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리빙빙
천사를 죽이는 방법은 간단했다.
“날개를 꺾으면 돼.”
날개 달린 것들은 도망칠 방법을 끊어 두면 죽게 돼있어. 성당 뒷마당에서 입에 올리기엔 상당히 불경한 화제였다. 아무 대꾸 없이 손에 들린 축구공만 빙글 돌았다.
“너 닭 잡는 법 아니?”
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 생김새와 가끔 후원이 넉넉히 들어왔을 때 열 명당 한 마리라는 기적의 타산으로 나눠 먹던 치킨의 원재료란 사실 뿐이었다. 기실 더 알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지식수준은 닭을 죽이는 방법 따위가 아니었다.
“구석으로 몰아서. 날개를 꺾어야 해.”
도망칠 곳을 두지 말아야 해. 천사를 죽이려면 말이야. 천사를 죽여서. 도망을 치면. 흐리멍덩한 눈으로 줄곧 해왔던 말을 반복하던 아저씨는 곧이어 달려 나온 수녀님의 손길에 멀리 밀쳐졌다. 노쇠한 수녀님의 아귀힘이 그리 강할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동그라졌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 그제야 그 아저씨가 동네에 소문이 파다한 미치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성당 주변을 늘 맴돌며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뒷모습을 두고 종종 수리하러 오시는 철물점 아저씨는 혀를 찼다. 신실한 신자였지만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뒤로 저렇게 정신이 빠져버렸다고. 쫓겨 나가면서도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낯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어 그런가. 나는 날개 달린 것들을 볼 때면 그 때의 허무맹랑한 천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변색된 입술로 찾던 천사. 날개. 도망이란 본능과 부러지는 일. 굉음과 함께 구름 위를 내달리고 있을 헬리콥터 내지는 비행기부터 돌멩이보다도 발에 채이는 비둘기까지. 날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들을.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에도 나는 떨어지는 꿈을 꿨다.
“형. 왜 대답이 없어.”
“어?”
공교롭게도 P와의 사이에 자리한 또한 치킨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동네 술집 아무 곳이나 골라 들어왔는데 하필 그가 안주로 주문한 것이 치킨이었던 것이다. 한때 날개가 달렸을 무언가. 날개 달린 것들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온다.
“미안. 무슨 얘기 했어?”
“우리 보육원 망했대.”
아, 보육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엔 생각나는 대응법이 없었다. 성당에 딸려 있던 보육원. 본당 규모로 미루어 전혀 궁핍하지 않은 살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많았던 보육원이 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기를 나온 게 열네 살 쯤 일이었는데 이제까지 버텼다는 게 차라리 용한 일이었다.
“이제야 망한 게 신기하네.”
“근데 있잖아.”
치킨 날개를 잡아 벌리던 P는 찌든 나무 파티션으로 갈려진 좌석임에도 누군가가 엿듣기라도 하는 듯 부단히 좌우를 살핀다.
“후원금 삥땅치다가 걸려서 다 뒤집어졌대.”
짐작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다.
“원장수녀님 지옥 가시겠네.”
“그러네, 맨날 뭐만 하면 지옥 간다고 우리한테 소리 질렀었는데.”
표독스럽게 일그러지던 원장수녀님의 얼굴을 따라하며 이죽이는 P는 사실 보육원 시절 가장 그분에게 충성했던 아이 중 하나였다. 수녀님에게 별별 이유로 트집을 잡혀 혼나고 식사를 금지 당했던 아이들로부터 배신자란 낙인이 찍혔던 P. 이리저리 치이던 게 불쌍해 여러 번 챙겨준 연으로 각자 보육원을 떠나고 나서도 종종 연락을 하긴 했지만, 나는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 내고 부풀려 원장수녀님에게 밀고했던 아이가 정말 P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군상은 제아무리 다양하다 한들 모순을 기저에 깔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근데 어떻게 알게 됐냐?”
“뭘? 보육원 망한 거?”
“어. 아직도 연락해?”
“연락은 무슨. 거기 나오고 한 번도. 뭐 좋은 데라고.”
실은 말이야. 보육원이 망했단 소식을 전하던 때보다 한참 말려 들어가는 목소리.
“변호사한테 연락이 왔어.”
“죄졌냐?”
“아 장난치지 말고 쫌.”
“변호사가 왜 널 찾아.”
“후원 일 때문에 그렇다고. 아는 거 좀 있냐고 물어보더라. 명단 보고 전화했다던데, 그 망할 새끼들이 보조금 타먹겠다고 애들 명단 건드린 게 하루 이틀이 아니더래. 내가 제일 오래 있던 앤줄 알더라고.”
“네가 나보다 늦게 왔나?”
“형보다 늦게 와서 형보다 일찍 갔지. 형은 이름만 있고 번호만 모른다길래. 형 번호 알려줬어.”
“뭐?”
정적은 잔이 테이블에 부딪치는 소음과 함께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진행을 맞닥뜨린 모양으로 P의 눈이 잘게 떨린다. 이 새끼 무슨 일 한다고 그랬더라. 아직도 약 팔고 다니나.
“아니, 그거 일 좀 도와주면 사례도 해 준다 그러고, 형, 형, 나도 통화 십 분 조금 하고 오십만 원 받았어, 나쁠 거 없잖아. 형 어머님도,”
더 이상 P를 마주 볼 일이 없을 거란 직감이 든다. 피차 이로울 것 없이 추억팔이 쯤으로 맺어진 관계는 선이 명확해야 했는데, 방금 그 선이 끊어졌다.
