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gebluht


그러니 우리 함께 봄으로 가자

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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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란한 음악 소리가 귀를 울렸다. 목요일 밤 열 시, 클럽은 여전히 활기로 가득했다. 룸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간혹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으나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7번 룸에 위스키와 살라미를 서빙하고 나온 정한은 피로한 눈을 꾹꾹 눌렀다. 지하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다 보면 눈이 쉽게 건조해졌다. 깜빡일 때마다 묘하게 따끔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실핏줄이 터진 것 같았다. 정한은 뒷주머니에서 인공눈물을 꺼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뻑뻑한 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데, 다른 서버가 정한을 불렀다.

 

   “매니저님 호출 있어요.”

   “네, 지금 갈게요.”

 

   급하게 대답하느라 눈물 반은 그대로 흘렀다. 정한은 뺨을 대충 문질러 닦고 뒷방으로 향했다. 매니저는 케이블에서 틀어 주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 있다가, 정한이 들어오자 이거 곧 끝나니 10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럼 10분 뒤에 부르는 게 낫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정한은 얌전히 뒷짐을 지고 섰다. 텔레비전 화면 안에서는 실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대리석 바닥에 청동 조각상을 내던지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남자가 어색한 톤으로 어색한 대사를 뱉었다. 정한은 저 남자는 대체 무엇이 문제길래 저렇게 화를 내는 걸까 상상했다. 옷도 집도, 내가 잠 안 자고 돈만 벌어도 절대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 보이는데.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난장판이 된 집안을 보고 놀라는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드라마 한 화가 끝나고서야 매니저는 정한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정한은 구두 끌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주의해서 자리를 옮겼다.

 

   “3번 룸 들어가. 가서 좀 앉아 있으면서 팁 받을 거 챙기고.”

   “……네.”

   “어디 이사래. 돈 많은 데니까 인심은 후할걸.”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몰라 정한은 잠자코 있었다. 다음 화가 곧 시작한다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매니저의 관심은 금세 드라마로 옮겨갔다. 정한이 뒷방을 나와 문을 닫기 전, 잘할 수 있지? 하고 한 마디 던진 게 끝이었다.

   오늘은 술 받아 마신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주방과 룸을 오가느라 술 냄새, 음식 냄새만 실컷 맡았다. 정한은 벽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골랐다. 잘할 수 있냐고? 돈 많은 분들 옆에 앉아서 웃고 떠들고 주머니에 찔러주는 돈 받는 걸 잘할 수 있냐고 묻는 거라면, 물론 잘할 수 있다. 두세 시간 장단 맞춰주고 최저시급 열 배는 되는 돈을 받아오는 건 남는 장사다. 자존심 파는 장사. 정한은 습관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려다가 멈추고, 대신 심호흡을 했다. 세 번쯤 하고 나서야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살짝 삐뚤어진 넥타이를 일부러 좀 느슨하게 풀어 두고는 주방에 들렀다. 3번 룸이라고 하니 금세 와인 플래터를 내어 주었다.

   정한은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3번 룸 앞에 섰다. 매끈한 쇠 표면에 일그러진 얼굴이 비쳤다. 웃음이 안 나오는데도 웃어야 할 상황이면 그동안 있었던 일 중 제일 좋았던 것을 떠올리라고들 하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대신 부모님을 삼킨 채 찌그러진 차체와 병동 침실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여동생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정한은 눈을 꾹 감았다 뜨고, 문을 두 번 노크했다.

 

   “주문하신 와인 플래터 나왔습니다.”

 

   룸에는 여자 셋,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정한이 들어가자마자 열 개의 눈동자가 한꺼번에 정한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본다기보다는 상품의 가치를 따지는 데 더 가까운 시선이었다. 등급을 A부터 F로 나눈다면 정한은 분명 A등급이었다. 첫째는 물론 어디 내놓아도 처질 일 없이 잘난 얼굴 덕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외모 얘기를 수없이 들었고 본의 아니게 치정 싸움에 휘말려 쫓겨나듯이 해고당한 적도 있었다. 얼굴이 잘났으니 정한의 가난은 오히려 셀링포인트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정한의 얼굴에서 제멋대로 처연함이며 외로움 따위를 읽어냈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한에 대한 보호본능을 가지게 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정한은 한 실장이라고 호명된 사람 옆에 앉았다. 제 허벅지를 더듬어 오는 손길을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잔에 와인을 따르고 오가는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내내 웃고 있느라 입꼬리가 아팠으나 이 역시 익숙한 아픔이었고, 대담하게 허리를 감싸는 팔에 잠깐 멈칫했더니 한 실장은 너 정말 귀엽다면서 좋아했다. 귀엽기는 무슨……. 정한은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단단히 단속하며 웃었다. 2차는 안 하냐고 넌지시 물어오는 걸 마찬가지로 돌려 거절하고 나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손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도 최소한의 선을 방어해내는 건 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아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한 실장이 잔을 들어 올렸다가,

 

   “아, 미안.”

 

   그대로 정한 쪽으로 기울였다. 흰 와이셔츠가 금세 붉게 물들고 바지까지 적셨다. 와인 향이 확 풍겨와 정한은 잠깐 숨을 참았다. 명백하게 고의성 있는 행동이었지만 한 실장은 마치 실수였다는 듯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얼굴에는 미안함 대신 흥미만 가득했다. 다른 사람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옷 좀 벗고 있을래? 그래야 마를 것 같은데.”

 

   뒷목이 확 뜨거워졌다. 2차 안 간다니까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시나. 정한은 볼 안쪽 살을 꽉 물었다. 매번 이렇게 씹어 놓는 탓에 성할 날이 없었다. 입안의 피맛보다도 팔을 타고 와인이 흐르는 감각이 더 끔찍하리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한이 가만히 앉아만 있자 주위에서 은근히 재촉하는 말을 하나둘씩 건넸다. 뭐 해. 다 벗으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마를 때까지만 벗고 있어. 정한이 느릿하게 셔츠 단추에 손을 얹은 것과 룸의 문이 열린 건 거의 동시였다.

 

   “이사님, 지금 오세요?”

 

   정한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실장이니 부장이니 전무니 하는 직급만 계속 오가더니, 매니저가 말한 사람은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사라고 해서 최소 40대는 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문간에 서 있는 남자는 정한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그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는 것처럼 룸 안을 둘러보다가, 벌겋게 젖어든 와이셔츠를 보고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남자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르는 동안, 정한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와인 방울만 보고 있었다.

 

   “옷 갈아입어요.”

 

   한참 만에, 남자가 말했다. 정한은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룸을 나오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모멸감, 수치심, 분노 등등이 뒤섞여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 되돌아가 한 실장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어서, 정한은 억지로 발을 움직였다. 구두에까지 와인이 들어갔는지 걸음이 축축 처졌다. 몇 걸음이나 옮겼을까,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급하게 뛰어왔는지 남자의 앞머리는 온통 흐트러져 있었다. 정한의 앞에 서서 숨을 몰아쉬던 남자가 자기 재킷을 벗어 건넸다. 얼떨결에 받기는 했으나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쳐다보고만 있었더니 남자가 숨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입고 가세요. 지금 너무 젖으셔서.”

 

   정한은 남자가 건넨 재킷을 내려다보았다. 향수를 뿌렸는지 희미한 장미향이 났다. 패션 쪽에 조예라고는 없는 눈으로 보기에도 고급 원단으로 만들어진, 그냥 세탁기에 돌려 버리면 안 될 옷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괜찮……”

   “세탁비는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제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 죄송해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남자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며 정한의 손에 명함을 찔러 넣고는, 꼭 연락 주세요, 하고 다시금 당부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룸에 돌아갔다. 재킷을 돌려주려다가 졸지에 명함까지 받게 된 정한은 손 안의 작은 종잇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이사 홍지수, Joshua Jisoo Hong. 외국 유학이라도 갔다 왔나. 정한은 명함을 그대로 구겨서 버리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어쨌든 재킷을 돌려주기는 해야 했다.

