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gebluht


Beautiful greed

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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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이 멸망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종말론이야 어느 시대든 끊이질 않았던 것이라지만 이번은 정말이라나. 원인은 대기 오염. 단순명료했다. 공기는 탁하고 지상에 닿는 햇빛은 날이 갈수록 약해져, 자연스레 지구는 냉장고에 방치해둔 브로콜리처럼 말라가는 중이었으니 멸망이 머지않았다는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테다. 정한은 이런 식으로 피 말리는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소행성 충돌로 모든 게 한 방에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래도 이 행성 위 모든 생명이 자다가 죽는 기적 같은 호사를 누리기란 어렵겠지.

 

   그렇다고 얌전히 죽을 날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인류는 잃어버린 태양빛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비록 세상의 절반은 폐허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로 인구수는 반 토막 났다지만, 원래 풍비박산 나버린 상자 밑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게 인류라는 족속 아니던가. 실낱같은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탄생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 <PROJECT JOSHUA>였다. 그런데 왜 과학의 힘으로 헤쳐나갈 연구에 굳이 종교적인 이름을 붙였는지 당최 알 수가 없군.

 

   “그거 대외 홍보팀에서 붙인 거예요. 정확히는 그쪽에서 추린 여러 시안 중에 선택된 거라고 할까.”

 

   “왜 많고 많은 성경 인물 중에 여호수아래요?”

 

   “그 이전에도 여러 이름이 붙긴 했었죠. 벤자민, 조셉, 매튜……. 다 페기 절차를 밟은 실패작이라 지금은 없지만요.”

 

   건너 건너 자리에 앉은 이들의 대화가 여기까지 들렸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준까지 온 게 그간 조슈아 하나뿐이었다는 소리다. 정한은 그다지 낙관적이지는 못한 전망을 훔쳐들으며 눈앞에 놓인 배식판을 깨작거렸다. 이 땅은 제대로 된 작물이 자랄 환경을 잃은지 오래라 대부분의 식사는 맛과 향을 화학적으로 재현한 가짜에 불과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지만 진짜의 비하면 위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식사를 마친 정한은 복도를 걸었다. 이곳은 창문이라고는 하나 없는 방공호에 가까운 시설. 공간은 넓고 사람은 적은 탓에 복도에서 마주치는 건 열에 아홉은 청소 로봇이었다. 좁은 간격으로 조명이 붙은 복도. 눈이 아플 정도로 흰빛 아래에 투박하게 생긴 로봇들이 저들의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한은 당장 거울을 써도 될 정도로 반짝이는 바닥을 한 번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구두굽 소리가 유독 크게 복도에 울렸다.

 

   정한의 연구실은 제일 안쪽에 있었다. 홍채에 지문에 정맥에 음성 인식에 카드 키 인증까지. 4중으로 걸린 보안을 거치고서야 겨우 도착하면 혼자 있던 조슈아가 정한의 안색을 살피고는 툭 물었다.

 

   “오늘도 별로였나 봐.”

 

   정한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이곳의 좋은 점은 드물게 사치품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물론 말단에게는 턱도 없는 소리고, 정한이 특혜를 누리는 입장이기에 가능한 거였다. 먹다 남은 커피를 삼킨 정한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대꾸했다.

 

   “당연하지. 여기 음식은 다 끔찍해. 난 맛없는 거 싫어.”

 

   “그런 소리는 앞에서 듣는 로봇 기분도 생각하고 해야 하지 않겠니, 정한아.”

 

   “와. 지수 너 이제 말 잘한다.”

 

   Joshua. 그는 프로젝트명 외에도 몇 가지 이름을 더 가지고 있었다. 얼핏 듣기로는 연구에 자금줄을 대는 국가의 언어로 8개인가 9개인가 이름을 지었다는 것 같았다(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라서 흘려 들었다). 요점은 어디 돈 많은 9개국의 개인들이 후원을 했으나, 현재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3개국 밖에 남지 않아 다소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건 정한의 아버지, 그러니까 前 윤 박사라는 것 정도겠다. 윤 박사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된 인물이자 조슈아에 홍지수라는 이름을 지어준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없는 지금, 홍지수를 부르는 건 윤정한밖에 없다.

