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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남전자꼴통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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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멀지 않은 미래에, 

 

조슈아 홍이 탄생했다. 그는 가국 최초의 전투형 인공지능 로봇이었고, 때문에 전쟁에서 핵심병기가 되었으며, 언제나 전장의 앞에서 나국의 사기를 꺾었다. 일부러 그렇게 디자인한 것 같은 빼어난 미모를 하고 그는 모든 매스컴에서 가국의 선전활동을 도맡아 했다. 가국에서 뿌리는 대부분의 삐라에는 조슈아 홍의 얼굴이 걸렸고, 그는 언제나 웃음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승리의 여신이 가국에 있음을 암시했다.

 

너무나도 완벽한 로봇의 등장에 부진한 전투를 이어가던 나국은 금방 기세를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국민들은 더욱 가난에 시달렸다. 국가는 여전히 없는 재산 중 많은 비율을 용병과 무기를 사는 데 썼고,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이 망가진 그곳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막 죽어나가는데, 혹자는 차라리 조슈아 홍의 등장이 잘 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어쩌면 전쟁이 빨리 끝날 지도 모르겠다고. 그럼 된 거 아니냐고.

 

2.

윤정한은 그냥.. 나국 사람이다. 언제인지도 모를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졌고, 살 수 있으면 뭐든지 했다. 윤정한 같은 사람들의 처지에서 전쟁은 차라리 나은 것일지도 몰랐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은 많았고, 꺼리지만 해야 할 일들은 늘어났다. 그렇게 윤정한은 배운 것도 없으면서 웬만한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다 조슈아가 나타났다. 악착같이 살아가던 윤정한의 인생에. 처음엔 매일 들어오던 일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고, 그 다음엔 국경 근처의 사람들이 전부 짐을 싸 멀리 피난을 떠났다. 윤정한이 매일 지나다니는 시장가의 텔레비전에서는 언제나 조슈아의 얼굴이 돌아다녔다. 설령 윤정한이 서 있는 땅이 나국이었어도 그랬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당장 일이 끊기니 먹고 살 돈이 없었다. 텅 빈 마을에선 훔칠 식료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겨지다시피한 마을에서 윤정한은 끊임없이 거리를 헤맸다. 하루에 한 번 들릴까 하던 폭발음이 이젠 여기저기서 저를 죄어오는 것처럼 들렸다. 

 

살 궁리. 윤정한은 그렇게 용병에 지원했다. 

 

그때의 윤정한은 빌어먹게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남의 목숨도 쉽게 바칠 수 있을 만큼 절박했다. 국경 근처 부대에 파견된 윤정한은 금방 적을 죽이고, 남의 일을 망치고, 은밀한 승리를 가져오고··· 그가 절망만을 남겨두고 있던 나국의 간부들에게 눈에 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몰랐다. 이 거지같은 나라는 애초에 친절한 설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서 윤정한은 보고하러 본기지 문 앞을 두드리자마자 뒷목을 맞아 기절했고, 눈 떠보니 밀실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태어났다. 가국의 로봇 하나를 죽이기 위해서. 

 

3.

똑똑똑똑똑똑똑똑

 

"사장님,"

"…"

 

이번엔 매너 없는 주먹질이다. 홍지수 판단에 우아한 노크는 한 번이면 족했다. 

 

쿵쿵쿵쿵. 

 

정말로 문을 부술 것처럼 치니 안쪽에서 슬슬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간다 씨발, 간다고. 욕 섞인 목소리가 잠에서 덜 깨 묘하게 기운이 없다. 덜그럭거리며 열린 문 틈 사이로 더운 공기가 확 스민다. 

 

"사장님."

"왜, 이 새끼야."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하든가."

"…"

"그것도 아니면 돈을 받질 말든가."

 

아무 것도 없는 윤정한의 손에 정체모를 녹색 스무디를 쥐어주면서 홍지수가 고갯짓으로 가게 방향을 가리켰다. 저번에 오셨던 김씨 할아버지. 이번엔 경운기가 말썽이라던데. 일 년 짜리 수리비를 선불로 받아 (쳐)드셨다면서요. (설마 그런 몰상식한 일이 일어났다는 게) 진짜로?

 

"아.. 그거 맞아."

 

홍지수의 입꼬리가 한 쪽만 올라갔다. 누가 봐도 어이가 없다는 모습이었다. 무슨 이런 동네에서 멤버십을·· 진짜 돈에 미친 새끼… 들으라는 듯 큰 중얼거림에 윤정한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야, 내가 나 혼자 먹고 살자고 이러니? 은혜도 모르고 궁시렁궁시렁.. 