   주방 앞에서 매니저를 만났다. 3번 룸에서 너 그냥 퇴근시키라던데 무슨 실수라도, 라고 말하던 매니저는 정한의 셔츠 꼬라지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정한은 홍지수의 재킷을 사물함 옷걸이에 걸어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하나밖에 없는 옷걸이에 재킷을 걸었더니 유니폼 걸 데가 없어 대충 개어서 쑤셔 넣었다. 반듯하게 걸린 재킷 아래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유니폼이 꼭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정한은 조금 웃었다.

 

 

 

   제일요양병원은 지하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멀다는 것을 제외하면 시설이나 가격 등을 따졌을 때 이만한 곳이 없어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다. 정한은 병실에 들어가기 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핸드폰 액정에 얼굴을 비추어 표정을 확인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모양새였다.

 

   “오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밝은 목소리가 정한을 반겼다. 정한은 입꼬리를 조금 더 끌어올리며 웃었다.

 

   “잘 있었어? 선생님들 말씀은 잘 들었고?”

   “응. 어제 저녁도 엄청 맛있는 거 나왔어.”

 

   정한의 여동생, 정연은 정한의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가 데려온 딸이었다. 새로 생긴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몸 약한 여동생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쏟았지만 그때 이미 스무 살이었던 정한은 열다섯 살 터울 동생의 존재가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이름 가운데 글자가 겹쳐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친남매인 줄만 알고 부모님 금슬이 좋으시네, 남매끼리 얼굴이 꼭 닮았네, 따위의 말을 했지만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니 이건 다 헛소리였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정한은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자퇴했다. 등록금은 둘째 치고, 대학 다니면서 병원비를 댈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편의점이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세 개씩 했고 그 다음에는 과외, 상하차, 별의별 것을 다 하다가 클럽까지 흘러들어왔다. 저녁에는 병원에 들러 정연의 상태를 살폈고 밤에는 클럽으로 출근했다. 그나마 최근 정연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비록 지금은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눈이 오면 난방 걱정을 해야 하는 반지하에 살고 있지만 정연이 퇴원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든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겠다고, 정한은 다짐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초라하기만 한 인생이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정한은 병원 면회 시간이 끝나는 일곱 시에 병실을 나왔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또박또박 읽으며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고 설레하던 정연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몇 학년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지 슬슬 알아볼 생각을 하며 지하철에 올랐다. 정한은 회사원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출근한다. 예전엔 이러면서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고는 했는데 요즘엔 그마저도 없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려고 사물함을 열고 나서야 어제 일이 기억났다. 명함은 여전히 유니폼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정한은 조금 망설이다가 일단 옷을 갈아입고, 명함을 챙겨 카운터로 갔다. 열 자리 번호를 하나하나 누르자 신호음이 몇 번 들리더니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지수 이사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요. 어젯밤에 뵌 사람이라고 전해 주세요.”

 

   여자는 잠깐 말이 없다가 연결해 드릴 테니 십 분 정도 기다리시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정한은 카운터의 노트북으로 홍지수의 회사를 검색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책상에 앉아 시선을 비스듬히 하고 있는 사진이 떴다. 어제는 정신도 없었던 데다가 조명이 어두워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꽤 말끔하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 정도면 회사 홍보모델로 설 만하지. 뻔하디 뻔한 인사말을 읽고 있으니 전화가 연결되었다.

 

   - 여보세요.

   “옷 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 세탁비는……

   “…….”

   

   정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홍지수도 말이 없다가,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열한 시쯤에 갈게요. 3번 룸 잡아 놓을 테니 시간 되면 거기로 와 주세요.

   “네.”

 

   통화가 빠르게 끝나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디 쇼핑백에라도 넣어서 줘야 하나 싶었지만 클럽에 말짱한 쇼핑백이 있을 리 없었다. 정한은 열감이 오른 눈두덩을 두어 번 누르다가 몸을 일으켰다. 열한 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그때까지 마냥 놀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정신없이 테이블과 룸을 오가던 정한은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열한 시 십 분 전이었다. 와 있으려나? 하도 바빠서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제대로 못 봤다. 이사쯤 되면 바쁠 테고 꼭 그게 아니라도 높으신 분들은 남이 시간 약속 어기면 길길이 뛰면서 자기가 어기는 건 예삿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한은 잠깐의 고민 끝에 사물함 옷걸이째로 재킷을 꺼내 들고 3번 룸으로 갔다. 문을 노크하자 들어와요, 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일찍 왔네요. 아직 열한 시는 안 됐는데.”

 

   오늘은 룸에 홍지수 혼자만 있었다. 셔츠에 바지만 입은, 전보다 훨씬 단출한 옷차림이었다. 재킷이 설마 한 벌만 있는 건 아닐 테니 그냥 어디 벗어두고 온 것 같았다. 정한은 말없이 양손으로 재킷을 받쳐 들어 건넸다. 그대로 룸을 나가려는데 홍지수가 물었다.

 

   “저녁은 먹었어요?”

   “……아니요.”

   “여긴 식사 종류를 안 팔아서…… 밖에 나가서 저녁 먹을래요? 저도 미팅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정한은 자신의 팔을 잡지도 못하고 허공에 어정쩡하게 뜬 홍지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 2차는 안 가요.”

   “……이런 것도 2차라고 해요?”

   “네.”

   “그렇구나…….”

 

   홍지수가 맥없이 손을 떨어뜨렸다. 맞은편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길래 정한은 그렇게 했다. 주문한 것이 없어 테이블에는 기본 안주로 나오는 비스킷밖에 놓여 있지 않았다.

 

   “저거라도 먹어요, 그럼. 배고플 텐데.”

   “저희가 손님 걸 함부로 먹을 수가 없어서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손님이 까라면 까야지. 사장이 VIP로 분류한 고객이 시키면 희석 덜 된 보드카라도 마셔야 하는 게 규칙이었다. 보통 한 번은 거절해 줘야 서로 면이 살았다. 고객의 요구를 좋게좋게 거절할 때 활용하고는 하는 웃음을 짓고 대답했는데, 홍지수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게 웃는 거…… 이상하다는 말 들어본 적 없어요?”

   “이상하다고요?”

   “좀, 웃는 것 같지 않아서…….”

 

   정한의 입매가 살짝 굳었다. 고객들은 정한이 이렇게 웃으면 잘생긴 애가 웃는 것도 예쁘다면서 좋아했다. 이상하다는 말을 한 사람도, 웃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웃는 얼굴이라는 것을 간파한 사람도 홍지수가 처음이었다. 홍지수가 시선을 떨어뜨리고 죄송해요, 하고 사과했지만 정한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해졌다. 

 

   “셔츠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꺼낸 말에 정한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버리고 새 걸로 받았어요.”

 

   정확히는, 새 걸로 샀다. 혼자 앞가림하고 산 지가 오래되었다 보니 한 번 보면 견적이 나왔는데, 세탁소에 넘긴다 해도 도저히 안 빠질 얼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장부에 유니폼 셔츠 하나 새로 구입하니 나중에 그만큼 월급에서 까라고 적어 놓아야 했다. 자기 잘못도 아닌 일로 다시 사과한 홍지수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핸드로션이며 크림을 써서 억지로 부드럽게 만들어 놓은 정한의 손과는 달리, 그의 손은 태생부터가 고상해 보였다.

