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감정이 서로 통하고 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며 가며 대기실에서 마주쳤을 때, 처음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을 때, 카페에서 잠시 이야기라도 하지 않겠냐며 진부하게 붙잡았을 때, 전화하는 횟수가 늘고 서로 어떤 약속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을 때도. 어떤 정의된 관계는 아니었으나 이 감정에 굳이 가장 가까운 이름을 붙이자면 우정보다는 애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지수와 나는 데뷔 시기가 비슷했고, 회사의 상황이나 그룹 내에서의 포지션도 비슷하고, 나이도 같고 고민하고 있는 것들도 너무나 비슷했다.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지. 이 세계에서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귄다는 건 큰 축복과도 같은걸. 그렇게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은 쉽게 무너지고 사라진다. 얼마나 높게, 단단하게 쌓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제껏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될 땐 언제고, 성공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대비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래서 정한은 불행하게도 손도 닿지 않는 높디높은 곳에서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을 저 먼 바닥에서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해야만 했다.
그처럼 기적은 순식간에 찾아오는 것이었다.
불모지에서 겨우 싹을 내밀고 탐스럽게 꽃을 피운 여린 꽃. 세상에서 가장 밝고 화려하게 빛나던 꽃 한 송이. 너무나 반짝였기에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꽃은 어느새 저의 손이 닿지 못할 까마득한 높이까지 피어올랐다.
정한은 까마득한 곳을 바라보다, 부질없는 사랑을 놓아주었다.
―이제는 홍지수라는 이름보다 조슈아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게 된 친구에게 안녕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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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터닝 포인트
w. 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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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이 형… 나는 이제 그만둘까 싶어…’
‘…그래. 고생했어.’
애써 덤덤한 척하던 우리 막내.
‘형, 미안해…’
‘뭐가 미안해? 우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야. 미안할 일 아니야.’
‘그래도 미안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메인 보컬.
‘정한이 형. 난 그래도 포기 안 해.’
‘좋은 거지. 나도 포기 안 했어.’
‘다시 만날 땐 성공한 모습으로 만나는 거야.’
눈시울이 붉어져선 각오를 다지던 리더까지…
당연하겠지만 그 누구도 재계약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정한은 이제껏 떠나지 않고 남아있어 준 멤버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렇게 끝이구나. 우리는 마지막이 될 앨범을 정성껏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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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음악 방송은 초라했다. 우리의 최종 순위는 5위. 팬들도 이별을 예감한 듯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정한아, 꼭 음방 1등 시켜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무대를 떠나는 자신을 향해 건넨 말이 선명하게 남는다. 다음엔 잘하겠다는 말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여러분. 지금 정한이 해줄 수 있는 건 자신을 찍고 있는 몇몇 카메라를 보며 예쁘게 미소지어주는 것뿐이었다.
무대를 끝내고 내려오자, 마침 대기실에서는 1위 후보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와, 봐봐. 지수 형이 1위 후보다.”
“그러네? 좋겠다…”
“나도 저기 서 보는 게 꿈이었는데…”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지금은 포기했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저 자리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데뷔하기 전, 새벽까지 연습실에 남아 연습하다 지쳐 누웠을 때라던가, 첫 팬 사인회를 열었을 때라던가, 처음으로 음원 차트 100위 안에 우리 곡이 들었을 때라거나, 라이브 방송 중 팬들에게 우리 앨범이 10만 장이 팔렸다며 축하를 들었을 때, 그리고 또…
‘정한아. 우리도 꼭 언젠가 저기서 만나는 거야.’
서로의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1위 후보들의 무대를 함께 구경하고 있을 때였던가, 그게. 홍지수는 약속을 하자고 했다. 1위 후보가 될 때까지 라이벌로서 함께 경쟁하고, 정말로 함께 1위 후보에 오르는 날이 되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나서, 결과 따윈 상관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자고.
‘약속.’
그러면서 생긋 웃는 지수의 얼굴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우리는 꿈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으니까…
‘응, 약속~’
정한은 자연스럽게 답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지수는 제게 내밀어진 손을 잠깐 멀뚱히 바라보다 이내 아, 하고선 어색하게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잔인하게도 모든 순간이 너무나 생하고 선명하다. 정한은 그때 했던 어떤 약속도 지키지 못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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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발표 때 올라가기까지 아직 시간 좀 있지?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형, 혹시 모르니까 폰 가져가. 연락하면 꼭 받고!”