 

윤정한이 대충 스무디를 한 입에 들이키고 바로 가게의 입구로 나갔다. 조악한 간판에 대충 써진 글자에 불이 들어왔다. 향 남 전 자. 할아버지, 이런 고물로 일 할거면 그냥 땅 팔고 손자·· 아. 머리 나빠지면 어쩌려고 머리를 때려요! 

 

벌써부터 시끄러운 입구에 홍지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안 쪽으로 들어갔다. 향남전자 사장이 동네 할아버지들과 시비 붙는 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4.

고작 로봇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저와 비슷한 경로로 밀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버티지 못해 죽거나, 도망가다 죽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유 없이 죽었다. 윤정한은 그들이 죽어나는 걸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지켜보는 동안에도 팔자에도 없었던 기계공학을 배우고, 인공지능이 아닌 전투용 로봇 더미들을 폭파시키고, 뒷목 끊는 연습을 수십 번 했을 때쯤 혼자 남게 되었다. 두 번째로 혼자 남겨진 윤정한은 차라리 어떠한 사명감이라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국가의 선전 영상을 찾아보고, 실핏줄 잔뜩 터진 눈으로 국기를 노려보고, 그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자그마치 이 년을 밀실에서 버틴 윤정한이 이제는 번듯한 차림새를 하고 대장의 앞에 섰다. 겉보기엔 가국의 군복과 다름없었지만 안쪽에는 온갖 무기들로 무장되어 있는 차림새였다. 남 빨아주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으나 눈치 하나만으로 거기서 살아남은 윤정한이 여전히 껄렁한 눈치로 제 앞의 대장에게 말했다. 뭐 별 거 있겠느냐고. 

 

내가 죽거나 걔가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5.

얌전히 경운기 고치기엔 너무 뜨거운 날이었다. 할아버지, 이런 날은 보통 아무도 안 오는 게 맞는데. 다 들려 임마. 암요. 들리라고 말한 건데. 기계 고치는 실력만큼 개기는 솜씨마저 훌륭한 윤정한이 끝까지 할아버지를 쏘아 붙이다 말했다. 

 

“더운 날인데, 좀, 네?”

 

알았다, 알았어. 할아버지가 지겹다는 듯 대충 손짓하며 경운기를 타고 멀어졌다. 뒷모습이 얼추 멀어질 때까지 바깥을 구경하던 윤정한이 그대로 카운터에 엎어지듯 앉았다. 그나마 차가운 카운터 바닥에 얼굴을 식히고 있으니 바로 옆으로 시원한 물이 담긴 잔이 놓였다. 윤정한이 고개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시선만 따라 올려 홍지수를 바라보았다. 

 

“야, 깡통”

“...”

“홍지수.”

“...왜.”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대답한다. 대답만 할 뿐 윤정한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윤정한이 슬슬 가게 공구를 정리하는 홍지수를 끝까지 시선으로 쫓는다. 한적한 시골에서는 누군가 말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풀벌레소리만 은은하게 들리는 저녁, 윤정한이 먼저 입을 연다.

 

“안 덥냐?”

“그닥...”

 

애초에 너처럼 개기지만 않아도 덥진 않을 것 같은데··· 홍지수가 어느새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듯 문을 닫으며 이야기했다. 윤정한이 말 없이 홍지수가 연 문 틈새로 나와 그가 뒷정리하는 걸 바라봤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전자사의 셔터가 내려간다. 향남전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윤정한과 홍지수의 집으로 가는 길. 윤정한이 마른 바닥을 툭툭 치며 걸었다. 꽃잔디가 윤정한의 발에 치여 이리저리 고개를 뒤틀었다.

 

“야, 깡통.”

“깡통 아니라니까?”

“맞잖아, 너.”

 

윤정한이 낄낄대며 말한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런 평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니 처지··”

“...”

“어떤 것 같아?”

 

앞만 보며 걷던 홍지수가 드디어 걸음을 멈춘다. 홍지수와 윤정한이 한 걸음쯤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굳어있던 홍지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무슨 같잖은 소리를 해. 

 

“사장님 보다는 낫지.”

 

아무래도 그렇지? 윤정한이 따라 웃으며 도로 홍지수의 등에 들러붙는다. 그럼 불쌍한 날 위해서 네가 뭐라도 좀 해줘. 배고파 죽겠어. 마침 약한 바람이 둘을 스쳐 지나간다. 눈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윤정한이 홍지수의 목가에 얼굴을 파묻는다.