 

   “쉬었다 가요.”

 

   홍지수는 정한과 시선을 맞추지도 않고 말했다. 제가 금액 다 지불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눈치 볼 거 없이 그냥 여기서 쉬다 가요. 다른 건 안 해도 되고, 그냥 여기 있기만 하면 돼요. 정한은 중간쯤부터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가,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절 사신 거네요.”

 

   다른 고객, 그러니까 한 이사 같은 사람이라면, 정한이 이렇게 말했을 때 너는 말도 참 맹랑하게 한다며 귀여워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스물일곱 살 남자에게 그런 게 온당한지는 제쳐두고. 그러나 홍지수가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때, 정한은 그런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에 휩쓸렸다.

 

   “맞아요.”

 

   푸른빛 조명 아래 창백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정한은 고개를 젖혀 등받이에 고개를 기댔다. 나도 그를 보면서 저렇게 웃었을까. 

 

   “그리고 오늘 한 번만 그럴 것도 아니에요.”

 

   만약 그랬다면, 이상하다는 말을 아직까지 안 들어본 게 신기한 일이었다.

 

 

 

   홍지수는 비정기적으로 정한을 불러냈다. 장소는 언제나 3번 룸이었고 가끔은 와인과 간단한 안주가 함께하기도 했다. 자리 지키는 것 외에 다른 건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침묵이 더 부담스러웠을 뿐더러 매니저가 VIP 고객님께 잘 대해드리라고 은근히 압박을 주어 정한은 굳이 홍지수에게 말을 붙여 대화를 이어갔다. 종종 맞은편에 앉으라는 거 무시하고 옆자리에 앉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홍지수는 어설프게 웃으며 자리를 조금 떨어뜨려 앉았다.

   힘든 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정한을 ‘사려던’ 사람이 없었을 리가 없는데, 어떻게 구워삶은 것인지는 몰라도 매니저는 정한이 3번 방으로, 홍지수에게로 가는 것을 묵인했다. 정한은 기민한 성격이었다. 타고난 성정이 그랬고 가난 때문에 더욱 눈치가 빨라져야 했다. 딱 두 번째 만남에서 정한은 홍지수가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네 번째 만남에서는 그의 시선에 담긴 열망을 읽었고 다섯 번째 만남에서는 그보다 더 짙은 외로움을 알아차렸다.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도 홍지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억지로 잠들면 꼭 꿈에서 그를 보았다. 하루는 홍지수가 물었다.

 

   정한 씨는 좋아하는 거 있어요? 취미라거나…… 아, 쉬는 날에는 뭐 해요?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취미라 할 만한 것도 없고, 쉬는 날에는 기력을 충전하기 위해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 있거나 좀 몸 상태가 괜찮다 싶으면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간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정한이 대답을 않자 홍지수는 눈을 깜빡이다가 조곤조곤 말했다. 저는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꽃도 좋아하고, 강아지도 좋아요. 요즘엔 도예에 관심이 생겼어요. 주말에는 공방에 가는데, 물레를 돌리고 있다 보면 잡생각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가 편안했다. 그날 밤 정한은 홍지수가 그리고 저는 정한 씨도 좋아해요, 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는 사이에 만남의 횟수가 켜켜이 쌓였다. 홍지수는 비서실이 아닌 자기 핸드폰 번호를 정한에게 주었고 정한은 하루를 꼬박 고민하다가 개인 번호를 넘겼다. 받고 싶어서 먼저 준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홍지수는 기뻐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번호를 준 이후 정한은 홍지수가 오지 않는 날이면 일하다 말고 종종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번호 받아가 놓고 왜 연락하지 않냐고 먼저 묻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았고, 그러는 자신도 한 번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으므로 그냥 이것도 번호를 교환한 것에 의의를 두나 보다, 했다.

   때문에 홍지수가 다른 날도 아니고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걸어 왔을 때 정한은 순간 놀라 하마터면 통화 연결이 아닌 종료를 누를 뻔했다. 퇴근 준비를 하던 중이라 한 손에는 유니폼을 들고 있었다. 옷 갈아입는 것은 조금 미루고, 턱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아슬아슬하게 끼웠다.

 

   “무슨 일이세요?”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 지금 가도 괜찮아요?

 

   정한은 사물함 문 안쪽에 달린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실핏줄이 터져 흰자 아래에 새빨간 점이 찍혀 있었다. 밤부터 아침까지 근무하다 보면 피로 때문에 자주 이렇게 되고는 했다. 불과 일 분 전까지만 해도, 정한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 괜찮아요.”

   - ……정말?

   “기다릴게요.”

 

   홍지수 이사님 때문이라고 하자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열쇠를 넘겨주었다. 정한은 3번 룸에 앉아 홍지수를 기다렸다. 그는 통화에서 한 시간, 클럽 마감 시간에서 오십 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도착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퇴근하고 없는 것을 발견했는지 머쓱한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정한의 신경은 다른 쪽에 쏠렸다.

 

   “얼굴이 왜 그래요?”

 

   오른쪽 뺨에 길게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정한의 물음에 습관처럼 뺨을 한 번 쓸어내린 홍지수가 눈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웃었다.

 

   “괜찮아요.”

 

   자세히 보니 입술도 터졌다. 홍지수가 한 음절을 뱉을 때마다 갈라진 틈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습관처럼 그 자리를 혀로 핥으면 피는 잠깐 멎는 듯하다가도 다시 번졌다. 정한 씨, 하고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정한은 몸을 일으켰다. 룸을 나가려 하자 홍지수가 다급하게 팔을 붙잡았다.

 

   “같이……”

   “거기 계세요.”

 

   정한은 홍지수의 손을 뿌리치고 나와 문을 세게 닫았다. 고요하던 클럽에 큰 소리가 울렸다. 괜찮다고 웃던 얼굴이 자꾸 떠오르면서 갈 곳 잃은 분노가 일렁였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하는 의문은 무의미했다. 정한은 카운터에서 구급상자를 꺼내들어 3번 룸으로 돌아갔다. 홍지수는 정한이 뿌리쳤을 때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한은 그의 팔을 끌어다 소파에 앉혔다. 홍지수가 중얼거렸다.

 

   “안 올 줄 알았어요.”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 정한은 무시하고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면봉을 찾았다. 밴드도 딱 한 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홍지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건지, 정한이 별 반응이 없자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제 말 들었어요, 정한 씨? 안 올 줄 알았다고요. 저 혼자만 여기 두고 그냥 퇴근해버린 줄 알았어요. 제가 미리 돈 낸 게 아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까지……”

   “입 벌려 보세요.”

   “…….”

 

   홍지수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정한처럼 볼 안쪽 살이 죄 짓씹힌 게 보였다. 한두 번 바르는 걸로는 안 나을 것 같은데. 정한은 면봉에 연고를 묻혀 볼 안쪽에 살살 발라주었다. 면봉이 닿을 때마다 새삼스러운 아픔이 느껴지는지 홍지수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웬만하면 안 먹게 조심하시고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정한은 개의치 않고 뺨에도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였다. 말라붙은 피를 좀 닦고 나서 바르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쉬운 대로 손수건에 물을 묻혀 입술에 묻은 피라도 닦아 주고 연고를 살짝 발랐다. 정한이 구급상자를 정리하는 동안 홍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상자 뚜껑을 닫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오늘치 돈은 나중에 매니저님께 한 번에 드릴게요.”

