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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조이피스

안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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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아무 전조 없이 삶을 통째로 뒤집어 놓는 것들이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사랑이라던가 행운, 그게 아니라면 가까운 이의 죽음 혹은 상실. 엉망이나마 잘 일궈가고 있던 삶을 온통 뒤흔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것들. 삶의 우선순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재배열하는 것들.

 

   윤정한은 지금 희대의 난제에 직면해 있었다.

   전남친이 어느 날 갑자기 집 앞에 서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전남친이 헤어진 지 8년 된 첫사랑일 확률은. 무엇보다, 그 전남친 품에 아기가 안겨있을 확률.

 

   씨발…….

 

   아무리 계산해봐도, 말도 안 되는 확률이었다. 이런 확률이면 로또나 되었으면 좋았을걸.

 

   "정한아, 나 좀 재워주라."

 

   이번에도 또, 홍지수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정한에게 '아무 전조 없이 삶을 통째로 뒤집어 놓는 것'인 바로 그 홍지수였다. 무얼 먹고 뭘 하며 지내는지는커녕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마저 알 수 없었던 홍지수.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하는 진부한 상용구마저 백번 천번을 들여다보며 어디로 사라졌을까 매일 밤새워 뒤척이며 고민하게 만들었던 그 애.

 

   아, 꼬박 8년만의 재회였다.

 

 

 

 

 

   갓난아이를 안은 사람을 마냥 세워두기엔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한참 눈싸움을 하던 정한은 결국 더 버티길 포기하고 옆으로 비켜서 현관에 길을 내주었다. 아이를 안은 지수가 조심스레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의 한쪽 구석에 아이를 눕혀놓은 홍지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팔이 제법 뻐근한 모양이었다.

 

   "니 애야?"

   "내 딸이야."

 

   어렵게 버티다 겨우 꺼낸 말에, 홍지수는 쉽게도 대답을 한다.

 

   이거 지금 뭐 실험 카메라인가? 지수 너 요즘 유투버 뭐 그런 거 하니? 물으려다 겨우 참았다. 정한은 언젠가 홍지수와의 재회를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실은 거짓말이다. 매일을 그 애와 재회하는 상상을 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혹은 영화관에서 옆자리에 앉거나, TV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나오는 그 애를 보게 된다거나 하는 로맨틱하거나 로맨틱하지 않은 상상들을 매번 레파토리를 바꿔가며 수백 개를 연습해봤다. 홍지수를 만나면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너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할지, 무얼 하고 어디서 무얼 보고 살았는지를 어떻게 물어야 할지, 너는 그럼 어떻게 답을 해줄지, 나이를 먹고 조금 낮아진 목소리는 어떨지. 저를 달가워할 수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아무래도 그 수백 개의 레파토리 중 단 한 번도 없던 것이었다.

   정한은 지금 그 모든 게 단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재회의 현장이 우리 집 현관 앞이라니.

   그 홍지수가 아이를 안고 있다니.

   홍지수가 갈 곳이 없다니.

   우연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지수가 나를 먼저 찾아왔다니.

 

   지금 정한이 지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딱 하나였다.

 

   "너 나 엿먹이려고 이러는 거야?"

 

   역시, 정한은 로맨틱한 재회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이라면 발끈 맞받아쳐 화를 냈을 지수는 눈 하나 깜짝을 하지 않았다.

 

   "나도 지아 아니면 너한테 안 왔어."

   "재미없다. 그만하자, 지수야."

   "너는 아직도 내가 새벽 두 시에 애기 데리고 여기까지 온 게 농담 같애?"

 

   농담이어야지. 실험 카메라고 거짓말이고 질 나쁜 장난이었어야지. 저를 혼자 두고 훌쩍 자라버린 것 같은 그 애의 모습이 정한은 한없이 낯설다. 지수는 와중에도 정한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혹시 애가 깨기라도 할까 낮게 숨죽인 목소리에서 정한은 홍지수의 모든 표정을 읽었다. 어찌 되었건 제가 한 수 숙이고 들어오겠다는 태도의 표명이 분명했다. 왜 나한테 맞서 덤비질 않아? 정한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지다, 지수의 시선 끝에 있는 아이를 향하곤 조금 풀어졌다. 아이는 죄가 없지. 따지자면 정한은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기들은 예쁘고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자라야 한다는 말에 꽤 동의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게 지수의 아이라면 사정은 좀 달랐지만.

 

   "…소파 위에 눕혀. 바닥 딱딱할 텐데."

   "이제 막 뒤집기 시작해서 안 돼."

 

   그제야 정말 지수가 아이의 아빠 같았다.

 

   "여긴 어떻게 알았어?"

   "순영이한테 물어봤어."

   "걔랑 연락 중이었어?"

   "아니. 용산 쪽에서 일한다는 것만 들었지, 어디인지는 몰라서…."

   "몰라서?"

   "주변 상가 돌아다니면서 맨날 호랑이 셔츠 입고 다니는 남자 못 봤냐고 물어봤어."

 

   이런 개씨발…. 권순영과 권순영의 측은지심이 기어이 나를 죽이는구나. 내일 권순영 호랑이 셔츠 다 불태워버려야지.

 

   "애도 자는 것 같은데, 먼저 씻고 와. 오늘은 작은 방에서 자고."

   "…고마워, 정한아."

 

   욕실에 들어가기 직전 지수가 그런 감사를 건넸다. 정한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지수는 내가 모르는 사이 얼마나 멀리 달아나 버린 걸까? 생각하며, 정한은 잠든 아기의 얼굴에서 홍지수를 찾아내거나 찾아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정말 그 애가 지수의 아이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지수의 아이였으면 했다. 지아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걸까. 지수와 그 여자 이름을 한 글자씩 딴 걸까. 아냐, 그만두자. 정한은 더 이상의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오랜 버릇이었고 가진 것 중 가장 나쁜 버릇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일단 도망치고 싶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울 때면 놀이터로 도망을 쳤고 친구와 싸울 기미가 보이면 장난처럼 말을 돌렸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도망은 거실에서 방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같이. 대화를 황급히 끝을 내고.