 

6.

전쟁이 끝나야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밀실에서 윤정한이 길러지는 동안, 나국은 밀실을 버리다시피 해놓은 채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의미 없던 탁상공론이 점차 윤곽을 갖춰나갔다. 나국은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제3국인 다국을 끌어들인다. 전쟁을 이어나가느라 막대한 빚을 졌던 가국은 그것의 상당부분을 제하는 대가로 가국의 핵심본부를 전부 파괴하기로 하는 내용의 조약에 서명한다. 이로써 전쟁을 끝낸다기보다 없던 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그것이 싱거운 결말만을 앞두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결말의 날이 하필, 윤정한이 처음 본부에 잠입한 날이기도 해서. 

 

가국의 군복 차림으로 안전하게 입구를 통과한 것도 잠시, 건물 옥상부터 강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일층 창고 한 쪽 구석에 숨어있던 윤정한에게 안 좋은 징조임은 분명했다. 하얗고 고요하던 본부가 어느새 비상경보와 경고등으로 온통 쑥대밭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건물의 진동에 모든 사람들이 아비규환으로 쏟아져 나왔다. 숨어있을 새도 없이 문을 열어보니 모든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었다.

 

금방 건물이 주저앉기 시작한다.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윤정한은 침착하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지하로 향했다. 어쨌든 하수도가 있을 테니 거기로 나갈 틈이 있을 거라고. 누군가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앞쪽으로부터 전해졌다. 밀실에서 그렇게 많은 동료가 죽어나가는 걸 봤으면서, 윤정한은 보다 본격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제 눈앞에 목도한 죽음의 위협에 임무도 잊고 살 길을 찾았으나… 

 

어차피 만날 이는 만나게 되는 법이다. 

 

조슈아를 만난 건 거기에서였다.

 

 

7.

“근데 청년들은 어디서 왔어?”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멎는다. 가게 한 쪽 구석에서 정리하고 있던 홍지수도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장비를 마저 올려놓는다. 

 

“그런 건 왜 물어봐요,”

 

간첩이라도 되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고. 반 농담처럼 퉁명하게 던진 말에 가시가 가득하다.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트랙터를 고치러 온 장씨가 말을 잇는다. 그렇잖아, 여기가 연고지인 것도 아니고. 

 

“전쟁통에 밀려왔다기엔 여긴 너무 동떨어진 마을인걸.”

 

정한이 이젠 성질을 가득 담아 볼트를 조이며 말한다. 

 

“영감탱이 사람 아픈 데를 막 찌르네.”

 

더 이상은 아닌 것 같은지 홍지수가 윤정한을 말리러 나온다. 사장님아, 내가 말 좀 조심하랬잖아. 윤정한도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고 싶은 게 아닌지 순순히 홍지수가 저를 들이미는 대로 가게로 향한다. 홍지수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장씨에게 사과한다. 죄송해요. 애는 착···한데, 장씨가 못이기는 척 다음 날 오겠다며 슬슬 걸어 시내로 향한다. 마을 유일한 전자사 사장 심기를 건드려봤자 못 볼 꼴 본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씨가 저를 배웅하러 나온 홍지수를 보며 말한다. 

 

“얘야,”

“...”

“그런 건 네가 대신 사과할 일이 아니란다.”

 

홍지수가 금방 윤정한 편을 들어준 일을 얘기한다는 걸 알아채고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우리 정한이, 얼마나 착... 여기서 헛기침하긴 했지만·· 아무튼 장씨가 금방 뒤돌아 사라졌다. 전자사가 적잖이 멀리 떨어져있는 바람에 시내까지 가는 데에도 한참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애들이야. 쯧, 사람도 없는 마을에 더 사람 없는 외지까지 나올 이유가 더 있겠냐고. 

 

장씨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생각했다. 아마 윤사장이 들었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소리였다.

 

8.

만남은 거기서 발생했다. 임무는커녕 제 목숨 보존하는 것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윤정한이 몰랐던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맹목적으로 한 사람만을 목표하다 보면… 뒷통수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아니, 몰라 볼 수조차 없는 거라고. 저 멀리 희미한 빛을 보이는 하수도 끝에서 윤정한의 시선이 시궁창 한 쪽 구석으로 박힌다. 분명 익숙한 뒷덜미, 반쯤은 몸통이 하수도에 박힌 모습. 심장이 쿵 떨어진다. 이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저걸 들고 본부로 향한다면… 찰나의 판단에 모든 게 달려있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생각할 새도 없이 윤정한이 조슈아를 향해 몸을 움직인다. 묵직한 몸통을 들쳐 업고 하수구 바깥을 빠져나간다. 같이 하수구를 통과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윤정한이 천천히 이동범위를 벗어났다. 위험구역인 탓에 잔뜩 덤불이 우거져있는 숲으로. 