“엉~”
멤버들을 뒤로하고 대기실에서 나선 정한은 복도를 걷다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저기쯤이었는데… 정한은 기억을 더듬어, 익숙한 벽을 찾아냈다. 대기실에서 나올 때 챙겨온 막대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물고선, 예전에 그랬듯 벽에 기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서는 또 다른 1위 후보의 무대가 흘러나오고 있다. 솔직히 저 자리에 내가 서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이 안 들 수는 없었다. ‘조슈아’에게는 아니겠지만, ‘정한’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그래, 1위를 축하한다며 같은 무대 위에 서서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것도 오늘뿐이다.
경쟁은 실패. 체급이 하나도 맞지 않게 되었으니까. 함께 후보에 오르기도 실패. 그래도 꽤 근접했는데 아깝긴 하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는가, 그건 고민해볼 일이긴 하지만 정한은 적어도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진심은 모르겠고, 축하는 해줄 수 있는데…”
그럼 보자, 두 개 정도는 지킨 거네. 그래도 마지막까지 빌어먹을 약속을 하나도 못 지킨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생각에 깊이 잠겨 있던 정한은 미처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정한의 앞에 멈춰 선 상대는 정한이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인사부터 건넸다.
“오랜만이다, 정한아.”
…솔직히 목소리만 들어도 모를 수 없는 상대였다. 젠장, 지금 진짜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으나, 반사적으로 인사가 튀어나왔다. 이야, 이게 누구야. 1위 후보 조슈아 아니야~? 말을 뱉는 자신도 어색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데, 듣는 사람은 오죽할까. 망했다. 어색함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무대 보고 있었어?”
“어어… 올라가기 전에 잠깐…”
“하하, 옛날 생각나네. 기억나? 여기서 나랑 너랑…”
“…어떻게 잊어버리겠어.”
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까까지 혼자 처량하게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조슈아 역시 아까 정한이 그랬듯이 감상에 잠긴 모습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고작해야 노래 한 소절이 흘러나오는 시간이었는데 왜 이렇게 느리게만 느껴질까.
“있지, 정한아. 아까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라.”
“왜, 내 생각이라도 했어?”
“응. 내 무대 다음에 올라오는 게 너여서, 너한테 수고했다는 말 듣는 상상 했어.”
“……”
“나는 너한테 힘내라고 응원해주면서 내려가고… 그러면 참 좋겠다고…”
오늘 막방이랬지. 다음에는 꼭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더 힘내자. 조슈아의 천진한 웃음이 심장을 찔러 들어온다. 아, 지금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 같다. 결심은 순식간이었다.
“지수야. 나 이번이 마지막이야. 우리 팀… 그만하기로 했어.”
“뭐…?”
“아쉽다. 그치. 나도 꼭 너랑 나란히 서서 서로 축하해주고… 기쁨을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뭐라고, 쉽지가 않더라. 조슈아는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정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한이 형! 우리 올라가야 한대요! 어어, 갈게. 지수야, 너도 가야 하지 않아? 조슈아는 여전히 놀란 눈 그대로였다. 많이 놀랐겠지. 곧 1위 소감도 해야 하고, 앵콜 무대도 해야 할 애한테 자신이 대뜸 너무 큰 폭탄을 던졌나, 싶기도 했다. 뭐라도 더 말을 할까 싶었는데 다급히 저를 부르는 매니저 형과 멤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조슈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붙잡았다.
“…정한아, 그럼 이제 활동 안 해? 혼자서라도 할 생각 있으면―”
“응. 안 하려고.”
“…그럼 뭐 할 거야?”
“글쎄? 일단 대학이라도 갈까?”
너도 알지? 뭐 새로 시작하려면 일단 대학 졸업장부터 있어야 하는 거. 에휴, 이 나라가 이렇게 살기 팍팍하다아. 어뜨카냐, 나 넘 어릴 때부터 연습만 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다시 공부하려고 하면 힘들겠지. 정한은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냈다. 조슈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수야, 그래도 나 열심히 했지? 그렇다고 해주라. 응?”