“간다.”
붙잡는 말에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쇳소리가 나는 문 밖으로 몸이 빠져나왔을 때에야 계산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오십만 원이나 받았다는 새끼한테 삼만 원 지출쯤이야 아무렇지 않겠다 싶어 뒤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올라가는 길목에는 편의점 세 개가 줄지어 있었다. 씨유 지에스 세븐일레븐이 그 좁은 구역을 나눠 먹은 모습이 공평하기 짝이 없었다. 파르스름한 간판 불빛들을 보자니 허기가 밀려왔다. 어차피 저 새끼랑 더 볼 일도 없는 거, 치킨이라도 더 먹고 나올 걸. 종종 점주들이 알바생을 대동하여 서로 쓰레기 불법투기니 뭐니 다투는 길을 지나 구석진 곳에 자리한 슈퍼에서 컵라면을 골라 샀다. 그러니까 나는. 가로등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 숨을 고른 뒤, 다시 계단을 내려가 반지하 방에 들어 쉬는 것이 오늘 하루 계획의 마지막이었다. 사실 매 하루의 마지막이 그러했다. 대체 어느 시절에 만든 건지 모서리가 전부 무너져 내린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선 보람도 없이 다시 아래로 추락하길 반복하는 일상이었는데.
"누구세요?"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대화였다.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가는 입구를 커다란 세단이 막고 있다. 보통이라면 뭐야, 뭔데, 내지는 답답한 욕설이 나와야 했겠지만. 내 앞을 막은 것은 차가 유일한 것이 아니었다.
"네가 정한이니?"
사람. 까만 세단만큼이나 까맣고 깔끔한 옷을 차려 입는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듯 기대어 있었다. 1층과 2층에 거주하는 주인 할머니에겐 저 연치의 자녀나 손자가 없다. 꼭대기 옥탑방에 사는 자칭 뮤지션은 벌써 이 주째 불을 켜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저 남자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누구시냐고요."
"인상 좀 펴."
지금 이게 무슨.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인상 좀 펴라고. 그리곤 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을 꺼내어 내민다. 직사각형의 딱딱한, 미색이 감도는 종이. 일수 찍는 인간들이 뿌리던 전단 명함 사이즈라는 건 진작 알아보았지만. 정직하게 ‘명함’이 될 만한 것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 두 손을 내밀었다가, 손이 닿기도 전에 빠르게 후회한다. 낯선 이에게 처음부터 저자세로 비춰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홍지수."
홍지수. 반듯하게 적힌 이름과, 이름보다 더 작은 글씨로 단정하게 쓰인 단어. 변호사. 문득 P가 전화를 받았다던, 돈을 받아 내 번호를 넘겨줬다던 변호사가 떠오른다.
“변호사랑 할 말 없어요.”
“은성보육원 출신이라던데.”
“그런 데 몰라요.”
경기도. 광주시. 은성보육원. 몰라? 명함을 내밀던 손을 다시 주머니로 돌려놓은 남자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답을 원했다. 감흥 없는 목소리에 마찬가지로 감흥 없는 대답을 돌려준다. 네, 몰라요.
“보육원에 제일 오래 있던 애라면서.”
“저 고아 아닌데요.”
“보육원이 어디 부모 없는 애들만 가는 덴가.”
똑똑한 애라고 들었는데. 눈을 접어 웃은 남자는 자못 충고하듯 어깨를 두드려온다. 똑똑하게 굴어 봐. 정한아. 보기보다 커다란 손은 밀쳐내려 해도 악력으로 버틴다. 근육이 뭉친 곳을 정확히 누르는 손길에 앓는 소리를 냈더니, 그제야 힘을 풀어낸다.
“내 의뢰인이 그 보육원에 거액을 후원하던 분이셨는데, 지금 화가 많이 나셨거든.”
“제 알 바 아닌데요.”
“내 알 바라서.”
“그럼 그쪽이 알아서 하세요.”
“어머님 다시 중환자실 들어가셨던데.”
저 새끼가 진짜.
“중환자실 입원이 한두 번이 아니시더라. 해 봐서 알잖아, 정한아.”
여전히 답 없이 싱글거리는 낯에는 흠집 하나 뜨지 않는다. 몸 갈아 수발들다 너도 갈리면 어떡하니. 걱정 같지도 않은 걱정으로 상대를 휘두르는 태가 익숙하다. 공갈 협박 치고 다니는 게 변호사에요? 이를 악문 물음에 돌아오는 답. 변호사니까 공갈 협박 치고 다니는 거지. 이길 수가 없었다.
“얼마 주는데요.”
“병원비, 추후 간병비, 원한다면 요양시설 비용까지. 재발하면 재발하는 대로 다시 지원.”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든 해야 한다면. 최소 병원비 전액을 부를 생각이었다. 변호사의 말마따나 똑똑하게 굴어야 할 필요가 있는 형편이었기에. 그러나 대가는 예상치를 크게 상회했다. 이쯤 되어 의심이 들 타이밍이었다. 과도한 보답은 높은 위험부담에 곧장 결부된다.
“원장이 얼마나 해쳐먹었길래 그래요?”