 

   정한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슈아는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수십 가지 얼굴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표현하고, 관절은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레 동작을 수행한다. 더불어 모든 판단을 자율에 맞기는 성장형의 인공지능. 기계에 인간의 마음을 부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시절부터 모두가 한 번쯤 꿈꿔봤을 이상의 실현, 그 자체.

 

   폐쇄 연구소에 반쯤 납치되듯 흘러 들어왔을 때만 해도 정한은 아버지가 또 연구에 미쳐 이상한 집단에서 이상한 걸 만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전 총책임자였던 윤 박사가 부재하게 된 이후조차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그가 남긴 방대한 계획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니 윤 박사의 자리에 뭣도 모르고 저를 앉힌 거겠지. 여기 사람들은 다들 정한이 윤 박사를 닮았다고 말한다. 이전의 윤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정한이 그들의 지표가 되어 줄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이를 부정하는 건 오로지 조슈아뿐이다.

 

   “둘이 별로 안 닮았어.”

 

   “근거는?”

 

   “관상이라는 게 있잖아.”

 

   정한이 픽 웃었다. 따지고 보면 관상의 본질도 관찰과 통계였으니 썩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런 불확실한 말이 로봇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유머 포인트였다. 정한은 괜스레 제 얼굴을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하긴 어릴 때는 어머니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그 남자의 손에 컸는데 사소한 버릇 하나 정도는 공유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분명히 있었을 테고.

 

   유년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이다. 혼자 있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집. 방과 복도와 거실에 들어찬 황량하고 쓸쓸한 공기. 여름이면 마당의 나무 아래 죽은 매미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고, 겨울이면 철제 우편함의 뚜껑이 부쩍 헐거워졌던 게 떠올랐다. 집안 모든 물건을 분해한 뒤 재조립 하고 높게만 보였던 서재의 책과 컴퓨터가 정한의 것이 되었을 즈음에 아버지의 발걸음은 완전히 끊겼다. 정한이 윤 박사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가 무척 바쁘며 어딘가에 몰두해 있다는 것. 어쩌면 그때만 해도 한없이 멀쩡하게만 보였던 세상은 이미 고장 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고, 아버지는 이 행성을 위해 살신성인 정신으로 연구에 임했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박사님과의 생물학적 단순 특성을 제외하고 64건, 그중에서 9건의 버릇이 정한이 너와 높은 일치율을 보여.”

 

   “와.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커피 절반을 식혀서 마시는 점.”

 

   “……평범하네. 설마 남은 8개도 다 이런 식인 건 아니겠지.”

 

   “근데 그거 맛있어?”

 

   “맛으로 먹는 게 아니긴 한데. 너 방금 말 돌렸지.”

 

   조슈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검진대로 향했다. 정한은 더 캐묻는 대신 얌전히 거치된 팔을 잡았다. 혈관을 찾듯이 팔목 안쪽을 만지면 꾹 눌리는 부분이 있었다. 특수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피부가 들리고 금속 재질의 내부가 드러났다. 준비된 선을 단자에 연결한 다음 모니터를 응시했다. 정한은 화면에 나타난 글자를 재차 확인하듯 따라 읽었다. 시스템 체킹. 검사가 완료된 항목이 화면에 빠르게 출력되고, 게이지가 모두 올라간 다음에 팝업이 떴다. 올 라잇. 정한은 조슈아의 손목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뚜껑을 다시 닫으면 피부가 다시 흠 없이 맞물려서 감쪽같았다. 어딘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어? 형식적으로 던진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정한아. 나 부탁 하나만.”

 

   “어?”

 

   “나도 먹고 싶어.”

 

   “뭘? 커피를?”

 

   “뭐든.”

 

   “그치만 너 미각 센서 없잖아.”