차마 뒤돌아 조슈아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정한은 비겁한 질문만을 남겨놓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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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압도적인 차이로 1위 자리를 거머쥔 조슈아는 의외로 덤덤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쯤에 서서 박수를 치던 정한은 곧게 서 있는 조슈아의 뒷모습만 어렴풋이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형, 내려가야죠. 그래야지. 생방송 무대에서는 결국 옆자리에 서 있지 못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건넬 수도, 뜨거운 포옹을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늦게 자리를 떠나고 싶었던 정한은 애써 발걸음을 늦췄다.
“정말로 오래 꿈꿔왔던 순간입니다. 큰 선물을 주신 팬 여러분께 너무나 감사해요.”
조슈아의 수상 소감이 시작되었다. 아, 듣고 내려가고 싶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텐데.
“그리고 사랑하는 내 친구 정한이에게…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싶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고, 나랑 같이 달려줘서 고맙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 꼭 조슈아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우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첫 1위의 순간을 저에게 오롯이 내어주고 있기 때문일까.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은 말이잖아. 더 해야 할 말이 많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점점 빨리 뛰었다.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과, 제가 멈추지 않도록 함께해준 친구가 있어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조슈아의 목소리가 점점 떨린다. 이제야 눈물이 나는가 보다. 정한아, 나는 첫 1위 하면 막 엄청 울어버릴 것 같아. 그렇게 말하던 어린 홍지수는 이제 눈물을 참고 차분히 소감을 끝맺을 줄 아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새삼스럽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슈아는 울면서 앵콜 무대를 이어갔다.
울지 마! 울지 마! 정한은 백스테이지에서 한참이나 팬들의 요란스러운 함성과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말하는 조슈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 더, 같은 무대에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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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 애들이랑 먼저 들어가실래요? 저 잠깐 약속이 있어서.”
“그래라. 너무 늦진 말고.”
“엥? 정한이 형, 갑자기 무슨 약속? 아침까지만 해도…”
“형, 잘 다녀와.”
“맞아! 조심해서 들어오고요!”
눈치 없는 막내를 끌고 자리를 피해 주는 멤버들이 고마웠다. 어릴 땐 우리 사이에 어떤 약속인지 말도 못 해주냐며 달려들어 물어보곤 했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걸 보니 쟤네도 참 많이 컸다 싶다. 지잉, 핸드폰이 울린다. 언뜻 본 화면에서 익숙한 이름이 반짝인다.
홍지수 : 좋아.
자신의 질문은 ‘잠깐 얘기 좀 할래?’였다. 정한은 조슈아의 답을 받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거절당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구질구질하게 굴 일은 없어서 다행인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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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선팅이 짙게 되어 있는 차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달칵,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났다. 정한은 익숙하게 조수석에 올라탔다. 성인이 되고, 조슈아가 운전을 시작한 이후 두 사람의 약속 장소는 언제나 조슈아의 차 안이었다. 그새 마실 음료도 테이크아웃해온 정한은 자리를 잡자마자 음료부터 건넸다.
“자~ 레몬티~”
“왜 물어보지도 않고 사와?”
“어라, 다른 거 마시고 싶었어?”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니 딱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조슈아는 정한이 사 온 레몬티를 한 모금 홀짝이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안전벨트나 매세요. 네에, 네에~ 행선지도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 조슈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래, 뭐. 우리가 이야기할 곳이 달리 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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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잘 보이는 곳에 차를 대고, 해가 지는 강변을 함께 보았다. 우리는 예전부터 종종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한강 둔치로 향하고는 했다. 어느 날은 함께 걷기도 했고, 어느 날은 술을 한잔하기도 했으며, 어느 날은 지금처럼 차에서 그저 강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이젠 이런 것도 마지막일까. 은퇴하고 나면… 지수와 만날 일은 아마 없을 테니까. 일반인이 된 자신이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타에게 만나자고 할 순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마음이 씁쓸하다.
“아, 맞다. 1위 축하해. 소감 멋지더라~”
“…그래도 다 듣고 있었네.”
“너무한다, 들으라고 그렇게 말한 거 아니었어? 사랑하는 내 친구 정하니~ 하구.”
“정한아.”
저를 부르는 조슈아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하다. 정한은 남아있던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조슈아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를 짓누르고, 두 사람이 친구가 된 이래 가장 긴 시간이 흘러간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그거뿐이야?”