“네가 대신 메꿔주게?”
“나한테 줄 돈으로 메꾸면 될 것 같은데.”
네 돈도 아니고 내 돈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니. 준다고 할 때 받아. 목적한 바를 가뿐하게 달성한 변호사는 차키를 꺼내든다.
“명함 주소로 내일 찾아와.”
컵라면 말고 밥 먹어. 어떻게 알았는지 육개장 작은 컵이 하나 달랑 들어있는 검정 봉투를 툭툭 치고서. 그리곤 시동을 건다. 장위동 골목길에 맞지 않도록 화려한 차체가 오그라드는 길 사이를 유유히 빠져 나간다. 빨갛게 어룽지는 라이트가 골목 끝자락에 신호등마냥 걸릴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핸드폰을 켜니 얼룩진 반점이 떠돌았다. 키패드가 뜨고 다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용건만 간결히 작성하기로 한다. 내일 못 나갈 것 같아요. 작업반장님께 문자 한 통을 보낸 뒤 핸드폰을 컵라면이 든 봉투에 던지듯 넣었다. 그날 밤에도 나는 떨어지는 꿈을 꿨다.
“월세 얼마 내요?”
“그게 궁금해?”
“물어 보는 건 다 대답해준다면서요.”
“난 보육원 일 물어볼 줄 알았는데. 월세를 궁금해 할 줄은 몰랐네.”
명함에 적힌 서초동 빌딩에 도착했을 때 처음 한 일은 엘리베이터 스위치 옆에 적힌 호수별 안내판을 빠르게 훑는 일이었다. 옆 사람이 눈치 챌까 빠르게 1층부터 18층까지를 오가던 눈에 홍지수, 밤새 쥐고 있어 모퉁이가 뭉툭해진 명함 속 이름이 걸렸다. 곧이어 열린 엘리베이터에선 망설임 없이 17층을 눌렀다. 이런 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란 인상을 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생각은 끝내고 온 거지?”
“그럼 여기까지 왜 왔겠어요.”
“형식상이어도 계약서 하나는 찍어야 해. 도장 갖고 오라고 할 걸 그랬네.”
도장 같은 거 있지도 않아요. 도장 없어? 은행 통장은 어떻게 해, 그럼.
“요즘 은행도 그냥 싸인 하면 돼요.”
“아, 그래? 몰랐네.”
“돈 많아요?”
“많지.”
“통장 안 만들어 봤어요?”
“나같이 돈 많은 사람은 은행가면 알아서 다 해줘서.”
“재수 없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돈 많이 버는데요?”
“운이 좋아서?”
부러 시비를 거는 말에도 홍지수는 싱글 웃기만 할 뿐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람을 앉혀 두고도 제 급한 일에만 매진하는 태도에 속이 뒤틀려 어제 본 세단만큼이나 까맣고 깔끔한 소파에 길게 몸을 뉘였다.
“...신발 닿게 하지 마.”
“싫은데요.”
매끈하던 미간에 골이 팬다. 아, 이건가. 드디어 네모 각진 노트북을 벗어난 시야에 정확히 들도록 신발 밑창을 제대로 소파에 대고 문지른다.
“사람 불러 놓고 먼저 딴 짓 한건 변호사님이잖아요.”
“바람난 애인 잡는 것처럼 얘기하네.”
“미쳤어요?”
“네 말이 먼저 그랬어. 불러놓고 딴 일해서 미안한데, 잠깐만 기다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면 네가 밟은 소파나 닦던지. 꼭 심술 난 어린애를 달래는 말투라 자존심이 상했다. 홍지수는 한동안 부지런히 손가락만 놀렸다. 대갚듯 나도 핸드폰을 집어 든다. 용량은 쥐꼬리만 한데 배터리 효율은 바닥을 친 구형 스마트폰에 제대로 돌아가는 게임이라곤 기본으로 깔린 골프 게임밖에 없었다.
“이제 얘기 할까?”
12홀쯤 되었을 때야 노트북을 덮은 홍지수는 발자국이 선명히 남은 소파 밑자락을 눈짓하며 다가왔다.
“뭐 하면 되는데요?”
“간단한 증언. 아직 재판은 안 잡혀서 당장 증인까지 해 주진 않아도 될 것 같고. 네가 해주는 말을 녹음할거야.”
“그거면 돼요?”
“그거면 돼.”
“나한테 불이익 없는 거죠?”
“너한테 불이익 줄 사람이 누가 있겠니. 뭐, 너네 원장수녀님 잡혀갔다고 하느님이 지옥에 떨어뜨릴까봐?”
“됐어요, 그럼.”
뒤집힌 채로 나뒹구는 핸드폰을 멀찍이 밀었다. 홍지수가 꺼낸 뚜껑 덮힌 펜, 그 펜을 내민 손 위에 자리한 시계며 그가 입고 있는 옷까지. 3인지 4인지 모를 시리즈 넘버가 달린 핸드폰이 조금 쪽팔렸다.
“별 거 아니고. 비밀유지서약서랑 계약서 내용이야.”
“진짜 사기 치는 거 아니죠? 이래놓고 장기 빼가고 막.”
“그래, 눈 뜨면 새우잡이 배 타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잘 읽어보고 서명해.”
말려 올라간 입술 끝을 응시하다 계약서로 고개를 돌린다. 변호사는 참. 묘하게 생겼다.