 

   정한은 닫힌 구급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입술의 피를 닦아줄 때 실수로 손이 스쳤던 건지, 손가락 끝에 작게 피가 묻어난 자국이 있었다. 한 번 문지르면 지워질 자국.

 

   “안 주셔도 돼요.”

 

   굳건히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리려는 것을 느낀다. 목마에 숨어 들어온 것이면 차라리 편법 쓰지 말라고 억울함이라도 토로해 볼 텐데 정직하게 문 앞에 서서 열어 달라고, 나 여기에 있다고 두드리는 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차피 근무시간 끝났으니까요.”

   “……퇴근하셔야 하는데. 죄송해요.”

 

   괜찮다고 할 거면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표정이나 짓지 말든가.

 

   “얼굴은 왜 그렇게 된 거예요?”

   “…….”

   “네?”

   “아버지한테……”

 

   홍지수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제 팔을 감싸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마디가 다 희었다. 얼굴 꼴에 신경 쓰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홍지수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인데도. 넥타이가 꼭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홍지수의 손이 넥타이에 얹어졌을 때, 정한은 그가 그대로 넥타이를 풀어 버리기를 바랐지만 그는 매듭진 부분을 살짝 눌렀다가 떼기만 했다.

 

   “아버지한테 맞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별 거 아니에요. 종종 이러시거든요. 저 키워 주신 분이니까 이 정도는 제가 감수해야죠. 제가 아버지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고……”

 

   정한의 가족은 대체적으로 화목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정한이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다소 엇나가는 모습을 보여도 손찌검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새어머니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정한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학교에서, 혹은 일하다가 맞으면 맞았지 가족에게 맞으며 크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홍지수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정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옆에 앉자, 홍지수는 또 습관처럼 자리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정한은 그 거리를 다시 좁혔다.

 

   “그럼 저한테는 왜 전화했어요?”

 

   홍지수는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었다. 그가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듯이, 정한은 그의 입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렸다. 길지는 않았다.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이상으로 명확할 수 없으리만치 간결한 대답이었다. 정한은 문득 중심 아닌 주변을 맴돌며 빙빙 돌아오기만 한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홍지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팔을 누르던 손가락이 이번에는 뺨의 상처를 눌렀다. 밴드에 작은 핏자국이 배어나는 게 보였다. 누르지 마세요, 간신히 한 마디를 하자 홍지수는 자신이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잊었던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천천히 손을 떼었다. 팔에 얹어졌다가, 무릎에 얹어졌다가 하며 헤매던 손이 정한을 향해 뻗어졌다.

 

   “정한 씨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바람이 불면 땅에 내려앉는 이팝나무 꽃잎처럼, 홍지수의 손이 정한의 손등에 내려앉았다. 그곳이 자기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듯이. 정한은 비로소 자신이 싸워야 할 것은 삶이 아닌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홍지수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동안 정한은 일을 하고 정연의 받아쓰기 공부를 도와주고 자기 전에 홍지수를 생각했다. 더 이상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서 연락이 없는 것이라는 가설은 애당초 세우질 않았다. 그냥 또다시 기다림이 필요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락이 왔다.

 

   내일 열한 시에 만나요. 3번 룸에서 기다릴게요. 

 

   그날은 문을 열자마자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기 중에 희미한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홍지수로부터 나는 것이었다. 술 파는 곳에서 일하는 만큼, 정한은 이런 상황에는 이골이 나 있었지만 홍지수를 상대하면서까지 이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잠깐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정한의 앞에서는 편집증적일 만큼 단정해 보이려 했으니까.

   소파로 다가가자 홍지수가 눈을 반쯤 떴다. 정한은 코끝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목 끝까지 올려서 조인 넥타이를 풀어 주었다. 셔츠 단추도 열어 주려는데 계속 눈을 감았다 떴다 하고 있던 홍지수가 팔을 뻗었다. 피하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만큼 느린 동작이었지만 정한은 그러지 못했다. 부드러운 손이 정한의 양 뺨을 감쌌다. 만일 그가 이대로 자신을 끌어당긴다면 아마 그마저도 뿌리칠 수 없을 거라고, 정한은 생각했다. 정한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홍지수가 손을 툭 떨어뜨렸을 때는 묘한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선물이에요. 저기, 테이블에.”

 

   처음 보는 모습에 미처 보지 못했는데, 테이블 위에 양주병과 함께 흰 쇼핑백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지갑일까, 아니면 시계? 정한은 고객으로부터 그런 선물을 받는 족족 팔아치워 현금으로 바꿨다. 구찌에 넣나 바지 주머니에 넣나 돈의 가치는 똑같았으니 굳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선물을 주는 사람들 역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목적이 더 컸기에 정한이 선물을 쓰든 말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혹 물어본다 해도 닳는 것이 아까워 집에 소중하게 모셔두고 있다 하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지갑이라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시계라면 손목에 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다 무색하게, 쇼핑백을 연 순간 정한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제가 좀, 촌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쇼핑백에는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이 들어 있었다. 정한이 지금껏 봐 온 그 무엇보다도 화사한 노란색이었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며 놓으면 뭐하냐고, 속도 세련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버지가 맨날 그러셨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되더라고요.”

 

   정한의 집에는 꽃병이 없다. 꽃을 둘만한 공간도 없고,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들여 놓아도 금방 죽을 것이다. 꽃은 돈으로 바꿀 수도 없다. 최악의 선물이었다.

 

   “그래도 꽃은 예쁘잖아요.”

 

   최악의…….

 

   “그러니까, 괜찮다고 해 줘요.”

 

   홍지수가 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한은 천천히 꽃다발을 끄집어냈다. 맑은 향이 확 퍼지며 술 냄새를 밀어냈다. 홍지수는 어느새 정한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다. 정말로 좋지 않은 징조였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정한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분명 홍지수를 상처 입히고, 이용하고, 제멋대로 휘두르게 될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화사한 애정을 진창에 처박고 싶지 않았다.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사님은…… 제 고객이에요. 고용주, 뭐 그런 거.”

   “……알아요.”

 

   그런데 나는 왜, 정작 당신이 이렇게 대답하니 마음이 다 무너지고 마는가.

 

   “생각을 해 봤는데,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마음은 변할 수 있어도 돈은 안 변하잖아요.”

 

   차라리 당신이 정말 돈으로 날 사려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가진 것 하나 없는 내가 감히 당신을 동정할 여지조차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은 왜 이렇게나 외롭고 가엾어 보이는 사람이라서…….

   홍지수가 다시 몸을 돌렸다. 술기운으로 상기되어 있던 얼굴은 처음 룸에 들어왔을 때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다만 눈가는 아직 붉었다. 

 

   “예뻐요.”

 

   그의 시선은 꽃다발이 아니라 정한을 향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용케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한은, 그의 마음속에 고여 있을 눈물에 속절없이 익사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달의 뒷면에 발을 딛는다. 평생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었을 재벌 3세 이사님의 세계에. 그는 3000원짜리 김밥 대신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택해야 하는 삶을 모른다. 건강을 챙길래야 챙길 수가 없는 환경이지만 앓아누웠다가는 수입이 끊길 테니 모래성을 쌓아올리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버텨야 하는 삶을 모르고, 꽃과는 죽어도 어울리지 않는 집에서 잠들어야 하는 삶을 모른다.

   정한은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그의 나이브함마저 사랑한다. 홍지수가 윤정한의 삶을 평생 모른 채 온실에서만 산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홍지수는 너무 취해 있었고, 정한도 일하면서 한두 잔씩 받아 마신 게 있어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야 했다. 클럽과 제휴 맺은 곳에 전화해서 한 명 보내 달라 했는데, 정한과도 낯이 익은 기사는 홍지수의 차를 보더니 비싼 거 타시는데요, 하며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 긁어도 저희 쪽에서 책임지겠다는 말을 섣불리 할 수는 없어 정한이 어깨만 으쓱하자 기사는 그래도 어쩌겠냐면서 한숨을 푹 쉬고는 운전대를 잡았다.

