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gebluht


벚꽃 엔딩

김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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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소재에 따른 유혈과 시체, 죽음 등의 묘사가 나옵니다.

 

 

 

 

-

 

윤정한은 한마디로 천재였다.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비상한 머리로 원하는 것은 쉽게 얻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 딱 편한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온 윤정한이었다. 그리고 그런 윤정한의 베스트 프렌드라 함은, 미국에서 왔다는 것 빼고는 평범한 홍지수였다. 둘은 남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친형제 마냥 죽이 잘 맞았다. 서로에게 지지 않았고 서로에게 이기지 않는 그런 관계. 그런 관계를 선의의 경쟁과 긍정적인 발전은 좋은 영향을 끼쳤었기에 윤정한은 그런 홍지수를 아꼈고, 홍지수는 그런 윤정한을...

 

 

 

-

 

 

“조슈지, 너 이번 여름에 뭐해?”

 

“음..~ 친척 집에 가야해서... 연락 못 받을 거 같은데.”

 

“어디길래 연락까지 못 받아? 너 그냥 나랑 놀기 싫어서 그런거지이!”

 

“oh, 어떻게 알았어?”

 

 

홍지수는 특유의 웃음-윤정한은 그걸 가오리 웃음이라고 불렀다-을 띄우며 대답했다. 윤정한은 장난치지 말라며 말갛게 웃었고, 홍지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래 묻은 무릎을 툭툭 털었다. 조슈지 또 학원가? 너는 잘하지만 나는 못하잖아. 윤정한도 그런 홍지수를 따라 물통을 집고 일어났다. 둘은 흙먼지 묻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방학때 꼭 연락해야한다? 이번주 교회도 꼭 나오고!”

 

“...생각해보고? 교회는 당연히 가는 거지.”

 

“그런게 어딨냐~!”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식 전날. 그날 이후로 윤정한은 홍지수를 볼 수 없었다. 홍지수는 바로 다음 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분명 방학실 다음 날에 간댔는데. 그랬는데. 윤정한은 홍지수를 잡을 기회도 없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2년 뒤였다.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해주시기...

 

 

홍지수는 윤정한에게 차가운 안내음성을 남겼다. 작별 편지나 한 두마디 쪽지는 아니더라도, 뭐라도 남겼을 홍지수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마치 너와 나는 처음부터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듯이. 윤정한이 겪은 첫 안녕은 홍지수였다. 납득할 수 없었고, 처음 겪은 이별에 윤정한은 부정했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은 난도질 되며 입맛대로 맞춰지고 저 아래 무의식으로 묻고, 또 묻었다. 윤정한은 9년이 지나서야 홍지수를 잊을 수 있었으나, 얼마 안가 강제로 들춰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서야 홍지수는 윤정한의 앞에 나타났다.

 

 

“안녕? 난 미국에서 온 홍지수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수년이 지났음에도 낯 익은 목소리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었다. 특유의 가오리 웃음. 익숙한 웃음이 보였다. 반쯤 감겨있던 정한의 눈이 커졌다. 겨우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밀려들어왔다. 뭐야? 조슈지 너가 왜 여깄어? 그날은 왜 아무 말 없이 갔던거야? 어쩌다 다시 온거야? 무슨 일 있던 거 아니지? 기억을 묻음과 동시에 삼켜왔던 질문들이 차올랐다.

 

...내 생각 했었어?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윤정한은 오랜만에 살아난 눈빛으로 원망을 쏟아냈지만, 시선이 그에게 닿지는 않았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빈 자리로 가 앉는 홍지수를 눈으로 죽 훑었다. 홍지수는 자리에 들어가면서도 다른 아이들에 가오리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야, 조슈- 띵동댕동,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아이들이 홍지수의 자리 주변을 메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윤정한이 방금 막 귀국한 예쁜 전학생 옆에 가기는 글른듯 싶었다.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에서 웃고 있는 홍지수가 보였다. ...이따가 물어봐야겠다. 윤정한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엎드려 잠을 청했다. 창가의 따스한 햇살이 윤정한을 위로하는 듯 했다. 몰려드는 잠에 점점 시끄러운 소리들이 멀어져갔다.

 

 

“..야.... 한아, 윤정한!”

 

“어 왜애..무슨 일인데...”

 

 

방금 막 자다 깬 탓인지, 발음이 뭉개져 나오고 시야가 조금 흐릿했다. 잠시 후 시야가 맑아지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최승철은 '하니꺼'라고 쓰여진 과학책을 윤정한 책상 위에 올려두며 툴툴거렸다.