 

   거기까지 말한 정한은 조슈아가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각 센서야 이미 안정화된 모듈이 존재했으니 업데이트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다. 소화 기관이 없으니 신체 내부에 소각 기능을 넣어야 할 텐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잡아먹기야 하겠지만 크게 걱정될 부분은 아니고. 그런 실질적인 문제와 별개로 썩 추천하고 싶은 기능은 아니었다. 지금 이 세상에는 맛있는 게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정한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껏 의문을 가졌는데 충족시켜줘서 나쁠 것 없다. 이 정도 성장한 인공지능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쪽이 쓸데없는 버그 발생률을 줄이는 방안이기도 했고 인격을 부여한다는 최종 목표에도 부합했다. 대수롭지 않게 수락하자 조슈아는 반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아마도 저게 최상의 감정 표현으로 분류되어 있겠지, 그런 짐작을 들게 만드는 예쁜 미소였다. 조슈아는 딱히 진심이 아닐 겸양 표현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별로 필요는 없는 기능 같기는 해.”

 

   물론 그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해줄 수 있었다.

   

   “뭐 어때. 어차피 인간도 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생물인데.”

 

 

 

2

 

   조슈아의 개발 목적은 단순하다. 계획은 이렇다. 1) 자율 사고 로봇을 태운 로켓이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의 근방으로 접근한다. 2) 우주선에 일체형으로 탑재될 초대형열확산복사장치를 작동시킨다. 3) 태양빛은 장치를 거쳐 확산된 채 지구 위로 강하게 쏟아질 것이고, 오염된 대기를 뚫고 지면까지 닿아 토양 상태를 회복시킨다.

 

   이 작전은 태양 가까이에 접근한다는 점, 그리고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이 탑승하는 건 무리였디. 원격 조종을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채택된 게 인공지능을 태우자는 것이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지능을 가지도록 할 것 ▶ 장치의 섬세한 조작이 필요할 것이니 인간형으로 채택 ▶ 이왕이면 외부 투자도 받을 겸 호감 가는 마스크로, 를 거쳐 태어난 게 조슈아의 탄생 비화였다.

 

   정한은 전임자가 남긴 연구 노트를 살펴보고서야 알았다. 조슈아의 내부에 굳이 인간의 마음을 재현하려고 한 것은 언제든 그가 인류를 위한 선택을 하게끔 만들기 위함이었다. 등 뒤에 푸르렀던 행성과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구를 둔 채 약 6000도의 열기를 견딜 것. 아마 접근하는 순간 오래 못 버티고 녹아버릴 테지만, 지구까지 열을 전달하는 건 수십 초의 시간만 벌면 된다는 가설이 뒷받침했다. 요약하자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버틸 인류애 만땅의 휴머노이드를 만들고자 했다는 소리다. 정한은 과도한 인간 중심 사고를 비웃기보다는 새로운 의문을 떠올렸다. 정말로 자신의 아버지가 이를 옳다고 생각했을까. 정한은 노트의 마지막 장을 부욱 찢어 뭉친 다음 바닥에 툭 내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를 돌아다니던 청소 로봇이 날름 빨아 들이고는 사라졌다. 다시금 과하게 번쩍이는 바닥. 거기에 비친 제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단순히 잠을 안 자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조슈아에게 미각 센서가 탑재된 기념으로, 정한은 초코바(유통기한이 반 년쯤 지난 건 무시했다)를 선물했다. 초콜릿은 이곳의 기호품 중 코스트가 높은 편이다. 정한은 한 달 치 커피를 포기하고 두 개의 초코바를 얻었다. 바삭한 스낵에 캐러멜 시럽을 입혀 굳히고 그 위로 두꺼운 초콜릿으로 코팅한, 혀가 아릴 정도로 단 초코바. 아주 보람차게도 초코바를 한 입 깨문 조슈아의 눈이 그를 만난 이래 가장 크게 뜨였다.

 

   “되게 충격적이다.”

 

   그 말이 이유 없이 재밌어서 정한은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잠깐 숨을 고른 정한이 물었다.

 

   “맛있어?”

 

   “맛있어.”

 

   “기본 선호도는 랜덤 돌렸는데. 단맛이 걸렸나보네.”

 

   “난 좋아. 통계에 의하면 단맛은 인류의 가장 많은 비중이 호감을 느끼는 맛이래.”