   정한은 벤츠 뒷좌석에 홍지수와 함께 앉았다. 홍지수가 제대로 머리를 가누지 못해 차창에 기대어 주어야 했다. 눈 감고 자려는 걸 겨우겨우 붙들었다.

 

   “이사님 댁 어디세요, 네? 사무실로 데려다드릴 수는 없잖아요.”

 

   제발 이것만 대답해주고 정신 잃으라고 간곡히 기도한 것이 하늘에 닿았는지 홍지수는 다 풀린 혀로도 더듬더듬 주소를 불렀다. 정한은 그걸 해석해서 기사에게 말해주고 몸에 힘을 쭉 뺀 채 늘어뜨렸다. 나 보는 앞에서 남은 양주 원샷하는 거라도 막았으면 이렇게 취하지는 않았을 텐데.

   기사가 핸들을 꺾을 때마다 홍지수는 앓는 소리를 냈고 정한은 쇼핑백 안을 확인했다. 꽃을 하루 동안 이대로 방치해 두어도 괜찮을까. 물처리는 되어 있는데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차가 부촌으로 접어들고 아파트로 들어설 때에는,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정한은 꽃이 뭉개지지 않게 조심하며 기사의 도움을 받아 홍지수를 부축했다. 기사에게 주차를 맡기고 홍지수를 엘리베이터까지 끌고 갔다. 밤인데도 휘황찬란한 내부 모습을 보며 속이 뒤틀리는 것보다 취한 사람 걱정이 더 컸다.

 

   “이사님.”

   “네…….”

   “저희 몇 층으로 올라가요?”

 

   경비원인지 뭔지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사나 제비로 보이나? 클럽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왔으니 그런 오해 받아도 할 말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홍지수한테 조금만 더 깨어 있어 보라고 애원해 가며 도어락 열고 들어갈 즈음에 정한은 완전히 지쳐 있었다. 홍지수를 침대에 눕혀 놓고 클럽까지 택시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릴지 찾아보고 있는데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고 가요.”

 

   안 될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퇴근 시간 한참 남겨놓고 홍지수 부축해서 나오는 길에 본 매니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클럽은 정한의 주 수입원이었고 여기서 잘리기라도 하면 당장 내일부터 살 길이 막막해졌다. 지금이라도 클럽으로 돌아가서 근무 중 무단이탈해서 죄송하다고 매니저에게 싹싹 빌고 일주일쯤 죽은 듯이 지내야 했다.

 

   “매니저님께는 내일 제가 말할게요. 자고 가요.”

 

   그런데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왜 일치하지를 못할까. 정한은 핸드폰 화면에 뜬 지도 앱을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멀리도 사네. 회사도 가깝지는 않은 것 같던데, 그럼 이 사람은 매번 그 거리를 오간 거구나. 새삼스러운 생각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홍지수는 어린아이가 떼쓰는 듯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자고 가요, 네? 여기 방 하나 더 있어요. 손님용 방이에요. 청소도 다 되어 있고요……. 정한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서야 칭얼거림이 멎었다. 씻어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린 홍지수가 말과는 다르게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린 채 정한을 바라보았다.

 

   “바로 옆방이에요.”

   “……신세 좀 질게요.”

   “잘 자요, 정한 씨.”

 

   홍지수의 방도 그랬지만 손님방도 정한의 집보다 더 넓어 보였다. 정한은 유니폼을 벗어 옷장에 걸어 두고,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뒤 거기 있던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손님용 방이라고 했으니 이러는 게 맞겠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뭔가 비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푹신하고 포근한 침대에 누워놓고 잠이 안 오는 것도, 평소 잠들던 시간보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정한은 벌떡 일어나 홍지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씻어야 한다는 게 빈말만은 아니었는지, 촉촉해진 머리로 나온 홍지수가 정한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이러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또 아닌 것 같아서, 정한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눈 딱 감고 말했다.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요. 좋은 밤 되세요, 이사님.”

 

   됐다. 이제 나가야지. 그런데 홍지수가 다시 붙잡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자고…… 갈래요?”

 

   아까의 ‘자고 가요.’와 다른 의미라는 것은 정한도 알 수 있었다. 그냥 누워만 있어도, 까지 말한 홍지수가 입술을 물었다가 놓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잊어버려요.”

   “이사님.”

   “제가 취하면 좀 후회할 짓을 많이 해요. 샤워하면서 다 깬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죄송해요.”

   “저 자고 갈게요.”

 

   전 맨 정신일 때도 후회할 짓 많이 해요. 그 말까지 할 수는 없어서 정한은 홍지수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눈동자가 마침내 안정을 찾았다.

   얼굴 마주보고 눕기는 영 낯간지러워 서로 등을 대고 돌아누웠다. 베개가 하나뿐이라 정한은 옆방에서 베개를 가져와야 했다. 몸이 닿을까봐 긴장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옆에 누운 사람에게서 같은 비누 향이 나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홍지수도 마찬가지였는지 몇 번 뒤척이다가 정한의 등에 자기 팔꿈치가 닿자 화들짝 놀라 헛숨을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정한을 불렀다.

 

   “정한 씨.”

   “…….”

   “……정한아.”

 

   정한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물에 잠겨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 누가 날 저렇게 불러주는 게 얼마만이더라, 되짚어 보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홍지수는 몇 번 더, 세상 가장 소중한 것을 입에 담듯이 정한의 이름을 부르다가 잠들었다. 정한은 조용한 어둠 속에서 홀로 홍지수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홍지수…… 지수, 지수야……. 눈물을 마시고 자라 커진 마음이 가슴께를 아프게 짓눌렀다.

 

   다음날 먼저 일어난 건 정한이었다. 정한이 침대에서 살금살금 빠져나와 옆방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도 홍지수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숙취 해소용으로 뭐라도 만들어 두어야 하나 싶었지만 거대한 냉장고는 정한으로 하여금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사실 이 집 안의 모든 것이 그랬다. 홍지수만 제외하고.

   그때까지도 유니폼 바지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홍지수의 명함 뒷면에 짧은 메모를 적었다. 어떤 말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다가 <먼저 갈게요. 감사했어요.>라고만 적었다. 다음에 뵙겠다는 말은 부끄러웠고 죄송하다는 말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정한은 그 길로 아파트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는 창문을 열어 고개를 쭉 빼더니 좋은 곳 사시네요, 했다. 한 번도 가난을 수치스러워한 적은 없었으나 정한은 기사에게 집에서 한참 떨어진 번화가의 주소를 부르고, 반지하 집까지 걸어갔다.

 

 

 

   그 뒤로 홍지수는 정한을 다시 정한 씨라고 불렀다. 정한도 홍지수를 이사님이라고 부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물어보았다. 지수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러자 홍지수는 눈을 크게 떴다가, 사르르 접어 웃었다. 정한은 그게 허락의 의미라는 것을 알았다.

   근무 시간 내내 홍지수와 함께 있어도 매니저는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홍지수가 매니저에게 주는 돈의 액수가 자신이 다른 고객들 접대하면서 버는 돈의 액수보다 더 클 것이라고 정한은 어림짐작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힌 금액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 그 추측을 뒷받침했다. 모르긴 몰라도 매니저도 한 몫 단단히 챙겼을 것이 틀림없었다.

