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템페스트
레모나
1.
파란 스텔레토 힐의 경쾌한 소리가 지하 계단에 울려 퍼진다.
“홍 사장, 지금 있지?”
“네, 지금 지하에 기다리고 계세요.”
한솔은 류 사장의 걸음 속도를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더 서둘러 움직였다. 류 사장. 마약유통 및 희귀종 매매 등 일대 바다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일들은 대충 다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류 사장은 하이힐을 신고 용케도 바닥을 쾅쾅 밟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지수는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류 사장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류 사장이 직접 행차하다니, 별일이네.
아무리 단골이라지만 의뢰인과 대면은 달갑지 않은 규칙 위반이다. 모순된 말 같지만 원래 무법 세계가 유지되기 위해선 질서가 필연적이다. 청소업체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곳은 철저한 예약제로 이루어지며 의뢰는 대리인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것이 서로의 신변을 지키고 각자의 업을 존속하기 위한 기본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랜 단골인 류 사장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재미로 규칙을 어길 사람은 아니니, 측근의 대리인조차 믿을 수 없는 어떠한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계산보다 판단이 빠른 킬러들의 촉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대체 그 <일>이 무엇일까 잠시 추측하던 중, 류 사장이 지하 3층에 도착했다. 지수는 허리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
“실제론 처음 뵙네요, 류 사장님.”
어떤 용건이기에 얼굴까지 보이냐는 뜻이다. 말에는 뼈가 있지만, 표정은 살갑게 웃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주요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바보 같은 짓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지수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체 한솔에게 따뜻한 차를 부탁했다. 로즈마리 티로, 두잔.
사진이 아닌 실물의 류 사장은 어딘가 초조해 보이면서도 흥분해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의 발끝이 쉬지 않고 까딱거렸다. 새파란 힐의 색깔 때문에 움직임이 더 눈에 띄었다. 이윽고 그는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목소리보다 한층 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홍 사장, 내가 부탁 하나가 생겼어-. 말을 끊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불안하면 담배부터 찾는 흔한 흡연자의 습관이다. 지수는 빠르게 라이터를 꺼내 그 앞에 불을 대주었다. 지포 라이터의 딸깍 소리가 나고, 통풍되지 않는 지하 3층에 독한 연기가 퍼졌다. 지수는 류 사장이 한 번 더 연기를 들이마시고 내쉴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물었다.
“의뢰가 아닌 부탁이요?”
“의뢰야 뭐, 내가 여기까지 올 것도 없지.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니야.”
류 사장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여러 번 꾹꾹 눌렀다. 묘하게 상기된 표정은 니코틴 공급에도 풀어지지 않았다. 지수는 차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솔은 내온 찻잔을 지수와 그 앞에 각 하나씩 놓았다. 류 사장은 따끈한 찻잔에 재를 털며 뜸을 들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홍 사장”
“여기서 가장 큰 수조 좀 보여줄래?”
2.
<킹크랩, 대게, 전복, 낙지. 어서 오세요. 네트워크 수산에!>
네트워크 수산. 반도의 동쪽 끝 촌 동네 안에서도 제일 낡은 수산집 치고 이름이 글로벌하다. 물론 그 안으로 들어가면 간판에서 느껴졌던 어색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가게 이름을 삼백프로 이해하게 된다. 일단 계산대를 지키는 저 은발의 외국인이 한몫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외국인은 아니었다. 어느 나라에도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출생 증명조차 하지 못한 아이는 뉴욕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한국으로 보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집 막내 한솔은 겨울이면 종종 기억에도 없는 뉴욕을 추억했다. 그곳의 겨울은 한국보다 조금 더 춥지만, 캐롤이 만연해 마음만은 따뜻하지 않을까. 언젠가 자신보다 미국에 오래 산 지수에게 물었더니 지수는 담요를 몸에 둘둘 만 체로 보일러를 최대로 틀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서부 끝에 살았던 사람한테 동부를 물어보면 어떡해 한솔아.”