 

   현재 정한의 연구실, 그러니까 예전부터 쭉 윤 박사의 연구실이었던 이곳은 방공호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온갖 설비 장치가 있어 널찍하고 쾌적한 편이다. 사실상 조슈아의 완성도는 정한이 윤 박사의 칭호를 물려받은 이후 9할 이상으로 끌어 올려버려서, 가뜩이나 부족했던 인력은 모두 로켓이나 우주에서 사용할 장치의 건조로 붙은지 오래였다. 연구실 곳곳에 CCTV가 있긴 하지만 타인이 직접 이곳까지 오는 경우는 2주에 한두 번뿐. 때문에 형식만 남은 정기 검진을 마치고 나면 대개 둘만의 자유 시간이었다.

 

   연구실 안쪽의 문을 열면 조슈아의 방과 이어졌다. 특별히 생활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광경이었다. 무늬 없이 흰 베개, 흰 시트, 흰 침대, 짬이 날 때 정한은 종종 그 위에 누워 있었다. 벽을 등지고 누우면 일관성 없는 물건들이 선반 층층에 인테리어처럼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조슈아는 선반의 가장 위쪽에 먹다 남은 초코바 한 개를 올려두었다. 순록과 와사비만큼이나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눈으로 훑으며 구경하던 정한은 그 사이에서 괜스레 신경 쓰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건 어디서 났어?”

 

   “아, 그거. 선물 받은 물건.”

 

   옅게 금이 간 회색 토분이었다. 심어진 식물은커녕 흙도 마사토도 없는 빈 화분. 정한은 조슈아가 내미는 것을 받아 들어 표면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서늘하고 꺼끌꺼끌했다. 안쪽에는 미처 씻겨 내려가지 않은 흙 알갱이가 조금 말라붙어 있다. 무언가를 심었던 흔적이다. 바깥은 이제 무언가를 키울만한 환경이 안 되지만, 연구소 시설을 이용하면 이 정도 크기의 작물 하나 정도는 쉽게 기를 수 있었을 테다. 뭘 심었는지 기억나냐는 질문에 조슈아가 눈을 데록 굴렸다.

 

   “손톱 크기의 꽃이었어. 이름은 알았는데 까먹었구.”

 

   “에이. 말이 안 되는 소리지. 네가 어떻게 까먹어.”

 

   그에 조슈아가 눈을 부릅 뜨고서 웃어 보였다. 기본적으로 웃는 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탓인지 조슈아의 감정 변화는 대개 여러 종류의 미소를 통해 표현됐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미간이 좁혀졌으니 미미한 짜증이 섞인 것이겠다.

 

   “나 구동된 지 제법 오래됐어. 프로토 시절 기억은 우선순위가 낮은 순으로 자동으로 삭제되니까 당연한 거야. 잘 찾아보면 옛날 백업 정도는 있을걸.”

 

   “그냥 설명만 더 해줘 봐. 나 밖에서 농사 지었잖아. 막 꽃도 심고 그랬어. 들으면 대충 알지도 몰라.”

 

   물론 앞마당의 텃밭을 가꿨던 게 전부였으니 한참이나 과장된 말이었다. 조슈아는 용케 거짓을 알아차리고 의문을 표했다.

 

   “박사님은 네가 학생이라고 그랬는데. 음, 윤 박사가 되기 위해서 말야.”

 

   “아버지가 내 이야기도 했어?”

 

   “가끔.”

 

   “별로 수다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조슈아가 더 듣고 싶다고 졸랐기 때문에, 정한은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왜곡을 피할 수는 없었던 탓에 몇 번이고 불확실한 언어를 덧붙이거나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마당은 널찍했고, 아마 그 전체 크기의 4분의 1 정도가 텃밭이었고, 손에 들어온 온갖 씨앗을 닥치는 대로 심었고, 주택 뒤편으로는 산으로 통하는 좁으면서도 가파른 길목이 있었는데, 계절마다 고르지 못한 자리에 서로 다른 꽃이 피었던 것 같고, 그것을 꺾어다 유리컵 내지는 화병에 꽂았던 것 같다…….

 

   정한은 가만히 듣고 있는 조슈아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간 꿈을 꾸는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던 조슈아가 다소 의지가 느껴지는 굳은 투로 말했다.

 

   “나도 보고 싶어.”

 

   “없지 않으려나. 이제 세상의 절반은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아니거든.”

