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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멸망보고서

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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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멸망보고서 / 일구

 

 

 

<형질 평준화 시대, 화합의 장>

 

   연회장 단상 바로 위 대문짝만하게 적힌 현수막을 보고 윤정한은 대놓고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질 평준화 정책이라니. 태어나길 다르게 태어났는데 그런게 가능하긴 한가? 여러 핑계대며 하는 꼴들이 너무 가소로웠다. 이건 또 어떤 영감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일지. 알파 - 오메가. 그 사이에 베타가 끼어들 틈은 없다. 그건 태초부터 그랬고 먼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유일한 사실이다. 하지만 알게 뭐야. 안타깝게도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기는 군바리 인생. 아 예 그러시구나 해드려야지. 별말 않고 제 이름이 적힌 자리에 착석했다. 앉자마자 옆에서 김 중위가 경례했다. 일찍 오셨습니다. 어. 김 중위는 주변을 살피다 정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윤 대위님 그거 들으셨습니까?”

 

   “뭐.”

 

   “이번에 중앙 쪽에서 전출오는 대위님 있지 않습니까. 같은 알파 하나를 피떡으로 만들어서 여기 오는 거랍니다.”

 

 

   군대 전출이면 백이면 백 사고쳐서 좌천이지. 그것도 알파 대위가 중앙에서 사고 쳐서 변방 나가리 함대까지 오시다니. 중앙 영감 아들새끼라도 줘팼나. 다리꼬고 심드렁히 제복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아하.”

 

   “저는 솔직히 저희 함대에 알파 오메가 대원들 오는 거 싫습니다.”

 

   “김 중위.”

 

   “예.”

 

   “말 조심하자. 오래 오래 해먹는게 목표라며.”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대충 고개 한 번 끄덕거린 정한은 다시 단상을 쳐다봣다. <형질 평준화 시대, 화합의 장> 알파 - 오메가 여러분 환영합니다! 자그맣게 적힌 글자에 시선을 박은 채로 중얼거렸다. 그래. 김 중위. 김 중위 말대로 그깟 알파 새끼들 때문에 출세길 막히면 얼마나 좆같겠어. 네? 못들었습니다? 됐고 행사 언제 시작이지? 곧 시작합니다. 

 

 

 

   환영행사가 시작하고 단상에 사령관이 오르자마자 정한은 그대로 식장을 빠져나갔다. 대위님 어디 가십니까..! 김 중위가 애타게 불렀지만 무시했다. 함대가 간만에 사람들로 꽉꽉 들어찼다. 그래봤자 후방 함대인 여기 발령을 명 받은 건 몇 안되고 나머지는 전부 보여주기식 행사 때문에 자리한 거지만. 와인색 제복 바지에 손 찔러 넣은 채 복도를 거닐었다. 아 이놈의 군바리 짓 대체 언제까지 해먹어야 돼. 안맞아도 적성에 너무 안맞는데. 보여주기식 행동에 가식떠는 건 윤정한이 제일 꺼리는 짓이다. 그냥 죄다 아버지 같아 구역질이 났다. 심지어 저 빌어먹을 형질 평준화 정책에 제 아버지의 입김도 작용했을 게 분명해 더더욱 거북했다. 형질 평준화라니. 베타보고 알파랑 오메가랑 같이 살라고? 평생을 알파로 보낸 남자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같은 걸 알 리가 없다. 갖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평생을 살아 왔을 테니까.

 

 

   윤정한은 제 아버지의 유일한 역린이었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아버지 피 섞인 윤정한이 제일 만족스러워 하는 점이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오메가를 만나 낳은 자식이 베타인 아버지를 위해 <우주 함대 소속 베타 대위 윤정한> 은 지긋지긋하게 살아 남아서 알려드릴 의무가 있었다. 그 잘난 아버지가 낳으신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저예요, 하고. 아버지가 다른 오메가들이랑 굴러먹으신거 보면서 자란게 저예요, 하고. 

 

 

   그렇게 어린시절을 좀먹은 분노는 윤정한 인생 일부분을 차지했다. 형질부터 운명이라는 알파 오메가가 결혼해도 사랑 같은 게 존재할 수 없는데. 다른 형질은 어떻겠어. 사랑이 눈에 보이긴 하겠어? 잡히긴 하겠어? 덕분에 다른 거 다 이해할줄 아는 윤정한은 유독 알파 - 오메가 존재에 대해서만 까탈스레 굴었다. 딱 하나 부정하는데 그게 세상을 부정하는 일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작 호르몬 작용>에 인간성까지 내다 버리는 것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형질 평준화 정책이라니. 그걸 빌미로 알파, 오메가 대원들의 함대 발령이라니. 괜히 발을 질질 끌었다. 아는 알파 하나가 생각난 탓이다. 