 

   아, 진짜 도망치고 싶다.

 

   그건 울고 싶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적어도 정한에게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수는 집에 없었다. 아기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자보겠다고 뒤척거리다 오히려 침대에서 늦게 나왔다. 틀림없는 지각이었다. 이왕 지각인 거, 차라리 느긋하게 가자 싶어 집 앞 카페에서 커피도 하나 샀다. 3층 상가 건물의 2층. 정한과 순영의 사무실 [진달래흥신소]. 건물 앞에 세워진 짙게 선팅 된 다마스의 창문이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조수석으로 다가간 정한이 창문에 가볍게 노크를 했다.

 

   "순영아."

 

   창문이 내려가고, 순영이 어물쩍 웃어 보였다.

 

   "아이 형 왜 이제 왔어~ 지각이잖아~"

   "어엉, 내가 한밤중에 우리 집에 전남친 꽂아 넣는 누구씨 때문에 지각을 했네에."

 

   아 그건 미안해. 넉살 좋게 굴던 순영이 1초 만에 넙죽 사과했다. 덕분에 밤새 한숨도 못 잤지 뭐야~ 그제야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순영이 다마스에서 내리며 물었다. 어제 지수형이랑 싸웠어? 아니, 생각이 많아서. 무슨 생각? 유병장수 하라고 네 대가리에 소주병 꽂을 생각.

 

   "아 미안하다고~! 그치만 형도 지수형 찾았잖아."

 

   순영은 그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8년 전 여름의 밤. 덥고 습한 날씨,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선풍기 앞에서 의미 없이 시간이나 죽이고 있던 권순영 앞으로 걸려온 전화. 순영아, 너 요즘 사람 찾는 일 한다며. 그때까지 이름만 흥신소, 달아놓고 남의 집 잃어버린 개새끼나 찾아주던 권순영이 정식으로 받은 첫 의뢰.

 

   지수 좀 찾아줘.

 

   울던 정한의 목소리까지도 선명히.

   몇 날 며칠을 쥐잡듯 뒤져봐도 소식 하나 나오지 않는 홍지수 때문에 정한이 제 직장도 관두고 허구헌날 순영의 사무실을 들락거리기도 수십일. 정한은 자연스레 순영의 사업파트너가 되어있었다. 돈 빌려놓고 잠수 탄 이웃을 찾아달라는 의뢰나 바람피운 남편의 증거 사진 찍어달라는 사장님들 의뢰를 받는 틈틈이 정한과 순영은 지수를 찾아 헤맸지만 지수의 소식이라곤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지수에 대해 유의미하게 건진 게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순영이 창백히 질린 얼굴로 돌아와, 형, 지수형 한국 국적 아닌 거 알았어? 하던 날. 무슨 개소리야? 하며 받아 든 출입국 조회서에 적혀있던 낯선 이름. 조슈아 지수 홍.

 

   "너 지수한테 애 있는 거 알았냐."

   "어, 지수형이 나 찾아온 날 봤어."

   "그런데도 나한테 보냈어?"

   "애 있는 거 알게 되면서 겸사겸사 생사도 같이 알고 있는 게 낫잖아. 생사조차 모르는 것보단."

 

   아냐, 순영아.

   나는 그냥 영영 그 애의 생사를 모르는 게 나았을 것 같애.

 

 

 

 

 

   지수는 매일을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아이를 품에 안은 채였다. 아기도 힘들 텐데, 정한은 걱정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나는 정말 잘 곳만 제공하기로 했으니까. 더 이상 홍지수와 안 얽힐 거니까. 그 애가 나를 먼저 저버렸으니까. 애석하게도 정한은 잠귀가 밝았다. 이따금 아이의 울음소리에 겨우든 선잠마저 깨면 지수가 가만가만 아기를 어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꾸벅 잠에 들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큰다던데, 집 안에서 가끔 마주치는 지수의 아이는 봐도 봐도 조그맣기만 하고 도무지 자랄 것처럼 보이질 않았다.

 

   하루는 아기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세 시. 정한은 시간을 확인하고 베개에 고개를 처박았으나 아이의 울음은 금방 멎지 않고 더욱 커지기만 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정한은 안 나가볼 거야, 안 들을 거야… 몇 번을 중얼거렸지만 아이를 어르는 지수의 목소리는 아무리 기다려도 들려오질 않았다. 결국 거실을 지나 조심스레 작은 방을 노크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홍지수 과로로 쓰러진 거 아냐? 요즘 유달리 퀭해 보이던 얼굴이 떠올랐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방 한가운데에는 덩그러니 아기만이 놓여있다.

 

   애를 두고 어딜 간 거야?

   눈앞이 하얘졌지만 곧 아기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간 지수는 정한에게 육아에 대한 도움이라곤 한 번도 청한 적이 없었다. 덕분에 서툰 솜씨로 아기를 안고 얼렀다. 울음은 쉬이 멎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본 기저귀도 깨끗하기만 했다. 졸지에 새벽 네 시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분유를 탔다. 아이는 젖병을 물기는 커녕 고개를 돌려 피하기만 했다. 왜그래, 뭐가 문제야? 물어도 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 아이는 끝없이 울기만 했다. 육아를 하다 미친다던 친구의 말을 백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이대로 또다시 지수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한테 애를 맡기고 간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정한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냐, 오겠지. 애를 두고 어딜 가겠어. 정한이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며 아기를 품에 안아 들었다.