“당연히 아니지.”
“그럼 이제 해봐.”
또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입이 바싹 말라가는 것만 같다. 레몬티로 입술을 축이며 정한은 말을 고른다. 어떤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수많은 말이 머리에서, 입안에서 맴돌기만 한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 순간 꼭 해야만 하는 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수야, 나 너 좋아했었다.”
그래, 이 모든 감정의 시작부터 이야기해야지. 마지막이잖아.
“솔직히 그럴 만하지 않나…? 우리는 넘 비슷한 상황에 처음 만났고, 사소한 얘기로 시작했지만 점점 깊은 대화를 나눴고… 우리 팀 이외에, 네가 내 유일한 친구였고. 그러니까 안 좋아할 수가 없었지.”
“그리고 사실 나 처음에 너 봤을 때 깜짝 놀랐었어. 와, 저렇게 잘생겨야 아이돌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니까.”
“좋아하니까… 기쁠 때 누구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와, 그게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나. 한 줄만 앞이었어도 뛰어가서 안아주기라도 했을 건데 순위는 왜 또 애매해가지구… 그래도 너 뒷모습은 봤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어라, 왜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모르겠다. 슬픈 이야기도 아닌데. 정한은 애써 웃으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점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아, 아까 너는 이런 기분으로 끝까지 참아냈던 걸까. 아무래도 자신은 아직까지 조슈아만큼 어른이 되진 못한 모양이다. 채 다 삼켜내지 못한 눈물이 결국 고개를 내민다. 울고 싶지 않은데…
“나, 지금 너 한 번만 안아줘도 돼?”
제 마음도 모르고 눈물은 야속하게도 뚝뚝 떨어진다. 지금 진짜 웃긴 꼴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조슈아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정한에게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을 뿐이다. 정한이 훌쩍이는 소리가 줄어들 때쯤에야 조슈아는 입을 뗐다.
“내리자, 정한아.”
“…웅?”
잠깐만, 정한이 말릴 틈도 없이 조슈아는 차 문을 벌컥 열었다. 다행히 차 주변에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조슈아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보였다. 점차 소란스러워질 미래가 눈에 선하다. 너는 이제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지―! 정한은 황급히 차에서 따라 내렸다.
“야, 홍지수! 너 갑자기 왜 내려? 그냥 차에서 얘기해. 아님 좀 더 조용한 데로 옮기기라도 하든가…”
“그야… 차 안에선 네가 안아줄 수가 없잖아?”
조슈아는 남의 시선 따위는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 하고 두 팔을 쫙 벌려 내미는 꼴이 아주 볼만했다. 너는 지금 사람들이 이렇게 미친 듯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게 보이질 않냐?? 홍지수 저 녀석도 진짜 자신 못지않게 제멋대로인 놈이라는 걸 감상에 젖어 깜빡 잊고 있었다.
미쳤지, 미쳤어. 정한은 조슈아의 페이스에 제대로 휘말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얼른 해결하고 어떻게 됐든 쟤를 차에 다시 태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정한의 행동이 눈에 띄게 빨라진다.
정한은 후다닥 달려가 조슈아를 꽉 끌어안았다. 이 포옹은 무대에서 하고 싶었던 것처럼 한 것도 아니었고, 생각처럼 멋지고 당당한 모습이지도 않았다. 그저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했다는 게 절로 느껴지는 엉성한 모습이었지만 막상 또 그렇게 싫지만은 않아 웃겼다. 조금은 위로가 된 것도 같고. 조슈아를 꽉 안고 있으려니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정한은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축하해, 지수야… 그리고 미안해…”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 더 이상 네 곁에 함께해주지 못해서 미안, 먼저 포기해버려서 미안… 많은 의미를 담은 사과였다. 조슈아는 정한을 마주 안아주었다.
“고생했어, 정한아.”
“네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야. 알지?”
“어디서든지 괜찮아, 그냥 계속 날 지켜봐 주면 돼. 그러다 다시 돌아오고 싶어지면… 그땐 내가 같이 달려줄게.”
“꼭 다시 만나기로… 다시 약속하자.”
