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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의 탄생 上

Ties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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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의 주 경기장에서는 독산 그룹의 연례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모여 합동 공연을 치르는 것인데, 아이돌은 물론 그해 빌보드를 휩쓸었던 해외 아티스트나 유망주 몇몇도 라인업에 포함되어 티켓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어려웠다. 거기다 모든 공연이 무료라는 점. 플미 붙은 공연 표 몇 장만 팔아도 한 학기 등록금은 그냥 해먹을 수 있어서 티켓을 사수하려는 빠순이들과 클릭 몇 번으로 용돈 벌이하려는 학생들, 전문 장사치까지 붙어 티켓팅은 그야말로 피 터지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정작 공연 주최자인 윤정한은 심드렁했지만.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공연을 주도하는 게 즐거웠다고 느꼈다. ‘독산의 밤’이라며 손수 이름까지 붙여 라인업을 긁어모았던 일이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제 손을 거쳐야 진행했을 정도로 아끼던 행사였는데. 최근에는 시시했다. 뭘 해도 참신하지가 않아서였다. 한번 붙은 노잼 딱지는 지루하고도 따분할 뿐이다. 재미는 점점 반감됐고 가속 붙은 불감증 탓에 흥미도는 바닥을 기었다. 

 

나 아무래도 발기부전인가 봐. 

 

농담처럼 말했으나 실은 거의 진심이었다. 실제로 성행위 비슷한 걸 해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심리적인 일이든 육체적으로든 웬만해선 흥분하는 일이 없어졌다. 진짜로 좆이 서질 않는다. 찐으로 발기부전이 온 걸지도 몰랐다. 원인으로 뽑은 건 돈. 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돈이 많아도 너무 많은 탓인 것 같다고. 그거만 있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너무 쉽게 얻곤 했으니까. 윤정한은 양손에 쥔 것이 하도 많아서 모조리 다 재미없었다. 제 손으로 얌전히 굴러들어온 장난감. 그건 고양이도 따분해하는 거잖아. 

 

게임만 해도 그렇다. 치트키 써서 심즈를 굴리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는 신나고 즐겁겠지. 업적도 찍고 건물이며 가구들 제일 비싼 걸로 싹 다 해주고. 그러다 이룰 게 없어지면 끝장나는 거다. 멀쩡한 사람들도 하다 하다 지겨워지니깐 나중에는 나쁜 짓만 하게 되는 것처럼. 짐승처럼 부모든 형제든 아무나 꼬셔서 섹스하게 만들고 애새끼도 함 전자렌지에 돌려보고. 윤정한은 생각했다. 노잼에 미쳐버린 인간군상이 다 그런 거라고. 

 

어쨌든 막장의 막장까지 온갖 거 다 해보고 나면 게임 따위 걍 삭제하고 다른 거 하러 가면 되는데 윤정한의 리얼 찐 인생은 그럴 수가 없는 거라. 그래서 가끔씩 남의 인생을 흔들었다. 

 

공연의 엔딩은 윤정한이 직접 발표했다. 그건 독산 기업이, 윤정한이 질릴 때까지 그 새끼들을 존나게 밀어주겠다는 뜻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놓고 윤정한이 스폰서로 나서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올해는 쟤들 거라는 소리. 아무 재능 없는 가수라도 가능했다. 천문학적 금액을 쏟아부으면 연말에는 대상 타이틀 한두 개라도 먹여줄 수 있었으니까. 실컷 돈 먹여 키운 걔들을 무너뜨리는 건 뭐. 미적지근하게 녹아내린 얼음을 씹어 먹는 것보다 더 간단한 법이라. 윤정한이 자주 했다. 놀이처럼, 마치 아이돌 키우기 같은 게임처럼. 그러고는 서너 발자국 뒤에서 관망하는 것이다. 

