었다. 난간 밖으로 새까만 테크웨어를 입은 남자들이 줄지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윤정한은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센티넬들은 버스에 올라타고, 그 뒤를 연구원들이 주욱 받치고 있었다. 윤정한은 저 중에 몇 명이나 살아 돌아올지에 대해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는 다섯 명이 죽었고 삼 일 전에는 여덟 명이 죽었으며 어제는 열세 명이 죽었다.

 

 

-잠깐 내려올 수 있어?

“어디, 연구실로? 박 선생님이 부르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뭔데? 담배나 뻑뻑 피던 윤정한이 물었다. 8층은 혼자 쓰기에 지나치게 넓어서 말이 웅웅 울렸다. 핸드폰 너머가 잠시 정적이었다. 정한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국립센티넬관리소 버스의 뒤꽁무니를 눈으로 쫓았다. 버스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뭐냐고. 정한이 재촉했다. 머릿속으론 살아 올 이들의 머릿수를 상상했다. 죽음이 도처에 널리기 시작했다. 연구소 1층에서는 단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일이 너무 많네. 

 

 

연구실에서 일해 본 사람 중에 내가 아는 건 형밖에 없어서 그래. 승관이 대답했다. 동시에 유선 전화기의 선을 만지작거렸다. 연구실 내에 비치된 모든 전화기는 녹음이 되고, 관리직 이상의 연구원들이 열람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부승관 너 허튼소리 하지 마. 떠나기 전 박 선생님은 당부했다. 부승관은 잔정이 많은 타입이었다. 연구소 바깥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하나를 그냥 못 지나쳐 손에 긁힌 상처를 달고 살았다. 승관이 연구실 티비 위에서 꿀렁거리는 그래프를 바라보다 리모컨으로 화면을 껐다. 박정철 연구원은 어제 짐을 싸서 연구실을 나갔다. 그는 인천으로 갔다. 인천에는 왜 가세요?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 줘야 하지. 전화기 너머로 빵빵거리는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국립센티넬인자연구소에 가이드인지 연구원인지도 모호한 존재와 이름으로 5년을 처박혀있는 동안 부승관은 윤정한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월급을 날로 받아간다며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싸가지 없는 가이드들과도 달랐고, 인간과 센티넬을 구별짓는 개꼰대들도 아니었다. 

 

연구실에는 연구소에 등록된 모든 센티넬의 신체 파장과 감정 파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박 선생님은 A2 개발 실험 내내 파장 모니터링을 부승관에게 맡겼다. 부승관은 박 선생님에게 근 얼마간의 ‘센티넬 홍지수’ 신체-감정 파장 변동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파장이 매일같이 널뛰기를 했음에도 그랬다. 그것은 각인 이후 폭주해서 가이드와 함께 죽어버린 센티넬의 죽음 직전 파장과 유사한 형태였다. 둘이 무슨 사이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승관은 문득 지수를 걱정하던 정한의 얼굴을 떠올렸다. 숨겨 주면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는지는 아시죠?

……

센티넬과 가이드 간의 과도한 감정 공유 금지.

 

 

 

아시잖아요, 홍지수 센티넬. 박정철이 눈을 번득인다. 이상한 표정이었다. 파장이 이렇게까지 널뛰는데 어떻게 숨길 생각이었어요? 국가적으로 내려온 통제 사안입니다. 반국가적 행위로 당장 처벌받을 수도 있는 행위라고요, 이거. 손가락에 낀 볼펜을 데굴데굴 굴리는 박 선생님의 표정을 지켜보던 승관이 숨을 삼켰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박정철이 웃었다. 윤정한 좋아해요? 둘이 잤어요?

 

 

 

“…….”

“아니면 뭐, 사귀기라도 하나?”

“…….”

 

 

 

재밌네. 애인이 센티넬이랑 바람나서 죽었다기에 설마 설마 했는데. 사람 일은 몰라. 그렇지 않나 부승관이? 박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 네? 아, 네네. 사람 일은… 모르죠. 입술을 깨물고 있던 승관이 당황한 낯을 숨기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사람 면전에 대고 못 할 소리가 없었다. 하하, 박정철이 웃었다. 이 일, 그냥 넘어갈 정도로 단순한 사안은 아닙니다. 본인도 알고 있으니까 입 꾹 다물고 앉아 있는 거겠지만. 

 

국가센티넬관리위원회에 제소하면 처벌 면하기 어려울 거예요. 지수 씨 뿐만이 아니라 윤정한이, 걔도 마찬가지지. 가이드잖아. 센티넬 폭주로 죽어간 민간인들이 워낙 많아서. 박 선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변수를 없애려고 윤정한을 붙인 건데, 걔가 이럴 줄은 몰랐네. 걔도 제 인생을 꼬는 재주가 있어요. 안 그래요? 순간 내내 표정이 없던 홍지수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손을 모으고 뒤에 서 있던 승관이 꿀꺽, 침을 삼켰다. 