 

   "뚝, 울지 마. 나랑 니 아빠 기다리자. 응? 지아야."

 

   정한에게 처음으로 불린 이름. 울음이 조금 멎었다. 말을 알아듣는 건가? 오묘한 기분으로 정한은 아이를 안고 자꾸 말을 걸었다. 너희 아빠 어디 갔어? 네 아빠 그동안 뭐 하고 살았는지도 알아? 하긴, 잘 모르겠구나. 너 태어난 지 반년은 됐니? 내가 너보다 네 아빠 오래 알았어. 질투 나지? 응, 근데 오래 못 봤어. 근데 너 아빠 닮았구나. 혹시 엄마도 닮았어? …네 이름 어디서 온 건지 너는 알아? 조금 멎는 듯하던 아기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처음보다 조금 능숙하게, 정한은 아이를 제 품에 안아 얼렀다. 울지마, 울지마. 한참을 달래고 어르려니 그제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피곤한 기색의 지수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기를 안고 있는 정한을 보고는 연신 사과했다.

 

   "미안해, 지아 깼구나. 요즘은 그래도 통잠 자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제야 정한은 오래 외면하던 것을 물었다.

 

   "너 나가면 아이는 어디에 두는 거야?"

   "…차에… 아냐, 그래도 차에 금방 돌아가. 진짜 15분 이상 차 안에 놓고 다닌 적 없어. 진짜 별로라고 생각하겠지만, 지아를 맡길 데가 없어서…"

   "…그냥 두고 나가."

   "그래도 돼?"

   "내가 볼게."

 

   고마워, 내가 너한테 신세를 많이 진다. 말하며 지수는 곤란해했다. 정한에게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는 생각이 문득 든 탓이다. 근데 니가 나 가르쳐야 해, 나 애 돌본 적이 없어. 말하며 정한은 괜히 멋쩍어했다. 지수에게 감사를 받는 것은 아직 익숙지 않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지수가 정한의 품에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익숙하게 아기를 어르고 달랬다. 금방 울음소리가 멎었다. 조금 망설이던 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한아. 너한테 이것까지 부탁하긴 싫었는데… 사람 좀 찾아줘."

 

   이왕 빚지는 호의라면… 하나만 더 빚지도록 하자.

   작은 방에서 나서려던 정한이 멈춰 섰다.

 

   "강민아. 우리보다 두 살 많아. ■■광역시 출신이라고 했어."

 

   아이의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정한은 이제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뭐야?"

 

   아기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정한을 보던 순영이 인사 대신 대뜸 물었다. 정한의 한쪽 손엔 커다란 가방이 들려있었다. 지수 어디 가서 내가 오늘은 얘 봐야 해. 정한의 말에, 대박. 형 성인군자야? 순영이 물었다.

 

   "이러라고 지수한테 우리 집 알려준 거 아냐?"

   "아니, 미안하다니까…. 지수형 아직 형네 집에 있어?"

 

   그 형도 좀 너무했다. 어떻게 전애인한테 애를 봐달라고 하냐. 순영이 쫑알거렸다. 애 듣는다, 조용히 해라. 정한의 말에 허얼… 기가 막히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그러면서도 순영은 또 아기가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손이 대박 작아. 얘 몇 살이래? 아직 한 살도 안 됐겠지? 순영아, 우리나라에선 애들은 태어나면 한 살이야. 아. 태어난 지 반년도 안됐대. 이름이 뭐래? 지아. 이름도 예쁘네, 지아야~ 아기는 순영의 목소리에 잘만 웃었다.

 

   "지수가 사람 좀 찾아달래. 강민아. ■■광역시. 93년생."

   "지수형이 사람을 찾아? 웬일이래. 누군데?"

   "지아 엄마."

 

   형 진짜 성인군자야? 아니라고, 임마.

 

 

 

 

 

   정한은 그 이후에도 종종 아이를 안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단골손님들 중 몇은 언제 아이가 생겼냐며 축의금 하나 쥐여주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고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엔 아기 아빠 이것 좀 먹어봐요~ 하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다. 아기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 하면 하하 웃어넘기면서도 정말 닮았나? 전신거울 앞에서 아기 얼굴과 자기 얼굴을 비교해가며 시간을 보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수가 바쁘게 밖을 돌아다니며 강민아의 흔적 하나라도 찾으려 애쓰는 동안 아기는 점점 정한의 손을 탔다. 정한이 육아에 묶이는 바람에 순영은 난데없이 출장이 잦아졌지만, 짜증을 내려다가도 정한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형, 지난주보다 나를 더 잘 알아보는 것 같아. 천재인가? 진지하게 구는 통에 정한도 말려들어 그런가? 맞장구치기도 했다. 정한은 금연을 시작했다.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었다. 형, 담타? 묻는 순영에게 우리 집에 애 있다, 대답했더니 순영은 입을 떡 벌리고 정한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누구야? 너 윤정한 아니지. 너 윤정한 아니고 윤정환이나 뭐 그런 사람이지! 정한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진짜 사람이 이상해졌어…. 순영이 끌끌 혀를 차다 문득 생각난 듯, 아, 운을 띄웠다.

 

   "아, 근데 형. 강민아씨 찾기가 힘드네. 지수형한테 사진 한 장이라도 받아와 주면 안 돼?"

 

   어어. 정한이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수야, 언제 와?]

 

   일찍이 보내놓은 문자에도 답은 없었다. 많이 바쁜 걸까. 분유를 타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이따금 지수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지금 같은 때.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인데, 아기의 뺨 한쪽에 빨간 두드러기 같은 것이 올라있었다. 지수는 연락이 안 되고… 병원 데려가 봐야 하나, 고민하던 정한이 핸드폰을 들었다.