 

한순간 남의 인생 망가지는 걸 흥미롭게 지켜봤다. 넷플릭스 그딴 걸 왜 봐? 다큐 따위 어차피 다 페이크 섞인 가짜잖아. 여기 이렇게 진짜가 있는데. 그렇지만 그 짓거리도 서너 번을 넘어가자 감흥이 떨어졌다. 이제는 슬슬 질려가는 참이다. 걔들이 아무리 무너진다 한들 그래도 정점 찍고 내려온 가닥이 있는데 윤정한이 원하는 만큼 망가져 주진 않았던 탓도 컸다. 한물 두 물 갔다 해도 다들 어떻게든 먹고 살았다. 게다가 한국 여성들의 착즙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윤정한이 간과했던 탓도 크다. 

 

지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존재란 다리 부러진 로봇을 갖고 노는 것보다도 재미없었다. 윤정한은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다량의 수면제만 밥을 먹듯 세끼 꼬박 처먹고 살았다. 약에 취해 하루를, 혹은 이 삼 일씩 꿈을 꾸며 보냈고 필요할 때만 깨어 있었다. 예를 들면 오늘 같은 날. 공식 행사가 있어 얼굴을 비춰야 할 때. 

 

약품에 절여진 몸을 깨우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정신은 그럭저럭 멀쩡했는데 몸을 움직여야겠단 의욕이 들지 않아서였다. 침대에서 벗어나 대리석 깔린 바닥을 밟는 데까지 장장 서너 시간 이상이 걸렸다. 윤정한의 비서며 공연 관계자들은 똥줄 타는 기분으로 얘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윤정한은 오히려 이 상황이 즐거웠다. 아예 펑크 내버릴까? 다 좆 되라고. 그러나 일 벌여놓고 수습하는 게 귀찮아서 걍 몸 움직이는 것에나 힘썼다. 그래도 기업 행사인데, 그걸 다 망쳤다가 아빠 골프채에 대가리 깨지는 일은 더더욱 싫었고. 윤정한은 손목에 걸린 오데마 피게를 흘깃거렸다. 엔딩까지 약 한 시간 남짓. 지금부터 좆 빠지게 움직여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헬기 띄울 수 있죠.”

 

윤정한 따라다니던 양 비서의 얼굴에 난색이 뜬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 대체적으로 욕을 참기 힘들어 보였다.

 

“당국의 허가가 있어야….”

“아버지는 가능하잖아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억울하면 니가 회장 해 먹던지 뭐 그런 소리라는 거. 윤정한은 마른세수를 한다. 갸륵한 꼴로 한껏 불쌍한 척이나 하는 거였다. 이 행위는 이봐요 아저씨. 행사 망치고 싶지 않으면 전용기든 헬기든 당장 띄우라고.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오랜 세월 윤정한 옆에서 시달린 양 비서도 만만한 인간은 아닌 터라. 사용인을 시켜 걔를 끌어낸 다음 강제로 냥빨 하듯 씻기고 말리고 입히고 다 했다. 늬들 다 잘리고 싶어? 따위는 통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윤정한은 제법 고분고분 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라고는 대략 삼십 분 정도. 서둘러도 모자랄 판에 윤정한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서 엉덩이를 비비적대고 있는다. 못 견디게 지루하단 낯빛을 감출 생각도 없이. 

 

“안 갈래요. 어차피 늦었잖아.”

“이럴 줄 알고 김송준을 엠씨로 섭외한 거 아니겠습니까.”

 

김송준이 누구인가. 딱 세줄 써 있던 큐시트를 받았으나 애드립으로 기적처럼 방송을 끝낸 전설의 엠씨. 대상 발표를 다음 주로 미루겠다는 서바이벌 프로 사상 초유의 사태를 누구라도 납득 가능하게 했던 그를 평소 페이의 다섯 배나 주고 섭외한 건 이럴 때를 대비해서였다. 김송준이면 이십 분 딜레이 쯤은 거뜬하게 끌어줄 수 있겠지. 거기서 더 늦어질 거 같으면 경품 추첨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상품으로 뿌릴 사과폰과 패드가 각각 백 대 이상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예정일 뿐 실제로 벌어져선 안 될 일이다. 윤정한 낚는 거에 도가 튼 양 비서는 그에게 미끼를 던졌다.

 

“레플리카 타고 싶으시다 하셨는데 회장님이 반대하셨죠.”