 

사정범위 바깥까지 나왔다는 판단이 들자, 윤정한이 어깨에 메고 있던 조슈아를 바닥에 대충 엎어 놓는다. 뻐근해진 허리를 한 번 쭉 피더니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있던 예리한 칼날을 잡아 뺀다. 처리는 기왕이면 사람 없는 곳에서,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여전히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조슈아를 뒤집는다. 도저히 로봇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얼굴,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칼등을 쥐고 있는 손이 이리저리 홍지수의 얼굴을 돌려 본다. 내내 무표정하던 윤정한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근데 이거…“

 

9.

“정한아”

“...”

“사장님.”

“...왜.”

 

미친놈… 사장님하니까 대답하는 것 좀 봐. 

 

홍지수가 먼저 들어가버린 윤정한을 쫓아와 말했다. 잔뜩 상한 얼굴이 저를 노려본다. 그래도 아까 장씨 아저씨를 보는 눈보다는 훨씬 누그러져 있어서. 홍지수가 한숨을 돌리고 말했다. 

 

“애새끼도 아니고, 그렇게 표정관리를 못해서야 어떡해?”

 

윤정한이 이젠 한 쪽 눈까지 찌푸리고 말했다. 

 

“너야말로 조심 좀 해. 그렇게 얼굴 보여서 좋을 거 하나 없는데.”

 

왜 지랄이야 지랄은. 저를 말리러 나섰다는 걸 알면서도 싫은 소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넌 진짜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윤정한이 끝까지 불만을 뱉었다. 홍지수가 이젠 윤정한이 앉아있는 소파 앞까지 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무서운 걸 왜 몰라.”

“...”

“내가 무서운 건,”

“...”

 

홍지수가 거기서 말을 머뭇거렸다. 윤정한도 굳이 들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그대로 홍지수의 멱살을 끌어당겨 얼굴을 묻었다. 

 

지수야, 홍지수. 

 

옷에 파묻혀 웅얼거리는 소리가 홍지수의 목가를 간질였다. 홍지수가 가만히 윤정한의 머리를 정리해주며 생각했다. 

 

내가 제일 무서운 건 사장님이 … 는 거라고. 

 

그리고 그건 꼴통사장님이 묻기 전까진 얘기하지 않을 생각이라서. 홍지수가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튼 오늘 장사도 망쳤네? 이 망할 사장놈아…

 

10.

밀실 제 1 규칙. 임무는 무조건 수행한다. 그러므로 조슈아 로봇의 신원이 발각되면 즉시 제거한다. 죽인다가 아니라 제거한다 다. 윤정한이 지겹도록 익혔던 인공지능형 로봇의 전류차단법을 머릿속으로 다시 되새기며 조슈아의 목 주변을 꾹꾹 만져본다. 이론상 이 근처인데… 인간으로 치면 동맥이 흐르는 지점. 귀와 턱이 만나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 윤정한이 한 귀퉁이를 단단히 눌러 잡아 쥐고 있던 칼날에 힘을 준다. 

 

그때였다. 멈춘 줄만 알았던 조슈아가 눈을 뜬 게. 콜록거리며 입에 머금고 있는 물을 잔뜩 뱉어낸 눈동자가 드디어 윤정한을 마주한다. 

 

"안녕?"

 

윤정한이 말한다. 대답할 새도 없이 칼을 들이민다. 날이 깊게 들어가기 직전 조슈아가 급하게 목을 틀어 제 위에 올라타 있던 윤정한을 밀친다. 윤정한이 쥐고 있던 칼날이 그대로 땅바닥에 깊게 박혔다. 그러나 남은 한 손이 아직도 조슈아의 멱살을 놓치지 않았다. 윤정한이 팔에 힘을 줘 조슈아의 얼굴을 제 앞으로 끌어당겨 놓는다. 

 

평생 생각해왔다. 조슈아를 죽이는 거. 로봇의 전원을 끊어내는 거. 별 거 어려울 게 있겠냐고. 여기서 살아나가면 뭔들 못하겠냐고. 조슈아를 눈 앞에 둔 지금에서야 윤정한은 깨닫는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고. 그가 천천히 입술을 열어 말했다. 

 

"너…"

"…"

"로봇 아니잖아."