 

   [엄마, 이거 병원 가야 해?]

 

   사진과 함께 메시지 전송.

   핸드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 너 사고 쳤냐?

 

   아, 젠장. 이건 생각 못 했다. 사고 쳤겠어? 발끈할 뻔한 걸 다잡고 줄줄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쫌… 친구 애기야."

   - 애기 엄마 아빠는 뭘 하고 네가 애를 봐?

   "바쁜 일 있다 그래서 내가 잠깐 봐주는 거야. 그래서 병원 가야 해?"

   - 태열 올라온 것 같네. 보습제 있으면 그거 좀 발라주고 시원하게 해줘. 심한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알았어."

   - 난 또 네 애인 줄 알았다, 네가 어릴 때 그걸로 하도 앓았어서. 얼굴도 좀 닮은 것 같고.

   "엉, 전화 끊어."

 

   전화를 끊고, 정한은 또 아기의 얼굴을 한참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사람들은 종종 지수와 정한을 헷갈려했다. 네가 지수니? 정한이니? 물으면 정한은 눈 하나 꿈뻑 않고 제가 지수인데요. 장난을 치다 지수에게 등짝도 심심찮게 맞았다. 사람들이 둘을 헷갈려하는게 좋았다. 내가 너고 네가 내가 되는 경험. 철이 없어도 함께 없어야했고 어른이 되어도 함께 되었어야 했다. 둘이 지극히 타인이라는 사실을 정한은 지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날에야 깨달았다. 싸우는 횟수가 잦아져도 정한은 둘이 꼭 닮은 사람이라는 데에 의심한 번 품은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우리를 잘 아니까 또 화해하겠지, 했던 안일한 생각. 어쩌면 그 사이 지수가 지쳐가고 있었겠구나, 지수가 사라진 후에야 정한은 후회했다.

 

   아기가 나를 닮았다니. 너와 내가 이렇게 닮았다니. 그런데도, 우리가 타인이라니.

 

 

 

 

 

   지수는 또다시 새벽에야 돌아왔다. 아기를 재우려 옆에 누워있다 함께 잠들어 버린 정한을 지수가 깨웠다. 고마워. 지수가 작게 속삭였다. 밥은 먹었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정한이 먼저 물었다. 그때야 지수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나와. 토스트라도 해줄게. 정한이 지수에게 손짓했다.

 

   "지아 많이 안 보챘어?"

   "요즘은 내 손 많이 타서 그런지 얌전해."

   "지아가 나 안 닮아서 다행이네. 나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나 키우기 너무 힘들었다 그랬거든."

   "나도 어릴 때 말 되게 안 들었는데."

 

   지아가 성격은 우리 둘 다 안 닮았네. 얼굴은 되게 붕어빵인데. 너랑 나랑 닮았다는 소리 엄청 들었었잖아, 내가 지아 안고 장 보러 가면 다 나 닮았다고.

   말하던 정한이 급하게 입을 닫았다. 공기가 조금 어색해졌다고 느낀 탓이다. 쟤 딸이지 내 딸은 아닌데, 내가 뭘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거야…. 팬에 버터를 바르고 식빵을 굽는 2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졌다.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지수다.

 

   "냄새 좋다…. 집 온 것 같아. 옛날 생각 나."

 

   여전히 피곤이 묻어나는 목소리였지만,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별 맛도 안 날 빵을 지수는 오래오래 꼭꼭 씹어 삼켰다. 예전에도 종종 이랬었는데. 먹는 게 느린 지수의 맞은 편에 앉아 몇 번이고 그 애의 입꼬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수가 나타난 이후로 정한은 과거를 더욱 자주 떠올렸다. 이상하게 또다시,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실은 바람이겠지만.

   정한은 이 시간을, 지수를, 그리고 아기를 더 붙잡아두고 싶었다.

 

   "지아 아기침대 하나 살까."

 

   무심코 뱉은 말에, 지수가 조금 놀란 눈으로 정한을 바라보다 시선을 제 앞의 접시로 돌렸다.

 

   "정한아, 나 여기 오래 안 있을 거야."

   "그래도 하나 사. 아기 불편하니까."

   "정한아."

 

   정한은 또 지수의 앞에서 고집을 부린다.

 

 

 

 

 

   작은 방에 아기침대가 들어왔다. 싱크대 주변엔 소독된 젖병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영양제나 올려져 있으면 다행이던 식탁 한 구석을 분유통이 차지했다. 아이의 장난감이 늘어났다. 도무지 인테리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온전히 정한 혼자만이 쓰던 공간이 남의 물건으로 이렇게 많이 채워진 것은 또 처음이었다. 하지만 널려있는 아기물품 사이에 지수의 물건은 몇 개 없었다. 제 물건들을 다 차에 쑤셔두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옮겨오고 넣어두는 모양이었다.

 

   "짐 차에 두지 말고 집으로 가져와."

   "미안해서 안돼."

 

   왜 또 금방이라도 떠날 사람처럼 굴지? 공연히 정한의 속이 상한다.

 

   "짐 뭐 얼마나 된다고…. 너도 불편하잖아. 방에 두고 다녀."

   "…오래 안 있을 거라니까. 금방 갈 수도 있어."

   "너 어차피 갈 데 없잖아."

   "비웃는 거야?"

   "비웃긴. 나 지금 굉장히 호의를 베풀고 있어, 너한테."

   "나도 아니까 이러는 거야."

 

   지수는 더이상 정한에게 빚지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갚아줄 수 없는 호의. 이 정도의 호의까지 바라고 이 집에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며칠 머물 곳만 얻을 셈이었는데.