“천천히 읽고 서명해.”
“다 읽었어요.”
“벌써?”
“노가다 뛴다고 글자도 모를까 봐요?”
“열등감이 원래 좀 심한 편이야?”
“뭐?”
티 내지 마. 다른 사람들한테 우습게 보여. 대수롭지 않게 폭탄을 던진 홍지수는 길을 잃은 내 손에 들린 종이 두 장을 가볍게 앗아간다. 윤정한. 글씨체는 생긴 거랑 좀 다르네. 글씨 연습 좀 해야겠다.
“너는 그냥 나한테 하듯이 말하면 돼. 후원금 금액상으로는 보육원은 무슨. 베르사유 뺨치거든. 그냥 거기가 어땠는지, 처우는 어땠는지, 학대는 없었는지. 그런 거 말해줘.”
“학대요?”
벌 준 거랑. 밥 굶긴 거랑. 또... 어떻게 해야 이 두 가지를 조금이라도 있어 보이게 포장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거기가 보조금 타먹으려고 명단을 조작했더라고.”
P에게 이미 들은 사실이다. 한 푼 더 받자고 그러는 정도야,
“없는 애를 있다고 하고. 있는 애는 팔아버리고.”
“...네?”
“정황이 잡혔어. 입양 보낸 애들 서류 중에 조작된 게 나왔거든.”
사진도 있고 입양 심사를 받았으니 애는 있었단 건데. 정작 애가 입양을 간 데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홍지수의 말투는 여상하기 짝이 없었다. 시끄럽게 흘러가는 뉴스 화면 밑자락의 쓸모없는 헤드라인을 읽는 것처럼. 어디 중국 절벽에서 셀카 찍던 유튜버가 떨어져 죽었대, 그런 거리 멀고 실없는 소식을 전하듯.
“몰랐구나.”
“...”
“자책하지는 마. 네가 알았다고 뭐가 달라졌겠니.”
정한이가 보기보다 착하네.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날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내린다는 걸 홍지수는 모르는 걸까. 펜 뚜껑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비싼 펜이 뚜껑 없이 테이블을 굴러 떨어지는 꼴을 보고도 책상으로 돌아선 홍지수다. 아. 흔들리는 내 눈을 보고도 녹음기를 챙겨드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알면서 저러는 거구나. 신경을 쓰지 않을 줄 알았다니.
“최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필요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지만.”
“...”
“뭐, 그래도 내 의뢰인이 원하는 방향이면 더 좋겠지.”
녹음기 버튼이 눌린다. 나는 날개가 꺾인 아이들을 떠올렸다.
집 앞을 막아선 홍지수와 마주쳤던 날로부터 계절이 바뀌었을 때, 나는 장위동 반지하 집을 나와 엄마가 있는 병원 근처 원룸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너 그 쥐구멍만한 데에 짐을 얼마나 우겨넣고 산거야?”
“그럼 반지하 산다고 거지처럼 살아야 돼요?”
이사 기간이 맞물려 짐을 둘 곳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던 짐 사이로 시비를 걸며 출근한 홍지수는 오늘도 반듯한 정장 차림이다. 겨울만 아니었어도 다 내다 버렸을 거라고 오늘도 성을 낸다.
“그렇게 일하기 싫다고 하더니. 거 봐.”
내 덕분에 이사도 가고. 좋지? 생색도 잊지 않는다. 사무실에 보조가 필요하다더니 정말 덜컥 취업을 시켜준 홍지수 덕에 더 이상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타일이며 포대를 옮기던 손으로 변호사의 차 핸들을 처음 봤던 것보다 더 비싼 펜 따위를 잡는다.
“나만 좋은 일인가?”
“...”
“변호사님도 나 감시하고 잘 된 일이지.”
꼭 이럴 때마다 홍지수는 싱글거리며 웃는다. 웃는 낯과 그렇지 않은 낯의 온도 차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오가는 겨울 낮 일교차보다도 더욱 극적이다. 생에 가진 자격 증명이라곤 고등학교 졸업장과 군 제대뿐인 인간을 보조랍시고 들여놓을 변호사가 어디 있어. 나는 돈이 필요했고 변호사는 철저히 의뢰인을 위해 움직였다. 상호 손해 볼 것이 없는 관계 속에 나는 처음으로 반절 잘린 햇살이 아닌 온전한 볕이 드는 집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계절이 바뀐 이후로는 떨어지는 꿈을 꾼 적도 없다.
“10시에 대명 쪽에서 올 거예요.”
“10시? 11시 아니었나?”
“조금 당길 수 있냐고 연락 와서. 어제 퇴근 전에 변호사님이 괜찮다고 했잖아요.”
“아, 그랬지.”
요즘 홍지수와 가장 연락이 많은 곳은 대명이었다. 서초동 오는 길에 직사각형으로 크게 서 있는 투명한 건물을 본사로 가진 대기업. 병원비며 부대비용까지 사례금 명목으로 지불할 능력이 되는 의뢰인을 받는 변호사다운 규모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정한아, 너는 나가 있어.”