 

 

 

   한참 복도를 따라 걷다가 사람 말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췄다. 간땡이 크게 환영식 농땡이 치는 인간이 나말고 또 있네. 얼굴이나 보자 싶어 코너를 돌았는데,

 

   오메가 하나가 알파에게 엉겨 붙어있었다. 짐승같은 새끼들. 난 이래서 쟤들이 싫어. 호르몬 하나에 미쳐 날뛰는게 납득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걸 보면 집으로 오메가를 불러들이던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절로 토기가 치밀었다.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알파니 오메가 같은 거 씨발. 인상 팍 찌푸린 채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쳐다봤다. 아주 여기서 한 판 하시겠네. 딱 봐도 히트사이클을 맞은 오메가가 그걸 빌미로 알파에게 매달리는 꼴이었다. 더러워. 다른 알파나 오메가였다면 느꼈을지도 모를 페로몬 하나 눈치채지 못한 베타 윤정한은 그대로 빙 돌아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윤정한은 예상 외로 곤경에 처한 타인 무시하는 걸 제일 못했기 때문에. 

 

 

   씨발. 다시 돌아 소리의 근원지로 뛰다시피 걸었다. 제복 안에 오전에 지급 받은 주사가 있었다. 함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부사관 이상의 계급들은 히트 사이클 억제 주사를 꼭 지참하라는 명령. 간만에 말 잘들은 보람이 있네. 일방적으로 알파에게 매달려 있는 오메가를 발로 뻥 차고 나가 떨어진 걸 붙잡아 주사를 놨다. 덕분에 뒤로 몇발짝 물러난 알파는 잠자코 서서 둘을 내려다봤다. 주사기 속의 약물이 거의 주입 됐을 때 윤정한이 고개를 들었다. 이새낀 도와줬는데 고맙단 소리도 없어. 얼굴이나 한 번 보, 

 

 

   “홍지수…?”

 

   “안녕 정한아.”

 

   “니가 왜 여기 있어. 너 여기서 이새끼랑 굴러 먹으려고….”

 

   “오랜만이다. 그치.”

 

   “니가 왜 여기 있냐고. 중앙에서 발령 받았다는 게 너야?”

 

   “여전히 싫어?”

 

 

   대답이나 하지 역으로 들어온 질문에 윤정한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뭐가 싫은데 내가. 

 

 

   “나. 아직 싫어?”

 

 

   원래 2년만에 본 사람보고 이런 걸 묻나 얘는. 그것보다 애초에 우리 재회가 이딴 식으로 이뤄져도 되나. 너무 짜증나는데. 내가 바란 재회는 이런게 아니었다고. 윤정한은 대답할 생각 않고 홍지수를 하나하나 뜯어보기만 했다. 알파가 좋긴 좋구나. 더 잘생겨졌네. 원래도 잘생긴게.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골격과 가슴팍을 찬찬히 뜯어보던 시선이 얼마 못가 유일하게 여전히 커다란 왼손에서 멈췄다. 번쩍거리는 무언가. 약지에 반지. 그걸 보는 순간 아까보다 열이 팍 올랐다. 좆같아서. 

 

 

   “못본 사이에 넌 약혼이라도 했니?”

 

 

   그 말에 제 왼손을 들어 약지를 확인한 홍지수는 천천히 대답했다. 어. 얼마 안됐어. 그리고 웃는다. 웃어? 윤정한은 손에 쥐고 있던 주사기를 더더욱 힘주어 잡았다. 하하 씨발. 어떤 새끼랑? 곧바로 튀어나오는 의문을 겨우 참아내고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덩달아 웃었다. 구라 치는 건 윤정한이 제일 잘하는 짓 중 하나였으니까 쫄리지 않았다. 

 

 

   “축하해.”

 

 

   그리고 널부러진 오메가를 타넘고 걸음을 옮겼다. 2년만에 마주한 뒤통수에 대고 홍지수는,

   

 

   “나 너무 싫어하지 마. 정한아.”

 

 

   라고 했다. 와 존나 잔인해. 내가 대체 어떻게 널 싫어할 수가 있니. 알면 좀 알려주라. 한 번 해보게. 씨발. 윤정한은 단 한번도 홍지수를 싫어해본 적이 없다. 홍지수가 싫은게 아니라 고작 형질 따위로 사람을 나눈 이 세계가 싫었던 거니까. 

 

 

   그래서 헤어진 구남친을 만나는게 윤정한은 전혀 껄끄럽지 않았다. 그냥 빡이칠 뿐이다. 알파가 된 쟤를 가질 수 없다는게. 