 

조슈아의 눈만을 바라보고 있던 윤정한의 시선이 죽 내려간다. 그의 목엔 여전히 제가 칼로 그어내려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배어낸 피부 밑으로 피가 흘러 조슈아의 옷깃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로봇이 다치면 피를 흘려? 웃기는 소리. 윤정한이 쥐고 있던 멱살에서 힘을 슬쩍 푼다. 

 

"그럼 달라져?"

 

조슈아가 윤정한의 손아귀를 겹쳐 잡아 힘을 주며 말했다. 강한 악력에 윤정한이 반사적으로 조슈아를 밀치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조슈아가 윤정한의 낯에 담긴 급박함을 읽고 픽 웃는다. 사실상 저를 방어할 건 아무 것도 없으면서 여유 있는 모양새였다. 조슈아가 여전히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아픈 기색도 없이 물었다. 그래서 너는, 

 

"나 안 죽일 거냐고."

 

윤정한이 대답을 망설이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조슈아의 손아귀가 먼저 풀렸다. 끝까지 힘주고 있던 동공이 풀리면서, 그대로 중력을 타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윤정한이 조슈아를 내려다본다. 

 

제 앞에 쓰러진 조슈아를 세 번이나 마주할 동안, 윤정한은 한 번도 조슈아를 제거하지 못했다.

 

11.

뜨겁기만하던 여름도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날. 그리고 그날따라 늑장을 부리던 홍지수를 뒤로하고 혼자 가게에 나온 드문 날. 

 

윤정한이 파리조차 날리지 않는 카운터에 대충 기대어 앉아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월간 기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페이지를 대충 넘겨가며 훑는다. 맨 마지막 페이지. 윤정한의 시선이 다른 페이지보다 훨씬 오래 맴돈다. 책을 덮기 전 바로 옆 설계면을 죽 찢어서 주머니 속에 집어 넣는다. 언뜻 보이는 페이지에는 동체회로기판이라고 적혀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똑똑-

 

이 동네에서 교양있는 척 노크하는 새끼는 홍지수밖에 없는데? 

 

윤정한이 문득 생각한다. 이 걸음은 홍지수도 아니고 엊그제 트랙터를 맡겨 놓고 간 장씨 아저씨도 아니다. 어느새 카운터 앞까지 다가온 걸음에 윤정한이 잡고 있던 잡지를 내린다. 

 

그럼 그렇지. 시선을 올리자 낯선 남자가 저를 마주한다. 이 동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새카만 차림이었다. 본능적으로 윤정한이 남자의 외양을 훑으며 무장여부를 파악한다. 무언의 대치가 한참이나 이어진다.

 

“너, 누구야.”

 

 

12.

그리고 생각한다. 전쟁이 끝났다고. 소속 없이 용병으로, 그것도 연고도 없다는 이유를 포함해 밀실에 강제로 들어온 주제에 국가는 저를 살려둘 리가 없다. 윤정한이 이번엔 발로 조슈아의 머리를 툭툭 쳐본다. 건드리는 대로 머리가 힘없이 흔들린다. 

 

이 머리를 본부로 데려갔을 때 자신이 살 확률… 

 

같은 게 있겠냐고. 바깥을 울리는 선전방송에서는 벌써 전쟁이 없던 일이 된 것처럼 떠들고 있었다. 만약 전쟁이 정말로 이렇게 끝난 것이라면, 가국 본부에서 있었던 폭발 사건도 알 만 했다. 조슈아의 목에서 흐르는 피가 벌써 흙바닥을 타고 윤정한의 신발 바로 앞까지 적시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어쩔 거냐고.

 

윤정한이 천천히… 손을 내려 홍지수의 동맥을 막는다. 확신 없던 몸짓이 점점 의지를 가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그가 입고 있던 천 중 가장 깨끗한 부분을 찾아 빠르게 잘라내 조슈아의 목을 단단하게 감싼다. 출혈이 멎을 기미가 보이자 윤정한이 조슈아를 다시 들쳐 엎는다. 그리고 숲속 더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용병 전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윤정한이 빈 집 구해 자리 잡는 건 남 목숨 살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조슈아가 죽지 않는다면. 

 

아마 오늘 밤이 고비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 했다. 산의 경계를 탄 윤정한의 걸음이 점점 급해졌다.

 

13.

“조슈아 홍.”

“...”

“이라고.”

 

이 근처에서 나타났다던데. 알아요? 대뜸 본론부터 꺼낸 남자의 말에 윤정한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저 새끼는 돌려 말할 생각이 없다. 윤정한이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그런 거 안 파는데요.”

