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gebluht


개를 길들이는 법

익명

001+익명+개+01.png

 

: 애정이 피워지는 시기

 

   착한 개XX. CC만 8번을 했던 정한은 공공연하게 학과 내에서 그렇게 불렸다. 연애의 주기가 비이상적이게 짧은데도 동기들 사이에서 윤정한의 평은 좋았다. 윤정한은 잘생긴 얼굴에 특히 여자 동기들에게 친절했다.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킨십은 상대의 마음을 들쑤셔놓고 고백으로까지 이어졌다. 뭐 네가 좋다면야. 정한의 대답은 늘 같았다. 그러나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자 바로 태도를 달리했다. 마치 우는 아이 사탕으로 달래듯,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무섭게 돌아서거나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다. 대신 선을 그었다.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줬으니 이제 됐지? 쓰레기 같았지만 묘하게 예의 바르기에 상대방 입을 꾹 다물게 하는 수법이었다. 대부분의 여자와 그렇게 헤어졌는데 이번 건은 좀 재밌다고 윤정한은 생각했다.

 

   “저기요.”

 

   윤정한은 아까부터 물 맺힌 컵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남자를 결국 불렀다.

 

   “그러니까 그쪽이 혜선이랑 바람을..피운다는 말씀이시죠?”

 

   정한은 일부로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했다. 저를 당황하게 하든 질투 나게 하고 싶었든 혜선의 의도를 알았으니 어울려줘야겠다 싶었다. 앞에 앉은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길어서 그 동작이 정한의 눈에 유난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책상을 툭툭 긴 손가락이 몇 번 지루한 듯 두드렸다. 남자는 정한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말했다.

 

   “네. 그래서 혜선이랑 헤어져 주셨으면 해서요.”

 

   웃으니 눈꼬리가 확 순해졌다. 정한은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것을 꾹 참았다. 오랜만에 제게 걸어온 장난에 거절하면 도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신났던 것도 같고 윤정한도 사람인지라 아무튼 예쁜 것에 약했다.

 

   *

 

   “지수야. 여기 생맥 500만 더~”

   “네, 손님.”

 

   홍지수는 생맥잔을 상이 부서질 듯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다른 손님 몇이 둘을 잠깐 쳐다보았다. 태도는 불량한데 얼굴은 친절 그 자체였다.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 이 스토커 새끼 또 왔네, 하는 표정이었다. 윤정한은 벌써 맥주 몇 잔 마신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눈치 없고 못생긴 학회장 새끼가 축제 때 괴상망측한 것을 의견이랍시고 밀어붙여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는데 홍지수 몇 번 놀리니 금방 기분이 괜찮아졌다.

 

   “맛있게 마시고 얼른 가세요 손님^^”

   “어엉 나 방금 왔는데에. 이모님, 저 왔어요~”

 

   정한이 넉살 좋게 부엌 쪽으로 손을 흔들자 둘을 완벽하게 친구로 오해한 식당이모님이 우쭈쭈로 화답해주셨다. 그때 그 알바를 받지 말걸 하고 그날로부터 만오천 번 정도 후회하던 지수는 시간을 다시 과거로 돌리고 싶었다. 

   홍지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그냥 가난도 아니고 대단히 가난했다. 어느 정도냐면 오래 일한 가게에서 1년을 못 채우고 쫓겨나서 퇴직금을 못 받자 기숙사비를 못 낼 만큼이었다. 단기 상하차 알바를 뛰어야 하나 머리 터지게 도서관에 앉아 고민하고 있으니 쪽지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알바해보실래요? 

   홍지수는 돈은 없었지만 도덕적 양심은 있는 편이었다. 돈도 없는데 그런 것까지 없으면 혼자서 쉽게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처음 보는 여자가 제게 부탁한 건 그냥 카페에 나가서 남자친구인 척만 해달라는 거였다. 자기를 엄청나게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어서 무리하게 사귀게 되었고 헤어지려 하니 납득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홍지수는 여자가 딱히 불쌍해서 도와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사정이면 이런 사적에 가까운 알바를 받아들일 명분이 생기는 거라서 그래서 받아들였다. 물론 이런 식으로 제 생활 반경을 쫓아다니는 스토커가 생기는 거라면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사실, 아니다. 

 

   홍지수는 돈보다 중한 게 없었기에 미친놈 하나쯤 따라다닌다고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

 

   “야, 일어나.”