 

   "정한아. 너한테 도움을 받아도… 그만큼 못 갚을 수도 있어."

   "누가 갚으래? 그냥 신세 져. 할 수 있는 한 오래 머무르고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다 이용해먹어."

   "정한아."

   "너 진짜 나랑 남처럼 구는구나."

 

   남이지, 정한아. 우리가 뭐라고.

 

 

 

 

 

   "맘마먹고 합시다."

 

   시간을 확인한 정한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말을 꺼냈다. 순영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 형 왜 이래? 했다.

   강민아를 찾는다는 핑계로 정한은 며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핑계라기엔 반쯤 진심이었다.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한다면 네가 원하는 걸 찾아줄게. 찾아주면 떠나. 정한이 지아를 돌보는 내내 순영이 강민아의 흔적을 찾아 헤맸지만 수확은 별로 없는 상태였다. 지수형 불러서 이야기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순영이 넌지시 운을 띄웠다. 알아서 연락 해. 정한은 지수와의 모든 연락을 순영에게로 위임했다.

 

   "난 점심 따로 먹을게. 좀 있다가 지수형 사무실로 오기로 했어."

   "왜?"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려고."

   "알아서 해."

 

   전 애인 애까지 봐주며 성인군자(라고 쓰고 호구라고 읽는)짓을 자처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냉랭하게 군다니. 순영은 정한의 눈치를 살살 보며 지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형, 언제쯤 도착해?

 

   정한이 집을 비운 지도 사흘째였다. 정한이 밖으로 돌며 자연히 지수도 지아의 곁에 발이 묶였다. 그새 정한의 손을 탄 지아는 제 아빠의 품을 전보다 자주 불편해했다. 품 안에서 곧잘 잠드는 듯싶다가도 침대에 내려놓으면 자꾸 보챘다. 지수가 거실 소파에 앉아 아기를 안고 꾸벅 조는 날들이 늘었다. 얼굴에 피곤함이 한가득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만 감으면 잠들 것 같은 얼굴로, 지수가 아기를 안은 채 사무실로 들어섰다.

   정한은 사무실 안의 제 자리에서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는 체도, 눈인사도 없었다. 커피라도 한 잔 줄까? 순영의 말에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서. 차 있으면 그걸로 부탁해. 녹차 한 잔을 지수 앞에 내려놓은 순영이 지수에게서 아기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정한은 일부러 보란 듯 자리를 박차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찾기 힘들지?"

 

   지수는 정한의 행동에도 눈 하나 깜빡 않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굴었다.

 

   "어, 그게 좀 힘드네. 사진은 없는 거지?"

   "응."

 

   정한은 탕비실 벽에 기대어 둘의 대화를 들었다.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고 홍지수에게서 사라져버린 강민아. 홍지수가 애타게 찾고 있는 강민아. 홍지수는 강민아를 왜 찾는 걸까. 지아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지수는 아직도 강민아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럼 범위를 정해줬으면 좋겠어. 이 정도로 안 나오는 거 보면 외국에 나가 있을 가능성도 있어서. 만나고 싶은 거야, 아님 대화만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그게,"

 

   이어질 뒷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정한은 벌컥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서 핸드폰만을 챙겨 밖으로 달아났다.

   참을 수 없이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나도 너를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모든 우연을 믿고 거기에 기대고 싶게 만들었으면서.

 

 

 

 

 

   드물게 지아가 일찍 잠에 들었다. 그것도 침대에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지수도 이불을 덮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도 자지 못하고 보채는 아기를 돌볼 때는 단 한 시간이라도 맘 편히 자보고만 싶었는데, 막상 오랜만에 평화의 시간이 오니 막연한 두려움이 지수를 덮친다.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는 강민아. 자꾸만 신세 지게 되는 윤정한. 제 손에 쥐어진 지아의 작은 손. 과거와 더 과거, 그리고 현재.

 

   지수는 지아의 손을 놓친다. 어느새 걸을 수 있게 된 지아가 종종걸음으로 지수를 지나쳐 누군가에게 뛰어간다. 지아야, 지아야! 지수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뛴다. 아무리 뛰어도 아이와의 거리는 좁혀지질 않는데,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건….

 

   지수야.

   조슈아.

 

   헉.

 

   숨을 급하게 들이키며, 지수는 잠에서 깬다.

   정한이 지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야, 지수야 빨리. 다급한 음성에 눈을 떴을 때, 정한이 지수를 억지로 잡아 끌어 자리에서 일으켰다.

 

   "왜?"

   "지아 아픈 것 같은데. 병원 데려가봐야 하는 거 아냐?"

 

   아기 계속 우는데 네가 달래는 소리가 안 들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수가 더듬더듬 가방부터 열어 체온계를 찾았다. 39도. 열이 꽤 높았다. 지수가 해열제를 찾았다. 정한은 그 사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번에 그 아기, 어, 아니 오늘도 일이 있어서 내가 봐주는 거야. 39도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해? 병원 가라고? 알았어. 전화를 끊은 정한이 다급하게 수건을 적시러 가는 지수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구급차 부르자.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안돼."

 

   지수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지금 너 상태도 말 아니야. 애 저렇게 우는데 듣지도 못하고 자고 있었잖아. 병원 데려가자."

   "지아 의료보험 없어."

 

   뭐? 정한의 눈에 당혹의 빛이 스친다.

 

   "출생신고를 못해서."

 

   정한이 지수를 다시 본 이래, 그 애가 가장 작고 약해 보였다.

 

   "너 그게 무슨…."