 

 

“우리 과학실이야.”

 

“...과학 4교시 아냐?”

 

“너 3시간 내내 잤어...”

 

 

윤정한이 눈을 깜빡였다. 왜 안 깨웠어? 학교 홍보용 학생인데 당연히 너 냅두라고 하지. 부러우면 너도 모고 전국 9등해~ 최승철은 그대로 윤정한의 말을 무시하고 선생님이 부른다며 먼저 가버렸다. 결국 윤정한 혼자 비척비척 일어나 과학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종이 울려 뛰는 발자국 소리가 여러개 들렸으나 그 사이에서 윤정한은 여유롭게 하품까지 해가며 슬리퍼를 죽죽 끌었다. 선생님들이 봤다면 분명 한대 정도는 맞겠다~ 싶었을 찰나, 윤정한의 어깨를 누군가가 톡톡 건드렸다.

 

“뭐야 누구...”

 

과학실 어디로 가는 지 알아?

 

 

 

아, 놀래라. 안 놀랬으면서. 들켰네. 뒤를 돌아보니 홍지수가 눈을 반으로 접으며 웃고 있었다. 짧은 둘의 대화는 이미 몇 십년동안 만난 소꿉친구마냥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윤정한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홍지수를 응시하고는 다시 제 갈길을 갔다. 홍지수는 그런 윤정한은 쪼르르 따라다니며 가오리웃음으로 계속 윤정한을 불러댔다. 정확히는 윤정하는 지칭하는 모든 것들. 홍지수는 아직 윤정한의 이름을 모르는지 빈 복도에서는 자꾸만 윤정한이라는 이름 대신의 온갖 호칭이 나왔다. 친구야, 저기요, 야, 그런 말들이 난무하는 동안 과학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까지 다다른 윤정한은 계단 앞에 멈추더니 그대로 그대로 제 뒤에 서 있는 홍지수를 마주봤다. 조용한 복도는 마치 세상에 둘만은 동 떨어준 느낌이었다,

 

 

“너 나 기억해?”

 

“응? 나 오늘 처음 들어왔는데?”

 

 

아니 전학 말고... 홍지수의 반문에 윤정한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급한 마음에 말이 툭툭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너 나 몰라? 본인이 말해놓고도 괜히 연예인병 걸린 사람처럼 말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지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아무말 않고 눈을 접어웃는다. 

 

 

“혹시 연예인이야?”

 

“...됐다. 과학실 요 앞이야. 그리고 내 이름은 윤정한이고.”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자신 뿐인가 싶은 윤정한이었다. 과학실로 가는 거리가 이렇게도 멀었던가.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본인의 것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애써 억눌러왔던 부정적인 의문들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아차렸다. 현실인지도 허상인지도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 기분은 한마디로, 좆같았다.

 

남에게 휘둘리는 것보단 남을 휘두르는 것을 더 잘하는 윤정한이었기에 자신이 홍지수에게 휘둘리는 듯한 기분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별 말 없이 자길 떠나고도 잘 살았던 것 같은 홍지수에 비해, 본인은 그 이별로 인해 받은 상처와 기억을 고이 묻어두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윤정한은 일부러 슬리퍼를 지익,지익 끌며 걸었다. 수업 종친지 15분이나 지나고 과학실에 들어간 윤정한이었지만, 선생님은 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들여보내줬다. 홍지수는 과학실 위치를 몰랐다고 하니 넘어가주었다. 그 뒤로 과학실의 일 때문이었는지 홍지수는 자꾸만 윤정한을 따라다녔다. 윤정한은 그럴때마다 시종일관 무시로 대응했으나, 한번도 홍지수에게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전국 3등이면 뭐해... 모고인데...”

 

“wow... 정한아, 너 방금 그 말 진짜 재수없는거 알지? 너는 옛날부터 공부 잘했잖아.”

 

 

 

넓은 벤치에 누워있는 윤정한의 말에 홍지수가 반문했다. 그러는 너도 전국 5등에 전교 2등이면서. oh... 그건 맞지. 윤정한도 눈을 감은채 대답했다. 누구하나 져주는 것이 없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승철이 표정을 구기머 입을 열었다. 

 

 

“둘 다 재수없으니까 그만해라...”