 

 

“뭘 원하세요?”

“…….”

“문제 삼으시려면 진작 삼으셨을 것 같아서요. 이 난리통에 부르신 이유가 뭔지 여쭤보는 거예요.”

 

 

아하하. 박 선생은 웃었다. 말이 잘 통해서 편하네. 뒤에서 부승관이 손가락을 덜덜 떨었다. 

 

 

전쟁에 나가요.

…….

개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A1의 디벨롭 버전인 A2는 센티넬의 능력 개화를 촉진시키는 약이다. 세상에 발표한다면 센티넬의 인권과 사람들의 안전이라는 주제를 들고 수많은 인권단체들과 수많은 정권 인사들이 반발할 문제였다. 그러나 박정철 연구원은 연구실에 처박혀 내내 A2 연구를 했다. 센티넬은 국가를 위한 무기 같은 거였다. 일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 같은 거였다. 그는 약을 완성시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부승관아.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니. 그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약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수적이었다. 센티넬을 인간 취급하는 인간은 없다지만 법적으로 센티넬은 인간이다. 약물을 어떻게 인간에게 실험할 수 있는가. 박 선생은 그 사실에 화를 냈다. A2는 완벽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완벽을 증명하려면 약물을 실험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연구실 소속의 연구원 부승관은 센티넬 홍지수의 신체-감정 파장 그래프를 숨기는 데 실패했다. 

 

윤정한에게 A2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눈치 빠른 그 인간이 뭐라도 눈치를 채게 했어야 한다. 부승관은 그걸 말하지 못했던 과거를 잠시 후회했다. 그래, 도와주러 갈게. 전화기 선 너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는 윤정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승관이 눈을 감았다. 연구실 내에 비치된 모든 전화기는 녹음되고 열람할 수 있다. 

 

 

“아냐 형. 오지 마.”

-…….

“방 밖으로 나왔어?”

 

“1층으로 내려가서 택시 잡아. 그리고 인천으로 가.”

 

 

홍지수 씨 거기 있으니까. 침묵을 뚫고 말을 뱉으면 부스럭거리던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멈췄다. 허튼소리를 기어이 뱉은 승관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연구실 CCTV에서 빨간 불빛이 빠르게 번쩍거렸다. 박 선생이 부승관을 관리할 제 사람 따위를 심어놓지 않고 갔을 리가 없었다. 연구실 CCTV는 사람이 들어오면 불빛은 번쩍거렸다. 부승관 너 허튼소리 하지 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필시 도청 중이었을 것이다. 연구원이 허가하지 않은 센티넬의 상태를 가이드에게 알리는 것은 불법이었다. 도청하려면 하고 징계를 먹이려면 먹이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승관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A2는 능력을 개화시키는 약이야.“

-…….

“홍지수 센티넬은 그거 맞고 인천으로 갔어.”

 

 

전쟁에 나갔다는 뜻이야. 잠가 둔 연구소 문이 덜걱거린다. 부승관 연구원님. 낮게 긁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부승관은 정의를 위해 일했다. 박 선생이 과소평가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었다. 센티넬과 가이드, 그리고 인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유전 인자를 연구하는 부승관은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누구는 인간이 아니고 누구는 인간이 되는 게 그렇게 쉽게 결정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그런 걸 다 제쳐 두더라도 부승관은 정이 많았다.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이 망가지는 꼴을 보기 싫었다. 홍지수가 전쟁에 나간다고 해도 인천에서 돌아온 박 선생이 윤정한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박 선생은 이상하게 NSK의 일에 예민했다. 반정부단체 NSK의 테러는 시간이 갈수록 국가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여러 명의 센티넬이 죽었다. 홍지수 또한 살아 돌아올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부승관은 박 선생 앞에 앉아 있던 홍지수의 표정을 생각했다. 내내 표정이 없던 사람이 윤정한 이름 석 자에 당황했다. 뭘 원하냐고 묻던 담담한 목소리를 생각했다. 부승관은 정이 많아서 항상 무언가를 안타까워하는 일이 잦았다.

 

전화기 선 너머로 아무 말도 없었다. CCTV 화면을 바라본 승관이 하하, 웃었다. 하얀 옷을 입은 연구원 하나가 문고리를 미친 듯이 돌리고 있었다. 끼릭끼릭,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화기 선 너머로는 대답 대신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구실 짐을 뺄 때가 됐다. 승관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끼익거리는 타이어 소리가 들릴 무렵 찰칵, 문고리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승관 연구원님.