 

간죽간살 윤정한이 이런 제안을 거절할 리 없었으니까. 일상이 지루해 죽기 직전인 인간은 하나 같이 속도감에 미쳐 살았으므로 눈앞에 떨어진 슈퍼 바이크를 보고도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다. 윤정한은 양 비서가 내민 키를 잽싸게 낚아챘다. 

 

“가와사키입니다. 조심하셔야 해요.”

 

400km/h 짜리 미친놈을 줘놓고도 양 비서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하루나 이틀, 길어봤자 일주일 동안 잘 갖고 놀다 매몰차게 버려버릴 걸 알아서였다. 그러고는 또 다 뒤져가는 눈깔로 재미없다, 재미없다 염불만 하고 있을 윤정한이 눈앞에 선했다. 지금이야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었으나. 

 

윤정한은 단어 그대로 미친 듯이 활주했다. 이십 분도 넘는 거리를 거의 절반 접어 도착했다. 경기장에 들어서는 일도 비범치가 않았다. 안전 요원들의 만류에도 안쪽까지 바이크를 몰고 들어갔다. 붉은 트랙 위로 새카만 스키드 마크가 몇 미터씩 죽죽 그어졌다. 윤정한의 경호를 담당한 이들과 안전팀인 멋진 친구들이 걔를 잡아보려 꼬리처럼 졸졸졸 따라다녔고 윤정한 신나서 깔깔대는 모습이 공중파 방송국 카메라에 생생히 담겼다. 아마 저 영상들은 오늘 밤 9시 뉴스 속 자료 화면으로 꽉 채워지겠지. 타이틀로는 뭐가 걸릴까. 또다시 이어진 재벌 2세의 기행 어쩌고저쩌고.

 

그딴 거 신경도 안 쓰는 윤정한은 주 경기장 트랙 한 바퀴를 풀로 다 돌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기어이 바이크를 몰고 무대 위까지 올라섰다. 엔딩 곡만 남은 공연을 십오 분 넘게 이어온 김송준의 눈물겨운 노력이 무색하게끔, 윤정한은 제 몫으로 받은 마이크로 개소리를 발표했다. 

 

“올해 독산의 밤 엔딩 곡은 없어요 여러분. 그냥 애국가나 부릅시다.”

 

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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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타고 다닌 가와사키는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그냥 취한 척 연기만 했는데 존나 신기한 일이었다. 윤정한은 지 애비가 사람 시켜서 그걸 처분했을 거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괜히 삐뚤어진 기분 탓에 반기가 들고 싶어졌다. 반항이든 뭐든. 그러나 한국 땅에서 벌일만한 나쁜 짓은 지극히 한정적이어서 윤정한은 우선 술이나 마시기로 했다. 재벌 아들이 하는 거 치고는 가오가 빠지는 일이긴 한데 괜히 약 빨다 걸려서 머리 박박 밀리고 꼬추 털까지 뽑히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를 잡았다. 어디 가세요, 목적지를 묻는 기사에게 윤정한은 엉뚱한 소리나 싸지른다. 어…. 화성 가고 싶어요. 네? 경기도 화성이요? 아니요. 목성 옆에 붙은 거요. 네…? 취하셨어요…? 염려 섞인 기사의 목소리가 더 없이 조심스러웠다. 또라이를 태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겁을 주고 싶은 맘은 없었으므로 윤정한은 얌전히 죄송합니다, 했다. 

 

“기사님 좋아하시는 곳으로 가요.”

 

의미를 모르겠단 얼굴에 대고 다시 말했다. 그냥, 그냥 노래 나오는 곳으로요.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이면 좋겠어요.

 

대교를 건넌다. 한강을 넘어간 택시는 서울 변두리를 향해 조금 더 달렸다. 멈춘 곳은 척 보기에도 수상한 맥줏집이 즐비한 거리. 이런 건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나 몇 번 본 거 같다. 아빠네 회사에서 저지른 비리에 대해 한참을 떠들다 곁다리로 딸려 나온 코너에서. 방석집이라고 불리는, 어디서도 안 팔리는 술집 잡부들과 밑바닥 인생들이 붙어먹는 유흥업소. 그런 곳처럼 보였다. 윤정한은 좀 벙찐 얼굴로 지저분한 간판에 한번, 택시 기사에게 또 한 번, 나중에는 아예 번갈아 가며 삿대질했다. 