 

“okay~”

 

“아 최또삐야 진짜루~”

 

 

 

최또삐가 뭐야? 최승철한테 물어봐. 야 너 또 성 붙이구...! 최승철의 반응에 홍지수를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미국에서 최근에 들어왔다던 홍지수는 꽤나 급박하게 4월 모의고사와 중간고사를 치뤘음에도,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국어를 제외했다고는 했으나 국어마저도 90점을 맞았다.- 윤정한의 기억 속에서의 홍지수는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성적이었는데, 혹시 사는 환경도 성적에 영향을 미치나 싶었다. 윤정한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홍지수도 당연히 제 아래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제 턱밑까지 쫒아온 조슈아의 성적이 괜히 눈엣가시였다. 너 실은 한국인이지. 음, 부모님이 교포이긴 하시지? 아 짜증나...그런거 말고! 가만히 듣던 최승철이 누워있는 윤정한의 다리를 톡 치며 물었다.

 

 

 

“너는 근데 왜 자꾸 지수한테만 시비야?”

 

“시비는 아무리봐도 홍지수 쪽이잖아!”

 

 

 

윤정한이 또 툴툴거렸다. 사실은 최승철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홍지수의 얼굴을 볼때마다 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접고 입꼬리를 올리는 저 웃음이 너무나도 싫어서, 그래서 자꾸만 심술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윤정한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자존심이 있는 지라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제 곁에 오는 홍지수를 거부하지 않은 건 윤정한이기에, 어찌됐든 본인도, 홍지수도 서로를 잡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 오늘부터 학원 다닌다며? 최승철이 물었다. 응, 뒤처질 수는 없으니까. 홍지수가 답했다. 9년전에 들었던, 그 대화와 비슷했다. 윤정한은 눈을 꽈악 감았다. 나 갈래. 윤정한은 먼저 벤치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뒤따라오는 홍지수를 보며 윤정한은 생각했다.학원은 제발 같지 말아라. 

 

 

 

원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인생은 윤정한도 예외일리 없었다. 학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새로 등록한 애가 있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게 홍지수였다. 홍지수는 또, 그 익숙하고도 보기 싫은 가오리미소를 지었다. 학원에서도 짝은 윤정한이었다. 같은 학교가 그 이유였고, 덕분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붙어있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윤정한도 그것이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취향이나 습관이나 성격, 아니 그 외의 것들까지 홍지수와 정말 정말 잘 맞았기에 같이 있기만 해도 하루는 뚝딱 지나가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윤정한은, 홍지수에게 시비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홍지수가 뭘하든, 자신은 홍지수를 싫어할 수 없다는 걸.

 

 

 

-

 

 

 

저거 뭐야?

 

왜?

 

헐 저게 뭐냐.

 

존나 징그럽게 생겼다.

 

야 아무나 영상 찍어봐.

 

수업시간에 뭐하는 짓이야! 얼른 자리에 앉아!

 

 

 

웅성이는 소리, 선생님이 호통치는 소리,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소리. 온갖 말소리들이 한쪽 귀로 들어와 한쪽 귀로 흘러나갔다. 학교에 바바리맨이라도 들어왔나. 윤정한은 실없는 생각을 작게 중얼거렸다. 창문 너머 아이들 위로 보이는 바깥은 구름이 잔뜩 껴서, 마치 비가 올 것만 같았다. 윤정한은 고개를 돌려 샤프로 교과서 구석에 작게 그림을 그리더니, 옆에 있던 홍지수의 어깨를 톡톡 쳐 제 교과서를 보여줬다. 홍지수의 시선이 칠판에서 교과서로 옮겨지더니, 그림을 확인하고는 그림과 똑같이 웃어보인다. 

 

 

 

[ ◠‿◠ ]

 

[ 이게 뭐야? ]

 

[ 너랑 닮은거 ]

 

 

 

 홍지수 본인은 그게 닮았다는 걸 죽어도 모를 듯 싶었다. 그렇게 둘만의 세상에 푹 빠져있을 무렵, 창문너머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비명소리 때문에 창문에는 애들이 더욱 몰려들었고, 선생님마저 창문을 확인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과 애들한테 수업 좀 하자며 항의하자 그제서야 아이들은 제 자리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하지만 부풀어오른 궁금증은 각자 자리에 앉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어후, 너무 징그럽지 않냐?

 

10반에서 요번에 뭐 찍는다매. 그거 같은데.

 

근데 연기를 저렇게 리얼하게 해?

 

몰라 특수효과 아냐?