“허,”

 

남자가 웃는다. 시선을 돌려 가게의 진열장을 훑는다. 이거 진짜… 진짜 같네요. 잘 꾸며 놨고. 날 서있는 예초기까지 툭 건드린 남자가 이젠 다시 윤정한을 향한다.

 

“이런다고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

“나가라고.”

 

조슈아든 조슈지든 그런 건 여기 없다고. 윤정한이 이젠 적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말한다. 명백한 의도에 남자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인다. 

 

“난 싸우러 온 건 아니에요.”

“...”

“그럴 필요도 없기도 하고.”

 

당신 출신을 알고 있거든.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이길 수가 없잖아. 이어서 그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화에서 윤정한은 남자가 어디 사람인지 대강 유추할 수 있었다. 나국이 밀실을 다시 어쩌고, 당신의 행적이 가국 본부에서 어쩌고… 윤정한이 세우고 있던 몸을 다시 카운터 쪽으로 기울였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하며 손으로 카운터 아래를 더듬었다. 언젠가 혹시 몰라 녹색 테이프로 고정시켜놓은 권총을 확인하며…

 

“그러니까.”

“...”

“우리 쪽에서는 핵심 회로만 있으면 돼요.”

“...우리?”

 

윤정한의 반문에도 남자가 대답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윤정한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

“만약 아니더라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요. 남자가 거기까지 말하자 어딘가에서 테이프 죽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당연히 소리의 출처는 윤정한. 더 정확히 말하면 카운터 밑. 

 

“이 새끼가 근데 못 하는 말이 없고.”

 

덕지덕지 붙여놓은 청색 테이프를 한 번에 뜯어내 장전까지 마친 윤정한이 총구를 바로 남자의 이마 앞까지 들이댔다. 남자가 당황한 듯 뒷걸음질을 쳤다.

 

14.

그래서 조슈아가 로봇이었냐고? 

 

반은 맞고 반은 아니었다. 그 날 밤, 이미 오래된 것 같은 빈 집에서 조슈아를 내려놓은 윤정한이 그의 모습을 살핀다. 죽어가고 있다. 윤정한이 무표정하게 조슈아의 심장 근처를 확인한다. 죽었나? 심장 박동이 뛰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게 느껴진다. 윤정한의 손이 조슈아의 상의를 헤집어 가슴 근처를 더듬는다. 

 

"이거…"

 

조슈아의 심장 위치에 부착되어 있는 건 분명 기계가 맞았다. 하수도에 잠겨있는 동안 손상된건지 금방이라도 멈출 것처럼 미약한 불빛만을 내고 있었다. 윤정한이 저도 모르게 손을 움직인다. 날카로운 칼날로 전류를 끊어내는 대신 고장난 부분을 예리하게 도려낸다. 기계를 멈추는 방법만을 배우던 윤정한이 그걸 다시 고쳐내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조슈아의 심장에 달린 머신이 오작동 할 때마다 조슈아가 입으로 울컥 피를 뱉어냈다. 조슈아가 누워있는 더러운 침대가 피로 적셔짐에 따라 윤정한이 머신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했다. 한정된 장비로 조슈아를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윤정한은 달려들었다. 그게 제 마지막 목숨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둡던 바깥이 점점 밝아질 때 쯤, 조슈아의 심장 부근에 달려있던 기계가 점차 오작동을 줄이고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박동 같은 건 없는 것처럼 움직임이 줄어든 기계를 내려다보다 윤정한이 다리 근처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만약 조슈아 전원을 한 번에 못 끊으면, 그냥 방전시켜. 그런 용도로 가져온 충격기를 윤정한이 망설이다가 조슈아의 가슴에 꽂아 넣는다. 번뜩이는 소리와 함께 조슈아의 가슴이 한 차례 튀어 오른다. 

 

삐-

 

이내 기계가 버벅이던 움직임을 멈춘다. 아슬아슬한 빛을 내던 이전과는 달리 금방 안정궤도를 찾는다. 조슈아의 입에서 더 이상 피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진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조슈아가 고른 숨을 뱉기 시작한다.

 

15.

여전히 남자는 싸울 마음이 없다. 윤정한의 눈에도 그래 보였다. 뻔뻔한 낯으로 제 안위를 말할 땐 언제고 이마에 총구가 들이밀어진 남자의 얼굴에는 공포마저 자리했다. 

 

“아무튼 전 경고하러 온 겁니다.”

“...”

“악감정은 없다는 거예요.”