   홍지수는 종종 룸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밤낮이 바뀌어 사는 정한과 달리 홍지수는 회장 손자라 해도 회사원이었다. 평일 밤에 찾아오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한 번은 주말에만 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한 적이 있었지만 홍지수의 표정을 보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정한은 홍지수에게 무릎을 내주었다. 제 무릎을 베고 긴 소파에 누워 잠든 홍지수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이런 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정연은 요즘 따라 병실에 있는 게 답답해졌는지, 미안해하면서도 밖에 놀러 나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아직 먼 곳까지 외출하기에는 무리인 터라 정한은 고민하다가 사진이 가득 담긴 책을 사 왔다. 세계의 명소를 담은 책이었는데 사진이 전부 컬러라 그런지 가격은 비쌌으나 정연이 좋아하는 모습을 본 것으로 충분했다. 정연은 페이지 이곳저곳을 짚으며 여기도 가보고 싶어, 여기도, 하며 재잘거렸다. 비행기를 타고도 열 몇 시간을 가야 할 만큼 먼 곳도 있었지만 정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래, 우리 나중에 꼭 가자. 오빠가 돈 많이 벌게.

   신난 정연에게 이제 가야 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 평소보다 늦게 병실을 나왔다. 지금 바로 출발해도 제시간에 도착할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간호사가 정한을 불렀다.

 

   “선생님께서 보호자 분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정한은 얼마 전에 정기검진을 받았다더니 결과 나와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내일 와서…… 그러나 간호사의 표정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입원한 동생 간호 때문에 집을 비워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던 새엄마의 표정과 비슷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정한은 발을 질질 끌며 간호사의 뒤를 따랐다.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문에는 귀여운 동물이 그려진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정한은 고개를 숙여 의사에게 인사하고 의자에 앉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도 정신은 딴 데 가 있었다. 경험상 이렇게 서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본론은 좋지 않은 내용일 경우가 많았다. 마침내 의사가 정한을 부른 목적을 말했다.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신경 쪽에 문제가 생겼어요. 수술하지 않는다 해서 바로 실명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서서히 시력을 잃어갈 겁니다. 그리고 오래 끌면 끌수록 수술이 어려워져요. 너무 늦으면 수술을 해도 시력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발견한 이상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수술 일정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다 나으면 오빠랑 같이 여행 가고 싶다고 천진하게 말하던 정연의 목소리가 그 위로 겹쳐졌다. 의사는 정한의 두려움을 이해한다는 듯, 안타까워하는 미소를 띠었다.

 

   “수술비 문제도 있고 하니…… 며칠 더 생각해 보세요.”

 

   정한은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듣는 순간, 홍지수를 떠올린 자기 자신을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출근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이 없어 매니저에게 오늘 지각할 것 같다고 미리 말해 두지도 못했는데, 매니저는 한참 늦게 출근한 정한을 힐끗 보더니 오늘 열한시 반쯤 3번 룸으로 가면 된다는 말만 했다.

 

   “저……”

   “왜?”

 

   오늘은 안 가면 안 되나요? 그러나 이유를 묻는다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애초에 이 문제에서 정한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아니요, 아무것도.”

 

   진료실 문 두드릴 때보다 3번 룸 문 두드릴 때 마음이 더 무거웠다고 하면 이상할까. 정한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도 떨림이 멎지 않는 손을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혼자 앉아 와인을 홀짝이고 있던 홍지수가 정한을 보고 활짝 웃었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이었다.

 

   “기다렸어요.”

   “……저를요?”

   “네, 너무 보고 싶어서.”

 

   정한은 더 버티지 못하고 룸을 뛰쳐나왔다.

   3번 룸은 VIP 전용이라 깊숙한 곳에 있었다. 정한은 얼마 가지 못하고 막다른 구석에서 홍지수에게 붙잡혔다. 복도 벽에 머리를 콱 박자 홍지수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왜…… 왜 그래요, 정한 씨. 제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 뭐가 되었든…… 정한 씨!”

 

   말끝은 다시 비명이었다. 정한을 억지로 돌려세운 홍지수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벽에 머리를 두 번이나 박고도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누구든 그런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마에 와 닿는 손이 차가웠다.

 

   “무슨 일 있는 거죠, 네?”

   “제 문제예요.”

   “뭔데요? 저도 같이 고민하고 싶어요, 정한 씨 문제. 말해 주세요.”

 

   정한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여러 가지였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이건 제 문제라고 선을 그을 수도 있었고, 별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어설프게나마 둘러댈 수도 있었다. 이도저도 하기 힘들다면 그냥 침묵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한은, 가장 치사하고 비겁한 길을 택했다.

 

   “동생이 아파요.”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동생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 말을 하기 전에는 망설여야 했다.

 

   “돈이 없어요.”

 

   홍지수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정한은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경멸이든 비난이든 다른 무엇이든, 솔직히 상관없기는 했다. 내 주제에 낭만적인 사랑은 무슨. 정한은 속으로 자조했다. 이럴까봐 홍지수와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돈이 절실한 상황이 되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될 게 뻔해서. 다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낼게요.”

 

   차가운 손이 정한의 양 뺨을 감쌌다. 정한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홍지수의 눈은 결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서도.

 

   “제가 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지수 씨.”

   “수술비, 제가 낼게요. 그럼 되잖아요.”

   “……얼마인지는 알고 그러는 거예요?”

   “얼만데요?”

 

   금액을 들은 홍지수의 얼굴이 살짝 풀어지는 것을, 정한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은 말. 그 정도면 괜찮아요. 그러니까 정한이 자존심도 사랑도 다 포기하고 홍지수에게 오게 만든 돈이…… 홍지수에게는 ‘그 정도’였다. 정한이 가진 것을 모두 합쳐도 홍지수의 손목에 자리한 시계 하나 값보다 못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홍지수의 손은 아직까지도 정한의 뺨을 감싸고 있었고, 정한은 그 손목을 비틀어 버릴 것처럼 꽉 잡았다가 홍지수를 끌어안았다. 우습게도 이게 첫 포옹이었다.

 

   “죄송해요.”

 

   한없이 보잘것없는 사과에도 홍지수는 정한의 등을 마주 안았다. 괜찮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정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다.

 

 

 

   수술은 3주 뒤로 잡혔다. 정한의 집안 사정을 아는 의사는 정한이 바로 다음 날 수술 일정을 잡아 달라고 하자 조금 놀란 눈을 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저를 사랑하는 부잣집 도련님이 흔쾌히 내 주겠다 하신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므로 고마운 일이었다. 정연에게 수술 소식을 알리는 것은 의사에게 맡겼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까지 각오했는데 정연은 의외로 의젓하게 받아들였다. 어릴 적 병원 가기 싫다고 소리 지르던 것만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 얘도 많이 컸는데.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았다는 건 매니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매니저는 별로 달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라는 투로, 홍지수가 앞으로 한 달간의 금액을 선불로 냈으며 꼬박꼬박 출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사를 전달했음을 알려 왔다. 이것도 시간을 산 거라고 해야 하나. 정한은 뒷방을 나오자마자 홍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정한 씨?

   “얘기 들었어요.”

   - ……병원에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동생 분이랑 같이.

 

   정한은 막힌 숨을 탁 내쉬었다. 홍지수의 친절은 언제나 정한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다만 홍지수가 대답하기까지 약간의 사이를 두었다는 게, 그 친절이 마냥 좋게만은 받아들여지지 못할 걸 알았다는 의미 같아 조금의 위안이 되었다.