 

 

 

결국 선생님이 막대로 칠판을 탕탕 쳐댔다. 시끄러운 칠판 치는 소리와 더 시끄러운 선생님의 목소리에 학생들은 다들 입을 닫았다. 곧바로 선생님은 수업 내용을 설명했지만, 이미 한가지에 관심이 쏠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선생님한테 중요한 호출이 왔는지, 선생님이 급하게 회의가 잡혔다며 이후는 자습. 이 한마디만 남기시고는 교실을 나가셨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몇몇 학생들은 다시 창문으로 몸을 붙이고, 몇몇 학생들은 자기들이 봤던 것을 떠들어댔다. 최승철도 창문에 있던 사람들 중 한명이었는지,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윤정한과 홍지수의 앞에 앉아 쫑알쫑알 입을 열었다.

 

 

 

“아까 너네도 봤냐?”

 

“뭔데 저리 난리들이야?”

 

“뭐 영화 찍는다는데... 아니 근데 나는 순간 진짠줄 알았다니까.”

 

“oh.. 무슨 영화였는데?”

 

 

 

몰라, 좀비 영화 같던데? 아~ 좀비...뭐? 최승철의 말에 윤정한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 좀비 영화 같았다구. 그제서야 홍지수도 뭔가 생각이 났는지 윤정한의 어깨를 잡았다. 정한아, 너 연극영화부라고... 덜컹, 윤정한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연극영화부. 윤정한의 동아리였으며 학교에서 유일하게 영화와 관련된 동아리. 윤정한이 기억하는 최근 촬영계획은 환경 광고였다. 윤정한은 성큼성큼 창문으로 가더니 비명이 들렸던 운동장을 확인하려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윤정한의 눈에 비친 것은.

 

 우욱웁, 제 입을 틀어막은 윤정한이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5층 높이라 운동장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히 본 것은 낭자한 피와, 기괴하게 움직이는 시체 아닌 무언가들이었다. 상상하니 또 속이 올라왔다. 속을 게워내자 홍지수와 최승철도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왔다.

 

 

 

“야 정한아 괜찮냐??”

 

“속 안 좋으면 등이라도 두들겨 줄까?”

 

“그것보다 지금 저 밖에.”

 

 

 

삐이이이이이-.

 

세 명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폰을 내지 않는 학교라 그런지 반 전체, 그리고 복도 전체에 소리가 울렸다. 윤정한은 평소 재난 문자를 칼같이 확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확인해야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울시청] 8월 19일 14시 현재,  폭동 시위 발생. 민간인을 향한 폭력성이 발견되오니 안전을 위하여 야외활동은 자제하시고 댁에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슨-...”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다시 띠링, 다시 한번 울린 문자음. 이번엔 학교에서 보낸 메세지였다.

 

XX고등학교에서 안내드립니다. 현재 괴한이 학교에 들어와 난동을 피우고 있으니 안전을 위하여 현재 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귀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을 호출하였으나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귀가 시 정문 말고 후문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반 아이들은 메세지를 보자마자 각자 짐을 싸 교실을 나갔다. 학교 안내 메세지 이전에 왔던 재난문자는 생각도 않는지 하교하라는 말에 몇몇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니기도 했다. 윤정한과 홍지수, 최승철도 다급하게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대충 짐을 챙겼다. 그리고 1층으로 계단을 내려가면서 들린 비명소리. 선생님의 말은 죽어도 듣지 않던 몇몇 놈들이 기어코 정문으로 향했던 듯 싶었다. 정문에서 후문으로, 그리고 후문에서는 학교 밖으로, 안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물었고, 비명이 난무했고, 눈앞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그걸 본 셋이 내린 결론은, '좀비'.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했고 또 그래야만 했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1층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한 학생들은 곧바로 학교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몰리는 인파에 윤정한은 놓치지 않게 홍지수의 손을 잡고 계단 위로 뛰었다. 최승철은 이미 인파에 파묻혔는지 보이질 않았다.

 

 

“정한아, 승철이는...!”

 

“일단 뛰어!”

 

 

홍지수를 잡은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처음 놓쳤을때는 그냥 못 만나는 것에 그쳤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에 놓치면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윤정한이었다. 고등학생의 체력은 고등학생이 잘 안다. 평소 3층까지 올라와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기에 윤정한은 일부러 4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돌아 일부러 안쪽에 있는 교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문을 잠구는 것도 모자라 앞문은 책상과 의자들로 문 안쪽을 막았다. 그제서야 둘은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윤정한은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 쪽이 빨갰다.

 

 

 

“정한아, 승철이는 어떡해...”

 

“괜찮아. 학교 밖으로 튀었대.”