이렇듯 지수는 한솔의 고향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 했으나, 아무튼 한솔은 같은 나라에 뿌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좋아했다. 제 뿌리를 잃은 기분이 들 때마다 지수를 보며 되짚어갈 수 있었다. 한솔은 연고 없이 버려진 5살부터 칼을 잡았고 14살부터는 살을 도렸으며 19살에는 자의로 사람을 찔렀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을 가두고 있던 조직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문제는 자유의 대가가 밥줄이었다는 점이다. 갈 곳 없는 사람에게 자유란 생명의 위협과도 같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당장 먹고살 돈이나 머리 대고 잠들 수 있는 방 하나 없었다. 신원 조회조차 불가능한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지금 당장 죽어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무의미한 개죽음은 싫었던 한솔은 결국 돈을 찾아 헤맸다. 할 줄 아는 게 뼈와 살을 분리하는 짓뿐인데, 회 뜨는 일 정도는 잘하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방문한 수산집이 하필이면, 네트워크 수산이었다. 그날 가게 문을 연 한솔이 본 것은 제대로 된 칼잡이가 없어 시체를 아무렇게나 보디백에 밀어 넣고 있던 홍 사장이었다. 당황할 법도 한데 오히려 은은하게 웃으며 뻔뻔하게 인사하는 홍 사장을 보고, 한솔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첫 번째는 저 (미친) 사람 편에 있으면 쉽게 죽지는 않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지금 가게 밖으로 나가면 저 또한 불쌍하게 보디백 안에 구겨져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뇌를 스치자마자 한솔은 제자리에서 칼을 들어 뚝딱 제 실력을 보여주었고, 당당하게 가게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홍 사장이 원래 웃는 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취직한 지 약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첫인상이 영 틀린 것은 아니어서,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솔의 눈에 지수는 웬만한 일에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장님이. 그런 홍지수가. 지금 당장 짐을 싸 미국으로 날라버리고 싶은 표정을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한솔은 제 눈앞의 생명체보다 그 사실이 조금 더 흥미로웠다.
“한솔아, 나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보는 걸까?”
“아니요. 제대로 보고 계세요.”
지수는 빈말이라도 눈앞의 것이 거짓이라는 말을 원했는지 금방 울상이 되었다. 이것 또한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사장님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시네요.”
“그럼 내가 지금 달리 무슨 표정을 지을 수 있겠니...”
일단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하자... 지수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수조에 머리를 콩 박았다. 당연히 금도 가지 않았다. 이 수조로 말할 것 같으면, 성인 한 둘은 족히 누울 수 있는 크기에,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망치로도 부술 수 없지만, 너무 커서 어디 내놓지도 못하는 가게 제일가는 애물단지였다. 수산업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홍사장이 아무것도 모르고 가장 크고 좋은 수조로 주문해버리는 바람에 생긴 결과물이었다. 그 수조는 몇 년간 먼지가 쌓인 채 지하실에 방치되고 있었다가 드디어 제 용도를 찾았다. 성인 남성 한둘이 거뜬히 누울 수 있는 그 공간에는 지금, 금발의 인어 하나가 잠들어있다.
첫 인어가 포획됐을 땐 세상이 뒤집혔다. 매스컴에서는 온종일 인어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으며, 과학계에서는 이 괴생명체를 “어떤” 기관에서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당연히 정치판과 갖은 주식도 크게 들썩였다. 물론 홍지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인어가 한국에서 발견된 것도 아니고, 설령 나왔다 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텐데 저와 무슨 상관일까. 평범함에 속하지 않고 붕 뜬 삶을 사는 지수에게 인어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수산집 식구들과 훠궈를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동화가 완전 허구는 아니었구나,” 딱 그 정도 감상을 내놓았다. 나머지 식구들도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 외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타깃 외에.