   그날부터 클럽이 아니라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정연은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홍지수가 1인실을 잡아줬다는 걸 듣고 정한은 갚을 빚이 늘어났다는 생각부터 했다. 여동생과 함께 있으라는 배려인지 친절인지, 홍지수는 가끔 잘 지내냐고, 동생 분은 괜찮으시냐고 문자를 보내는 것을 제외하면 정한을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당연히 3번 룸으로 갈 일도 없었다. 문자가 오면 저도 잘 지내고 동생도 괜찮다고 착실하게 답장하면서도 정한은 허전함을 느꼈다. 오빠가 자기 옆에 꼭 붙어 있어서 좋아하는 정연에게 죄스러워질 정도였다.

 

   수술 일주일 전.

   정연이 TV로 동물농장을 보더니 강아지가 보고 싶다고 시무룩해져 있었다. 병실에는 동물 반입이 금지된 걸 몰라서 저러는 게 아니란 걸 알아 정한은 머리를 싸매다가 강아지 인형이라도 사 오겠다고 나갔다. 진짜 강아지를 만지는 것만큼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털이 보드라운 인형을 찾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정연이 전화라도 했겠지만 왠지 마음이 조급해져 정한은 걸음을 빨리 했다.

 

   “정연아, 오빠 왔……”

 

   분명 1인실인데 사람이 한 명만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사나 간호사가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중년 남자의 얼굴을 보며 정한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정체는 정연이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오빠, 아빠가 나 보러 왔어!”

 

   기시감이 느껴질 수밖에. 여동생 얼굴을 똑 닮아 있었으니. 정한은 발밑이 아득하게 꺼지는 것을 느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씩을 뽑아 들고 옥상정원으로 올라갔다. 의사와 달리, 남자는 바로 본론을 말했다.

 

   “정연이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정한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벌었다. 정연의 친어머니, 그러니까 정한의 새어머니가 남편과 어떻게 이혼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들은 게 없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재혼해서 그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그 사업이 잘되고 있다는 것까지는 새어머니가 지나가듯 흘린 말로 주워들었으나 연락할 방도도 없었고 그쪽에 손 벌릴 마음도 없었다. 정한이 말이 없자 초조해졌는지 남자의 말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집사람도 동의했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키울 거예요. 혈연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학교도 어떻게 할지 다 생각해 두었고, 법적인 문제는 제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수술 얘기는 들으셨어요?”

   “네. 수술비랑 입원비는 다 내겠습니다. 지금까지 아이 키워주신 양육비도요. 아, 그리고 대학 그만두었다고 들었습니다. 다시 대학 가고 싶으면 등록금도, 생활비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직장을 소개해 줄 수도 있고요.”

 

   정한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구두는 반짝반짝 광이 나고 있었다. 홍지수가 신던 것과 비슷한 구두였다. 반면 정한은, 하도 오래 신어 밑창에 거의 구멍이 나려 하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정연이에게 지금이라도 아빠 노릇 해주고 싶습니다. 그 애 커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게…… 제 유일한 소원입니다.”

 

   남자는 정말로, 정연에게 잘해 줄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클럽에서 일하며 여러 종류의 인간 군상을 봐 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편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남자가 보이는 애정은 진짜였다. 남자는 정연이 에펠탑을 보고 싶다고 하면 당장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을 것이고 강아지를 만지고 싶다고 하면 제일 예쁜 강아지를 데려올 것이다. 사진이나 인형밖에 주지 못하는 정한과는 달리.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정연을 위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명백했다. 정한은 빈 종이컵을 손 안에서 구겼다. 요즘엔 어째 지는 게 예정된 게임만 하는 기분이다.

 

   “돈 계산, 한 번으로 끝내기로 해요.”

 

   속물이고 나발이고 홍지수에게 빚 갚는 게 먼저였다. 그러고 나면 다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 끼운 단추, 이제라도 다 풀어서 새로 끼우는 수밖에.

   병실로 돌아와 강아지 인형 끌어안고 잠든 정연 옆에서 숫자놀음을 했다. 이것저것 추가해 계속해서 올라가는 금액을 보면서도 남자는 그 정도면, 하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등골 부러질 일은 없을 법한 금액을 만들고서야 정한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사를 하고 싶어요. 아파트까지는 필요 없고, 원룸 정도로.”

 

   남자는 가고자 하는 대학 근처, 교통 편리한 곳에 자취방을 하나 정한의 이름으로 계약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조건을 하나 붙였다. 정연이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예상했던 것이라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정한과 정연은 완전히 남남이었다. 미국에서 딸에게 새 인생 살게 해 주고 싶다는데 피도 안 섞인 오빠의 존재가 달가울 리 없었다.

 

   “수술 전까지만 있을게요. 일단 제가 보호자라서.”

   “네. 그럼 정연이에게는……”

   “제가 말할게요.”

 

   남자가 돌아가고 나서, 정한은 잠든 여동생의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줄은 몰랐다. 꿈에서 진짜 강아지와 뛰놀기라도 하고 있는지 웃음 짓는 동생에게, 정한은 조금 이른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클럽에 들러 매니저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여동생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정한은 개인 사정이라고만 답했다. 돈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보다 건실한 방법으로 먹고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매니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사님께는 말씀드렸어?”

 

   그새 지수 씨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이사님이라는 게 누구를 가리키는 건지는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아직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래라.”

 

   정연은 수술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오빠와 헤어져야 한다는 말 듣고 더 많이 울었다. 열두 살이 충분히 큰 나이인지 어떤지 감이 안 잡혀 제대로 달랠 수도 없었다. 전화하면 꼭 받으라면서 손가락 걸라고 하길래 그렇게 하긴 했지만 시차는 둘째 치고, 뭐 얼마나 많이 걸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 가서 적응하고 놀고 공부하다 보면 한국에서의 일은 금방 잊게 될 것이다.

   정한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홍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 세 시, 한창 회사에서 일할 시간이지만 회장님 손자가 근무 시간에 잠깐 전화 받는다 한들 누가 뭐라 하겠어, 애초에 사무실도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고. 비서를 통하지 않고 전화하는 건 이게 처음이라는 데 생각이 닿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핸드폰 너머에서 홍지수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도 정한은 웃고 있었다.

 

   - 정한 씨! 무슨 일이에요?

   “오늘 만날래요?”

   - 오늘요?

 

   스케줄을 확인하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한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 시간이……

   “몇 시에 오시든 상관없어요.”

   - 아……

   “기다릴게요.”

 

   3번 룸은 거의 홍지수 전용으로 빼 놓는 터라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 클럽 소속이 아니니 유니폼을 입을 필요도 없이, 양주를 한 병 사서는 느리게 마시며 홍지수를 기다렸다. 가끔 속이 너무 뜨거워진다 싶으면 비스킷도 하나씩 주워 먹었다. 고객들 성화에 못 이긴 척 먹고 마실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홍지수는 새벽 한 시쯤에 왔다. 들어오자마자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더니, 정한이 유니폼 아닌 옷을 입고 있는 걸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쯤 빈 양주병을 보고는 눈이 더 커졌다. 정한은 소리 없이 웃으며 홍지수에게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홍지수는 맞은편 대신 정한의 옆에 앉았다. 미소 띤 얼굴은 정한의 말을 듣자마자 금이 갔다.

 

   “돈 돌려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첫 만남과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내 것이 아니었던 걸 당신의 호의로 받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당신을 다시 불러내게 되는 게. 그것도 이제 오늘이 끝이었다. 정한은 손잡이 달린 상자를 내밀었다. 홍지수는 이게 뭐냐고 묻지도 않고 정한을 바라보기만 했다. 시선을 마주했다가는 간신히 쌓아올린 결심이 허물어질 것을 알아 정한은 앞만 보았다.