 

 

 

윤정한은 최승철에게 받은 메세지를 읽어주자 홍지수도 그제서야 안심하는 듯 싶었다. 교실 밖에서 간간히 비명소리들이 들려올때마다 홍지수는 몸을 떨었다. 윤정한도 괜찮은 척 했지만 손이 자꾸만 떨렸다. 학교 안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학교 안에서의 고립. SNS를 확인해보니 이쪽만 그런게 아닌 듯 싶었다. 서울 내에서 '폭동 시위'만 해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온갖 음모론과 사이비 등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찌라시가 나돌았다. 윤정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껐다.

 

 

“... 괜찮아?”

 

주어 없는 물음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본 말이었을까. 홍지수는 윤정한을 안았다. 홍지수의 품은 따뜻했고, 손에서는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윤정한 본인의 떨림이 아니라 홍지수의 떨림. 울음이라도 참는 듯 싶었다. 너가 더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윤정한은 목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괜히 부정적인 말을 했다가는 제 눈 앞에 있는 홍지수가 무너질까봐. 9년 전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놓칠까봐. 윤정한도 홍지수를 마주안았다. 마주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 멀리서 또 한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눈을 뜨자 보인 풍경은 창문 너머 일자선에 걸린 해. 언제 잠든 건지도 모를 정도로 푹 잤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지수야, 나 몇시간 잤어? 너 하루 넘게 잤어. 엥 진짜읍, 하마터면 소리 지를뻔했다. 다행히도 윤정한은 제 입을 틀어막은채 눈만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어제 본 풍경이 뇌리에 깊게 박혔나보다.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더라.”

 

홍지수가 웃으며 휴대폰을 켜 보여주었다. 화면에 띄워진 것은 8월 20일, 오후 7시 31분. 휴대폰 화면이 잠깐 어두워지더니 빨간 확성기가 나타났다. 재난문자가 올때마다 소리가 울리길래 무음으로 바꿔둔 건 정말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휴대폰을 끈 홍지수가 물었다.

 

 

“정한아, 너 물 안 마셔도 돼?”

 

“괜찮은데... 왜?”

 

“너 옛날부터 물 많이 마셨잖아.”

 

 

그 말에 윤정한은 제 가방을 뒤적거리다 뚫어져라 홍지수를 응시했다. 홍지수는 그런 시선을 피하는 듯 제 가방을 끌고 와 뒤적거리더니 매점 빵 하나를 꺼냈다. 윤정한은 생각했다. 옛날부터? 언제부터? 자신의 기억상으로, 고등학교에서 만난 홍지수에게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홍지수도, 기억하고 있는건가? 그렇다면 전학 온 날에는... 왜? 잡다한 생각들이 쌓여 윤정한의 발목을 잡았고, 그 잡다한 생각들은 과거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좋았다. 의심, 서운함, 그리고 원망. 윤정한은 팔짱 낀채로 홍지수를 노려보았다. 그런 시선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홍지수는 윤정한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창가쪽으로 가 폐허가 된 운동장을 바라다봤다.

 

 

“정한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들어보고.”

 

“대답은 괜찮은데,”

 

“그럼 말해봐”

 

 

...신이 정말 존재할까? 홍지수는 창가에 앉더니, 창문쪽으로 제 몸을 뉘였다. 야 조심해. 아무리 창문에 철창이 있다지만 그래도 위험한 건 위험한 것이었다. 미동도 않는 홍지수 때문에 윤정한은 결국 몸을 움직여 창가에서 떼어내놓았다. 주르륵, 윤정한의 손에 이끌린 홍지수는 힘이 풀린 것 마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윤정한은 그 광경을 보고서는 저도 자리를 깔고 앉았다. 시끄러웠던 어제 낮에 책상을 다 치워둔 덕에 성인 다섯이 누워도 남아날 공간이 생겼다. 

 

둘은 오늘은 일찍 잠들기로 했다. 교실에 남아있던 담요를 펼쳐 그 뒤에 대충 누웠다. 그리고는 달빛과 바깥의 희미한 불빛들을 조명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쓸데없는 질문들이 오갔다. 뭘 좋아하냐, 뭘 잘하냐 등의... 윤정한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질문과 대답들. 그리고 홍지수가 몸을 돌려 윤정한과 눈을 맞췄다.

 

 

“정한아, 나는 오늘이 세상이 멸망하는 날이더라도.”

 

“...”

 

“너가 있어서 괜찮은 것 같아.”