 

   홍지수는 윤정한의 다리를 차려다가 포기하고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술을 잘 마시지도 않는 윤정한은 항상 홍지수가 끝날 때쯤에는 저렇게 책상에 뻗어있었다. 그 광경이 신기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가게 주인은 윤정한을 깨우거나 하지 않았다. 지수는 정한을 깨우는 것을 포기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종일 쉬지 않고 일하다가 처음 앉는 거라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한쪽 팔을 개고 자는 윤정한의 얼굴이 고스란히 보였다.

   다 비슷비슷하게 어두운 머리들 사이에서 유난히 노랗게 염색한 윤정한은 튀었다. 사실은 윤정한이 흑발이었어도 어디서나 눈에 확 들어왔을 거라고 홍지수는 생각했다. 홍지수는 윤정한 여자친구에게 놀아났다고 해서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다음부터는 차라리 택배 상하차를 뛰어야겠다고 다짐했을 뿐이었다. 다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정한의 태도였다.

 

   ‘윤정한아 넌 진짜 할 일이 더럽게도 없는 놈인가 봐, 그렇지?’

 

   윤정한이 홍지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지 이 주가 되었을 때,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수는 한 음절씩 짓씹듯 말했다.

 

   ‘아닌데? 지수야 니가 몰라서 그렇지. 나 오늘만 해도 약속 다섯 개나 펑크 냈어.’

 

   윤정한은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약속을 꼽았다. 시간은 돈이다. 적어도 홍지수에게는 그랬다. 그런데 윤정한은 매일 매일 자기를 보러 돈을 버렸다. 장난감처럼 상대하지도 않았다. 윤정한은 홍지수를 따라다니기만 했지, 뭔가 요구하지를 않았다. 홍지수는 윤정한의 손가락 하나를 쥐었다. 그만하라는 뜻으로 한 거였는데 윤정한의 움직임이 멈췄다. 안광 없는 눈이 조금 떨렸던 건 착각일까. 윤정한은 자주 홍지수 앞에서 이랬다. 매사 여유롭던 모습이 잠시 없어질 때가 있었다. 제가 윤정한을 못 끊어내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게이도 아닌 홍지수는 놀랍게도 그때마다 흥분했다.

 

   *

 

   “지수야아. 나 진짜 못 걷겠어. 오늘은 너네 집에서 자면 안 돼?”

   “응, 우리 집 숙박비 오백만 원임.”

   “할부 안 돼? 응, 할부?”

 

   분명 술에 깬 것 같은데 윤정한은 다리가 풀렸다면서 몸을 반쯤 홍지수에게 기대어 걸었다. 홍지수에게서는 코튼향의 바디로션 냄새가 났다. 홍지수를 따라다닌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는데 전혀 질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얘를 따라다닐수록 더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에는 제 전여친이 걸어온 장난에 적당히 어울려주다가 말 생각이었다. 홍지수는 저를 밀어냈지만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윤정한은 홍지수의 어장에 들어간 한 마리 물고기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근데 빠져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더 많은 홍지수를 보고 싶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얼굴을 좋아하는지, 잠자리 취향은 어떤지…. 

 

   거기까지 생각한 윤정한은 홍지수에게 떨어졌다.

 

   “와, 지수야. 안 되겠다.”

   “토하려면 나 가고서 토해.”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 사귀자.”

   “...”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윤정한은 쪽팔림도 없이 그 말을 뱉었다. 무드 없는 고백임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침묵이 깔린 둘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깜빡깜빡하던 가로등이 켜져서 주변이 확 밝아졌다. 윤정한은 홍지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상황을 무마할 건 얼굴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정한아.”

   “응.”

 

   잘 될 것 같다. 처음으로 성을 빼고 정한이라고 불러줬다. 홍지수가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걸 이제 알았니?”

   “어어..응?”

   “네가 가진 게 얼굴밖에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홍지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얼빠진 정한을 내버려 두고 걸어갔다. 착한 개XX. 윤정한을 그렇게 부르던 동기들은 이제 그 별명을 정정해야 했다. 

 

   “지수야, 그럼 내 얼굴은 마음에 들었다는 거지. 그치?”

   “...”

 

   윤정한은 천천히 걷는 홍지수의 옆을 다시 꿰차면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 모습은 그냥 주인 따라가는 개XX. 그 자체였다. 

 

 

 

 

자산 1.png

윤홍 최고 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