결국 조슈아도 눈물을 보이고야 만다. 꼴사나워 보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한은 한참이나 조슈아를 안아주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 못 한 채, 눈앞의 이별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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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지…”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될 땐 언제고… 성공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정한뿐 아니라 멤버들도 모두 며칠 새 달라진 자신들의 인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조슈아와 눈물의 이별을 하던 그 날, 누군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시발점이었다. 조슈아의 목격담이라며 누군가 올린 사진을 보고, 한 팬이 절절하게 글을 써 내려갔고… 그 글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었다.
‘조슈아(지수)와 정한의 눈물 없이 못 보는 우정’이라는 정직한 제목을 단 글에는 그간 조슈아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 정한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뿐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잡힌 몇 없는 순간들까지도 모으고 모아 정성껏 정리되어 있었다.
정한과 조슈아는 데뷔 때부터 함께 1위 후보가 되어 마지막에 나란히 서자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정한이 눈물을 흘린 것이라며 사진과 함께 정리된 글은 정한 본인이 봐도 그럴싸했다. 그룹 활동 시절, 조슈아가 자신의 그룹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극적으로 솔로로 성공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더하고, 조슈아의 감동적인 첫 1위의 순간과 정한의 막방 순간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마지막에 한강에서의 눈물의 포옹 이야기까지 덧붙이자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 스토리가 탄생했다.
거기다 댓글로 정한의 그룹이 이번에 마지막 앨범을 내고 그룹을 해체할 예정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음질이 좋진 않았지만, 조슈아의 한 마디가 명확하게 들리는 영상까지 공개되자 그 후로는 겉잡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글이 퍼져가고, 수많은 형태로 세상에 전해졌다.
‘네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야. 알지?’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대중은 열광했다. 밑바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악착같이 올라온 두 스타의 이야기가 세상에 완연하게 꽃을 피웠다.
정한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 활동이 끝났음에도 음원의 순위는 슬금슬금 오르더니 생전 처음 보는 순위에 안착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멤버들과 함께 갈고닦았던 퍼포먼스는 수많은 무대 영상 속에 남아 있었고, 쏟아지는 관심에 힘입어 드디어 빛을 보았다. 곳곳에서 다시 음악 방송에 나와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주의 1위 후보들을 만나보시죠!”
그토록 꿈꾸었던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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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는―!”
“축하합니다!”
꽃가루가 펑, 휘날렸다. 정한과 멤버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렸음을 믿지 못했다. 소감을 말해야 할 리더는 굳어 있었고, 다른 둘은 이름이 불리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정한 역시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나한테도 진짜 일어나는구나. 정한은 그나마 정신을 잡고 있는 게 자신인 듯해 겨우겨우 마이크를 잡았다.
“어… 일단…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저희에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질 않았어서… 정말…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오랜 시간 저희를 응원해주셨던 팬 여러분… 최근에 많은 사랑을 주신 여러분께도요.”
“사실은…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어요.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라는 얘기도 당연히 했었고… 그런데 사람 앞일이란 게 정말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거네요…”
“이 자리에 정말… 너무 서고 싶었습니다. 이젠 알고 계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저랑 지수, 아니 조슈아가 약속한 게 있어요. 되게 오래된 약속인데…”
“나란히 1위 후보에 올라서, 서로를 제일 먼저 축하해주자고 했었거든요… 평생 그 약속, 지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조슈아는 정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큼 달려와 정한을 꽉 껴안았다. 그제서야 눈물이 펑 터진 정한 대신 리더가 마이크를 들고 마무리 인사를 했고, 앵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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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높이에도 기적은 찾아오고, 사랑은 다시 피어난다. 정한은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행복한 눈물,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포옹을―
“정한아, 축하해. 그리고 많이 사랑해.”
그리고 진심 어린 고백을― 아마 평생토록 간직할 터였다.
진심 터닝 포인트 END.

안녕하세요, EB입니다.
개인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이 되어(…) 어떡하면 좋을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많이 했던 글입니다.
'재능의 개화'라는 느낌으로,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피어오르는 재능에 대해 써 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출발선이 같았던 친구가 자신보다 너무 높은 곳으로 떠나버렸을 때의 감정에 대해서도요.
비록 제가 처음 쓰고 싶었던 이야기와는 멀어졌지만
정한이와 슈아 앞에 만개한 기적 같은 순간들을 즐겨주셨다면 너무나 기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