 

 

 

   -

   홍지수의 발령 이후 첫 작전은 윤정한과 함께였다. 알파와 베타 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첫 작전. 작전은 평소랑 다를바 없었지만 그 이유 하나로 꽤나 화제가 됐다. 정한은 감투 쓴 영감들 생각 참 알만하다 싶었다. 발전이 없어. 늙으면 자리를 내놓든가 죽든가. 혼자서도 잘만 수행해오던 작전에 대위 두명이 투입되는 건 인력 낭비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애초에 함대의 생리 같은 것들에 대해선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빠삐용 (프랑스어로 나비. 전투기의 날아가는 모습이 나비와 유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었다. 나비 같은 화려함을 위해 전투기의 색이 다양하며 색은 조종사가 정한다.) 타고 날아가서 불법 점거하는 함대들 박살내고 오기. 이건 눈 감고도 한다. 작전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대신 추억하기 좋아하는 윤정한이 옛 생각이 났다는 걸 제외하면. 그런 얼굴을 하고 감상적이기 까지 한 윤정한은 시시때때로 추억에 잠긴다. 옛날에 말이야. 항상 출격 대기하고 있을 때면 홍지수가 무전기에 대고,

 

 

   - 정한아 화이팅.

 

 

   이런 씨발. 혹시 알파는 독심술도 할 줄 아니? 귓가에 정확히 기계음 섞인 음성이 날아들었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입술 짓씹은 채 조종간을 힘껏 잡아 당겼다. 빡친게 아니고 웃음 참는 거다. 너무 좋아하는 티 내면 헤어진 주제에 자존심 상하니까. 

2년만에 듣는 응원은. 당연히 존나 좋았다. 

 

 

 

   작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성공적이었다. 사이좋게 불법 함대들 우주 먼지로 만들어드리고 나란히 함대로 복귀했다. 이건 윤정한 혼자서도 밥 먹듯이 하던 건데 평소에 사령관실에서 담배만 피워대던 높으신 분들까지 튀어나와 둘을 반겼다. 고생했네. 하고 어깨까지 두드렸다. 윤정한 홍지수를 앞에 두고 지들끼리 알파 베타 간의 화합이니, 진정한 하나니 같은 소리를 떠들어댔다. 알파 베타의 합동 작전은 처음이 아닌가. 이 얼마나 기념비적인 순간이야. 안그런가 윤 대위. 예에. 노친네들 염병에 질릴대로 질린 윤정한은 제 옆에선 홍지수를 돌아봤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다. 얘 긴장했나. 습관적으로 이마에 손을 뻗다 바로 내렸다. 그럴 사이가 아니니까. 기척에 고개 돌린 홍지수는 대뜸 손을 내밀었다. 

 

 

   “악수.”

 

 

   윤정한은 아무 대꾸 않고 내밀어진 손을 맞잡았다. 둘을 향해 무수한 플래시가 터졌다. 이별 이후 첫 작전. 첫 악수. 첫 스킨십. 그대로 신문에 박제됐다. 그것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제목은 <알파 - 베타, 사상 최초 합동 작전 수행!> 윤정한은 김 중위가 대위님 1면에 나오셨다고 고이 책상 위에 올려둔 시사유니 (이하 시사 유니버스) 를 한동안 치우지 않았다. 정말 오래도록. 

 

 

   이후로는 쭈욱. 세트로 묶여 불렸다. 세트 같은 건 원래 알파랑 오메가들에게만 해당되던 거였는데 어쩐일로 알파 홍지수의 짝이 베타 윤정한이 됐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알파 대위, 로 불렸던 홍지수는 함대 내에서 알파 같은 형질 수식어 없이 그냥 홍 대위가 됐다. 대신 하나가 붙었다. 윤 대위랑 맨날 붙어있는. 

 

 

