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시, 여름
초인종이 달랑거리더니 곧 문이 열리고 멀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꽃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그는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인지 많은 짐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저…. 꽃 좀 사려고 하는데…….”
“어떤 꽃이요?”
“저 이 꽃 좀 포장할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꽃집에는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꽃집 주인이 꽃 포장에 신경 쓰는 동안 지수는 그 꽃집에 있는 모든 꽃에 축복을 내려주었다. 예쁘게 개화해서 다른 인간들에게 좋은 기억만을 전해주기를 바라면서.
“혹시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아……. 네.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든요.”
“어 그래요. 그럼 좀 더 예쁘게 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지수는 예쁘게 포장된 꽃을 받고 꽃집을 나와 익숙한 길을 걸었다. 길 끝에는 안개꽃이 만발해 있었다. 꽃밭 안에 들어가 한 송이 피어 있는 마리몬드를 건드리자 땅이 갈라졌다. 갈라진 땅에는 지하로 향하는 길이 생기고 그 길을 따라 쭉 걸어갔다.
4개월 만에 온 길은 좀 어두워지고 많은 사람이 다녀간 것인지 어질러져 있었다. 좀 어두워지고 더럽네.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서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스틱스강 부둣가에 도착해 있었다.
스틱스강에는 뱃사공인 카론이 지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론은 익숙하다는 듯이 지수의 짐을 들고 배에 실었다. 짐을 다 실은 배는 곧 반대편을 향해 출발하였다.
“잘 다녀오셨나요?
“그래. 자네도 잘 지냈나?”
“저야 뭐 항상 똑같지요.”
스틱스강 건너편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수는 카론에게 지상에서 산 물건을 하나 주려고 했지만 지하에서 지상의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계속된 거절에 지수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자 당황한 카론은 지상의 물건 대신에 은화 한 닢만 자신에게 달라고 했고 지수는 은화 한 닢을 꺼내 카론에게 건네주었다.
“항상 고맙네.”
“이게 제 일인데요. 그럼 편히 가십시오.”
“자네도 마찬가지네.”
배에서 내려 명부의 입구에 도착하니 케르베로스가 보였다. 인간을 심판하는 듯한 케르베로스의 모습에 지수는 조용히 들어가려고 했지만 케르베로스는 지수에게 달려들었다.
“잘 지냈니?”
“그르르”
“잘 지냈구나. 내가 좀 더 놀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해야 하는 게 있단다. 좀 있다 와서 놀아주마.”
케르베로스는 지수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지 살짝 으르렁거렸지만 좀 이따 와서 놀아준다는 지수의 말에 살짝 시무룩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수는 맘이 아파져 지상에서 산 간식을 던져 주었더니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로 가서 다시 인간을 심판하기 시작하였다.
입구를 지나 건물 안을 들어가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명부의 왕이 앉을법한 커다란 검은 색 의자가 한 개 놓아 있었다. 하지만 지수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고작 의자가 아니었다. 그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이 거기에 없었다.
“이놈의 영감탱이는 어디가 있는 거야”
지상에 있으면서 친구가 가르쳐 준 말을 한번 해 보면서 실실 웃었다. 친구 앞에서 할 때는 어색해 보였지만 좀 익숙해진 것 같았다. 배운 말 중 몇 개는 정한에게 가르쳐주겠다고 다짐하면서 정한이 있을 것 같은 석류 정원으로 발을 돌렸다.
정한은 석류 정원에 있었다. 지수는 석류를 어루만지고 있는 정한을 큰 소리로 불렀다. 조용하던 궁전에 울려 퍼진 큰 소리에 놀라 뒤를 돈 정한이 본 것은 정원 입구에 웃으면서 서 있는 지수의 모습이었다. 반가운 모습에 정한은 곧 지수에게 달려갔다.
“다녀왔나요?”
“네, 잘 다녀왔어요.”
“지상은 어떻던가요?”
“항상 재미있지요.”
“그럼 바람이 차니 들어가면서 얘기해 줄 수 있나요?”
바람이 차다며 정한은 지수를 이끌고 같이 쓰는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가는 길에 지수는 지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나서 얘기했다. 신나서 얘기하는 지수의 모습에 처음에는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 지수에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나서부터는 정한의 표정에 점차 질투가 쓰여 있었다. 지수는 정한의 표정에서 질투를 읽었지만 속으로 살짝 웃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무척 재미있으셨나 봅니다.”
“그럼요.”
“부인께서는 제 생각도 안 나실 만큼 재미있으셨나 봅니다.”
지수의 말이 끝나자 튀어나온 정한의 질투에 지수는 진실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이 퍼진 지수의 모습에 정한은 질투를 숨기지 않고 그들의 방으로 향했다. 더 질투 나게 하면 삐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지수는 품속에 숨겨둔 꽃다발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여기요.“
지수의 갑작스러운 꽃 선물에 정한은 당황하면서도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정한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지수는 더욱 신나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상의 재미있기는 했지만, 당신이 없어서 좀 외로웠어요. 당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어요.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꽃이 시들지는 않을 테니…….”
“어……. 어?”
“뭐해요. 안 받아요?”
“어….”
“사랑해요. 돌아왔어요, 내 하데스.”
“잘 돌아왔어요. 내 페르세포네.”
그리고 정한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지수를 끌어안으면서 그와 입을 맞췄다. 지상에 갔던 풍요의 여신이 다시 지하에 옴에, 지하 세계에 다시 풍요가 돌아왔다. 그녀는 언젠가 다시 그곳을 떠나겠지만, 지하에서는 다시 돌아올 그 풍요를 기다리면서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