 

“여기가 맞아요?”

“중간에 장미 집이라고 있는데, 옆을 보면 작게 뚫린 문이 있을 거예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요. 거기가 아주 괜찮아요. 지금 시간도 마침 딱이네.”

 

믿음직스럽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심부터 들었다. 윤정한이 차체에서 내릴 생각도 없어 보이자 기사는 골목 안쪽으로 차를 더 몰았다. 딸기 집이니 뭐니 의미심장한 분홍색 간판을 지나 장미 집이 바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기사가 말했던 ‘작게 뚫린 문’ 이라기보다 그냥,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구멍 하나가 뻥 뚫려 있었다. 간판이랍시고 달린 네온사인은 군데군데 이가 빠져 흉한 모습이었다. 윤정한은 너덜대는 간판을 천천히 읽었다. 

 

마리와 나 클럽. 마리화나도 아니고 저게 뭐람. 진짜 센스 존나 없다. 아래층으로 뻗은 계단은 척 보기에도 매우 의심스러워서 이 빠진 간판 비주얼과 묘하게 버무려진 느낌이다. 그게 무슨 느낌이냐면, 계단을 내려가다 장기 한둘쯤 뜯겨도 전혀 이상할 거 없을 것 같단 감상. 드럼 뚱땅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택시를 돌려 도망갔을지 모르겠다. 

 

“다 왔네요.”

 

그러니 이제 제발 내려달란 종용이다. 척 봐도 귀찮은 티가 역력했다. 윤정한은 거기서 살짝 삔또가 상했다. 지갑 속에 든 오만 원 권을 집으려다 손에 집히는 아무 카드를 꺼내 기사에게 내밀었다. 카드는 추적이 쉬울 거니까. 여기서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같이 좆 돼보잔 의도였다. 

 

한 발짝만큼만 건물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늘 쳐진 어둠 속에 발을 뻗는 건 윤정한에게도 퍽 두려운 일이었다. 할로겐램프가 드문드문 걸린 계단은 어두웠고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선 칙칙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윤정한은 얄팍한 뱀의 아가리 같은 나선형 계단을 밟으며 조심스레 내려갔다. 둥둥둥 울리는 악기들의 소리가 꼭 인신 공양을 위한 연주처럼 느껴졌다면…. 너무 가버린 걱정일 테지. 

 

시답잖은 사념은 길게 늘어진 계단 앞에서 흐려졌다. 쫌 지루한데. 생각이 들 때 즈음 윤정한은 간이 의자에 앉은 덩치를 발견했다. 덩치 뒤로 거대한 문이 보였다. 롯데월드에서나 볼 법한 성문처럼. 덩치는 윤정한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삼만 원이요. 윤정한은 오만 원 권을 내밀었다. 거스름돈 안 주셔도 됩니다. 거의 습관이나 다름없는 말을 하면서. 덩치는 그러나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듯 거스름돈 이만 원을 돌려주며 음료 한잔은 무료요. 했다. 참 쓸데없이 정직하군. 잔돈 받는 거 싫은데 말이야.

 

두터운 방음 벽을 밀고 안으로 들어선다. 지겨울 정도로 늘어졌던 계단 높이만큼 클럽 안쪽 공간은 층고가 대단히 높았는데, 윤정한은 클럽의 층고가 높아야 할 이유를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그 높은 층을 만든 이유 또한 잘 알겠다. 마침 무대 위에선 무희들이 폴을 타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댄서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관람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져서였다. 

 

이딴 걸 보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택시 기사가 원망스럽다. 시간도 마침 딱이라더니. 유흥을 좋아하긴 했어도 너무 노골적인 건 좀…. 꼴림보단 역겨움을 불러일으켜서 싫었다. 지금 이 광경이 딱 그랬다. 쯧. 혀 차는 소리가 대놓고 튀었다. 