 

   “그게 다예요.”

 

   상자 안에 차곡차곡 담긴 5만 원권. 은행에서 이만한 현금을 찾는 건 처음이라 이래저래 고생했지만 이걸로 홍지수가 지금까지 내 준 돈에 이자까치 쳐서 갚았다.

 

   “정한 씨.”

   “저 이제 가 볼게요.”

   “잠시만요, 이게…….”

   “안녕히 계세요.”

   “잠시만요!”

 

   팔을 움켜쥐는 손길이 사나웠다. 정한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벽으로 밀어붙여져 이제 피할 곳도 없었다. 벽에 부딪친 등이 아픈 것보다도, 처음 보는 표정에 마음 아픈 게 더 컸다. 

 

   “정말로 이게 다예요?”

   “이사님은 제 고객이고, 우린 돈 문제로 얽힌 사이고. 계산 깔끔하게 끝냈잖아요.”

   “…….”

   “이사님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전 이사님이랑 있을 때마다 힘들었어요. 혹시라도 제가 실수해서 비위 상하게 할까봐 불안했거든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도 이사님이랑 제 위치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할 때마다 괴로웠어요. 이해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준비했던 말을 기계적으로 읊었다. 홍지수가 손을 놓았는데도, 누군가 숨통을 틀어쥔 것 같은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그의 애정이 꼭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그런가. 정한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클럽을 빠져나왔다. 택시를 탈 때까지, 붙잡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한은 차근히 이사 준비를 했다. 번호를 바꾸는 김에 몇 년 만에 핸드폰도 바꾸고, 집안을 반쯤 뒤엎어가며 청소를 했다. 새로 이사할 집에 웬만한 가구는 다 있다고 해서 들고 갈 것보다 버릴 것이 더 많았다. 몇 되지도 않는 가구에 하나하나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진이 쭉 빠졌다. 정한은 낡은 탁자를 만지작거렸다. 이 탁자는 다리 하나가 다른 세 개보다 좀 짧아 매번 아래에 신문지를 괴어 놓아야 했다. 옷장은 문을 한 번 닫으면 다시 열기 어려워 항상 열어 두어야 했고, 세탁기는 돌릴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서 괜히 이웃집 눈치를 봐야 했다. 이 구질구질한 집에 남다른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떠날 날이 다가오니 좀 시원섭섭하기는 했다.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하려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 먹을까, 하고 집을 나왔다. 마트에서 할인상품으로 파는 500원짜리 스크류바 대신 1800원짜리 월드콘을 고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삶을 즐기며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마트에는 우산도 팔지 않았다. 정한은 월드콘을 손에 든 채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정한은 조금 더 고민하다가 그냥 뚫고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비 나오는 게 무서워서 감기도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사는 삶과도 이제 멀어져야지. 비 맞는 걸 싫어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니 나름 운치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보는 것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가볍게 샤워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버릴 세탁기 마지막으로 혹사시켜야 하나 아니면 그냥 옷을 버려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정한은 집 앞까지 와서 멈춰 섰다.

   홍지수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서 있었다.

   손에 든 종이 쇼핑백이, 몇 천만 원을 호가할 정장이 다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염없이 닫힌 문만을 바라보면서.

   정한은 홍지수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반지하 방 창문으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인다. 운동화를, 샌들을, 하이힐을 신은 발이 오가는 동안 까만 구두는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한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빗물이 점점이 떨어지는 방 안을 서성이다가 결국 우산을 집어 들었다.

 

   “없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살이 부러지고 구멍이 뚫렸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우산을 펼쳐 억지로 쥐여 주는데도 홍지수의 시선은 정한의 얼굴만을 향하고 있었다.

 

   “저희 집…… 비가 오면 물이 다 새요. 반지하라서. 그래서 벽이랑 바닥에 항상 곰팡이가 슬어 있어요. 이사님은 이런 거 상상도 못하겠지만 저는 그런 곳에 살아요.”

 

   나는 당신이 평생 온실에서만 산대도 괜찮았다. 당신이 가난을 모르길 바랐고, 꼭 알아야 한다면, 피상적인 가난만을 알기를 바랐다.

 

   “들어가 봤자 더 춥고 불편하기만 할 거예요. 얼른 집 돌아가서 몸 녹이세요. 이러다 감기 걸리겠어요.”

 

   이런 날것의 모습이 아니라.

 

   “저 곧 이사 가요. 새 집 주소 안 알려드릴 거니까 저 찾지 마시고요.”

 

   홍지수가 우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일그러진 눈매에 물기가 어렸다. 

 

   “보고 싶었어요.”

 

   홍지수는 웃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웃었다.

 

   “정한 씨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불러냈던 거 죄송해요. 전 진짜로 몰랐어요. 이것도 다 제 잘못이겠지만……”

 

   슬픔을 먹고 자란 꽃이 있다. 그 꽃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마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 꽃을 뽑아내려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까지 감수해야 했다. 정한은 꽃줄기를 움켜쥐었다. 뽑으려면 못 뽑을 것도 아니었다.

 

   “선물이에요.”

   “…….”

   “젖긴 했는데…… 그래도……”

 

   홍지수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비에 푹 젖은 쇼핑백을 내밀었다. 입구가 닫혀 있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는 차 타고 왔으니까 이건 정한 씨 써요, 하는 목소리는 거의 잠겨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에 쇼핑백을 든 채 정한은 천천히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쇼핑백을 뜯었다. 젖은 종이는 조금의 힘만 주어도 쉽게 찢어졌다.

   노란 장미 한 다발이 들어 있었다.

   비 때문에 꽃잎은 대부분이 축 처져 있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쇼핑백 조각이 떨어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정한에게는 세상 그 어느 꽃보다도 찬란해 보였다. 이건 결국, 지는 게 예정된 게임이었다. 오늘 한 번만 그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웃는 홍지수의 얼굴을 보면서, 저 사람이 예쁘게 웃는 걸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아야 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았어라. 부디, 내 손 닿는 곳에만 있어줘. 정한은 간절히 바라며 홍지수를 쫓아 뛰었다. 애처로운 뒷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지수 씨!”

 

   정한은 놀라 돌아보는 홍지수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우산은 내던졌는데 다 너덜너덜해진 쇼핑백은 놓지 못하고 있어 축축해진 몸들 사이에서 꽃이 짓눌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내내 건조했던 눈이 순식간에 젖었다.

 

   “저…… 저는 저 하나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수 씨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까봐…… 그게, 자신이 없어요.”

 

   밑바닥에도 또 밑바닥이 있다. 정한은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새삼 실감했다. 그래도 저는, 하고 말하려는데 커다란 손바닥이 정한의 입을 덮었다. 원래도 차갑던 손은 비를 맞아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제가 할게요.”

 

   정한은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빗물과 섞여 뺨을 타고 굴러 떨어졌다. 홍지수의 꼴도 별로 다르지는 않았다. 흰자에는 실핏줄이 터지고 눈가는 빨갛게 부어 있었다.

 

   “제가 정한 씨 꼭 행복하게 해줄게요.”

 

   비에 젖어도 꽃은 예쁘고 초라하기 그지없어도 이건 사랑이었다. 엉망이 된 얼굴로, 홍지수가 고백했다.

 

   “우리 같이 행복해지면 되잖아요.”

 

   내 마음 상하는 건 두렵지 않은데, 꽃이 다시는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게 두렵다. 이건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한 거라서.

 

   “사랑해요.”

 

   그리고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귀한 사람이라서.

 

 

 

그러니 우리 함께 봄으로 가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