 

뭘 어떡할 거야. 걸릴 게 많은 박 선생은 제 권한을 넘어선 징계를 내릴 수 없다. 그래도 연구실에서 짐은 빼야 될 것이다. 아마 직장을 떠나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승관의 어깨를 붙잡았다. 데려갈 데도 없으면서, 괜히 가오 잡지 마세요. 승관이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연구실 바깥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 인천항 폭파, 반정부단체 NSK의 소행으로 밝혀져….] 멀리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어 죽겠다고 했지 전쟁에 나가서 죽겠다고는 한 적 없었잖아.

 

택시가 빠르게 달린다. 시속 80KM 제한 도로에서 택시의 계기판이 120KM를 찍었다. 정부는 반정부단체 NSK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인천 전역이 폐쇄되었다. 무기를 실은 탱크와 군인과 센티넬을 실은 군용 트럭만이 인천으로 향했다. 출입이 금지된 땅으로 들어가는 택시가 덜컹거렸다. 안까지는 못 들어갑니다. 불안한 얼굴을 한 택시기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급하게 짐을 빼 피난 간 티가 역력하게 나는 건물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택시는 깨진 유리와 부서진 건물들의 잔해를 밟고 달리고 있었다. 주머니를 뒤진 정한이 지폐 뭉텅이를 꺼내들었다.

 

 

연구소 1층에서는 합동 장례식을 준비했다. 죽은 센티넬들의 시체는 연구소로 보내져 피와 신체 조직을 조금 떼어낸 후 1층으로 보내졌다. 8층까지 향 냄새가 올라왔다. 센티넬의 유가족들은 보안 목적이라는 이유로 연구소에 출입하지도 못했다. 1층에 들어갔던 시신은 빠르게 뼛가루가 되어 바깥으로 나왔다. 뼛가루가 나오고 계속해서 시신이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죽는데 울음은 없었다. 애도의 눈물도 고인을 향한 추모도 없는 장례식장에서는 여전히 향 냄새가 났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씨알도 안 먹힐 불법 가이딩을 하면서 윤정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능력이 평생 개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어 죽고 싶다고 말했던 홍지수는 자꾸 뉴스를 봤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불이 나는 현장을 자꾸만 바라보았다. 재난과 테러로 엉망이 된 땅을 자꾸 쳐다보았다. 나가고 싶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었다. 걔는 자꾸 정의로우려고 했다. 능력이 개화하면 그 어떤 선택지도 죽음이라 윤정한은 그 정의로운 성정이 눈물 나도록 싫었다.

 

택시 문이 열렸다. 인천항이 폭파되었다. 송도역이 부서졌다. 인천공항에는 제트기와 공군들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진을 쳤다. 택시는 허리가 잘린 빌딩 앞에 멈췄다. 뿌연 먼지로 하늘이 뒤덮여 있었다. 택시는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버려진 빌딩 앞에 멈춰 선 택시가 윤정한을 남겨 두고 출발했다. 버려진 빌딩 안 아직 꺼지지 않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보> 국방부, 인천에 센티넬 30명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혀….]

 

탕,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 발걸음마다 먼지가 피어오른다. 부서진 유리조각들이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낭자했다. 폭탄을 소지한 NSK 소속 조직원 다섯이 인천에 아직 남아 있다는 소식을 입수한 군은 그들의 생포가 힘들다면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인천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도시가 아니었다. 황량한 땅에 철골들만 얼기설기 서 있었다. 꼭 디스토피아 영화 같은 꼴이었다. 엉망이 된 채로 죽어버린 도시 저 멀리에서는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났다. 부서진 도시를 밟으며 걸음을 옮기면 저 멀리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윤정한이 바리케이드를 향해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뛰면 뛸수록 피 냄새가 가까워졌다.

 

 

“여기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다. 멀쩡한 몰골의 윤정한이 바리케이드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본 군인 하나가 총으로 정한을 제지했다. 걸음을 옮기면 저 멀리서 무전기를 들고 있던 군인 둘이 다가와 총구로 정한을 툭툭 쳤다.

 

 

“민간인 출입 금지라니까요.”

“……”

“인천 폐쇄입니다. NKS가….”

 

 

군인 셋이 윤정한을 감싸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군인의 말허리를 끊고 윤정한이 자켓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방비한 태세로 서 있던 군인들이 빠르게 자세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윤정한이 안주머니에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철컥, 총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손 들어, 허튼 짓 하지 말고. 너 뭐야. NSK야?

 

 

“가이드입니다.”

“…….”