   근데 그럼 뭐해. 백날 모두가 나서서 그렇게 말하면 뭐하니. 걔 페로몬은 알파 오메가 새끼들만 맡을 수 있는데. 그래서 윤정한은 시간이 갈수록 그저 뚱했다. 알파니 베타니 하는 소리들이 점점 흐려져도, 아무리 형질의 평준화가 실현되고 있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도. 윤정한이 홍지수 페로몬 향 맡지 못한다는 건 유일한 절대 불변의 진리니까. 심지어 쟤 약혼도 했다. 어디서 별 것도 아닌 오메가 (누군지도 모른다.) 하나랑. 이젠 정말 찔러보지도 못할 홍지수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다. 걱숨이 부활급이었다. 이건 정말 가망 없다. 근데 각인 안했잖아. 원래 결혼도 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랬거든. 그래서 그 이유 하나로 홍지수 못 잊은 윤정한은 가망 없는 짓을 다시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분명 자기가 헤어지자고 했으면서. 알파로 발현하고 군법 상 알파 함대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던 홍지수한테 자신 없다고 한 건 윤정한이면서. 불안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고 한 건 윤정한이면서. 알파 오메가라고는 치를 떨었던 것도 윤정한이면서. 그런 것들이 죄다 무의미하게 홍지수를 보고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나는 알파 오메가에 속할 수 없단 거였다. 아마 그때도 똑같은 마음으로 헤어지길 택한 거겠지. 수십년 묵은 경멸은 사랑 앞에서 기묘한 형태로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다 지난 일이다. 한숨 한 번 쉬어낸 윤정한은 늘 그랬듯 분홍 빠삐용에 올라타 조종간을 당겼다. 허튼 상상에 빠질 바엔 불법 함대들 작살내고 오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그리고 이날 함대 박살 신기록을 세웠다.) 윤정한은 구질구질하게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무너지는 짓 따윈 안했다. 

 

 

 

   -

   홍지수 옆에는 늘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것도 그냥 사람이면 몰라. 씨발. 꼭 오메가들이. 걔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해서 그 다정에 함락되는 것들이 늘 많았다. 이건 알파로 발현되기 전부터도 그랬다. 근데 홍지수한테는 다정이 제일 쉬울 걸. 걘 태어나길 다정하게 태어난 애니까. 둥글둥글한 하트 같은 게 온몸에 터질듯 채워진 애니까. 그래서 다 받아주는 걸 꼭 다른 새끼들이 뭘 모르고 들러붙는데 내가 빡이 쳐 안 빡이 쳐. 씨발 대놓고 지랄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닌데. 

 

 

   오늘만 해도 그랬다. 함대에서 재회한 그날처럼 또 벌겋게 달아오른 오메가 하나가 홍지수 제복 잡고 늘어지는 걸 목격하는 바람에 윤정한이 달려가 그 오메가 목덜미에 (원래는 팔에 놔야하는 주사인데 빡쳐서 목에다 냅다 찔러버렸다.)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벌써 여섯번째로 목격한 일이었다. 덕분에 매번 귀찮다는 이유로 의약품 잘 안받아가던 윤정한은 꼬박꼬박 의무실에 들리게 됐다. 거참 고마운 일이지. 응 홍지수 짱. 심지어 최근에는 군의병 살살 꼬드겨서 하루에 한 개씩만 지급되는 히트 사이클 억제 주사를 한 번에 여러 개 뜯어내는 짓까지 했다. 남이 들었으면 기함할 만큼 나름 순정파스러운 짓까지 하고 돌아다녔다.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제발 지급 받은 주사 좀 챙겨다니라는 윤정한에 홍지수가 매번 같은 말로 대답했으니까. 자꾸 까먹어. 다른 건 칼 같이 지키는 애가 왜 맨날 이거만 까먹어? 너 오메가 좋아하니? 묻자 홍지수는 어깨 한 번 으쓱하고 그랬다. 

 

   난 약속 잘 지키고 있는 중이야. 정한아. 

 

 

 

   무슨 약속? 인상 팍 찡그리고 물었는데 이미 실신한 오메가 어깨에 둘러메고 걸어가는 홍지수가 그냥 씹었다. 쟤는 알파 되더니 힘만 쎄져가지고는. 지가 캡틴 아메리카야 뭐야. 괜히 툴툴 거리면서 함대 벽을 발로 쾅쾅 찼다. 다정도 병이다. 병이야. 홍지수야. 

 

 

   덕분에 윤정한은 그런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홍지수 페로몬에 대해서. 대체 무슨 향이길래 모든 오메가 새끼들이 환장하고 달려드는걸까. 사실은 맡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홍지수가 와인색 제복 벗어던져두고 전투기에서 내린 날. 윤정한은 자기가 전해주겠다며 제복을 손에 넣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맡을 수 있을 거 같았거든. 형질 그 차이 하나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맡지 못했다. 아무리 킁킁대도 그 어떤 향도 안났다. 섬유유연제 향만 존나 났다. 빡친 윤정한은 그 특권을 가진 오메가들이 급기야 참을 수 없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지들이 뭔데. 나도 못 맡아본 걸 맡아? 씨발. 

 

 

   하지만 그렇다고 묻자니 자존심 상했다. 내 입으로 평생 맡을 수 없는 향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었으니까. 홍지수 일인데 죽었다 깨어나도 타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걔랑 내 사이에 절대 허물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절대로. 