그리고 사람이 찾아올 때면 언제나 문을 닫는 홍지수. 생전 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표정을 굳힌 홍 변호사가 손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면, 응접실 격으로 딸린 공간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이 남게 된다. 닫힌 문 너머로 넘어오는 말이라도 있을까, 핸드폰 대신 검은 문을 노려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누굴까. 무슨 일로 찾아와 저렇게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눌까. 말은 거창한 보조였지만 내가 맡은 일은 운전이나 인비 처리된 서류를 전달하는 일, 간단한 서류 정리 따위였기에 듣는다 해도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저 문이 닫힐 때마다 저 너머의 홍지수를 상상하게 되었다.
10시에 갇힌 시간이 11시가 되고 12시가 되어도 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다 말해줄 수 없어도 복지 하나는 장담하겠다며 사무실에 들어오라던 홍지수는 점심시간도 칼같이 지키곤 했는데. 일이 이렇게 애매해지는 건 처음인데. 기다림에 지쳐 핸드폰 게임을 켰을 때, 무언가 깨지는 파열음이 벽을 넘어 침범해온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다음에 이어서 얘기하도록 하지.”
문이 열렸을 때 나타난 것은 홍지수가 아니었다. 벌떡 일어선 몸을 애매하게 추스를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린 대명 쪽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
“괜찮아요?”
소파에 등을 기대 눈가를 누르고 있는 홍지수. 소음의 근원을 찾아 눈을 돌리면 소파 손잡이 쪽 벽에 퍼진 자국과 함께 널브러져 있는 유리조각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야가 돌았다.
“그냥 내버려 둬.”
무릎을 굽혀 조각을 집어 들고 있는 걸 감은 눈으로도 읽어낸 모양이다. 이런 거 치우는 건 업무 내용에 없었는데. 홍지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치우지 마, 정한아. 그렇게까지 잘해 줄 필요 없어.
“그럼 이러지 좀 마요.”
뭘? 앞뒤 안 가리고 뭐든 하는 거. 홍지수에게는 내게 병원비를 준 의뢰인, 방금 다녀간 대명, 그 외에도 수많은 고객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약속 시간은 늦은 밤이며 장소는 으슥한 곳 따위밖에 없으니 핸들을 잡은 나는 그 ‘의뢰인’들이 그리 밝은 일을 하는 부류는 아니란 것을 진작 눈치 챌 수밖에.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묻자, 돌아오는 답이 없다.
“뭐가 부족해서 꽃병 던지고 사람 패는 새끼들 일을 하고 살아요.”
돈도 많다면서. 깨진 화병 조각을 전부 쓰레기통에 옮겨 들고 손을 털었다. 똑똑한 변호사라고 들었는데. 똑똑하게 좀 굴어 봐요. 첫 만남 쯤의 대사는 잔뜩 지친 낯으로 소파에 늘어진 변호사를 웃게 했다.
“필요하니까.”
“...”
“필요하면 꽃병 몇 개 던져도 그러려니 할 수 있고, 몇 대 맞을 수도 있고.”
필요하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커다란 손이 내려가며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웃고 있지 않는 변호사는 낯설었다. 그럴 때면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만 같아 귀에 열이 올랐다. 그의 눈에 내가 얼마나 치기어린 어린 애로 비춰질지. 언제까지 그렇게만 보일지.
“저 새끼는 자기네 법무팀도 아닌데 왜 변호사님한테 저래요?”
“맘에 안 드나 봐. 내가 대명 일만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럼 뭘 더 하는데?”
“글쎄, 일단 지금은 점심을 먹어야겠지.”
내가 데려올 때 밥은 안 굶기겠다고 했는데. 잔뜩 기가 빨린 상태인 홍지수와 뭘 먹는다 해서 좋아질 건 없어 보였다. 오늘 따로 먹어야 돼요. 왜? 친구랑 먹기로 해서.
“네가 친구가 있어? 몰랐네.”
정말 애 취급을 하며 빙글대는 홍지수를 밀어내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친구 만나러 가는 데 용돈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니냐니. 미쳤네. 밥은 대충 옆 건물 편의점에서 때우고 혹 그와 마주치기라도 할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냥 장미 주세요.”
“얼마나,”
“저기 통에 담긴 거 다요.”
포장도 마다한 채 투명한 비닐에 꽃 더미를 쌓다시피 담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깨진 꽃병보다도 더 커다란 화병을 사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병이라기 보단 통에 가까운 직경을 장미꽃으로 가득 채운다. 잎이 엉키고 서툰 손길에 꽃잎이 상해도.
“정한이가 어디서 마술이라도 배워왔나?”
꽃이 다시 생기네. 한 시가 넘어 돌아온 홍지수는 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커다란 병을 손가락으로 통통 두드리며 웃었다.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하는 테이블 위 핏빛 꽃잎의 향연은 내가 보아도 웃음이 나오긴 했다.
“다시 던지진 못할 거예요.”
“그러네. 저거 던지려다 손목 나가겠다.”
화병을 이리저리 돌려 위치를 잡던 홍지수는 마음에 드는 듯 책상에 기대어 선다. 정한아. 응, 왜요. 이어지는 말엔 웃지 못했다.
“생각보다 착하네.”
이가 갈린다. 아이들이 팔려 나간 그 좆같은 보육원 얘기를 할 때 그랬듯이. 대체 홍지수의 머릿속에 나는 얼마나 바닥에 있는 존재이길래 저런 말을 하는지. 보기보다, 생각보다, 그가 보고 생각한 ‘나’는 과연 무엇인지. 문득 억울해졌다. 그는 내게 찾아오기 전 나에 대해 무엇을 알아보고 왔길래 저러는지. 왜 하필 나여야 했는지. 왜 나를 이렇게 잡아두는지.