 

   당혹스러워하는 정한을 지나 지수가 욕실로 뛰어들었다. 찬물을 받고 수건을 적시는 지수가 곧 울음이 터질 것 처럼만 보여서, 정한은 잠시간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뭘 해야 하지. 내가 뭘 해줄 수 있지. 덩달아 손을 덜덜 떨던 정한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 새벽에 전화를 붙잡고 아는 병원을 죄다 뒤졌다. 제 아버지 소유의 병원에서 근무 중이라는 순영의 친구 하나가 지아를 받아주었다. 정한도 몇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친구였다. 열이 좀 많이 높네요. 아기는 수액 맞고 있어요. 열 내리나 경과보고, 내리면 퇴원하셔도 되고 계속 안 좋으면 정밀검사 한 번 할게요. 네, 네…. 지수는 혼이 다 빠진 사람 같았다. 어, 원우야. 고맙다. 지수를 대신해 정한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지아가 이렇게 아팠던 건 처음이라서…."

 

   복도 의자에 앉아 그제야 한숨을 돌린 지수가 멋쩍게 변명했다. 그럴 수도 있지. 정한이 답했다. 다시 둘 사이를 채우는 정적. 물어도 될까. 정한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다. 사정을 알아야 도와주지…. 실은, 지수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제가 모르는 지수의 시간 속에서 지수는 무얼 하고 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혹시 제가 보고 싶진 않았는지.

 

   "출생신고를 왜 못한 거야?"

   "애 엄마가 없어서."

   "…네 애는 맞아?"

   "내 딸이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나 그 사람 꼭 찾아야해, 정한아. 근데 왜 출생신고를 못 해? 사실 정한도 아기가 지수의 딸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지.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얼굴이 꼭 닮았으니까. 하루하루 지날 수록 눈꼬리가 더욱 지수를 닮아가니까. 그런데도 자꾸만 정한은 고집을 부렸다. 더 자세히 얘기해주질 않는 지수가 미워서 조금이라도 자극해보려고. 나한테도 알려달라고 떼를 쓰려고.

 

   "혼자서는 출생신고 못하는 거야?"

   "…그 사람 찾아야해, 나."

   "왜? 너 싫어서 떠난 사람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뭔데? 너 아직도 그 여자 사랑해?"

   "비꼬지 마."

 

   지수의 말에 정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이 조급해 말이 섣불렀다. 지수가 제게 감추는 것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정한은 쉽게 가속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 허를 찌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싶었다.

 

   "나 미국국적이야. 여기서 혼자선 지아 출생신고 못해."

   "나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

   "…."

 

   정한은 뭘 말하는 걸까. 지아 출생신고가 안 되어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것? 지수가 미국국적이란 사실을 단 한 번 밝히지 않은 것?

 

   "또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어?"

   "없어."

   "아닌데, 너 나한테 말 안 한 거 많은데."

   "…."

 

   둘의 대화를 끊은 것은 의사였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아버님. 지아가 열이 떨어지고는 있는데 속도가 좀 느리네요. 지아 물품이라도 챙겨서 다시 오시겠어요?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병원 복도에서 오래 할만한 대화는 아니기도 했다. 가자. 먼저 멋쩍은 정적을 깬 것은 지수다.

 

   "…담배 한 대만 피고 가자."

   "그래."

   "너는 안 펴?"

   "나 애 아빠야, 정한아."

 

   허, 정한이 헛웃음을 쳤다.

 

 

 

 

 

   새벽의 도로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둘 사이에 서먹한 분위기가 그 어떤 말도 쉬이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잠시간 망설이던 지수가 예의 느리고 상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너한테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정한아."

 

   한 번도 벗어나질 않고, 오직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너한테 못 할 짓인 거 알고 있었는데. 너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지수의 말을 운전대를 잡은 정한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걸 어떻게 갚아야할지 모르겠네…. 지수가 중얼거렸지만, 정한은 기가 막히게 지수의 혼잣말을 캐치한다. 지수의 옆모습을 흘긋댄 정한이 몇 번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저런 얼굴을 보면, 또 고집을 부리고 싶어진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다.

 

   "안 갚아도 돼. 그냥 대답해주면 되는데."

   "…."

   "내가 물었잖아, 너 그 여자 사랑하냐고."

 

   지수는 입을 꾹 다물고 정한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한아, 너는 진짜 조금도 안 자랐구나."

   "그게 누구 때문인데?"

 

   지금 정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수가 그 여자를 아직도 사랑하는지의 여부였다.

   처음엔 말도 없이 떠난 지수를 많이 원망했지. 너무 미울 때는 어린 맘에 그 애가 불행하길 기도했다. 몇 년이 지나 조금은 그 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즈음에도 정한은 쉽게 지수에게 화가 났다. 지금 당장 그 애가 눈앞에 나타나면 모든 화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수는 몇 년이고 돌아오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화를 풀지도 못하고 자꾸 미움만 쌓였으니까.

 

   "정한아, 말은 똑바로 하자."

 

   상대를 원망하기로 따진다면 지수도 마찬가지다. 스물의 여름, 좋아하는 마음을 죄다 구겨서 마음속 트렁크에 처박아버리고 지수는 제 고향으로 떠났다. 지수가 떠난 것은 가족들에 의한 타의에 가까웠지만, 정한과의 연락을 끊어버리는 것은 오직 지수의 선택이었다. 정한에게 많이 지쳤으니까. 멀리 달아나버리는 그 애의 버릇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기엔 지수도 어렸으니까. 처음엔 홧김이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그것은 더이상 홧김이라고 부를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되었다. 그 애에게 돌아가고 싶어질 때마다 지수는 제가 그 애에게서 모질게 떠나왔다는 것을 다시 상기했다. 지아를 안고 8년 만에 정한을 찾으며, 지수는 정한이 행복하게 살고 있기만을 바랐다. 자기는 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행복했으면 했고, 이왕이면 안정적인 가정까지 꾸렸으면 했다.