 

 

   그래서 괜히 빠삐용 앞에서 마주한 홍지수한테 시비나 털었다. 사실 시비보단 앙탈에 가까웠지만. 홍지수도 오랜 학습으로 그런 윤정한을 알아서 매번 바라는 대로 해줬다. 찡찡거리면 기댈 수 있게 해주고. 긁어보고 싶어서 찔러보면 바라는대로 긁혀주고. 그게 더 버릇 나쁘게 들이는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둘에겐 그런 것들이 너무 당연한 공식 같은거라. 빠삐용에 기댄 채 삐뚜름하게 서서 또 찡찡댔다.

 

 

   “홍 대위야 넌 약혼도 한 애가 왜 그렇게 오메가가 꼬이니? 관리 쫌 해.”

 

   “무슨 소리야 내가 약혼을 왜 해.”

 

   “했다며? 반지.”

 

   “그거 니가 보자마자 시비 걸어서 서프라이즈, 한 건데.”

 

 

   순간의 정적.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윤정한은 그대로 빠삐용에 올라탔다. 홍지수도 대꾸 없는 윤정한을 재촉하지 않았다. 먼저 전투기에 올라타는 윤정한 쳐다보다 덩달아 올라탔다. 태연한 표정으로 벨트를 맸다. 빠삐용 1호기, 2호기 출격 준비합니다. 무전 들으며 태연하게 조종간을 붙잡았다. 

 

 

   그리고 얼마 안가 윤정한은 타고 있던 빠삐용을 그대로 1인 빠삐용의 세 배 크기는 되는 불법 함대에 갖다 박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꼴 지켜보던 홍지수는 하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입술 한 번 끌어올리고 함대 옆구리에 처박힌 윤정한의 분홍색 빠삐용을 향해 나아갔다. 이거 삐졌다고 시위하는 건가. 덕분에 홍지수 빠삐용에 함께 탑승하게된 윤정한은 (노린 거 맞다.) 좁아터진 전투기에 몸을 구겨 넣은 채로 동그란 뒤통수를 향해 물었다. 

 

 

   “야 홍지수야. 하나만 묻자.”

 

   “니가 지금 얼마짜리를 날려 먹었는지는 알아?”

 

   “그 정도 값은 치뤄야 물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대체 뭐가 궁금한데.”

 

   “나 니 페로몬 향 궁금해.”

 

 

   홍지수 입장에서는 참 별 거 아닌 질문인데. 정말 수백번 들어본 질문인데. 질문한 대상을 생각하면 너무도 별 거인 질문이 된다. 알파 - 오메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그 윤정한이 형질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날이다. 그냥 오메가 싫어만 주구장창 외치던 윤정한이. 그래서 홍지수는 잠시 멈칫했다. 저 동그란 이마로 얼마나 머리 터지게 고민했을지가 눈에 선해서. 야 빨리 대답해엥. 

 

 

   “…장미.”

 

   “장미? 어울리네. 너무 홍지수 같다.”

 

 

   그 어떤 향보다 홍지수 같았다. 정말 그 무엇보다. 남들은 우드향, 박하향 이런 거라던데 어쩜 이렇게 홍지수 같은 향이 다있지. 홍지수 뒤통수 보고 실실 쪼개던 윤정한은 이런 향을 지들끼리만 맡았을 알파 오메가들에게 쌍욕 퍼붓다 다짐한다. 돌아가면 우주 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미 향수는 긁어 모으겠다고. 그럼 그 중 하나는 비슷하겠지. 

 

 

 

   핀트 나가듯 하나에 꽂히면 실천력 하나는 끝장나는 윤정한은 빠삐용 박살낸 탓에 쓴 시말서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에 향수를 사재꼈다. 그것도 하나같이 장미향으로. 우주 배송은 대부분 특급배송이라 금방 도착했다. 그럼 윤정한은 패키지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냥 향수 냄새 하나씩 맡아보는거다. 어느게 더 홍지수 같은지 따지면서.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향수는 몇개 안됐다. 원래 인위적인 향 같은 거 싫어하기도 했고, 코가 예민해서 마음에 안들면 곧바로 쓰레기통행이었다. 몇십개를 그렇게 사들여도 홍지수 같은 게 없었다. 괜히 다른 부대원들에게 어쩐 일로 향수냐고 애인 생겼냐는 소리만 들었다. 그래서 홍지수랑 같이 빠삐용 타는 날에는 향수 근처에도 안갔는데. 하필이면 갑작스레 출몰한 우주 해적단  때문에 다 망했다. 씨발. 여전히 장미 향수 수집중인 윤정한이 아침에 도착한 향수 하나 까보자마자 사이렌이 울려버린거다. 긴급상황 발생. 긴급상황 발생. 아씨발. 일부러 답지않게 뛰었다. 뛰면 향 날아가기라도 할까봐. 우주해적새끼들오늘진짜뒤졌다.니네오늘제삿날이다.아주개박살을내줄게. 이를 부득부득갈며 뛰었다. 