“왜요, 또 신경 안 쓸 줄 알았어요?”
“...”
“나도 필요해서 했어요.”
변호사님 꽃병 머리에 맞고 뒤지면 나도 다시 거지되니까.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가 짓씹듯 말이 나온다. 아쉽네, 저 병으로 맞으면 변호사님 진짜 뒤질 수도 있겠다. 여전히 말이 없는 홍지수를 두고 문을 세게 닫아냈다. 그리곤 빠르게 후회한다. 내밀어진 명함에 곧바로 손을 내밀었던 때처럼.
“정한아.”
의미 모를 냉전을 끝낸 것은 홍지수가 불러낸 내 이름이었다.
“저녁 같이 먹어.”
“친구 만나기로 했어요.”
“그래?”
쉽게 물러날 홍지수가 아닌데.
“내 앞에서 전화해. 약속 뒤로 미뤄.”
“네?”
“내가 같이 먹자고 했다고 말해. 따지면 내가 네 상사 아니야? 네 친구가 먼저야?”
이정도로 날카로운 홍지수는 초면이라, 나는 그만 핸드폰도 주머니로 치운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앞으로 공손히 모이는 두 손을 보며 홍지수는 만족스런 웃음을 흘린다. 밖에 추우니까 옷 잘 입고 나와.
“나 이런 데는 처음인데.”
“그럴 것 같았어.”
웬일인지 운전도 직접 한 홍지수가 데려온 곳은 평소 와본 적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이었다. 위로는 호텔이 쌓여 올라 있고, 스테이크 굽기를 따지고 와인 품종을 논해야 하는 곳. 자존심 상하게도 메뉴판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곳. 눈치 빠른 홍지수가 여기는 이게 맛있어, 하며 추천을 해주는 곳.
“갑자기 이런 데는 왜 데리고 오는 데요.”
“요즘 나한테 삐진 것 같길래.”
끝까지 미안하단 소리는 하지 않는 홍지수와, 아까 슬쩍 보았던 메뉴판의 가격을 병치시킨다. 저울은 여섯 자리 숫자 쪽으로 기울었다. 그럴 수도 있지. 인정과 납득이 빠른 것이 내 장점 중 하나이다.
“삐진 거 아니에요.”
“그럼.”
“약간의 실망?”
“그게 다야?”
“억울함. 억울한 건 좀 많이.”
“내가 널 무시하는 것 같아서?”
역시나 홍지수는 전부를 꿰뚫고 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한 발 물러서서 날 자극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껏 그래왔듯 저 고상한 변호사의 의도를 두고 한참을 헤매야 하고.
“어쩌지, 내가 널 무시했다면 이런 부탁은 못 할 텐데.”
운전해줘, 이거 보내줘, 이런 부탁 외에 그가 나에게 직접 무언가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었다. 포크를 쥔 손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는다.
“다음 주 금요일 저녁에 대명에서 여는 후원회가 있는데, 같이 좀 가줘.”
때마침 주문한 와인이 투명한 잔과 함께 나오고, 유리가 맞부딪치는 맑은 소리에 대답할 타이밍을 빼앗겼다. 와인 이름이 어떻고, 온도가 어땠고, 맛이 어떨 예정인지, 그 모든 말에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던 홍지수는 어느새 잔을 들어 흔들고 있었다. 별 일 아닐 거야. 혀를 씹으며 말을 짜냈다.
“무슨 일 있어요? 뭐 해야 되는 데요.”
“말이 후원회지 지들 친한 사람들 불러다 나 이 사람이랑 이만큼 친해요, 하고 자랑하는 데야. 파트너도 데려가야 하고.”
“...그런 데에 왜 가요?”
“나도 나 불러준 사람이랑 이만큼 친해요, 자랑해야 되니까.”
머리가 어지럽다. 홍지수는 내게 파트너가 되어 달라 말한다. 파트너. 팔짱을 끼고 들어가서 지금처럼 잔을 부딪치는. 그런.
“변호사님.”
“응.”
“게이에요?”
“뭐?”
웃음을 터뜨린 홍지수는 잔을 내려놓으며 한참을 끅끅거렸다. 잔에 담긴 와인만 반짝이며 흔들릴 뿐이다. 아니, 그러니까 후원회 이런 데에 왜 남자를 파트너로 데려가요, 변호사님. 내 몫의 와인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필요하면 그것도 하고.”
“네?”
“게이여야 너랑 같이 갈 수 있는 거야?”
그럼 게이도 해야지, 나는. 애매하게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화법은 도통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도록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변호사는 늘 그렇게 도망갈 구멍을 두었다. 내 의사는 전혀 중요치 않다는 듯.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하겠다는 홍지수는 와인 잔을 쥐는 법과 마시는 법을 알려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이야.”
“뭔데요?”
“킬리빙빙.”
말해도 어차피 난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홍지수에게 맞춰 잔을 들었다. 여기를 이렇게 잡고, 여기. 맑은 소리가 여러 겹으로 퍼지는 건배 끝에 와인 잔을 비워냈다. 으, 써요. 존나 맛없어. 인상을 쓰며 몸서리를 치자 홍지수가 실실 웃는다. 한 번에 다 마시는 거 아닌데, 와인은. 비어버린 와인 잔 너머로는 보랏빛이 옮은 입술로 웃는 홍지수를 오래도록 담았다.