 

   그러면 조슈아는 정한이 쉬이 의미를 잡아내기 힘든 패턴으로 얼굴 근육을 움직인다. 패턴, 패턴, 패턴. 짧은, 수많은 패턴의 연속. 수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방대한 표정 중에서 하나를 골라 출력해 보였다. 다시금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눈 한 쌍이 정한을 향했다. 그 사물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기묘한 기분이 됐다. 정한은 확신 없는 추측을 시도했다. 아마 지금 조슈아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확률이 있잖아’. 때문에 정한은 다소 충동적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그럼 같이 보러 갈까.”

 

 

 

3

 

   윤 박사는 조슈아가 처음으로 인지한 인간이었다. 그는 명성에 비해서는 크게 별 볼 일 없는 남자라고, 주관적인 감상이라는 것을 남길 수 있게 됐을 즈음의 조슈아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스무 살 남성을 디폴트로 설정하여 만들어진 조슈아에게, 남자는 자신에게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꼬박 다섯 해 동안 윤 박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조슈아는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없는 허공에 던지는 행위와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는 의도,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건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프로토타입의 테스트가 종료된 다음에 조슈아는 딱 한 번의 바디 교체를 거쳤다. 스무 살의 몸에서 스무 다섯 살의 몸으로 코어가 이전됐다. 달라진 건 시선이 조금 높아진 것과 외형이 다소 성숙해졌다는 정도. 거기에 후각 센서의 업데이트가 추가됐다. 새로운 몸에서 눈을 뜬 조슈아에게, 윤 박사는 선물을 주었다. 봉오리가 아직 열리지 않은 키가 낮고 대가 얇은 꽃이었다. 코를 가까이 대고 가만히 있는 조슈아에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조언 한 마디를 남겼다.

 

   욕망을 가져라. 그것이 인간이 되는 방법이다.

 

   평생 무언가를 원하고 살아온 이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 남은 가족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조슈아를 만들었다. 그의 목적이 지구를 구하는 그런 고귀한 소명을 가지고 행동한 게 아니라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몰라도 조슈아만큼은 오래전부터 알 수 있었다. 연구 계획상으로는 한참 전에 제 뇌리에 새겨져야 했을 인류를 위한 희생정신 같은 게 좀처럼 깃들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고 윤 박사는 떠났다. 병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도가 없다고 했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방공호 안에 차고 넘쳤으나, 준비 기간이 길었던 죽음인지라 크게 놀란 이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남기고 간 봉오리가 열렸다. 흰 꽃잎이 별처럼 사방으로 피더니 고작 한 달 만에 졌다. 이후 조슈아는 채 반 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아들과 만났다. 박사는 사진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들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했다. 때문에 조슈아는 박사와 흡사한 가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내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비록 이미지는 부자간 닮은 외형이 거의 없었던 탓에 원본의 근처도 못 가봤지만, 그럼에도 조슈아는 정한과 처음 만난 순간 그가 누군지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바깥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부터, 조슈아는 정한이 저를 하늘로 쏘아 올릴 생각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연구를 핑계로 새벽까지 남아있던 정한은 방을 나서기 전 총을 챙겼다. 실탄이 들어있는 건 아니고, 몰래 틈틈이 개조한 에너지건이었다. 새벽의 복도는 미등만 남긴 채 로봇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낮에 청소를 하던 로봇들은 이 시간이면 정찰 모드로 전환된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대상을 포획하려 드는데, 이는 내부 관계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그래도 바깥의 무법지대에 비하면 실내에서 마주치는 로봇 쪽이 네 배는 대처하기 쉽지. 정한은 모든 연구원에게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구두를 벗고, 처음 이곳에 올 때의 신고 있었던 다소 헤진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이 시간의 좋은 점은 연구동에 남아있는 인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되는대로 처치하고, 경보가 울려 인간 시큐리티가 도착하기 전에 이곳을 탈출하는 게 목표. 아, 왜 긴장되고 그러지. 출발에 앞서 정한이 손을 내밀었다. 조슈아가 냉큼 마주 잡은 탓에 떨릴 새도 없었다.

 

   “지수야, 예의상 물어볼게. 전투 관련 프로토콜 실행 가능해?”