“상부 명령으로 왔습니다.”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경계 태세를 풀지 않은 채로 신분증을 확인하던 군인들이 천천히 총을 아래로 내렸다. 윤정한. 국립센티넬관리연구소 소속 가이드. 폭탄을 소지한 테러범 다섯이 있는 땅에 단순한 고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윤정한이 자연스럽게 박 선생의 이름을 팔았다. 박정철 선생님 아시죠. 국립센티넬관리연구소 박 선생님이요. 마음이 급했다. 폭탄은 터지고 사람은 죽어나갔다. 저 멀리서 자꾸 터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자꾸 죽음의 냄새가 났다. 가이드의 본능이라면 본능이었다. 군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을 감싼 검은 마스크 안에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홍지수는 검증되지도 않은 약을 맞았다. 그 생각을 하면 자꾸 숨이 찼다.

 

 

“안쪽으로 쭉 직진하십시오.”

 

“연구소 박 선생님은 정책실에 계십니다.”

 

 

바리케이드 안으로 발을 옮긴다. 센티넬 문제에서 연구소는 적당한 권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연구소 박 선생님은 정책실에 계십니다. 말소리가 울렸다. 그 새끼도 여기 왔구나. 윤정한은 감히 욕을 뱉었다. 왜 왔지. 생각하면 이유를 몰랐다. 시야 양 옆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늘어졌다. 깊게 패인 땅을 밟고 군인들 몇몇이 서 있었다. 주변이 숨죽인 듯 고요했다. 부서진 군용 트럭이 보였다.

 

군인 하나가 윤정한의 뒤로 따라붙었다. 불청객에게 내어 줄 군용 트럭은 모두 인천공항에 가 있었다. 반쯤 부서진 공항에 제트기가 진을 치고 있다고 했다. 뚜벅뚜벅, 군복을 입은 남자의 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홍지수는 죽었을까.

 

걸음을 옮기다 문득 생각했다. 죽었을까. 군의 작전명은 쥐 소탕이었다. 무너진 항구 쪽으로 NSK를 몰아넣겠다고 했다. 아직 바다가 멀었다. 짠 내음보다는 먼지 냄새가 가득한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윤정한이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정책실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 두두두두, 소리가 들리면 머리 위에서 헬기가 날아갔다. 멸망한 도시에 딱 어울리는 소리였다. 

 

이럴 거면 야매 가이딩이 아니라 확 각인이라도 해 둘 걸. 정한은 생각한다. 섹스할 때마다 뒷목을 물고 싶었다. 투명한 피부를 깨물고 싶었다. 잇자국을 남기고 감정 파장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나 헬기는 날아가고 폭탄은 터진다. 사람은 죽어나가고 센티넬은 전쟁에 차출된다. 홍지수의 능력이 무엇인지, 애초에 개화는 했는지. 폭주는 하지 않았는지. 윤정한은 가이드인 주제에 아무것도 몰랐다. 

 

 

 

정책실은 비어버린 단층 상가를 개조해 만들었다고 했다. 피아노 학원이며 미용실이 위치해 있었을 상가는 벽이 반쯤 무너진 채로 정책실 팻말 하나만을 달고 있었다. 회백색 벽에 깊게 금이 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상가 화장실에서는 물이 새 바닥이 질퍽거렸다. 정한을 뒤따라오던 군인이 메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더니 상가를 경호하던 군인 대열에 합류했다. 뿌옇게 이는 먼지 사이로 말소리가 들렸다. 정한이 걸음을 옮겼다. 문손잡이를 돌리면 낡은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박 선생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윤정한.”

 

“왔니?”

 

 

알면서 묻는 꼴이 좆같았다. 손에 펜을 들고 데굴데굴 굴리던 박 선생이 가만히 서 있는 윤정한의 몰골을 훑었다.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군복이라도 입혀 줘야 할 것 같네. 그가 덧붙였다. 박 선생은 연구실과 다름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서류들을 들고 박 선생이 펜을 굴렸다. 센티넬들이 참 많지? 정부가 참 대단해. 반정부단체 하나 잡자고 몇 명이 죽어나간 건지. 시선을 뒤로 돌렸다. 테이블 뒤로 빔프로젝터가 벽에 화면을 쏘고 있었다.

 

 

“정한아. 사랑 놀음은 재미있었어?”

 

 

벽에 사람 얼굴이 가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센티넬의 얼굴이었다. 얼마 전 합동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을 올렸던 얼굴들이 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빼곡한 증명사진들 위에 시뻘건 글자들이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경상. 중상. 실종. 사망. 그런 것들. 시뻘건 색으로 얼굴 위에 엑스 자가 그려진 센티넬들이 절반이었다. 저들이 모두 죽었다는 건가. 문득 바리케이드를 넘어올 때 났던 피 냄새와 지독한 죽음 냄새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홍지수는. 홍지수의 얼굴을 찾으려 눈알이 바쁘게 돌아갔다.