한국에서 야생 인어가 포획된 것은 고로 어마무시한 뉴스거리였다. 그가 포획된 동해 근처에 인어의 서식지가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산유국에서 갑자기 유전이 터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인어가 처음 발견된 미국에서부터 반(half)-인간종의 포획 및 매매에 대한 윤리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어왔으며 결국 법적으로는 금지되었지만, 사실 암암리에 박제된 인어가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알았다. 중국 시장에서는 인어의 꼬리 비늘로 만든 화장품이 대놓고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지수에게 맡겨진 금발의 인어는 세상에 밝혀졌을 때, 대한민국의 경제를 뒤흔드는 것은 당연하고 어쩌면 국가의 위상까지 결정할지도 몰랐다. 이 엄청난 물건이 류 사장네 그물에 걸렸을 때, 그녀는 얼마나 짜릿했겠는가. 지수는 그가 보여주었던 부산스러운 행동을 이해했다. 이 인어는 엄청난 돈이 된다.
류 사장이 제시한 조건은 간단했다. 첫 번째, 절대 인어를 들키지 말 것. 적절한 때가 되기 전에 인어가 언론에 알려지면 곤란했다. 득을 볼 수 있는 무기로 패를 본다면 류 사장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절대 인어를 죽이지 말 것. 한마디로 똑바로 관리하라는 소리였다. 밥을 먹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입에 밀어 넣고, 혹시라도 혀 깨물고 죽진 않는지 감시하고. 류 사장은 다음 달 강원에서 열리는 비공개 자선경매에 인어를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절대 인어를 데리고 도망치지 말 것. 이 부분에 있어서 류 사장은 홍지수를 완벽하게 신뢰하지 못했다. 다만, 배편은 류 사장쪽이 장악 중이고 육로로는 인어를 오래 나를 수 없다는 상황을 믿는 듯 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지키기만 하면 경매 수익의 10프로를 입금하기로 계약했다.
계약 조건을 따르는 일은 쉬웠다.
다만 그건 단지 이론일 뿐이고.
실전은 좀 달랐다. 식구까진 아니어도 새로운 생명체가 수산집에 들어왔다. 이 생명체는 대체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 1층에 관상용으로 들여놓은 화초처럼 잊을만하면 물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했고, 반려동물처럼 애정을 쏟는 것은 과하게 느껴졌다. 지하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아 부레옥잠 하나를 물에 띄워주었다. 이름 정도는 붙여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동시에 이름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지수는 꼬박 반나절을 고민하다가 결국 ‘정한’으로 이름 붙였다. 언젠가 들었던 의뢰인 또는 타깃의 이름이었다.
3.
인어가 눈을 깜빡였다.
지수도 눈을 깜빡였다.
큰 눈 네 개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깜빡거렸다. 두 개는 물속에서, 다른 두 개는 물 밖에서.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열심히도 깜빡거린다. 물속에서도 또렷하게 뜨고 있는 눈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귀 뒤에 숨은 아가미가 벌룽벌룽 움직이며 물을 내보냈다. 상반신의 생김새는 사람과 똑같은데 물속에서 살이 불지 않았다.
정한은 지수가 작업하는 모습을 종일 구경했다. 그는 지수가 같은 생김새의 몸뚱이들을 묶고, 염하고, 포장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물속에 누워 있었다. 지수는 그를 통해 물속에서도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반쯤 감긴 눈이 날카롭게 지수를 따라다닌다. 지수는 자신이 지금 하고있는 행위를 인어에게 적용할 의향이 조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감금해놓고 협박하는 꼴 같아서. 인어를 협박해서 얻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모양새가 조금 그랬다. 거북한 것들을 가리기 위해 수조에서 등을 지고 작업했지만 불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기분을 이겨내 보기 위해 더 매일같이 지하로 내려가 작업을 자처했다. 인어와 눈이 마주칠 때면 그 기분은 배가 되었다. 당연했던 작업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 멀미 나는 느낌은 분명 저 눈에서 기인한 것이다. 저 눈이 너무 커다랗고 투명해서 제 모습이 똑바로 비치는 것이 싫었다. 조금 바뀌고 왜곡되어 좋게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인어의 눈에는 애석하게도 그런 필터 기능이 없었다.