 

 

윤정한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윤정한은 홍지수의 눈을 마주봤다. 윤정한은 느리게 눈을 꿈뻑였다. 그리고 홍지수는, 윤정한에게는 정말 질리도록 익숙한 그 웃음을 그려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벚꽃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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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벚꽃이 만개할 달이지만 4월 초순에 크게 비가 한번 내렸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벚꽃은 그때 졌던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윤정한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홍지수와 함께 벚꽃을 보  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즈음, 하루 종일 긴장하며 깨어있던 탓인지 홍지수가 금세 숨을 색색 거리며 잠들었다. 윤정한은 다시 깨우려 손을 뻗었으나 이내 담요 위로 툭 떨어트렸다. 괜히 피곤한 사람을 깨우고 싶진 않았음으로. 낮잠을 잔 탓이었는지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윤정한은 홍지수가 깨지않게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날 봐왔던 3학년 교실이었지만 밤에 달빛이 이리 환하게 드는 교실인지는 몰랐다. 윤정한은 홍지수의 폰을 꺼내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새로운 빨간색 확성기 알람.

 

 

 

...헬기 구조?

 

윤정한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일명 좀비 사태가 일어난지는 대략 이틀 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부는 벌써부터 구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황급하게 뉴스를 확인해보니 정부는 당장 내일부터 생존자 구조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의 건물들의 거의 대다수는 옥상이 잠겨있기에, 옥상으로 대피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각 구역마다의 대피소가 되는 헬기장이 따로 있었는데, 다행히 윤정한과 홍지수가 있는 XX고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걸어서 30분 정도였으니까. 물론 이 30분은 좀비 사태 이전의 시간을 뜻했음으로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이론 상으로는 완벽한 계획을 실행시키기 위해 윤정한은, 실험을 하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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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시야가 흐릿하다. 정한아. 윤정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먹혀들어간다. 흐릿한 인영이 눈 앞에 점점 다가오고, 부드럽게 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다가는 제 손을 한번 세게 쥐어주고는 무어라 말했다. 그리고 인영은 다시 멀어졌다. 꿈인가? 의식은 다시 점점 멀어져갔다. 시야가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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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은 밤새 홍지수가 깨지않게 헬기장까지 갈 수 있는 루트들로 계획을 세웠다. 혹시나를 대비해 여러 대비책을 세웠고, 또 그만큼의 준비를 했다. 윤정한은 천재였으니까. 눈을 뜬 홍지수도 헬기 구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재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준비라고 해봤자 전날 들고온 물통과 담요, 그리고 급하게 준비한 대걸레 막대뿐이었지만. 윤정한도 사정은 비슷했다.

 

구조 시각은 오후 여섯시. 하늘이 우중충하여 제대로 된 시간이 알기 어려웠음으로 홍지수의 휴대폰으로 확인한 마지막 시각은 오후 4시 21분. 뒷문을 만약을 대비하여 책상과 의자를 조금만 옮겨뒀어서 그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복도를 나가자 침묵 그 자체였다. 둘은 긴장을 놓지 않고 발소리를 죽이며 1층으로 겨우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1층 복도에 도착하여, 가까운 정문으로 나가려는 찰나 홍지수가 내딛은 발걸음을 멈췄다.

 

 

“홍지수, 왜 멈춰?”

 

“정한아... 저거..”

 

 

우리 학교 학생 아냐...? 속삭이는 목소리가 떨렸다. 윤정한의 시야에 들어온건 나름 익숙한 복장.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같은 학교 학생인 건 맞았다. 피부에는 핏기가 가시고 눈을 뒤집어까놓고... 먹은 것도 없지만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에 윤정한은 고개를 돌렸다. 오래 봐야 좋을 것 없었다. 윤정한은 홍지수의 손을 잡고 후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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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은 J호텔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호텔 입구를 포함해 가는 길에는 좀비도 좀비이지만 널브러진 시체들이 더했다. 피가 고인 웅덩이에, 거리 이곳저곳을 굴러다니는 ... 우웨엑. 결국 홍지수가 J호텔에 들어가기전에 속을 게워냈다. 윤정한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수야. 벚꽃나무다.”

 

“와.. 진짜야?”

 

“아니 조화 같은데.”

 

 

너는 굳이 그렇게 말해서 초를 쳐야겠니. 가까이서 보니 꽃잎들이 전부 조화였다. 예쁘니까 괜찮아. 홍지수의 얼굴에서 윤정한이 익숙하게 봐왔던 웃음이 보였다. 홍지수는 벚꽃나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렸다. 아직도 교회다니나보네. 윤정한은 그리 생각했다. 무슨 기도 드렸어? 기도 아니고, 소원 빌었어. 엥? 무슨 소원?