 

사랑 놀음은 재미있었어? 박 선생의 목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화면에 홍지수의 얼굴은 없었다. 사랑 놀음. 이게 사랑 놀음이었나. 윤정한은 홍지수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뭐라도 죽여 주고 싶었다. 만지고 싶었다. 뒷목을 깨물고 싶었다. 투명한 피부에 이를 박아넣고 싶었다. 각인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윤정한은 아무도 속지 않을 거짓말로 홍지수를 속이느라 정작 그게 사랑이라고 정의내리지도 못했다.

 

 

“재미있었던 모양이네.”

“…….”

“사랑이 참, 그래.”

 

“본인도 벅찬 주제에 다들 자꾸 누굴 지키겠다고.”

 

 

박 선생이 말을 이었다. 발을 딛고 선 바닥이 순간 흔들렸다. 윤정한이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박 선생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머릿속에서 가만히 웃던 홍지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던.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웃던. 누구보다 죽고 싶어 하면서 누구보다 정의롭던 얼굴. 자꾸 그 얼굴이 조각난 채로 윤정한의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헝클어댔다. 

 

본인도 벅찼던 주제에.

 

삶이 좆같았다. 가이드는 인간과 결을 같이하면서 동시에 센티넬과도 결을 같이한다. 센티넬의 유전 인자는 가이드의 몸속에도 똑같이 있었다.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는 인간이고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게 되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래서 윤정한은 종종 인간인 척을 하면서 살았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그런 게 정해져 있긴 한 건가. 그것은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윤정한의 그림자를 짙게 칠했던 문장이었다. 윤정한은 삶이 좆같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숨이 좆같았다. 그래서 인간이지도 괴물이지도 않은 삶을 가만히 영위하면서도 죽음을 말하던 홍지수를 생각했다. 동시에 정의로웠던 얼굴을 생각했다. 땅을 밟고 선 다리가 벌벌 떨렸다.

 

 

“저 때문에 간 거예요?”

 

 

전쟁에? 정한이 되물었다. 규칙적으로 느껴지던 진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박 선생이 앉아 있는 나무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벽에 비친 화면이 흔들렸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이 좌우로 진동하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음에 정한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지진이었다. 박 선생은 이상하게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되물었다. 전쟁에 나간 거 말이니?

 

 

“진짜 사랑이라도 했던 얼굴이네.”

“…….”

“죄책감 가지지 마.”

 

 

걘 네가 아니었어도 전쟁에 나갔을 거니까. 미친 듯이 흔들리는 의자 위에서 박 선생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묻기도 전에 윤정한은 이상함을 직감했다. 진동이 점점 심해졌다. 궤도를 잃고 추락하는 비행기마냥 땅이 규칙 없이 진동했다. 벽에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문 너머에서 군인들이 문을 쾅쾅 두드렸다. 박 선생님!

 

 

“윤정한이.”

“…….”

“정한아.”

 

 

폭격입니다! 주변이 온통 혼돈이었다. 열리지 않는 문이 부서질 듯 진동한다. 땅이 흔들린다. 박 선생이 입을 열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꼭 행복해하는 얼굴이었다. 정한이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내가 널 참 아꼈던 건 알지.

 

 

“너는 아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세상을 바꿀 거란다.”

“…….”

“그래서 센티넬이 필요해.”

 

“센티넬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니까.”

 

 

그리고 이 세상은 새로 태어날 거야…. 말꼬리를 흐리며 그는 웃었다. 

 

테러가 왜 센티넬의 주둔이 끝난 곳에서만 이루어졌는가. 처음부터 그것을 생각해야 했다. 상부는 왜 NSK가 내부에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하였을까. 상부는 왜 연구소 내부를 조사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그러니까 왜. 

 

반정부단체 하나 잡자고 몇 명이 죽어나간 건지. 말을 뱉던 박 선생의 얼굴은 어땠나. 죽어가는 센티넬들을 화장하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나. 언제부터. 대체 어디서부터. 윤정한이 뒤돌아섰다. 손으로 문고리를 돌리면 나무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쾅!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폭격입니다. 다섯 명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선생, 문득 소리 지르던 군인들의 목소리가 퓨즈 끊기듯이 픽 끊겼다. 등 뒤에서 박 선생이 노트북을 부수고 있었다.

 

 

센티넬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니까. 그리고 이 세상은 새로 태어날 거야.

