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이 피는 날 봄이 올거야.
Day 1.
뉴스에서 꽃이 핀다고 했는데 꽃이 피지 않았다. 날씨가 엉망진창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교실 창 밖은 꽃이 펴야 보기 좋다던데. 좀 더 기다려야겠네.
Day 2.
오늘도 꽃이 피지 않았다. 학교에 갔더니 어제 시간표로 수업을 했다. 애들 행동이 어제 본 것처럼 똑같았다. 그럼 어제는 꿈을 꾼 건가?
Day 3.
오늘도 꽃은 피지 않았다. 어제랑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아무래도 하루가 반복되는 모양이다. 왜지?
Day 4.
여전히 꽃은 피지 않았고 나는 네번째 똑같은 하루를 보냈다. 뭐 때문에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Day 5.
오늘도 꽃이 피지 않았길래 학교에 가지 않았다. 수업을 계속 들으니까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들으면 시험에서 다 맞긴 하겠네. 잊어버리지도 않고.
학교에 가지 않은 대신 피씨방에 갔다. 게임 좀 하고, 인터넷 뉴스도 좀 봤다.
[속보] S급 센티넬 조슈아의 폭주로 인해 사상자 발생••• 가이드 없어 제어 불가능
몇 년 전 부터 센티넬이라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사건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국민이 단 하나뿐인 한국인 S급 센티넬인 조슈아를 알고 있었다. 본명은 조슈아 지수 홍.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지금은 귀화해서 한국인이 된 사람. 미국과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한 사람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대표 센티넬이 된 그 사람을 맡아줄 가이드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기사도 나는 것이다. 나이는 나랑 똑같고 우리학교 출신인데 좀 불쌍하다고 해야하나.
센티넬로 각성하면 초능력이 생기고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한다. 그걸 진졍시켜주는 역할이 가이드이고. 가이드는 보통 각성한 것도 잘 몰라서 그 수가 적다고 한다. 조슈아는 급이 맞는 가이드가 없어서 폭주한 거지만. 근데 혹시 몰라 내가 가이드일지.
그나저나 안됐네, 저 센티넬. 폭주를 못 멈추면 결국 죽는다던데.
Day 6.
꽃이 피지 않는다.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는다. 피씨방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문득 피씨방에서 봤던 기사가 생각나서 센티넬 관리 센터를 찾아갔다. 센티넬 관리 센터는 S급의 센티넬을 내새워 지원을 받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허름했다. 중간에서 돈 빼돌리고 있겠네. 이러니까 센티넬이 폭주를 하지.
센티넬이 아직 폭주하기 전이라 센터는 멀쩡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서 가이드 각성 검사를 문의했더니 흔쾌히 해준다고 했다. 가이드가 그렇게 적은가. 설마 가이드로 각성했겠어?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옛날 사람들은 참 똑똑하다.
나는 놀랍게도 S급 센티넬을 유일하게 가이딩 할 수 있는 S급 가이드였다. 놀라운 건 둘째치고 이걸 이제 알면 곧 폭주하는 조슈아를 막기가 힘들어지잖아.
얼마 안 있어 조슈아가 폭주했다. 나는 그 현장에 있다가 휩쓸려서 죽었다.
Day 7.
꽃이 피지 않았다. 죽어도 이 하루를 반복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센티넬 관리 센터로 향했다. 생각해봤는데 조슈아의 폭주를 막아야지 이 일곱번째 맞는 똑같은 하루도 끝날 것 같았다. 예전에 반 친구가 재밌게 보던 루프물에서는 큰 사건이 있고 그 원인을 없애거나 해결해야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더라고.
가이드 각성 검사 결과는 어제와 똑같았다. S급 센티넬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S급 가이드가 됐다. 폭주는 오후 4시쯤이었고 지금은 오후 12시였다. 4시간동안 가이딩을 배우고 조슈아의 폭주를 멈출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러면 내일은 꽃이 피겠지.
"지수야, 이 쪽은 윤정한군. 윤정한군도 알고 있죠? 우리나라 유일한 S급 센티넬 조슈아에요. 윤정한군이 앞으로 가이딩을 해줘야 할 센티넬이기도 하고."
"저 가이딩하는 법 모르는데요?"
"일단 접촉가이딩은 닿기만해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교육은 나중에 해줄테니 지금은, 음... 손부터 잡아볼래요?"
조슈아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도 왜 갑자기 가이드가 돼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꽃이 피는게 보고 싶어서. 손을 뻗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조슈아는 손을 잡았다. S급은 아니더라도 가이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나름 접촉 가이딩에 익숙한 것 같았다. 그 가이드들은 짝이 있어서 대부분 방사 가이딩으로 해준다고 아까 센터 직원들한테 들었지만.