 

총구가 천천히 내려간다. 반쯤은 어차피 소용없을 거라는 체념에서였다. 남자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금방 가게 밖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근데,”

“...”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겁니다.”

 

윤정한의 표정이 어떤 지도 모른 채, 남자가 홀연히 가게를 나섰다. 쥐고 있던 권총이 큰 소리를 내며 카운터에 내던져졌다. 윤정한이 그대로 힘이 풀려 의자에 몸을 묻었다. 무장조차 하지 않은 요원을 보낼 정도다. 이건 제안이 아니라 명백한 경고였다.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결말이 이거라니. 잘 생각해. 뭘 잘 생각해? 그런다고 홍지수가 살아? 

 

쿵-

 

바깥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16.

윤정한은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게 발생할 일일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윤정한이 느린 모양새로 공구박스 어디쯤에서 초록테이프를 찾아내 죽 뜯어 다시 권총을 다시 고정시켰다. 하루 종일 건드리지도 않는 진열대를 다시 한 번 눈으로 훑었다. 그제야 슬슬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향 남 전 자. 어울리지 않게 밝은 빛을 내고 있는 간판을 껐다. 윤정한이 주머니에 잔뜩 구겨져있었던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였다. 한 쪽 손으로 셔터를 내리면서 거기에 기대 필터를 물어 깊게 빨았다. 해가 어둑어둑하게 지고 있었지만 제 근처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정한아.”

“...홍지수가 웬일로 나를 데리러 나와?

 

윤정한이 물고 있던 담배를 빼지도 않고 웅얼거렸다. 

 

“그냥···”

 

홍지수가 대답하며 가게 벽에 그대로 삽을 내던졌다. 삽에 고스란히 묻어있는 피와 흙 같은 건 숨길 생각도 없는 눈치였다. 홍지수가 이젠 담배연기를 내뿜는 윤정한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윤정한의 남은 한 손을 끌어서··· 제 심장 앞에 내려놨다. 

 

“...뭐하자는 거야?”

“정한아,”

“홍지수.”

“너 이거,”

“...”

“필요해?”

 

윤정한의 손을 타고 기계의 진동음이 고요히 느껴진다. 자그마치 오 년 동안 윤정한이 갈아 끼우고 고치고 버리고 했던 거. 눈을 감아도 이젠 열 수 있는 거. 홍지수의 심장과도 같은 걸 더듬거리고 있자니 오히려 숨이 턱 막히는 쪽은 자신이었다. 

 

“이거 가져 갈거야?”

 

꽉 매인 목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윤정한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딴 게 왜 필요해?”

 

윤정한이 홍지수의 어깨를 잡아 밀쳤다. 그대로 밀린 홍지수를 바라보는 윤정한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죽고 싶으면 한 마디만 더 해보라고. 그딴 거··· 내가 필요할 것 같냐고.

 

17.

향남전자가 하필 그 시골 촌 동네에 자리하게 된 거. 눈이 침침한 고령인구가 많은 동네라는 이유에서. 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남은 마을이라는 이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슈아의 얼굴이 가득한 전단지가 나돌아 다녀도 의심하지 않았다. 향남전자 그 청년은 전단지의 사람처럼 딱딱한 정복 차림새도 아니었으며, 언제나 웃으면서 다녔으니까.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윤정한이 굳이 올 해까지 혹사시킨다면 운명을 다할 것 같은 이앙기를 가지고 씨름한 날. 결국 시동이 걸리는 것까지 확인한 윤정한이 그대로 전자사 마당에 드러누워 파업까지 해버린 날. 조슈아가 윤정한을 대신해 이앙기 주인 김씨를 마중 나간 날. 

 

“근데 자네는···”

“네?”

“이름이 뭐야?”

 

조슈아의 웃음에 난감함이 살짝 스쳐갔다. 하하, 제 이름이요. 조··

 

“조?”

“조슈ㅇ,”

“잠깐,”

 

어디서 그런 이름을 봤던 것 같기도 한데? 김씨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주머니를 막 뒤질 참이었다. 

 

“야, 홍지수.”

“뭐?”

 

수리 끝난 지가 언젠데 아저씨는 아직도 여기 계세요? 하여간 이 동네 양반들 느려 빠져가지고··· 윤정한의 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 묘하게 홍지수를 가린 모양새로 윤정한이 김씨를 내쫓듯 보냈다. 

 

“아니, 이 청년 이름이 조···”

“조씨 아니고 홍씨.”

“조씨가 아니라,”

“그러니까요.”