 

 

열리지 않는 나무문 앞에서 윤정한은 그 말을 곱씹었다. 박 선생은 흔들리는 의자 위에 다시 주저앉았다. 정한아. 나는 세상을 바꿀 거야.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켜야지. 이 세상은 너무 좆같지 않니. 박 선생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어딘가 미쳐 버린 얼굴이었다. 열리지 않는 나무문 너머에서 훅 열기가 끼쳤다. 머리가 뜨거웠다. 손에 쥔 문손잡이에서 열이 올랐다. 손이 뜨겁게 익어가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쾅, 쾅, 쾅! 계속해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주먹으로 두드리고 팔꿈치로 찍어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NSK의 존재이유는 멸망이었다. 건물이 무너진다. 하늘이 추락했다. 하하, 하, 하, 하.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박 선생이 웃었다. 쾅! 쾅! 계속해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툭, 속에서 무언가 내려앉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폭탄 소리가 아니라, 윤정한의 심장 어드메에서 나는 소리였다. 조종사를 잃은 비행기가 마구 비행하다 지상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어땠냐면. 그러니까 윤정한은 존재이유가 필수적인 인간으로 살기 싫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그래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도구로 살기 싫었다. 무기가 되기 싫었다. 홍지수를 볼 때마다 좆같았던 이유는 그거였다. 걔가 불쌍했다. 윤정한은 자유롭고 싶었다. 정말, 정말 그게 다였다. 그냥 누워서 연애 놀음이나 하고 싶었다. 지수야. 정한이 중얼거린다. 진심이었다.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르륵, 나무문 너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미친 듯이 웃는 박 선생을 바라보다 몸을 옆으로 돌렸다.

 

 

건물이 무너진다. 문이 부서졌다. 잿빛 하늘 아래 사지가 부서져 시뻘건 인간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정한이 눈을 감았다. 자유롭고 싶었다. 정말 그게 다였다. 누군가는 인간이고 누군가는 인간이 아닌 세상이 아니라. 꼭 전쟁에 나가서 죽어나가고 그걸 지켜보는 삶이 아니라. 올라오는 향 냄새를 가만히 맡고 있는 삶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사랑 놀음이나 하고 싶었다. 연애질이나 하고 있고 싶었다. 그냥, 그냥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죽기 싫었다.

 

 

쾅!

 

 

건물이 무너진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벽이 무너졌다. 저 멀리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윤정한은 생각한다. 뛰어야 한다. 서쪽으로 가면 바다였다. 인천에 남아 있는 반정부단체를 서쪽 바다로 몰아넣겠다고 했다. 빔프로젝터와 연결된 노트북 화면 안에 있던 센티넬들의 얼굴을 생각했다. 얼굴에 새빨간 글자가 올라와 있던 모습. 홍지수가 그 꼴이 되는 건 싫었다. 제발. 정한이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윤정한은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원하는 게 딱 하나 생겼다. 바라는 게 생겼다. 무너진 땅을 박차고 달리며 그는 존재 유무를 알 수 없는 신에게 기도했다. 홍지수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냥 살고 싶었다. 홍지수와 함께.

 

 

 

-

 

 

 

 

비명 소리가 들린다. 눈앞이 아수라장이었다. 배와 등에 폭탄을 멘 사람들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건물로 뛰어들었다. 손에 불이 붙은 센티넬은 건물로 뛰어드는 NSK 조직원을 막으려 팔을 뻗었고, 배와 등에 폭탄을 멘 조직원들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불꽃이 타오르고 폭탄이 터진다. 건물 두세 개가 한꺼번에 항구로 쓰러졌다. 이미 무너진 항구에 사람들의 시신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정한이 무너진 건물의 철골 뒤에 몸을 숨겼다.

 

지옥이었다. 눈앞에서 사지가 터져나갔다. 팔을 잃은 센티넬은 다리로 그들을 잡았고 다리를 잃은 센티넬은 팔로 그들을 막았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만드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눈앞에서 살아 숨쉬던 인간들이 살아 있는 폭탄을 안고 터져 죽었다.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의 피가 정한의 볼에 튀었다. 정책실 건물 앞 쓰러져 있던 군인의 시체에서 권총을 하나 빼 온 정한이 총알을 장전했다. 볼을 타고 핏줄기가 흘렀다. NSK 조직원은 다섯이 아니었다. 팔에서 불을 뿜고 주위를 얼리는 센티넬의 수보다 폭탄 조끼를 입은 인간의 수가 더 많았다. 유리가 박살나 바람이 통하는 건물의 1층 기둥에 기댄 정한이 방아쇠를 당겼다. 몸에 불이 붙은 채로 폭탄 조끼를 센티넬을 향해 던지려던 남자의 머리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박되어 있는 배 옆에서 실루엣 하나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동시에 뛰어 들어온 남자가 실루엣으로 보이는 센티넬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칼을 박은 남자가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가슴에 칼이 박힌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윤정한이 배를 향해 뛰었다. 칼을 들고 있던 남자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가슴에 칼이 박힌 센티넬은 움직이지 않았다. 쓰러진 센티넬의 머리를 누르고 상체를 일으킨 남자가 계속해서 입을 뻐끔거렸다. 살, 살, 살. 정한이 멈춰 섰다. 그가 계속해서 움직였다. 몸을 일으키려는 몸짓이었다. 순간 손을 헛디딘 남자가 뒤로 휘청거렸다. 무어라 말하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정한이 걸음을 옮기는 순간 남자가 바닷속으로 풍덩 낙하했다.