“뭘 그렇게 구경해? 신기해서 그래?”
“아니. 죽은 사람쯤은 바닷속에서 질리도록 봤는데 뭘. 내가 보고 있는 건 다른 거.”
눈으로 저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작업 현장 외에 다른 무엇을 보고 있단 말인가.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시선이 손을 더디게 만드는 것 같아 결국 눈을 감아달라고 요구했다. 정한은 의외로 순순히 지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보고 싶은데”
“그냥 눈 감고 있어. 끝나면 말해 줄게. 금방 끝나.”
그래, 끝나면 다시 너 보게 해줘. 이 말을 끝으로 인어는 잠에라도 들 듯이 고요해졌다. 저를 비추는 투명한 시선이 없어지자 작업을 하기가 더 수월해졌다.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는데 정한의 목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넌 나랑 닮았어. 태생적으로 비린내가 나.”
닮았다는 말 때문인지, 비리다는 말 때문인지, 혹은 태생적이라는 말 때문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한의 말을 들은 그날 지수는 처음으로 향수를 뿌렸다. 피비린내를 맡으면 물비린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4.
[인어가 사람을 홀리나요?]
검색창에 쓴 문장을 빠르게 지웠다. [인어 유혹], [인어 홀리는], [인어 위험].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들로 마구 검색했다. 혹시나 해서 구글에 영어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세 시간가량의 조사 끝에도 흔한 괴담이나 전설 외에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자 기분이 더 참담했다. 나사는 이런 중요한 연구는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괜한 사람들을 탓했다. 죽이기만 하던 사람이 처음 살려보려 노력하니 뇌에서 오류가 난 게 분명했다. 지수는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5.
지수의 부탁으로 지하실 업무는 당분간 한솔이 맡게 되었다. 타고난 칼잡이는 볕이 들지 않는 곳이 더 적성에 맞았다. 그렇지않아도 햇빛을 사랑하는 사장님이 왜 요즘 들어 빛 한점 들지 않는 지하실행을 자처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던 차였다. 지하에 내려가는 김에 인어 관리도 한솔이 맡게 되었다. 한솔은 그 인어가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속에 있어야 편할 텐데 항상 수조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폐 호흡이 가능하다지만, 저렇게 피부가 말라도 괜찮은가? 물고기들은 땅 위로 나오면 미쳐서 펄떡이는데. 한솔이 시체를 끌고, 혹은 인어 밥을 들고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면 정한은 무언갈 기대하는 눈빛으로 계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대한 것이 아닌 한솔의 얼굴을 확인하면 머쓱한 듯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늘도 한솔이네?”
“네.”
“지수는 바빠?”
“아니요. 지금 그냥 1층에 앉아 계세요.”
불러드릴까요? 물으면 고개를 저었다. 자꾸 사장님을 찾는 게 혹시 저가 불편한 건가 싶다가도, 곧장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사장님은 원래 의뢰 미팅할 때 아니면 잘 안 내려오세요. 기다리실까 봐.”
혹시 사장님을 기다리나 싶어 덧붙인 말에 정한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놀란 것 같으면서도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간다. 저 인어의 눈이 원래 저렇게 빛날 수도 있네. 평소엔 좀 죽은 생선 같았는데. 정한이 큰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내가 아프면? 그땐 내려오나?”
“어…. 아마도요? 죽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계약 일부니까,”
“홍지수한테, 당장 안 내려오면 나 혀 깨물고 죽는다고 전해줘.”
“어? 전할 필요 없어요. 사장님이 그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하래요.”
“뭐라고 하래?”
“개수작 부리지 마 정한아. 라고 하래요.”