“정한아.”
“왜요.”
“어머님 요양병원에선 어떠시데?”
“네. 병원처럼 입원해 있다는 느낌도 없고. 좋으시데요.”
“잘됐네. 병원 자주 찾아가 보고.”
“네. 주치의도 유명한 사람이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몇 잔으로 그새 얼굴이 붉어진 홍지수는 뭐가 웃긴지 입꼬리를 뭉개며 웃어 보인다. 묘하게. 처음 만났던 장위동 가로등의 주황 불빛과 레스토랑 조명 빛이 겹친다. 묘하게 생긴 변호사를 처음 만났던 때에.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사람처럼.
“정한아.”
“또 왜요.”
불러놓고 또 한참을 말이 없다가.
“그래서, 같이 갈 거야 말 거야.”
“가면 뭐 해줄 건데요.”
“음. 월급 올려줄까?”
“그런 거 말고.”
두 계절쯤 홍지수를 지켜보며 알게 된 것 중엔, 피곤하면 유독 쌍꺼풀이 두꺼워진다는 사실도 있었다. 두터운 애교살과 평소보다 굵어진 선이 까만 눈동자를 가려버려서. 그가 어딜 보고 그렇게 웃는 지를 볼 수 없었다.
“나 소원 들어줘요.”
“뭔데.”
“알려줘요.”
왜 나여야 했어요?
보육원에 있던 애들 중에 왜 하필 나였어요. 왜 날 잡아 뒀어요. 내가 전했던 서류 중에 보육원 후원 따위와 관련된 서류는 지난 몇 달간 한 장도 못 봤는데 왜 나여야 했어요. 술기운에 둥실 올라 있던 눈이 천천히 뜨인다.
“글쎄...”
“...”
“필요하니까.”
네가 필요해. 정한아. 머리가 핑 돌았다. 와인은 원래 이렇게 도수가 높은가. 마셔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필요하면 화병을 깨고 몇 대 정도는 맞아도 된다던 홍지수가 나를 필요로 해서. 당장 내일 내가 사라진다 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사람이 내가 필요하다고 해서. 눈앞이 돌았다. 그가 날 붙잡아둔 사연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짧은 이유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한 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난 술 마셔서 운전 못해.”
“저도 술 마셨는데요.”
“그래? 난 위에 올라갈 건데.”
호텔 1층 레스토랑. 레스토랑 위 호텔. 조각난 사실들이 머릿속에서 충돌한다.
“너도 올라갈래?”
떨어지는 꿈을 꾼다.
한때 도망이 습관이었던 삶인지라 떨어지는 장소의 베리에이션 또한 극과 극을 달렸다. 나는 마지막 도망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엄마와 함께 바다를 건넜던 제주도 동네 읍성 밑으로 떨어지기도, 기억도 희미한 어린 시절에 잠시 살았던 시골집의 지붕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후원회에 같이 가 달라는 부탁을 듣고 홍지수와 같은 침대에서 눈을 뜬 날 이후로 나는 새벽마다 끊임없이 떨어졌다.
“저녁에 좀 일찍 나가야 될 거야.”
“몇 시까지 가야 되는데요?”
“여섯 시까지.”
“아...”
오늘 홍지수의 일정은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일정은 없었고, 아마 저 방에 틀어박혀 나는 알지도 못할 서류들을 읽고, 쓰고, 저 동그란 눈 사이를 잔뜩 찌푸리겠지. 고용주가 여유로우니 나 또한 여유로울 예정이었다. 여유로운 고용주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엔 가당치도 않을 입맞춤을 먼저 시도해온다.
소파에 발자국이 남도록 엉겨 붙었던 몸은 허공을 가른 전화벨 소리에 멀찍이 떨어져야 했다. 붙어 있던 몸을 단박에 일으킨 홍지수가 가만히 나가 보란 손짓을 준다. 차마 반항할 틈도 주지 않아 민망할 정도였다.
그렇게 소리를 내지 않으려 문을 돌아 닫던 중, 문득 끄트머리가 시들어 말라붙은 장미 꽃잎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화병을 내던져 홍지수가 다칠 뻔 했던 날. 홧김에 꽃집을 털어 사 왔던 장미가 가득 꽂힌 화병은 깔끔한 성정에 맞도록 주기적으로 물을 갈아 준 홍지수 덕에 여전히 생기가 머물러 있었다. 내일이나 내일 모레 꽃집에 다녀와야겠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했다.
“이사님.”
“어, 홍변. 오랜만이네.”
번잡스런 후원회장 구석에서 홍지수는 내 귓가에 한참을 속삭였다. 저 사람은 대명건설, 저 뒤에 있는 사람은 대명 쪽 로펌 사람... 나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이름을 열심히도 읊조리는 홍지수의 허리에 두른 손만 그의 반듯한 정장 위를 간질였다.
“이쪽은?”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를 이사님이라 부른 홍지수는 예의 형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내 팔을 톡톡 두드린다. 잔을 내리며 인사를 하라는 뜻이다.
“홍변이 누굴 데려오는 건 처음 보네.”
발끝까지 훑는 시선이 불쾌하다. 처음에 강조가 있으니 홍지수의 옆자리를 꿰찬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윤정한이라고 합니다.”