 

 

살려주세요.

 

 

센티넬은 가슴에 칼을 박고 죽었다. 온몸이 울렁거렸다. 눈이라도 감겨 주려 손을 뻗으면 피부가 뜨거웠다. 데일 듯한 온도에 눈도 감겨줄 수 없었다. 날아다니던 먼지가 센티넬의 각막에 내려앉았다. 눈을 감겨 주려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눈꺼풀을 만진다. 손이 벌겋게 익어갔으나 정한은 기어이 그의 눈을 감겼다.

 

홍지수는 어디 있는가. 심장이 아릿하게 아팠다. 저 멀리서 총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빨갛게 익은 손을 붙잡고 윤정한은 뛰었다. 소리나는 쪽으로 뛰었다.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찾아야 했다. 등 뒤에서 폭탄이 터졌다. 바다에 빠진 NSK 조직원이 죽은 센티넬 옆에 남긴 폭탄이었다. 숨이 찼다.

 

 

 

 

총소리는 반쯤 무너진 고층 건물 뒤에서 들렸다. 온통 시체뿐인 인천에서 그곳에서만 살아 있는 것들의 흔적이 들려왔다. 달려가면 세네 명의 사람들이 뒤엉킨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정한은 건물의 잔해 뒤로 숨는 대신 오른손을 뻗어 방아쇠를 당겼다. 엎드려 있는 누군가의 등에 칼질을 하고 있던 남자의 다리를 향해 총알이 날아갔다. 아악! 소리와 함께 덩어리진 인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온통 피였다. 다리를 다치고서도 좀비처럼 일어난 남자가 정한을 보고 뒷걸음질쳤다. 몸에 폭탄을 소지하고 있지 않은 남자였다. 걸을 때마다 피 묻은 유리가 밟혔다. 홍지수는 아니었다. 땅바닥에 뒤엉켜 있던 시체와 사람 중에 홍지수는 없었다. 총을 쥔 오른손에 시뻘건 피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다. 손가락으로 굳어 있던 피를 만지작거린 정한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악! 그때 뜨거운 손이 정한을 끌어당겼다.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정한이 불가항력적인 무언가에 의해 순간 뒤로 날아갔다. 정한을 끌어당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쾅! 세네 명의 남자가 엉켜 있던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NSK는 센티넬의 몸을 폭탄처럼 이용했다. 다리에 총을 맞은 남자의 다리가 저 멀리로 날아가 있었다. 그의 몸에 옮겨 붙은 불로부터 불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를 붙잡은 센티넬의 손이 기폭제였다. 불이 계속해서 시체들로 옮겨 붙었다. 온몸이 홧홧했다. 폭탄은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서 터졌는데 정한은 제 손목이 타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윤정한.”

“…….”

“네가 여기 왜 있어?”

 

 

윤정한을 끌어당기고 바닥에 쓰러진 홍지수는 새까만 테크웨어를 입고 있었다. 마주잡은 손이 타오를 듯 뜨거웠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홍지수였다. 정한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손을 보다 지수의 얼굴로 시선을 올렸다. 지수의 눈동자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이 타들어가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물었잖아.”

 

“너 여기 왜 있냐고!”

 

 

묻는 지수의 팔뚝에서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상처부위에서 파득 불꽃이 일었다. 정한이 순간 숨을 흡, 하고 멈췄다. 능력이 개화했구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주잡은 손으로부터 무언가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개화하지도 않은 센티넬을 가이딩이라며 안았던 정한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정한의 얼굴을 본 지수가 순간적으로 손을 뒤틀었다. 시야가 어질어질했다. 감기라도 걸린 듯 몸이 떨렸다. 등 뒤에서는 불길이 더욱 크게 솟아오르고 있었고 손목은 뜨거웠고 몸에서는 오한이 일었다. 그러나 지수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상처가 잔뜩 난 몸이 보였다. 가쁜 숨이 보였다. 오른쪽 팔에서 불길이 이는 모습이 보였다. 초짜 센티넬은 쉽게 폭주하고 제 능력을 컨트롤하는 법을 몰랐다. 몸이 뜨거웠다. 정한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입을 열었다.