그 말에 인어가 와학학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웃긴가? 한솔은 인어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6.
지하에 내려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일주일도 못 지킨 체 다시 한솔과 업무를 바꿨다. 종종걸음으로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정한이 고개를 내밀고 그를 반겨주었다.
“사장님 원래 지하 근무 없다며.”
“누가 그래?”
“막내가.”
“그런 게 어딨어. 난 사장이라 하고 싶은 일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거야.”
아, 그래? 그럼 일해, 방해 안 할게. 정한은 허공에서 두 손을 뻗어 빈틈없이 모아 잡고 물속에 담갔다. 엄지를 살짝 여니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그렇게 한참을 손장난만 치다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일 없어도 내려와도 돼. 난 매일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7.
자려고 누우면 귓가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났다. 베개로 귀를 막아도 여전히 맴돌았다. 그 작은 물소리가 지하의 방음벽을 뚫은 듯했다. 밤새도록 시끄럽게 뒤척거렸더니 명호가 찻잎을 선물했다. “불면증에 좋대. 형 이거 마시고 명상 좀 해. 그럼 난 좀 해결책이 나오더라.” 명호의 걱정 어린 권유에 지수는 뜨끈한 물에 찻잎을 띄우고 눈을 감았다. 익숙한 얼굴이 둥둥 떠오르면 깔끔하게 밀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명색이 청소부가 본인 머릿속조차 청소 못 하는 게 어이없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 없애도 정한의 얼굴은 머릿속에 둥둥 부유했다.
8.
허전할까 봐 띄워둔 부레옥잠에 보라색 꽃망울이 졌다. 아침부터 수조가 부서져라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길래 무슨 일이라도 났나 했는데, 고작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걸 말하려고 그랬단다. 소리를 지르다가 사례라도 들었는지 등 뒤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이내 지쳤는지 첨벙 소리가 나고 잠잠해진다.
지수는 출근 준비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명호, 준휘, 한솔이 모두 외근으로 가게를 비우는 날이다. 간혹 정말 생선을 사러 오는 일반 손님들을 위해 지수 혼자 계산대를 지켜야 했다. 의뢰 전화가 올 수도 있었다. 외근 나간 아이들이 변경된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연락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수가 계산대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이유는 고로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아무도 없는 1층은 너무도 고요하고 못견디게 지루한 것이었다. 티비를 켜두었지만 재밌는 프로는 하지 않았다. 오늘은 유난히 전화 한 통 없고 방문 손님 한 명 없었다. 시간이 지나 손님들이 몰리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루한 틈에 자꾸만 지하실의 인어가 생각이 났다. 지하실에, 혼자 남겨진, 아름답고, 매끄러운, 나를 기다리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수는 곧장 수화기를 한번 들어놓고 가게 문을 잠갔다. 지루한 틈이 벌어져 정한이 보고 싶었다.
서둘러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정한이 그를 보고 반색했다. 웬일인지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속에 누워 있었다. 지수가 가까이 다가오자 사방에 물을 튀기며 물 위로 올라온다.
“뭐야 홍지수~ 나 보고 싶어서 다시 왔어?”
“아니? 나도 꽃구경 좀 하려고.”
“에에에이 거짓말. 내 생각하다가 내려왔으면서.”
지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꽃 쪽으로 시선을 바꿨다. 벌써 봉우리가 많이 열려있었다. 정한은 거두어진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너 일은 안 해?”
“오늘 가게 쉬기로 했어.”
말이 끝나자마자 수조에서 튀어나온 두 손이 지수의 뺨을 덜컥 잡는다. 갑작스레 들어 올린 팔 때문에 물이 넘쳐 셔츠를 다 적셨다.
“야 뭐 하는….”
“일까지 멈추고 보고 싶었으면 똑바로 보라고.”