 

   “아니. 잠금 걸려 있어.”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시간을 들이면 해제할 수야 있겠지만 지금은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벽 뒤로 몸을 감춘 정한이 가까운 정찰 로봇을 조준하고 트리거를 당겼다. 대상의 면적이 넓어 쉽게 명중했다. 날아간 구가 쇳덩이에 원반 형태로 붙었다. 전력을 차단하는 장치가 작동하자 감전이라도 된 것 마냥 덜컹이던 로봇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퍼졌다. 정한은 밖으로 향하는 최단 루트를 떠올리며 말랑한 실리콘 손을 잡아끌었다. 조슈아는 놀랐다기보다는 이 상황이 신기해 보였다. 아니, 단순히 신난 건가.

 

   “언젠가 떠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날 챙겨갈 줄은 몰랐어.”

 

   “같이 보러 가자고 했잖아.”

 

   “언제는 다 없어졌을 거라면서.”

 

   “뭐, 어쩌면 남아있을 수도 있지.”

 

   개체 하나의 신호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다른 구역을 돌고 있을 로봇들이 원래의 구역을 벗어나 몰려왔다. 아직까지는 예상했던 바였다. 정한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계획했던 루트로 이동했다. 분명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의 계획만 해도 혼자 빠져나오는 거였는데. 정한은 막간을 이용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상대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설명할 순간인 걸 직감했다. 나한테 남은 건 너뿐이니까? 혼자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와중에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내가 지금 너랑 달리고 있는 이유는 말야……. 

 

   “헤어지기 싫으니까.”

 

   비상벨이 울렸다. 흰 벽에 붉은 사이렌의 빛이 번졌다. 무장한 시큐리티의 고함소리와 발소리가 섞여 들렸다. 예상보다 대응이 빨랐다. 조슈아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한을 감시하던 다른 누군가도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간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찰 로봇에 에워싸인 채 돌파구를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와중. 정한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조슈아가 웃고 있었다. 그래, 원래 웃는 상인 거 아는데. 상황 때문인지 조금 섬뜩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던 차에 정한의 목덜미로 무언가 날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한은 저도 모르게 억 소리를 냈다. 그대로 목을 붙들린 채, 제 뒤에서 울리는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었다. 평소 자연스러운 어조와 달리 딱딱하고 기계적으로 들리는 음성이었다.

 

   “윤정한의 목숨이 아깝다면 접근하지 마.”

 

   응? 정한은 제 손에 들려 있던 총이 어느새 제 머리를 겨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슬그머니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달려온 시큐리티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모양새였다. 조슈아는 그대로 정한의 뒷덜미를 잡고, 머리에 총구를 댄 채 곧장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사전에 점찍어둔 루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둘은 좀처럼 사용될 일 없는 D구역의 비상 통로를 택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목이었는데, 낮이든 밤이든 구애받지 않는 조슈아의 눈에는 먼 곳까지 잘 보였을 테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옅은 비상등이 발치를 비췄다. 이제는 조슈아가 정한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둘의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졌다, 다시 길어지기를 반복했다.

 

   방공호를 나서는 문 앞에 다다라서야 정한은 타이밍을 놓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너 그래도 돼?”

 

   원래라면 만에 하나 계획이 엎어지더라도 정한의 정신 나간 절도 사건 정도로 마무리될 규모였다.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건 또 다른 문제다. 최소가 리셋, 자칫하면 폐기행이 될 수도 있는 사항이었는데, 조슈아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안 될 건 뭐야.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려고 했는걸.”

 

   외부로 이어지는 해치 앞에 선 조슈아가 망설임 없이 핸들에 손을 올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한은 그 얼굴이 어딘가 비장하게 느껴졌다. 조슈아는 전에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곧은 의지마저 느껴지는 확신의 투로.

 

   “나도 너랑 헤어지기 싫었거든.”

 

   지나온 복도 너머에서 다급한 여러 개의 발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차마 웃음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정한은 긴장 탓에 마른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었다. 핸들은 크고 무거워서 둘이 함께 달라붙어 돌려야 했다. 겨우겨우 문을 열어젖히자 텁텁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등 뒤의 난폭한 기운이 지척까지 다가온 게 느껴졌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정한은 흰 가운을 벗어 던지고는 옆에 있는 팔을 단단히 낚아챘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달려나갔다.

 

 

 

 

 

 

 

 

 

 

 

 

윤홍 짱 짱짱 짱짱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