 

 

“가이딩하러.”

 

“너 살리러.”

 

 

너 죽지 말라고. 손에 힘을 주고 깍지를 꼈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자꾸만 손이 떨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홍지수의 손등에 단정하게 깎인 손톱을 박아넣어 자국을 냈다. 가이드인 주제에 제대로 된 가이딩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바닥에 던지고 홍지수의 왼손을 붙잡았다.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지수의 입에서 기어이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흐, 짧은 신음이 세상을 갈랐다. 정한이 지수의 어깨를 붙잡았다. 활활 타오르는 팔에 몸을 묻었다. 

 

 

정신이 멍했다. 뜨거움보다 어지러움이 강했다. 해일처럼 밀려들어오던 것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멀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정한이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밀려오는 것은 뜨겁기도 했으며 차갑기도 했고 동시에 외롭고 공허하며 예민하기도 했다. 정한아 너, 너 안 돼. 지수가 자꾸만 팔을 뒤틀었다. 정한이 그 팔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 입술을 짓씹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아. 이건. 그러니까 이건.

 

홍지수구나. 윤정한은 기어이 눈을 똑바로 떴다. 감정 감화였다. 뜨겁기도 했고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기도 했다. 윤정한이 홍지수의 팔을 더욱 단단히 옭아매었다. 지수야. 찢어진 입술이 타들어갈 듯 뜨거웠다. 홍지수는 얼어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불길이 이는 팔을 쓰다듬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다. 주변이 조용했다. 다 끝이다. 정한이 열리지 않는 입술을 뗐다. 내가 말했지.

 

 

“난 안 죽는다고. 그리고,”

 

 

나는 네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네가 얼어 죽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 거고, 여기서 타 죽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 거야. 윤정한은 멸망을 꿈꾸던 사람들의 시체 위에서 삶을 말했다. 죽은 이들을 뒤로하고 살아 있는 이를 말했다. 혁명이었다. 지수가 찡그리고 있던 미간을 폈다. 붙잡고 있던 팔에서 푸른 불길이 일었다. 그러니까, 죽지 마. 죽지 말자 지수야. 목소리가 떨렸다. 정한이 그 팔에 입술을 갖다 댔다. 눈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주르륵 흐르는 것도 같았다. 고개를 들면 눈이 마주쳤다. 홍지수.

 

 

“우리는 살아서 돌아갈 거야.”

“…….”

“살아서 자유로워질 거야.”

 

 

자유로워질 거야.

그러니까 죽지 않아. 

 

절대로…….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정한이 떨리는 지수의 눈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뜨거운 살갗에 입술이 닿았다. 심장 근처 어드메에서 돌던 불길이 서서히 규모를 줄였다. 지수야. 우리가 했던 게 사랑이래. 정한이 생각했다. 듣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게 가이딩이래. 우리가 했던 건 그냥 사랑이래. 우리가 하는 건. 눈에서 코로, 코에서 뺨으로. 뺨에서 입술로 내려가며 키스했다. 가만히 받아들이는 홍지수의 혀가 너무 뜨거워서 윤정한은 문득 울고 싶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뒷목에 키스했다. 너무 뜨거워서 당장이라도 재로 변할 것 같았다. 입술을 열고 투명한 피부를 얕게 깨물었다. 반쯤 타들어간 정한의 옷자락을 잡은 지수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칼에 깊게 패인 가슴팍의 상처를 손으로 만졌다. 각인 금지 명령은 싸그리 어긴 지 오래였지만 이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가슴팍에 입술을 댔다. 지수의 팔에서 일렁이던 푸른 불꽃이 붉게 변하더니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정한이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상처들이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붙잡고 있는 손을 풀지 않은 채, 윤정한이 몸을 일으켰다. 멸망한 땅을 밟고 섰다. 윤정한이 홍지수의 손을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꽉 잡았다. 지수가 정한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홍지수는 얼어죽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윤정한은 죽지 않을 것이다. 돌아갈 것이다. 대체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지 구분되지 않았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인간답게 살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유로워질 거다.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를 등지고 출발했던 곳을 향해 걸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곳으로 걸었다. 손을 꼭 맞잡은 채였다. 널브러진 시체들에선 불길이 일었으나 그들의 몸은 고요했다. 정한이 바리케이드를 손으로 치웠다. 공허한 땅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지수가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Atra Aeterna - When The World Ends

 

 

 

w. nokk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