어이없어. 그런데도 빙글빙글 웃는 얼굴에 반박조차 못 했다. 분명 꽃을 보러 내려왔다고 했는데 그건 귓등에 있는 아가미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다. 사랑스러운 인어의 당돌함은 지수를 굴복시킨다. 그래, 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
핸드폰은 계단에 던져놓고 지하실 문을 잠갔다. 명호가 사다 놓은 엘피를 틀자 잔잔한 음악이 나왔다. 하나도 로맨틱할 것 없는 공간이지만 형광등은 끄고 작업대의 스탠드 하나만 켰더니 제법 분위기가 연출 됐다. 지수는 수조 옆에 1인용 소파를 끌고 와 정한과 나란히 앉았다. 노트북으로 예전에 다운 받아둔 철 지난 고전 로맨스 영화를 틀자 대사와 음악 소리가 엉킨다. 수조 벽에 머리를 기대니 정한도 똑같이 머리를 기댔다. 화면 속에선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빙판 위에 누워 팔을 휘저으며 천사 모양을 만든다. 춥지도 않은지 아주 환하게 웃고 있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 지수가 물었다.
“너 눈 본 적 있어?”
“아니. 좀 궁금해. 눈밭은 구름이랑 비슷한가?”
“그건 이번 크리스마스에 확인해보자.”
크리스마스에 오는 눈이 가장 낭만적이니까.
시내로 나가면 중앙 광장에 아주 큰 트리를 세워. 그 앞에 서서 눈을 맞자. 지수는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계획을 세웠다. 눈을 맞고 나면 추우니까, 길모퉁이의 캐럴이 들리는 카페에 들어가자. 그곳에서 나는 핫초코를, 너는 따뜻한 우유를 시키는 거야. 음료가 나오면 큰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아서 선물을 교환하자. 지수가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자 유연한 혀가 물살을 가르고 수영하듯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수조 안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어야 했다.
9.
낙화는 개화보다 빠르다. 애석하게도 부레옥잠이 일년을 공들여 피운 꽃은 다음날 생기를 잃고 똑 떨어져 버렸다.
류 사장과의 계약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그 사이 정한이 기침을 하는 빈도수가 늘었다. 지수에게서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더 자주 숨을 몰아쉬었고 더 자주 물과 공기의 중간지점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정확히는 어느 쪽에서도 편하게 숨 쉬지 못했다. 사실 예상된 결과였다. 아무리 인어가 폐 호흡이 가능하다고 해도 본질에서는 바다생물이었다. 호흡하는 법을 잊고 고통스러워하는 정한을 위해 지수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그의 턱을 부여잡고 입을 벌려 공기를 밀어 넣어주는 것뿐이었다. 마시고, 혀로 입천장을 훑는다. 내쉬어야 해. 자꾸 닫히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연다. 타액을 섞을 때마다 지수는 숨과 함께 당부도 함께 밀어 넣는다. 숨 쉬는 걸 기억해. 그렇게 정한의 가슴이 정상적으로 오르내릴 때까지 입을 맞추는 것 외에는, 지수는 도무지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어느 날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물 위에서 아가미가 펄떡이고 물 밑에서 입을 벌려 공기를 삼켜버렸다. 물만 잔뜩 마신 정한은 본능적으로 물 위에서 그것을 뱉어내고 숨을 들이쉬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이번엔 물속에서 아가미를 벌리려 했지만, 몸의 기관이 말을 듣지 않았다. 뇌 내 산소 부족으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갑작스러운 정한의 몸부림에 지수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한의 퍼덕거림이 멈추고 물속에 꼬르륵 잠길 때쯤 지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어깨를 잡아 수조 밖으로 끌어냈다. 힘없이 늘어진 인간의 상체를 바닥에 뉘고 온 힘을 다해 가슴께를 눌렀다. 단단한 몸 위를 무게 실어 누를 때마다 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일어나. 숨 쉬어. 일어나! 숨 쉬어! 다행히 몇 번의 펌프질이 지나자 정한은 꺽꺽거리며 물을 토해냈다. 꼬리가 발작하듯이 몇 번 이리저리 퉁겨졌다. 일정한 속도로 숨을 쉬는 정한을 보며 이제야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방울씩 뚝뚝 흐르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놀란 심장은 여전히 쿵쿵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사람의 숨이 넘어가는 모습은 지겹도록 봤기 때문에 그 모습에 놀라 눈물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깨달아버린 탓이었다. 이젠 더 이상 인어를 곁에 둘 수 없다, 본래 제 것이 아닌데도 그 사실이 사무치도록 슬프고 억울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지수가 소리 없이 울자 정한은 힘겹게 팔을 뻗어 지수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뭍에서는 자유롭게 상체를 들 수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포옹이었다.