 

   "네가 먼저 도망쳤잖아. 돌아오면 언제든 내가 있을 줄 알았어?"

 

   분을 못 이긴 정한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둘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운전대에 고개를 처박고 숨을 고르던 정한이 격한 감정을 참아내느라 다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답을 꺼낸다.

 

   "어."

 

   정한도 제가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목으로 꾸역꾸역 눈물이 찬다. 그때 지수에게 느꼈던 감정이 배신감이라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이 화는 오직 다 삭이지 못한 감정들의 잔재. 정한은 지수가 사라진 그 날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단 하루도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넌 인생이 다 농담 같아서 좋겠다."

 

   지수가 정한을 빤히 응시한다. 그 눈빛을 마주 쏘아보고 있던 정한이 기어이 입을 연다.

 

   "그 여자 모든 게 다 거짓말이래."

 

   순영에게 온 메세지 하나. 아무리 찾아도 없네. 아무래도 지수형한테 거짓말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순영의 고민이 무색하도록 먼저 뱉어버린 정한의 입술. 유치하고 치졸한 복수.

 

   "알고 있었어."

 

   뭐? 머리끝부터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 같다. 정한의 입이 바짝 마른다. 이름도 나이도 거짓말이래. 순영이가 그 여자 ■■광역시 출신도 아니라더라. 너 완전히 속았대. 그런데도 니 애라고 확신할 수가 있어? 지수는 태연한데, 정한만 안색이 파리해진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어. 알고 속은 거니까 괜찮아."

   "너 호구새끼야?"

   "너나 나나 비슷하지 않겠니."

 

   이 씨발….

   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길 기도한 적 있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는데.

 

   "그런데 왜?"

   "지아 출생신고만 해주려고."

 

   정한은 다시 핸들에 머리를 처박은 채 숨을 고른다. 언제 온 지도 모르게 뒤에 와 선 차가 빵, 클락션을 울렸다.

 

   "정한아. 너야말로 아직 나 사랑해?"

 

   8년의 시간 동안, 그 무엇 하나도 지수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 지수는 정한에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도.

 

   정한아, 또 도망갈 거니. 지수는 묻는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기도 전에 정한은 지수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입술을 부딪히고 혀를 욱여넣었다. 정한의 호흡을 갑작스레 받아들이며 지수가 뒤로 밀려났다. 벽에 부딪힌 뒤통수가 얼얼했다. 곧 정한의 손이 올라와 지수의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정한이 내팽개치듯 신발을 벗어버리고, 지수도 다 벗지 못하고 발 끝에 걸린 신발을 저 멀리 던졌다. 정한이 지수를 꽉 끌어안고는 느리게 입술을 뗐다. 티셔츠를 벗는 손길이 다급했다. 정한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구석구석을 훑고 예민한 곳을 자근자근 깨물어댔다. 넘쳐흐르고 흐느끼고 삼키고 쏟아냈다.

 

   사실 지수는 돌아와 그 애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알았다. 그 애는 단 하루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니가 미워."

   "응."

 

   지수의 허리를 끌어안은 정한이 나른하게 말했다. 지수도 쉽게 수긍했다. 나도 니가 미워, 정한아. 어, 그래라. 필로우토크로는 영 적합지 않는 대화였다. 한참의 정적. 느긋하게 지수의 갈비뼈 개수나 손 끝으로 헤아리던 정한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고민 끝에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수야, 지아 그냥 내 밑으로 올릴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정한아."

 

   타박하는 지수가 딱 제가 알던 지수 같아서 정한은 조금 웃었다. 진심인데…. 중얼거리며 정한은 지수의 목덜미를 잘근 깨문다. 진짜 진심인데.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기도 싫어. 말하는 지수의 얼굴이 사뭇 단호했다. 아이라는건 뭘까. 정한은 새삼 제가 밟아보지 못한 세계가 궁금했다.

 

   "지수야. 딱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뭔지 들어보고."

   "…아이는 왜 만들었어?"

 

   지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답을 고민한다기보단, 생각난 답을 말해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에 가까웠다.

 

   "안정적인 애정이 필요해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걸 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지.

   있지, 그 사람, 너랑 닮았어.

 

   정한은 더 대답 않고 지수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가만히 정한의 행동을 받아주고 있던 지수가 어느 순간 느리게 눈을 떴다.

 

   "이제 나 지아 보러 가야 해."

   "같이 가."

 

   아, 티셔츠 다 구겨졌다…. 지수가 거실 한켠에 내팽개쳐진 제 티셔츠를 집으며 중얼거렸다. 마찬가지로 구겨진 것을 대강 탈탈 털어 입은 정한이 차키를 집어 들었다.

 

   지수야, 그 아이도 자라겠지.

   그때의 네 얼굴이 되겠지.

 

   나는 그게 보고 싶은 건데…. 바삐 아기의 물건을 챙기는 지수의 등판을 바라보며, 정한은 그런 생각이나 한다.

 

 

 

 

 

   지아는 열이 내릴 만 하면 다시 오르고, 열이 오를 만 하면 다시 내리는 것을 내리 사흘을 반복했다. 정한과 지수가 번갈아 병원에 들렀다. 어떤 관계세요? 묻는 말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망설이다 겨우 삼촌이요. 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쉴 틈도 없구나…. 정한은 새삼 지수가 대단하고, 안쓰러웠다.

   겨우 지아를 퇴원시킨 날 밤엔 지수도, 정한도 각자의 방에서 쥐죽은 듯 잤다. 지아도 그 날만큼은 유달리 보채지를 않았다.