“윤정한?”
윤정한.... 남의 이름 석 자를 읊던 이사는 제가 아는 이의 범주에 포함되는 이름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곧장 홍지수에게로 돌아선다. 신도시의 대명건설 부지가 영 시원찮다, 토지보상 문제와 회장의 반응이 어떻고... 나는 모르는 이야기가 대수롭지 않게 오간다. 홍지수의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 처음 들어섰을 때처럼, 킬리빙빙을 처음 마셨던 때처럼 처음이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박태산 회장님 오셨다고 합니다.”
차라리 몰랐던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회장님.”
“홍변. 오랜만이네.”
“회장님께서 편찮으신데 찾아뵙지도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인가 그게. 평택 부지 대명한테 안 넘어간 게 다 홍변 덕인데.”
“감사합니다.”
“이쪽은?”
샴페인 잔을 흔들던 홍지수가 돌아선다. 먼저 앞서 나가 그를 맞이했던 홍지수와의 거리가 벌어지는 느낌이다. 눈앞이 아득해진다.
“윤정빈씨 아들입니다. 회장님.”
필요하다면 뭐든 한다는 홍지수.
“홍변.”
“박 사장님 일 맡기셨을 때 찾았습니다. 돌아가신 박준기 사장님이 비자금 세탁하던 은성보육원 기억하시죠?”
“...”
“모르셨나봅니다. 박 사장님도 몰랐던 것 같은데.”
설마 거기에 자기 동생이 있을 거라고는. 아득한 소멸점을 향해 기억이 뒤섞인다. 깨진 꽃병. 대명과 일하면서 BSK에게 유리하도록 부지를 돌린 홍지수. 보육원 규모에 맞지 않던 거액의 후원금. 증언 한 마디에 막대한 돈을 사례로 걸었던 의뢰인. 매번 잠에서 깨워 도망가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 처음 입원하게 되었을 때 나를 보육원에 맡기던 엄마가 알려준 아버지의 이름. 박태산. 박태산과 홍지수. 홍지수. 홍지수.
“...그래서 홍변이 원하는 게 뭐야.”
늘상 그랬듯 싱글 웃고 마는 홍지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홍지수에게 필요한 것은 윤정한이 아니라 윤정빈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그마저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걸.
엄마는 결국 돌아가셨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 앉아 생각했다. 어쩌면. 돌아가실 때가 되어 돌아가신 게 아닐까. 도망만 가던 엄마도 이제 쉴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닐까. 놀랍도록 무감한 나 자신이 역겨웠다. 두 줄 그인 상주 완장이 팔을 잘라 버릴 것처럼 조여들었다.
49제가 끝났을 때는 여름의 초입이었다. 집 앞으로 세단 한 대가 찾아왔다. 장위동에 살 때 홍지수가 그 좁다란 골목길을 가로막고 있던 것처럼 건물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네가 박정한이야?”
짙게 선팅된 뒷좌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잔뜩 찡그린 낯이 드러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조카가 돼서 인사가 늦었네.”
“나보다 몇 살 어리지? 아홉 살? 생각보다 노안이네.”
창가에 어깨를 기대며 웃던 박민규는 고개를 바깥으로 쭉 뺀다.
“윤정빈 죽었다며.”
“...”
“뭐. 할머니라고 불러야 돼? 네 엄마지 우리 아빠 엄마는 아니잖아.”
“용건이 뭐야.”
“박태산도 죽었거든.”
“뭐?”
박민규는 여전히 웃고 있다. 어제 죽었어. 그래도 꽤 오래 살았지?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전하러 온 놈 치고는 과하게 밝은 표정이었다.
“홍변이 또 너한테 선수칠까봐 내가 왔지.”
“홍지수?”
“홍지수가 널 찾아놓고도 왜 숨겼겠어? 이럴 때 쓰려고 숨겼겠지.”
“홍지수가 온다고?”
“둘이 되게 각별했나 보네.”
삼촌, 정신 차려요. 홍변한테 또 당할 거야? 톡톡. 차체에 부딪친 박민규의 손가락이 날 향한다.
“삼촌한테 해준 게 하나도 없어서 내가. 뭐라도 해주려고 왔지.”
“...”
“윤정빈 주치의랑 홍변이랑 한 패야.”
어머님 요양병원에선 어떠시데? 잘됐네. 병원에도 자주 찾아가보고. 그 날 홍지수는 내게 올라가자고 했다. 와인을 내려놓고 호텔로 올라가자고.
“주치의 이름은 알지?”
“...전원우.”
“좋아. 그럼 주총 때 봐요.”
삼촌. 길게 호칭을 늘이며 웃은 박민규는 올라가는 창문 사이로 자취를 감춘다. 입구를 가로막던 차가 유유히 사거리로 빠져나간다. 홍지수가 찾아올 거라고. 윤정한이 아닌 박정한을. 왜? 필요하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병원 근처 집이 아닌 BSK 본사 근처로 한 차례 더 이사를 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주변보다 많게는 서너 배나 차이나는 높이 차 덕에 우리 집 앞에서도 BSK 본사 빌딩 끄트머리를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저 철탑 같은 빌딩의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장미꽃처럼 붉은 피가 튄. 날개가 꺾인 홍지수와 함께 추락하는 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