“울지마, 왜 네가 울어.”
“......”
“나 계속 여기 있을까?”
“안돼. 바다로 돌아가. 여기에 있으면 어차피 류 사장이....”
“그럼 같이 도망치자.”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류 사장에게서 벗어난다 해도 정한은 계속해서 아플 것이다. 지수는 저항하지 않고 잡아당기는 대로 몸을 낮췄다. 사이를 막는 수조가 없어 점도 있는 피부가 보송한 살결에 닿았다. 긴장이 풀려 몸이 흐물흐물해졌다. 처음으로 몸통을 맞대고 안아보는 인어에게서는 비린내가 났다. 지수는 저 또한 비린내가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0.
뿌리 내리지 못한 식물은 자랄 수 없다. 한솔은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뿌리를 송두리째 뽑혀버리면 결국 시들 수밖에 없다. 개죽음은 싫었던 한솔이 지수에게 붙어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근본을 상기시키지 않는다면 금방 자신이 누군지 까먹을 것 같았다. 기억에도 없는 뉴욕을 뿌리로 삼은 뒤로, 그는 지수를 통해 미국을 배웠다. 처음 칼을 잡기 전을 추억하며 오늘을 살아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칼을 잡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한솔의 생각은 정한과 지수를 보며 더욱 확고해졌다.
외근 후 네트워크 수산으로 돌아왔을 땐 가게 문이 잠겨있었다. 문을 열어달라고 전화를 걸려 했지만 부재중으로 넘어갔다. 눈을 찌푸리고 안을 들여다보니 수화기가 들려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 근처 항구로 향했다. 방파제가 즐비한 곳에서는 짠내가 났다. 한솔은 가장 인적이 드물고 허물어진 구석까지 천천히 걸었다. 뿌리 내릴 곳 없는 관계는 고작 잠깐밖에 꽃필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한솔은 핸드폰을 꺼내 번호 11자리를 찍었다.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지 주변이 시끄러웠다. “준휘형, 우리 이사 가야 할 것 같은데. 남해쪽으로, 응 최대한 멀리. 한번 알아봐 줘.”
한솔의 예상대로 지수는 정한을 풀어주기로 했다. 인어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가게에는 물고기 수보다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가방 수가 더 많았다. 8월의 장대비가 잔인하게 쏟아지던 날, 수산집 식구들은 인어를 옮겼다. 한솔이 미리 봐둔 장소는 류 사장의 손이 닿지 않는 해안의 한구석이었다. 부포와 방파제가 낡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다가 배를 정박하기에는 수심이 얕았다. 궂은 날씨의 여파로 파도가 세게 쳤다. 시체를 버리기에도 딱 좋은 날씨였다. 명호가 망을 보는 사이 한솔과 준휘는 인어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지수는 홀로 가게에 남아 이삿짐을 정리했다. 지하의 장비들을 챙기다 문득 텅 빈 수조를 바라본다. 그 자리에서 지수는 언젠가 정한이 한 말을 곱씹었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결국 바다로 모이잖아.
우리도 결국 바다에서 다시 만날 거야.
여전히 귀에서는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지수는 기도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바다 위에도 눈이 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