"괜찮아 슈아야? 며칠 전부터 많이 예민해졌잖아.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조슈아는 아까보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행이면 다행인거겠지.
이제 끝났나? 내일은 꽃을 볼 수 있을까?
응 아니었다. 조슈아는 원래대로 오후 4시에 폭주를 했고 나는 또 그 폭주에 휘말려서 죽었다. 시발.
Day 15.
꽃이 피지 않았다. 조슈아를 만나고 가이딩을 해줘도 나는 계속 폭주에 휘말려 죽기만 했다. 나보고 어쩌라는건지. 조슈아 능력은 불이어서 죽을 때 아프기는 겁나 아팠다. 제일 아프게 죽는게 화형이라는데 나는 벌써 8번 정도 화형을 당했으니까. 이제 어떻게 죽어도 편하게 죽을 수 있나.
검사 기다리기도 지쳤다. 포기하고 그냥 대뜸 조슈아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슈아랑 친구에요?"
"네? 네."
"잠시만요."
혹시 몰라서 교복을 입고 왔더니 별 의심은 안 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슈아는 나랑 같은 학교를 다녔었다.
"들어가봐요. 슈아가 좀 많이 예민한데, 정한군이라고 했더니 들어오라고 하네요."
교복에 달려있던 이름표를 보고 이름까지 같이 전해준 모양이었다. 근데 날 어떻게 알지?
"조슈아. 나 가이드야. 너 가이딩 해줄 수 있어."
"정한아. 포기해."
"너 나 알아?"
"너도 나 알잖아."
그거는 너가 유명해서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학교에서 본 걸로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어쨌든, 내 폭주는 막을 수 없어. 너가... 가이딩을 완벽하게 할 줄 알면 몰라도."
"그게 무슨 소리야."
"가이딩 더 배워와, 정한아."
조슈아가 웃으면서 날 쫓아냈다. 그리고 또 오후 4시에 폭주를 했고 나는 또 똑같이 휘말려 죽었다.
Day 31.
꽃이 피지 않는다.
조슈아가 말했던 대로 가이딩을 배우고 있다. 가이드 각성 검사를 하고 가이딩을 배우고 자면 또 똑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배운 게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Day 44.
가이딩을 받으면서 슈아를 찾아갔다. 내 생각에는 슈아도 계속 삶을 반복해서 사는 것 같았다. 내가 44일째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처럼. 그래서 물어봤더니 맞다고 해서, 그냥 무작정 찾아가고 있었다.
"슈아야, 폭주를 안 할 수는 없어?"
"폭주도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냐."
"그러면."
"너가 날 완벽하게 가이딩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몰라도 돼. 내일 봐, 정한아."
슈아랑 얘기하다가 4시가 되었다. 슈아가 웃는 얼굴로 폭주했다. 가오리같다.
Day 63.
꽃이 피지 않았다.
나는 이제 가이딩을 완벽하게 할 줄 안다.
"지수야."
"왔어, 정한아?"
"오늘이 끝이다, 슈아야. 수고했어."
"정한아, 너도 수고했어."
지수가 웃었다. 폭주할 때 봤던 그 가오리같은 웃음이었다.
"정한아 그거 알아? 나 학교 다닐 때부터 너 알고 있었다?"
"왜?"
"너 완전 유명했잖아.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노래 잘 부르는 신입생으로."
"지금은 너가 더 유명해."
"알아. 나 진짜 유명하더라."
"이제 더 유명해지겠네.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노래 잘 부르는 S급 가이드가 생겼으니까."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노래 잘 부르는 S급 가이드는 나만 가이딩 해줘?"
"너 때문에 가이드 됐는데? 안 받아주면 나 속상해, 조슈지."
"조슈지는 또 뭐야?"
"있어 그런거."
나는 슈아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손을 잡는 걸로는 큰 가이딩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한아."
"왜, 조슈지."
"우리 키스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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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꽃이 피었다. 나는 학교가 아닌 센티넬 관리 센터로 향했다. 중간에 누가 돈을 빼돌리는지도 알아야했고, 슈아가 보고 싶었다. 내 센티넬 폭주 안 하게 막아야지.
슈아가 계속 오후 4시만 되면 폭주하는 건 센티넬 연구소의 연구소장이 계속 이상한 실험을 해서 그랬다고 한다. 폭주만 하면 연구소부터 때려부시던데 그래서 그랬나. 그 연구소장은 죽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화형으로 죽었다고 했다. 안봐도 슈아였다.
슈아는 이제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노래 잘 부르는 S급 가이드가 생겨서 폭주 안 하고 잘 지낼 것이다. 나는 S급 가이드로 새로운 삶을 살겠지만 행복할거다. 슈아가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