 

 

“...세상이 끝나더라도, 오늘 일은 절대 못 잊겠다. 안 그래?”

 

“뭔 말이야 그게...”

 

 

J 호텔로 가는 동안은 좀비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또 다른 변수는 날씨였다. 과연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날씨인가. 둘은 그런 불안을 안고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좀비도 몇몇 보여서, 처리하느라 꽤나 시간을 들였다. 오후 5시 43분. 여섯 시에 헬기가 도착함으로 조금 빠듯하게 움직여야했다. 그리고 홍지수의 눈에 들어온... 직원용 엘리베이터.

 

위험성은 컸으나 아주 빠르게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홍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5층.. 4층... 3층... 2층.... 그리고 1층.

 

띵.

 

 

 

홍지수!!

 

 

직원용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것은 좀비 한마리. 윤정한은 뛰었고, 홍지수는 놀라 굳었다. 당연하게도 물리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홍지수의 몸이 옆으로 쏠렸다. 쿠당탕. 큰소리가 나고 홍지수는 넘어졌으며, 좀비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윤정한이 홍지수를 잡아당겨 넘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좀비는 말 그대로 좀비 였기에. 다시 느릿하게 일어나더니 홍지수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을 윤정한이 막아섰다. 홍지수가 주변을 둘러 좀비를 가격할 만한 무기를 찾는 순간, 좀비는 둘을 지나쳤다. 그 지나치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윤정한은 그대로 머리를 가격해 좀비를 쓰러트렸다.

 

그 광경을 본 홍지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뭐였어? 윤정한은 말이 없었다.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시간 없어. 일단 올라가자.”

 

 

윤정한은 홍지수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넣었다. 홍지수도 질세라 윤정한을 잡고 엘리베이터 안에 같이 태웠다. 1층에서 헬기장까지 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질문이 맴돌았다.

 

 

“정한아, 아까 그거 뭐였어? 너는 뭔가 아는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

 

“윤정한. 너 알잖아.”

 

“듣고 싶으면 너부터 말해.”

 

 

윤정한의 대답이 울렸다. 뭘? 홍지수는 당황했다. 너 나 기억하지. 두번째로 묻는 윤정한의 질문.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리는 홍지수의 입술이 옴싹달싹 움직였다가 닫힌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응. 알아.”

 

“그래? 그러면...”

 

 

윤정한이 작게 숨을 골랐다. ...내 생각을 한번이라도 한 적 있어? 꾹꾹 눌러담은 말이 튀어나왔다. 제일 궁금했고, 제일 하고 싶었고, 제일 상처받을 수 있는 질문. 둘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홍지수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최고층을 향하고 있었다. 띵. 문이 열림과 동시에 홍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했어. 한번이 아니라 아주 많이.”

 

 

 

옥상문을 열자 바람이 세게 불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았다. 오후 5시  46분. 시간은 여유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움직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라도 추가로 계단까지 올라와야했으니 좀비가 들이닥칠일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본 홍지수가 물었다.

 

 

“그래서, 숨기는 게 뭐야?”

 

 

윤정한은 말 대신 제 왼쪽 팔의 소매를 걷었다. 말라붙은 핏자국. 파랗게 들은 멍. 그리고... 물린 자국. 틀림없이 좀비한테 물린 자국이었다. 약하게 물린 자국이라 살점이 뜯어져나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린 걸 확인한 홍지수가 윤정한을 다그쳤다. 원망이 아닌, 걱정에서 비롯한. 제 소매를 다시 내린 윤정한이 입을 열었다.

 

“내 부주의였어. 미안해.”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계획이, 실전에서는 언제든 쉽게 틀어질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래서 자신의 몸을 가지고 실험했단다. 그 꼭두새벽에 본인이 세운 계획을 가지고 홀로 밖을 돌아다녔고, 그래서 J호텔로 가는 최단 거리를 찾았고, 좀비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호텔 엘리베이터가 생각나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1층을 눌러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홍지수도 봤던 그 좀비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자마자 사람을 덮쳤고, 윤정한도 놀라 굳은 몸을 움직여 억지로 피하려다 물린 것이었다. 사실은 홍지수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말까, 도 생각했다는 건 솔직하게 말하지 않기로 한 윤정한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살랑살랑 불던 바람은 거세지고, 엔진소리가 함께 허공에서 들려왔다. 구조 헬기가 근처에 왔다는 신호. 윤정한은 홍지수가 구조 헬기에 눈 팔린 사이, 자신이 봐뒀던 난간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부러 아래를 보지 않고, 심호흡을 하고선.