 

나갈까 고민하는 사이 웨이터가 트레이를 들고 나타났다. 프리 음료입니다. 하고 내민 트레이 위에는 맥주와 칵테일로 보이는 술 몇 잔이 놓여져 있었다. 윤정한은 약간 얼떨떨한 심정으로 올리브 섞인 마티니를 골랐다. 에라 모르겠다. 이거 한잔 먹고 나가야지. 

 

마티니를 홀짝대는 동안 쇼는 거의 정점에 달하는 듯했다. 목걸이처럼 뱀을 목에 건 무희들 사이로 헐벗은 남성들이 횃불을 들고 나타났다. 아. 이번에는 불 쇼야? 참 뜨겁다 뜨거워. 

 

한창 불을 뿜던 남성들이 무희들과 붙어먹기 시작했다. 남들 다 보는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씹 뜨는 거랑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와. 나 쫌 보수적인 사람이었네. 어우, 어우…. 환호 속에서 윤정한은 거북함 섞인 탄식이나 했다.

 

“혼자 오셨나 봐요.”

 

조명에 가려진 밤색 머리통이 불쑥. 시야에 나타나선 말을 걸었다. 허락 없이 의자를 빼내 엉덩이를 뭉갠다. 윤정한 몫의 마티니도 슬쩍 가져가서 마셔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여기 쇼 진짜 별론데. 아저씨들만 좋아하지. 작게 투덜거린다. 윤정한은 어쩌라고요. 라고 말해주고 싶은 걸 참고서 제 잔을 끌어왔다. 좀 쪼잔하시네. 하는 말에는 살짝 짜증이 나서 밤색 대가리를 노려봤다. 걔는 아무렇지 않게 윤정한 술잔에 손을 댄다. 그러고는 남은 술을 탈탈 털어 마셨다. 윤정한은 말도 없이 한번 웃고 말았다. 사람 무시하는 솜씨가 제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밤색이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아이씨, 아씨…. 자꾸 짜증을 내고 있었다. 만 원짜리 지폐와 천 원짜리 지폐 몇 개가 여러 번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딘가 절절하면서도 안타까워 보이는 손길.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밤색의 고민이 깊다. 끝내는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짜리를 꺼내 테이블 위로 턱 올려놓은 꼴을 윤정한은 보고만 있었다. 밤색은 조금 곤란한 얼굴로 윤정한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탁탁. 두 번이나 위아래로 흔들흔들했다. 이건 꼭…. 돈 달라는 것 같잖아.

 

“오천 원 거슬러줘.”

 

솔직히 니가 반은 마셨잖아. 요구하는 목소리가 너무너무 평온했다. 곤란을 띄웠던 표정도 어느새 좆당당해졌다. 뭐 이런 또라이 새끼가 다 있어? 황당하기보단 감탄스럽다. 어, 너 인정. 윤정한은 밤색한테 엄지를 치켜들고 싶다. 

 

“아.”

 

밤색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어투와 얼굴. 그러더니 밤색은 지가 내민 만 원짜리를 도로 가져갔다. 

 

“팁 미리 받아가는 거야.”

 

어안이 벙벙한 윤정한한테 밤색이 한마디를 더 붙였다. 

 

“다음은 내 차례거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땐 유사 성행위가 벌어졌던 무대가 전부 비워져 있었다. 이내 조명이 꺼진다. 새벽녘 하늘처럼 짙푸른 코발트 색이 객장을 채웠다. 폴이 내려왔던 천장에는 수백 개의 별이 박혀 있다. 조용히 터지는 하이햇이 음악의 시작을 알렸다. 익숙한데 어딘가 낯선 음이었다. 윤정한 코앞에서 흰색 핀 조명이 떨어졌다. 밤색을 비추는 거였다. 밤색은 하늘에서 떨어진 로프를 붙잡고 서서히 공중 위를 날았다. 우주 속에서 그 애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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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작을 준비하면서 갈겨 쓰지 말자, 우울한 글 쓰지 말자, 제 시간에 맞춰서 제출하자가 목표였는데 결국...

 

 

어쨌든... 저는 망했지만 합작은 참여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즐거움과 동시에 저잣거리에 효수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요...

 

 

합작 열어주신 진행팀 여러분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