   자는 정한의 어깨를 누군가 흔들어 깨웠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정한이 인상을 찌푸리고 저를 깨운 사람을 올려보았다. 시야가 흐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안 되는 지점. 실루엣만으로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지수였다. 소맷자락을 끌어당겨 품에 안으려다 닿은 차가운 손에 정한이 화들짝 놀랐다. 정한의 이마에 차가운 지수의 손이 와 닿았다.

 

   "자, 또 올게."

 

   그 나긋한 음성이 다정해서, 정한은 다시 잠이 든다.

 

 

 

 

 

   한참을 자다 일어났다.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았다. 갑자기 훤하게 쏟아지는 빛에 정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순영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메세지함을 열어본 정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형, 강민아씨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았어. □□시 □□헤어샵. 지수형한테도 메세지 보냈어.]

 

   메세지를 읽은 정한이 방을 뛰쳐나와 온 집안을 뒤졌지만, 지수도 지아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가 않았다.

 

   지수가 또다시 사라졌다.

 

   두 번째는 더 익숙했다. 있던 게 사라지는 게 아니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것 뿐이었다. 다만 이번엔 흔적이 많았다. 젖병이 사라졌지만 분유통은 덩그러니 식탁 위에 남아있었고, 지아는 사라졌지만 아기침대와 장난감은 그대로였다. 정한은 저를 제외하고 모든 남겨진 것들을 작은 방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보고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또 다시 떠나버린 그 애가 미웠지만, 그때만큼 원망스럽진 않았다.

   이제 정한은 지수의 행복을 바란다.

 

 

 

 

 

   진달래가 필 때 쯤, 정한과 순영의 진달래흥신소는 그야말로 깔끔하게 망했다. 강민아를 찾겠다고 전국을 들쑤시고 다니느라 기존 고객들의 의뢰를 죄다 미룬 것이 큰 타격이었다. 예, 사장님 죄송해요. 저희가 더 잘 챙겼어야했는데. 네, 네. 하루종일 전화를 붙잡고 연락을 돌렸다. 사무실로 찾아온 고객에게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도 했다.

   고소작업차와 인부가 간판을 떼어내는 모습을 보며, 다마스에 기대어 정한과 순영은 담배를 피웠다. 형, 우리 이제 뭐 하지? 순영이 물었을 때, 정한은, 하던 거 해야지, 했다. 근데 너 나랑 계속 같이 할 거니? 형, 나 버릴 거였어? 순영이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아냐, 아냐. 내가 우리 호싱이를 어떻게 버리니. 웃으며 정한이 담뱃재를 털었다.

 

   둘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뭐, 하는 일은 이전과 비슷하고 달랐다. 사람들의 서류를 가져다주고 도장을 받아오고 집에 놓고 온 여권을 배달하고 가끔은 잃어버린 개도 찾아줬다. 누군가의 뒤를 쫓고 사진을 찍을 때보다야 일이 많고 돈은 적었지만 마음이 편했다. 웬 퀵서비스? 묻는 순영의 말에, 너나 나나 운전 잘하잖아. 대답했지만서도 실은 정한은 이제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다. 간간히 들어오는, 꽃다발을 배달하고 케이크를 가져다주고 때론 안절부절하는 젊은 부모에게 약을 쥐여주기도 하며 밝아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좀 더 맘에 들었던 것이다. 그 개자식이 소자식이 동창회에서 바람이 나가지고…… 하는 흥미진진 막장드라마 스토리보다야, 좀 진부해도 로맨스 영화가 나으니까.

 

   "형, 손님 온댔으니까 받아줘! 나 배달 나간다!"

 

   어엉. 매직 뚜껑을 입에 문 채로, 정한이 성의 없이 대답했다. 새로운 상호명을 고민하던 때였다. 여기도 꽃 이름을 넣어버릴까. 석 달만 지나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이름이건만 정한의 얼굴은 제법 진지했다.

 

   "안녕하세요."

 

   딸랑, 사무실 현관의 풍경이 울렸다.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순영이 사와 걸어놓았던 것이었다. 정한이 고개를 돌리며, 펜을 물고 있어 부정확한 발음으로 어서오세여, 했다.

 

   돌아본 그 곳에 지수가 서 있었다. 지수의 손을 잡고 제 두 발로 선 어린 아기도 함께.

   매직펜이 맥없이 떨어져 제 바지에 진한 자국을 남긴 줄도 모르고, 정한은 달려가 지수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걷던 지아가 덩달아 울음을 터트렸다.

   지수는 지아가 드디어 정식 이름을 얻었다고, 아기의 영어 이름은 조이로 정했다고. 울지 말라며 정한을 달래느라 아직 묻지도 못한 그런 이야기들을 해댔고, 

   실은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고, 정한은 울며 그런 고백을 줄줄 해댔다.

 

 

 

 

 

   코스모스가 필 때 쯤이 되어서야 정한과 순영의 사무실에 새로운 간판이 걸렸다.

 

   [조이 퀵서비스 심부름센터]

 

   정한은 더 이상 지수가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기쁨이 있었다. 정한이 오래도록 찾아 헤맸던 그것이. 

 

 
 
 

 

 

자산 1.png

   그냥 갑자기, 오래 소식이 끊겼던 지아아빠가 정한이 앞에 어느날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하던 궁금증 하나가 이 글을 완성시키게 했어요.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은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입니다. 딱히 읽으면서 들으시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구요....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그냥 이게 영상물이라면 엔딩크레딧 올라가는 동안 나올 곡이 이 곡이겠거니 정도로만 생각하고 한 번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감 어떻게하냐며 머리 싸매며 고민하는 동안 할 수 있다며 부추겨준 나의 친구가좍들 정말 고맙습니다. 윤홍합작 열어주신 합작주분께도 정말 감사해요! 수고하셨습니다!