 

얘 이름 홍지수라고.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은 빼지도 않고, 그런 모습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김씨가 삿대질까지 하며 말했다. 

 

“근데 어린 놈의 새끼가 싸가지도 없이,”

 

김씨의 손이 내려갈 새 없이 높아지자 윤정한이 그대로 김씨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했다. 

 

“싸가지 없는 거 알면 건드리지 마시라고요.”

“이.... 이..”

“그리고,”

“...”

“홍지수 건드리면 진짜 죽,”

 

여기서부턴 홍지수가 윤정한 입 막아서 싸움 막았다. 정한아우리여기간판단지세달도안됐는데, 라고 겨우겨우 말하면서.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그래도 사람은 착한데··· 막힌 입과는 별개로 사정없는 개눈깔이 적어도 위협적이기는 했는지 김씨가 그대로 뒤돌아 사라졌다. 

 

“야, 너는 겁대가리도 없이···”

 

김씨가 시야에 사라지자마자 윤정한이 홍지수에게 그대로 잔소리를 쏟아 부었다. 조심 좀 하라고 제발. 정한아 나 너 때문에 나간건데··· 아 그니까, 아무튼. 윤정한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전자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홍지수, 안와?”

 

간다, 가. 홍지수가 금방 윤정한의 뒤를 따라 걷는다. 조슈아라는 이름은 거기에 버리고서.

 

 

18.

어수선한 공기의 흐름은 홍지수의 탓이 아니다. 아마 마을 끝에서부터 저를 찾으러 들어오는 수색대 탓이겠지. 그럼에도 윤정한이 묻는다. 

 

“왜 죽였어?”

 

홍지수가 대답했다. 

 

“걔가 나가면서 그랬어.”

“...”

“윤정한 찾았다고.”

“...”

“먼저 처리할 거라고.”

 

허.. 윤정한이 한숨 섞인 헛웃음을 흘렸다. 

 

“지수야.”

“응.”

“회로를 달랬어.”

“그것도 알아.”

 

밖에서 다 들렸어. 홍지수가 말했다. 안다고··· 윤정한이 무력하게 홍지수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걸로 네가 살면 그렇게 했어.”

 

윤정한이 생각한다. 네가···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너를 죽이러 온 거잖아. 제 앞의 홍지수의 얼굴에 거짓말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조슈아야.”

“...응.”

 

홍지수가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윤정한의 물음 앞에 사족이 자꾸만 더해진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물어보는 건데. 별 건 아니고,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해 줘야 돼. 

정한아, 난 거짓말 같은 건 안 해. 

 

“로봇도 사랑을 해?”

“...”

“대답해줘.”

“그런 건 배우지 못하도록 설계하지.”

 

홍지수가 그대로 윤정한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뜨거운 온기가 손을 통해 윤정한의 얼굴로 전해졌다. 그런데 정한아. 

 

“오년 전에 기억해?”

“...”

“너는 알잖아.”

“...뭘?”

“내가 뭔지.”

 

윤정한이 제 볼 위에 올린 홍지수의 손을 겹쳐 잡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

“홍지수는.”

“...”

“나를 사랑해?”

 

홍지수의 얼굴이 펴진다. 오년 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미소였다. 

 

“사랑하지.”

 

윤정한이 그대로 홍지수를 끌어당겼다. 끌어안은 모양새로 맞닿은 홍지수의 기계와 윤정한의 심장이 함께 진동했다. 마을 끝에서부턴 벌써 어수선한 소리가 금방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한아.”

“...응.”

“도망갈래?”

 

윤정한이 대답했다.

 

19.

조슈아의 가슴에 박혀있는 머신이 제대로 심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가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살폈다. 엉망이 된 침대 시트를 잡고 몸을 일으키니 그제야 방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집의 한 쪽 구석에 대충 기대어 자고 있는 윤정한이 보인다. 절뚝이며 조슈아가 윤정한 쪽으로 다가간다. 고여있던 피가 그제서야 중력을 얻어 몸 전체로 흐르는 기분이었다. 

 

"…"

 

낯선 움직임을 눈치챈 건지 윤정한이 금방 조슈아와 눈을 맞췄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새에 마주한 두 눈빛이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야,"

"…"

"깡통."

 

 

조슈아가 잠깐 멍하다 그게 저를 부른다는 걸 깨닫고 헛웃음을 지었다. 

 

"왜."

 

윤정한이 이번엔 한동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갈 데 없으면…"

"…"

"나랑 가자."

 

네 흔적이 잔뜩 묻어있는 이불은 전부 불태워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리고 거기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