 

 

   하. 향이 날아가긴 무슨 씨발. 전투기에서 내리자마자 홍지수가 고개를 갸웃댔다. 

 

 

   “너 요즘 향수 뿌려? 향수 싫어하잖아.”

 

   “그걸 기억하네. 감동받게.”

 

 

   뻔뻔스레 굴면 넘어갈 줄 알았는데. 홍지수는 한참 생각하더니 그랬다.

 

 

   “정한아. 나 이런 싸구려 향 안나.”

 

   “어 잘났어. 난 베타라서 그딴거 몰라.”

 

 

   지금 누구 놀리나. 내가 왜 이지랄 중인데. 한발 두발 자꾸 거리를 좁히는 홍지수에 괜히 뒷걸음질 쳤다. 왜. 거기서 말하지? 나 아직 너 별로 안조아하는데? 야아. 말해봤자 속수무책이었다. 

 

 

   “정한아.”

 

   “왜.”

 

   “궁금해?”

 

   “씨발.”

 

   “그럼 알려줄게.”

 

 

   그대로 윤정한 양 뺨 붙잡고 입술을 가져다 댔다. 얄팍한 입술 깨물고 감쳐 물었다. 웃음 터져나온 윤정한이 아무리 단단해졌어도 여전히 마른 허리 붙잡고 고개를 틀었다. 알파들은 원래 사귀지도 않는데 키스해? 완전 발랑 까졌당. 혼자 생각하며 더 깊게 입술을 맞붙였다. 

 

 

   한참을 그러다 퉁퉁 불은 입술을 한 채로 떨어져나간 홍지수는 윤정한 턱을 제 손바닥으로 두 번 토닥이고 조금만 기다리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제 갈 길 갔다. 남겨진 윤정한만 터질듯한 귀를 한 채로 바닥에 주르륵 주저 앉았다. 아 진짜 알파 되더니 너무 발랑 까졌어. 감당이 안돼. 발랑까진 홍지수는 윤정한 기대에 따라 걔 몸에 제 페로몬을 묻혔다. 근데 윤정한이 알 수가 있나. 윤정한 온몸에 홍지수 페로몬이 진동한다는 걸 윤정한만 몰랐다. 윤정한이 함대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 온갖 시선이 따라 붙었는데 정말 윤정한만 몰랐다. 그나마 윤정한, 홍지수와 함께 함대 생활을 했던 부승관에게 다들 윤 대위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물었지만 승관은 모두를 말렸다. 냅둬. 저 형 알려주면 백퍼 더 좋아한다. 그 꼴은 못보지 내가. 응. 

 

 

 

   -

   돌아선 홍지수는 2년 전의 그날을 떠올린다. 윤정한이 뚱한 표정으로 검사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날을. 그때 스물다섯의 윤정한은 베타 대위였고 (빠삐용을 워낙 잘 타서 베타임에도 불구하고 초고속 진급했다.) 스물다섯의 홍지수는 베타 중위였다. 따지자면 윤정한이 홍지수 상관이었는데 홍지수는 최근 건강상태가 의심돼 검사를 받은 참이었다. 윤정한이 들고 있는 건 홍지수의 검사지였고. 사람 불러놓고 연인이자 상관인 윤정한은 검사지에 고개만 처박은 채 아무말도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길래 정한아, 하고 계급 떼고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부쩍 다정해진 목소리에 기합 빡 들어간 채 열중쉬어하고 있던 김 일병만 계속 눈치를 살폈다. 고개를 든 윤정한은 홍지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쩐지 잔뜩 질린 눈이었다. 홍지수는 덩달아 긴장했다. 

 

 

   “홍 중위님.”

 

   “네.”

 

   “오메가 좋아해요?”

 

   “네?”

 

   “오메가 좋아하시냐고요.”

 

 

   오메가를 내가 왜 좋아해? 되묻고 싶은 걸 참고 더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질문에 대답없자 윤 대위는 그대로 잡은 검사지를 손으로 구겼다. 씨발. 심각해진 분위기에 홍 중위는 결국 김 일병을 밖으로 내보냈다. 나가있어. 옙. 평소였다면 바로 계급장 떼고 찡찡거렸을 윤정한이 둘만 남았음에도 퍽 분위기가 심각했다. 뭔데 대체? 그리고 재차 묻는 질문도 아까랑 다를 바가 없었다. 대답해야 끝나는 건가. 이번엔 또 무슨 이상한 상황극이지. 홍지수는 사랑하니까 맞춰줬다. 이 이상한 상황극이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오메가 좋아하세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예. 그럼 앞으로도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싫어하세요. 전 오메가 싫어하거든요.”