발을 내딛었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은 순간, 누군가 윤정한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당연하게도 홍지수였다.

 

 

“너 뭐하는 거야 지금.”

 

“예전에는 잡지도 못하게 떠나가놓고선.”

 

“예전이랑 지금이랑 같아? 누가 먼저든 상관 없잖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잡으면 되잖아.”

 

 

윤정한은 9년이 지나서야 홍지수를 붙잡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홍지수가 윤정한을 붙잡았다. 홍지수는 양손으로 윤정한의 한 팔을 죽어라 붙잡았다. 윤정한의 표정은 미동이 없었고, 홍지수가 잡은 손에는 힘이 자꾸만 빠졌다. 투욱, 뚝. 윤정한의 볼 위로 물이 떨어졌다. 홍지수의 목소리가 떨리고, 하늘의 먹구름 마냥 물기를 머금었다. 

 

 

“윤정한.. 너 진짜 나쁜놈인거 알지.”

 

“...너만 할까.”

 

 

홍지수가 손을 놓으면, 본인은 그대로 떨어져 죽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윤정한은 농담이 나오나 싶었다. 이삼일 이라고는 했으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둘은 서로가 아니면 안되는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그런 버팀목 중 하나가 넘어지게 되면, 남은 버팀목은 쓰러지고 만다.

 

 

“정한아, 나 너 없으면 안돼.”

 

“조슈지.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답지않게 소리를 빽 질렀다.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헬기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신호였고, 그 신호는 곧 홍지수가 윤정한의 손을 놓아야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바람 때문에 윤정한의 몸이 조금씩 흔들렸다. 홍지수는 악착같이 버텼으나, 자꾸만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윤정한은, 뭐가 그리 미련이 없었기에, 이렇게. 쉽게.

 

 

“지수야.”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윤정한의 다른 손이 홍지수의 손을 맞잡았다.

 

“잠깐만, 내가 얼른 올려-...”

 

“행복해야해.”

 

 

윤정한은 홍지수의 손을 놓쳤다. 아니 놓았다. 홍지수를 위해, 자신을 위해. 떨어지는 윤정한, 착륙하는 헬기, 헬기의 배기음에 묻힌 홍지수의 비명 섞인 절규. 호텔 앞에 있는, 조화 벚꽂나무 위로 붉은 색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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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수에게 윤정한은, 재수없음 그 자체였다. 어릴때부터 평안하게 살았던 터인지 자존감도 자존심도 높고 당연하다는 그 눈빛을 싫어했다. 어린 홍지수에게 어린 윤정한은 그저 경쟁의 대상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윤정한과 죽이 잘맞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윤정한과 친해지게 됐을뿐, 그 뿐이었다. 그뿐이었고, 그랬기에 윤정한에게 말도 안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릴때도 통쾌했고, 미국에서는 조금 많이 생각났을뿐이지만 관심이 크진 않았고, 한국 학교로 유학 오게 됐을때도 별 생각 없었다. 근데 그러다, 갑자기. 윤정한을 실제로 보니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그 싫지 않은 윤정한은 이제 없게 되어버렸다.

 

홍지수는 홀로 구조 헬기에 탔다. 본인의 가방, 윤정한의 휴대폰, 이 두 개가 남은 전부였다.

 

윤정한이 남긴 유일한 물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또륵. 토옥. 헬기 요원이 홍지수를 걱정해주자 홍지수는 괜찮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번에도 어린애 같았던 건, 윤정한이었다. 홍지수는 윤정한이 남긴 휴대폰을 꽈악 쥐었다. 윤정한, 이 미친 천재는 어디까지 생각해둔건지, 홍지수는 휴대폰 메모장에 적힌 글자를 봤다. 그걸 읽은 홍지수는, 주저앉아 흐느꼈다. 나쁜놈. 나쁜 윤정한. 윤정한에 대한 온갖 욕을 쏟아부었지만,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다. 홍지수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혼자.

 

남아버린 나무에게도 가혹한 봄은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홍지수는 그렇게 살아가야했다. 

 

 

 

 

자산 1.png

제 인생 통틀어 처음 합작에 참여한 작품이네요! 작업 내내 즐거워서 좋았습니다. 미숙하지만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우리 모두 윤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