 

 

   알맹이도 없이 시비만 털어대는 윤 대위에 점점 인상을 쓰자 정한이 검사지를 내밀고 머리를 짚었다.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내밀어진 검사지를 들여다보자 정한은 아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늘어지듯 말했다. 체념이라도 한 것 마냥. 정한이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너 알파로 발현했대. 그래서 중앙으로 가야 돼.”

 

 

   별 거 아닌 그 문장을 파악하기 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려서 홍지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검사지도 다 보지 않고 고개를 들자 재확인시켜주듯 더 느릿느릿하고 물렁물렁한 말투로 빛 다 죽은 눈을 한 윤정한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너 이제 알파래. 지수야.”

 

   “….”

 

   “난 너랑 각인 못하는데. 우리 어떡해?”

 

   “정한아.”

 

   “난 니가 나한테 질리는 게 제일 무서워.”

 

   “….”

 

   “근데 난 사실 안 그럴 자신 없거든. 나 혼자 불안해서 너 안 질리게 만들 자신 없어.”

 

   “….”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하자. 다 끝나기 전에. 난 너한테 버려지는 게 제일 무서워 지수야. …제발, 제발 여기서 그만하자.”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내가 어떻게 너한테 질려? 매번 나도 몰랐던 내가 되게 해주는 게 넌데. 그런 너한테 내가 어떻게 질려 정한아. 그때 좀 더 확신을 줬으면 달라졌을까. 아니 내가 붙잡았으면 그땐 윤정한이 질려서 도망갔을 걸. 걔는 억지로 잡아다 옆에 두려고 하는 걸 더 못견뎌 할테니까. 그래서 홍지수는 걔가 울면서 하자는대로 해줬다. 그거 다 이겨낼만큼 사랑하니까. 덕분에 홍지수는 2년을 돌아왔다. 그 시간동안 윤정한이 큰 만큼 홍지수도 자랐다. 중위였던 홍지수는 윤정한과 같은 계급이 됐고 알파 오메가 죄다 통틀어서 전투기 제일 잘탄다는 윤정한에 견줄만한 실력도 됐다. 애초에 다시 윤정한이 있는 후방의 베타 함대로 전출 신청을 한 것도 홍지수였다. 

 

 

   홍지수는 원래 순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었다. 윤정한에게 조차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여전히 불안하면 그 불안 내가 다 삼키면 되지. 이제 그 정도는 내가 다 감당하면 되는거지. 뭐가 어려워. 그러니까 정한아 나 믿어. 눈 딱 감고 거기서 한 발짝만 걸어와. 그럼 내가 여기 서있을게. 겁먹지 말자 우리. 홍지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분홍색의 향수병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2021년 8월 20일. 

 

   내일은 홍지수가 윤정한으로부터 두 가지의 통보를 받은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 홍지수는 두 가지의 통보를 이번엔 제가 윤정한에게 돌려줄 생각이다. 

 

 

 

   -

   원래 계획대로면 저녁 쯤에 우주를 향해 창이 뚫린 함대 내 핫플에서 윤정한보고 꽤나 로맨틱한 고백을 했어야 했는데. 홍지수는 지금 침대 위다.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만 붙어있다. 분명 몸 관리 잘했는데. 나도 모르게 무리했나. 홍지수는 지금 알파면 죄다 겪는 <러트>가 왔다. 그것도 하필. 오늘같이 중요한 날. 푹신한 침대에 누워 끙끙 앓는 주제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분홍빛 도는 향수병만 쳐다봤다. 저거, 줘야 하는데. 내 페로몬 향이라고 줘야하는데. 오늘 아니면 의미가 없는데…. 입에 약을 털어 넣어도 러트로 인한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점점 까무룩해지는 정신을 놓을 때 쯤. 콰앙! 하고 문이 열렸다. …문 잠갔는데 분명. 

 

 

   흐려진 시야로 겨우겨우 쳐다보자 눈 앞에 보이는 건 나가떨어진 방문을 밟고 망치 들고 서있는 윤정한이었다. 미친건가.

 

 

   “홍지수야 아퍼?”

 

   “…야.”

 

   “많이 아파? 약은? 감기? 몸살? 너 요즘 무리했지 그러게 무리를 왜해 남들이해달라는거다해주고도와주고또니할일두배로했지?너착한건알지만가끔진짜너무착해서문제야밥은먹었어?”

 

 

   홍지수는 분명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는데 윤정한 목소리를 들으니까 또 정신이 차려졌다. 이게 사랑의 힘인가. 뜨끈한 이마 짚으면서 계속 쫑알쫑알 앵앵 거리는 윤정한 멱살을 그냥 잡아 당기고 키스했다. 닥치라는 의미기도 했고 도와달라는 얘기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전개에 답지 않게 당황한 윤정한이 잠시 멈칫하다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덕분에 입술이 떨어졌다. 윤정한은 홍지수 양 뺨을 붙잡고 물었다. 

 

 

   “와 존나 발랑까진 홍지수야 혹시 러트?”

 

 

   러트인 알파한테 제 발로 나타났으면서 중간에 끊어먹는게 어디있어. 홍지수는 대답할 정신도 없어 그냥 다시 윤정한 멱살을 잡아 당겼다. 순순히 끌려 오면서도 찡찡댔다. 얘가 전에 한 번 해봤다고 그냥 다 해주는 줄 아네. 할거긴 하지만. 입술이 다시 닿기 직전에 윤정한이 물었다.

 

 

   “너 그럼 혹시…. 매번 러트 때마다 혼자 참았어?”

 

   “니가 다른 오메가 같은 거, 씨발 만나지 말라며.”

 

   “야아…. 아 홍지수우.”

 

 

   윤정한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는게 제정신 아닌 와중에도 보였다. 이미 홍지수의 장대한 계획은 다 틀려 먹었는데 이렇게 된 거 별 수 없어 홍지수는 제 발로 찾아온 윤정한에게 테이블에 있는 향수를 가리켰다. 

 

 

   “저거 뭔데. 가져오라고?”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 말에 알만하다는 듯 눈 휘어접으며 웃은 윤정한은 제 빠삐용 색과 똑같은 향수병을 보고 다시 곧장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향수 뚜껑을 열고 홍지수 몸 위로 들이 부었다. 야, 너 그거! 러트 때문에 목소리가 거칠어진 홍지수가 올려다봤지만 윤정한은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너 러트면 페로몬 향이 진동을 할 거 아냐.”

 

 

   결국 포기했다. 

 

   로맨틱하고 달콤한 고백은 무슨. 제 페로몬 향에 절여진 섹스였다. 

 

 

 

 

   다음날 윤정한은 눈도 못 떴다. 러트 왔을 때 두번 도와줬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몸에서 홍지수 냄새가 나는 거 하나는 너무 바라던 바라서 이정도면 버틸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피곤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홍지수가 조향사에게 제 페로몬과 함께 맡겨서 커스텀한 향수로 거의 샤워하다시피 했다. 괜히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유치원생마냥 들떴다. 샤워하면서 윤정한은 생각했다. 방 한구석을 차지하던 수십개의 향수들의 앞으로 행방에 대해. 아마 그것들은 죄다 상자박스에 처박힐 예정이다. 진짜 홍지수 향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뽀송뽀송한 상태로 장미향 풍기며 침대에 마주 누운 윤정한은 홍지수 입술 손가락으로 죽죽 잡아당기며 말한다. 

 

 

   “홍지수야. 나만 좋아해야 돼. 다른 오메가 같은 건 쭉 싫어하고 그냥 나만 좋아해.”

 

   “응.”

 

   “나 질려하면 안돼.”

 

   “응.”

 

   “나를 떠날시 넌 평생 운동도 못하고 좋아하는 자전거도 못타고 산책도 못하고 비즈도 못하고 꿀꽈배기도 못 먹어 알았지.”

 

   “넌 그럼 당근만 먹고 살아야 돼.”

 

   “야 좀 짧다? 내가 당근만 먹고 살겠다고 하면 어쩔래.”

 

   “울 거야.”

 

 

   잠깐만중요한문제야내앞에서울거야딴새끼들앞에서울거야. 니 앞에서 울건데? 와 눈물로 다시 꼬시네. 진짜 앙큼하다. 홍지수. 낑낑거리며 품안으로 더 깊게 파고든 윤정한은 올라간 입매 끝에 제 입술을 쉴새없이 가져다 댔다. 형질 그딴게 다 뭐라고. 사랑 같은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뭐 어때. 이렇게 또렷하게 느껴지는데. 그냥 처음부터 홍지수 하나만 있으면 됐던건데. 다 상한 탈색머리를 큰 손으로 연신 쓰다듬는 홍지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래 홍지수야. 보여주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걸.

 

 

 

 

   결국 윤정한과 홍지수의 세계에선 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완벽히 멸망했다. 이 세계 속에는 오직 둘만 존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 이야기는 원래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이니까. 

 

 

 

 

 

 

 

 

 

 

 

 

 

오메가멸망보고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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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따위가 정의한 운명이 아니더라도 둘의 사랑이 운명보다 깊고 단단하길 바라요. 윤홍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